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성막
죤. 리치
이스라엘의 역사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그들 가운데 성막을 지니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잠깐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1장에 보면 속박 상태에 있는 민족의 곤고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성막도, 영광의 구름도 없었습니다. 변화받지 않은 죄인처럼 그들은 노예였으며,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고, 신실하신 약속대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2장은 그들의 구원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백성의 생일입니다.
그 다음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구별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홍해가 열림으로 그들은 애굽의 권세를 벗어났고, 홍해가 그들 뒤에서 닫힘으로 애굽의 권세는 영원히 그들을 지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으로부터 이끌려 나와서 하나님과만 함께 있도록 구별되어졌습니다. 그들은 이제 애굽의 제단과 우상들로부터 멀리 떨어졌고,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해 내려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막은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로부터 오는 여러 가지 교훈을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애굽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은 성막의 귀한 가르침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혹은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세상의 교훈에 물들어 있거나 세상을 사랑하는 추한 마음으로 가득차 있다면, 하나님의 귀한 교훈들을 배울 수 없습니다.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라고 하신 약속은 다음 말씀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고후
세상과의 교제를 계속 즐기면서 자신의 영적인 황량함과 하나님과의 교제의 결핍을 한탄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의 쾌락을 얻기 위해 아버지의 영광의 낯을 떠났다면, 하나님과의 교제를 십자가의 원수와의 교제와 교환했다면, 자신의 거래에 대해 한탄할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그가 만일 성막 주위에 진을 치고 있는 구속받은 여호와의 백성들과 교제를 나누고 있지 않다면, 다음의 말씀을 주의해야 합니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내가 너희를 영접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성막-문자적 의미와 상징적 의미
성막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그것은 동쪽을 바라보면서 12지파의 중앙에 서 있습니다. 구름이 그 위에 드리워져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 안에 계속 거하셨습니다.
성막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 하나님의 궁전인 성전에 비해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물의 모습을 지녔습니다. 성막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부분은, 길이가 100규빗이요 넓이가 50규빗 되는 바깥 뜰입니다. 이 뜰은 세마포로 둘러싸여 있으며, 뜰 안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놓여있습니다.
울타리 막 안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둘째, 셋째 부분에는 덮개가 씌워져 있으며, 성소와 지성소로 되어 있습니다. 길이가 20규빗이요, 넓이가 10규빗인 성소에는 향단과 진설병을 벌여놓은 떡상과 황금촛대가 놓여있습니다. 4개의 기둥 위에 드리워진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의 경계가 됩니다. 길이가 10규빗이요, 넓이가 10규빗인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놓여 있고, 그 위를 속죄소와 그룹이 덮고 있으며, 영광의 구름이 그 사이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성막 주위에 질서있게 진을 치고 있었으며, 아마도 백성들의 수는 모두 해서 2백만이 넘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 산에 있을 때, 성막의 전체적인 모형과 각 부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지를 자세히 지시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지시하신 모든 식양(式樣)대로 작은 못바늘 하나도 빠짐이 없이 온전하게 성막을 짓도록 모세에게 여러번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출 25:40, 26:30). 성막은 하나님의 집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식양을 친히 지시하신 것입니다. 충성된 종 모세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일군들은,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는 일에도 성막을 짓는 것에 못지않게 지극히 신경을 쓰신다는 것을 필히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역시 지상에 있는 자신의 집이 어떠해야 하는지 모든 식양을 자세하게 지시하셨습니다(고전, 딤전 참조).
말씀대로 순종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은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지상에 있는 교회를 불러 올리실 때까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 중의 맨 처음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의 아담과 동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므레의 아브라함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막이 세워진 이후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구속받은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실 처소를 지상에 갖게 되었습니다.
성막 후에는 성전이 세워졌고(대하
그 후에는 교회입니다. 이는 영적인 집이요, 거룩한 성전이요, 산돌들로 지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지상의 처소입니다. 그 외의 어떤 집도, 아무리 장엄하고 훌륭한 성전이라도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은 “하나님의 집”이라 불리우는 영예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속량받은 두 세 사람의 성도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 바로 그들 중에 주님께서 거하십니다(마
잠시 후, 죄와 사망이 더 이상 없게 되었을 때, 광야의 수고와 눈물이 지나갔을 때, 마지막 원수가 정복되었을 때,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되시는 때가 되면, “하나님의 장막(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시게” 될 것입니다(계
성막의 상징적인 의미는 곧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성전의 모든 것이 주님의 영광을 말합니다(시 29:9). 휘장 안에 있는 언약궤로부터 바깥 뜰에 있는 가장 작은 바늘 못이나 끈에 이르기까지 성막의 모든 것 하나 하나는 다 주님의 영광과 우리를 위해 이루어 놓으신 사역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항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점차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성막은 또한 세상 가운데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교회 즉, 광야상태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자원하여 드린 예물
성막의 모든 재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원하여 드린 예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설혹 황금이라 할지라도, 나그네나 외국인이 드린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를 장식하는 일에는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변화받지 않은 죄인들이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며, 성도들의 예물에 함께 섞여서도 안됩니다. 기독교계는 이 점에 있어서 크게 범죄했습니다. 세상은 이름뿐인 교회를 지원하고 있으며, 재물이 많은 속인들이 그 교회의 기둥이 됩니다. 부정 수단으로 얻은 돈이나 육신적인 사람들로부터 억지로 뜯어낸 헌금이 허울좋은 명목 아래 멋진 종교적인 건축물을 짓는 일에 사용되어 사람의 교만과 허영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는 가인의 예물을 음미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시거나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풍성히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는 성도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속에 늘 함께 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원과 그 후의 축복의 달콤한 맛을 늘 향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족장들은 귀금속과 향료를 가져왔으며, 여인들은 팔찌와 보석을 가져왔고, 드릴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노동으로 그들의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힘센 남자들은 주1)싯딤나무를 잘라 넘어뜨렸으며, 마음이 슬기로운 여인들은 손수 실을 낳았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백성이 자원하는 예물을 넘치도록 풍성히 가져오기 때문에(출 36:3) 모세가 명을 내려 가져오기를 중단 시켰습니다.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출 36:7)
주1)조각목: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으로 애굽과 아라비아에서 많이 생산되며 사막에서 자라기 때문에 내구성이 강함.
실로 아름다운 이 광경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부는 그 세력을 잃었으며, 성도들은 자신의 재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행2장). 그러나, 선지자 말라기 시대에는 얼마나 슬픈 모습인지요! 백성들은 여호와를 떠났으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감지할 수 없었습니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말
(198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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