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2. 9. 29. 08:51 횃불/1981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죤 리치

(2) 애굽-광야-가나안

성경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처해 있었던 세 곳의 다른 위치들을 보게 되는데 이것들은 각기 성도들의 위치와 몫을 상징하고 있다.

 

1.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여기서 그들은 인방에 피를 바른 도피처 안에서 심판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되어 하나님과 화목된 상태에 있다. 그들은 집안에 앉아서 불에 구운 양고기를 조용히 먹는 모습으로 나타나있다. 또한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애굽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은 정죄된 세상 중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보호를 받으며 장차올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을 보여 준다. 그들이 죽음 가운데서 살아있음은 그들에 대한 심판이 지나갔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어린 양의 피는 모든 공의(公義)의 요구에 대한 답변이므로, 그 이상의 요구는 있을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과 화목되어 평화를 누리면서, 고난당하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양을 잡는 잔치에 참여하고 있다. 행장을 차리고 주님이 지상에서 하늘로 그들을 데려가실 그 시간을 고대하며 기대에 부풀어 서 있는 상태이다. 그들은 잠시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다. 인방 위의 피가 그들과 애굽인들 사이에 있으며 그들은 아침까지 그 분리된 위치를 이탈하지 말라는 명확한 명령을 받았다( 12:22).

 

애굽에서 이스라엘인들은 안전한 보호 가운데, 양고기를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성도는 구원, 교제, 소망을 갖는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이러한 위치에 있는 성도들을 묘사하고 있다.

 

2.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광야는 하나님을 향해 성별된 위치이다. 홍해가 그들과 애굽 사이의 하나의 장벽으로 펼쳐져서 그들을 우상과 노예의 상태로부터 영원히 분리시키고 있다. 그들은 한 택한 백성이며 많은 국가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의 안내자가 되시는데, 길을 인도하기 위한 구름기둥이 그들 위를 배회하였다. 그들은 매일 하늘에서 내리는 하나님의 만나를 먹으며, 내리친 반석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물을 마셨다. 그들은 그분의 빛 가운데서 걸으며, 그분의 기() 아래서 싸웠다. 애굽이 그들의 뒤에 있고 가나안이 그들의 앞에 있으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고 계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악한 세대로부터 구원받은 성도들의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3). 그는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6:14), 죽어서 묻혔으며( 2:12), 타국 땅의 나그네이며(벧전 2:11), 더 나은 하늘 본향을 고대하고 있다.

 

주위에 있는 열방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단지 나그네 같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드리며 왕도(王道)를 따라 조용히 걷는다. 아버지의 눈이 그의 위에 있으므로 그는 위를 바라보며 걷는다.

그의 모든 원천은 하나님 안에 있으며, 그는 모든 필요에 대한 매일의 공급을 그분께 의존한다. 그의 걸음은 믿음의 걸음이며, 따라서 고난의 걸음이며, 때로는 실패의 걸음이다. 마라의 쓴 물을 맛보게 되며 곧 이어 단 물과 엘림의 종려나무들을 알게 된다.

여기서 아말렉이 여행자와 싸우러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그들과 함께 계셨던 것같이 지금 그들과 함께 계시며 하나님은 그 원수들보다 강하시기 때문에 원수들은 모두 패배 당한다.

 

믿는 자에게 있어 광야는 하나님의 학교이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약함을 경험적으로 배우며,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한다. 그는 이제 이론으로뿐만 아니라 고통스런 체험으로 자신의 육신 안에 아무 선한 것이 거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그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보여주는 기회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또한 모든 절박한 상황을 넉넉히 극복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며, 그의 여정의 모들 과정에서 넘어질 때 일으켜 주시고, 약할 때에 힘이 되시며, 싸움에서 구원자가 되시며, 곡간(양식)이 되어 주심을 체험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의 해변에서 노래를 불렀던 것같이, 어린 성도가 광야에 첫발을 내딛고 기쁨으로 가득찬 마음과 빛나는 눈으로 서서, “나의 죄가 모두 용서되었음을 나는 안다네”, “하늘이 나의 집이라네라고 찬송하는 소리는 얼마나 듣기에 좋은지를!

그러나 더 위대한 광경은 나이든 여행자가, 한 평생의 교훈과 함께 일어섬과 넘어짐, 그리고 과거의 실패와 회복으로 얼룩져있는 황량한 광야 길이 뒤로 길게 펼쳐져 있는 곳에 지팡이를 의지하고 서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며, 거기 광야의 마지막 일보를 밀고 서서 갈렙이 했던 것같이 이렇게 외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제 보소서 이 사십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14:10,11).

그는 자신을 알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을 증거했으며, 그것은 경험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서서 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구원하시고, 붙들어 주시며, 방어해 주시고, 억제해 주시며, 또한 우리의 방황하던 발이 미끄러지려 했을 때에나, 우리가 때때로 방황하던 그곳이 얼마나 낭떠러지의 끝에 가까운 가를 알게 되었을 때, 그분의 손에 의해 제자리로 이끌려봤었던 그 모든 험한 길을 뒤돌아보며 우리는 분명히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선하게 인도하셨다라고 외치게 될 것이다.

 

시편 23편은 본향으로 여행하던 중 여호와를 자신의 목자로 체험한 사람의 광야 노래이다. 여행자의 뒤에는 십자가가 있고(22), 그의 앞에는 영광이 있으며(24), 현 위치에서는 목자가 그와 함께 하시는 모습(23)으로 보여지고 있다.

비록 그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으며 주위는 원수들로 둘러 싸여 있지만 그가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은 목자가 그의 곁에 계시며, 그분의 지팡이와 막대기와 그분의 인도하시는 눈이 그 여행자를 위해 주님의 집 곧 그의 영원한 집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당신은 이 세상이 황량한 광야임을 알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당신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당신의 눈에 매력을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타국 땅을 걷고 있음을 깨닫고 있는가? 사단과 당신 자신의 육신은 매순간 당신을 곁길로 유혹하려고 하며 당신이 뒤에 두고 온 애굽의 즐거움을 기억나네 만들 것이다.

위를 보라.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는 분은 당신 편이시며 당신을 끝까지 인도하실 수 있으시다, 머지않아 당신은 아버지 집에 다다를 것이며 거기서 뜨거운 환영을 받을 것이다.

 

당신을 맞아줄 분은

낯선 분이 아니라오.

나그네인 당신을 안식으로

하늘 궁정에서 당신을 맞을 분은

잘 알려진 그 사랑으로 당신을 반기시리,

 

빌립보서와 히브리서, 그리고 베드로전서 등은 하늘을 건너편에 둔 광야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다.

 

3.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위에 서 있는 그들, 즉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났고 이제 요단을 건너 애굽은 멀리 뒤에 두고 있는 상태이다. 그들은 손에 칼을 쥐고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1:3)라고 말씀하신 그 땅을 소유하고 있는, 하나의 용사들의 나라에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삶은 한가한 삶이 결코 아니며 그것은 믿음의 싸움일 뿐이다. 전진이 그들의 군호이며 주의 군병 대장의 지휘에 따라 승리에서 승리로 진군한다.

이것은 성도가 이미 부활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은 모습을 보여준다. 여행의 종착 지점에서 하늘을 고대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고 이미 거기에 도달했으며 또한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복받은 상태이다( 1:3).

에베소서는 성도들의 가나안이라 부를 수 있다. 거기엔 하늘에 속한이란 표현이 자주 언급되며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곳에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땅이 아니라 하늘이 그의 상속이요 축복의 장소인 것이다. 그는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한 자이며( 3:1), 그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3: 20), 그의 보화가 있는 곳에 그의 마음도 있다.

 

가나안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위하여 세상을 떠날 때 들어가는 곳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서는 그가 안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에서는 칼과 방패를 휘두른다. 에베소서에서의 위치가 바로 그것이다.

에베소서 6장에서는 그가 악한 영들과 투쟁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것은 그의 권리를 의심하게 하고 은혜로 주어진 몫을 즐기는 데에 방해하려고 하기에 투쟁이 따르는 것이다. 그는 마치 전쟁의 날을 당한 무사와 같이 하나님의 전신감주를 입고 서 있으며, 만일 주 안에서 강하고 주의 능력 안에 거하면 그는 능히 이길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 땅 곡물은 그의 매일의 양식이 된다. 이로써 그는 전쟁에 임할 힘을 얻는다. 이 전쟁은 아이들의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마귀와 승부를 가리는 전쟁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몫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싸움이 몹시 격렬함을 알게 될 것이다.

 

4. 결론

우리는 동시에 애굽과 광야와 가나안에 살고 있디.

 

사실상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것은 밤을 의미한다. “밤이 다 가고우리는 결국 주님이

오시는 그 아침에 그 곳을 떠날 것이다.

 

경험으로 말하면 우리는 광야에 있다.

자녀들은 아직도 학교에서 하늘 아버지의 훈련 아래 있으며 그것은 평생 교육이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맞을 매, 또는 주와 함께 있기 위하여 세상을 떠날 때 완성될 것이다.

 

우리의 위치로 말한다면 우리는 가나안에 있다.

세상이 우리 주위에 있는 동안 또한 육신이 우리 안에 있는 동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세상과 육신 이 모든 것보다 훨씬 높이 있으며 우리의 신분은 그분 안에 있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악령과 대항하게 되며 악령과의 대항은 주님이 오셔서 악령이 하늘 밖으로 쫓겨나게 될 때에야 끝나게 될 것이다( 12:9).

 

지금도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싸움에 이기시며 우리를 통하여 승리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정복자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으며 사단은 우리의 발 아래서 치명상을 받을 것이다( 16:20). 주님은 이 싸움이 곧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투쟁 중에 있는 우리를 격려하신다.

 

그 때까지,

사랑하는 성도, 주의 군병이여,

너의 무장하고 강한 원수를 맞으라.

하늘의 검을 휘둘러 치명타를 치라.

신령한 싸움에서 전진하고 전진하라.

적진을 탈환하기까지 전투를 늦추지 말라.

 

(1981 10월호)

 

'횃불 > 198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고 싶습니다  (0) 2012.09.29
47년 후에야••••  (0) 2012.09.29
하나님의 교회  (0) 2012.09.29
성경일람(57) - 베드로전서  (0) 2012.09.29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  (0) 2012.09.29
지각이 혼돈한  (0) 2012.09.29
성경일람(56) - 야고보서  (0) 2012.09.29
세 여인의 봉사  (0) 2012.09.29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