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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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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6. 07:34 횃불/1987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1)

폴 리틀

만약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가장 묻고 싶은 질문 한가지에 대답을 해주겠다고 말씀하신다면 여러분은 그분께 어떠한 질문을 하시겠습니까? 제가 추측컨데 그 질문은 아마도 여러분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관계 있을 것입니다. 하여간 헌신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실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의 평안과 만족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있음을 아는 것과 정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두려워하게 되고 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문제에 관하여 분명히 하지 않는 한 우리는 실제로 많은 전진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이렇게 질문합니다. “당신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청사진을 발견하셨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청사진 전체를 한꺼번에 보여주시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여러분이 청사진 전체를 구하고 계신다면 여러분은 실망하기 십상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 가운데서 다음 단계를 보여주시는 일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애에 대하여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생애가 당분간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으로 결합될 수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지니는 놀라운 면들 중의 하나입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0). 다윗은 시편 37:23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리고 시도행전 13:2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편 73:24에서 다윗은 하나님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시편 32:8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의 잘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마지막으로 성경 전체에서 인도에 관하여 가장 간결하게 말해 주는 구절들 중의 하나인 잠언 3:5-6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의 뜻의 두 가지 면

하나님의 뜻은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면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그분의 뜻과 계획이 그분의 말씀에 이미 계시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면은 하나님이 성경에 명시해놓지 않은 사항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대부분 성경에 이미 계시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놀란 적이 있습니까? 이러한 점을 깨닫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성경에는 적극적으로 하라고 명령하는 사항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주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16:15). 그리고 로마서 8:29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더 많은 사항들을 자세히 알기를 원하신다면 야고보서를 읽고 거기에 나온 구체적인 명령들을 모두 목록으로 만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또 하지 말라는 명령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후서 6:14에서 우리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명백하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믿지 않는 자와 결코 결혼할 수 없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믿게 않는 자와 결혼을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를 하나님께 인도를 구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인이 된 A·W 토저는 하나님께서 이미 금하신 사창에 대해서 인도를 구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또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사항에 대하여 인도를 구해서도 안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토저는 제안하기를, 하나님께서는 그밖의 다른 대부분의 사항에 있어서는 특별히 더 좋아하시는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소고기 요리를 먹던지 닭고기 요리를 먹던지 별로 상관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초록색 셔츠를 입던지, 청색 셔츠를 입던지 별로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삶의 많은 영역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보고 우리 자신의 거룩한 선호도(選好度)를 참조하라고 권유하십니다. 우리가 기뻐하면 하나님께서도 역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는 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반면에 우리에게는 특별한 인도가 필요한 사항들이 있다고 토저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8사항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인도를 구할 수 있으며, 그 예를 든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죤스는 신시내티에서 엔지니어가 되어라.” 혹은 메리 스미스는 프레드 그로텐하이머와 결혼해라. 성경에는 여러분의 삶에 관계된 이와 같은 종류의 문제들이 자세히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항들에 대해서 우리를 특별히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 여호와라.”( 48:17).

이상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관한 두 가지 면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청사진에 관한 정적(靜的)인 개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요술 꾸러미처럼 끈에 묶인 채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말마다 풀리는 두루마리와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위해 오늘과 내일과 모래와 글피와 그 다음 날에 대한 뜻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특별한 인도를 받기 전에 선행되는 조건들

이제 하나님의 뜻에 관한 두 가지 면을 어느 정도 이해한 후에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은 영역에 관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데에 어떠한 전제 조건들이 필요한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 번째의 전제 조건은 우리가 먼저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이고 분명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혹은, )이니라”( 6:29). 먼저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 그분을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두 번째의 선행 조건은 성경에 명시된 사항들을 알아가는 대로 적어도 마음으로는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명시친 사항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는데 그렇지 않은 사항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아크 트웨인은 언젠가 찌푸린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것은,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성경 말씀들이 아니라 제가 이해하는 성경 말씀들입니다.” 아마 이것이 우리들 중 일부가 지니고 있는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명시 된 사항들을 순종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기도 가운데서 날마다 주님과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저의 계획에 대해서 모르는군요. 저에게는 금년에 해야 할 공부가 무척 많이 있단 말이에요.”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다 동일합니다. 단지 우선순위가 문제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하나님과 만나려 하다면 여러분은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 공부 시간과 마찬가지로 하루 중 언제 기도 시간을 가져야 할지 미리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랫층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싶은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가져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언제 그 일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미리 계획하고 그 사람들과 접촉을 시도하여 그들이 복음에 대해서 마음이 열려 있는지를 알아보십시오.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들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어느 정도까지 그 아는 사항들을 순종하고 있습니까?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번째의 선행 조건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은 사항에 관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기만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기꺼이 받아들이고 순종하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사전(事前)에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우리에게 진짜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정직해지기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다음과 같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 저에게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제 마음 속에 있는 것과 같은지 살펴보겠습니다.” 본질적으로 볼 때 우리는 사실상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잠깐만 커튼을 들어 올려 제가 그 안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그것을 할지, 안 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를 어디로 보내시기를 원하시는지, 그러고 무엇을 하시를 원하시는지 저에게 보여 주십시오. 만약에 그곳이 팜 비치나 라구나 비치, 혹은 호놀롤루라면 저는 그것에 대해서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잠깐 멈추고 이와 같은 태도를 분석해 보기만 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태도가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저는 무엇이 저를 행복하게 해줄지에 대해서 하나님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제 생애를 관리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하나님은 저를 속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참으로 엄숙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관하여 비극적이고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행하여 행복하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여 비참하게 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그분이 우리의 코 앞에 갖다 놓고 너 이제 이거 할래 안 할래? ? 벨리 말해봐! 할래 안 할래 라고 요구하시는, 어떤 끔찍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그 끈적끈적한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진짜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진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생각들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하나의 모독입니다. 우리들 중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하늘의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며, 생을 즐기는 사람이 없는가 하고 엿보는 천국의 스쿠리지 같은 분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그분이 행복한 사람을 발견하면 당장 그만두지 못해!” 라고 고함칠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이와 같은 개념에 전율을 느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로마서 8:32에 제시된 엄청난 진리를 우리 마음속에 깊이 심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만일 여러분이 이 구절을 꽉 움켜쥐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이 말씀에 사로잡히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관련된 문제 중에서 90%를 해결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분에게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자신의 생애를 그분에게 드릴 때에, 우리를 속이시고 우리로 손해를 보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 것이든지 간에 그것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 말씀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확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기뻐하시고, 그분의 전지(全知))하신 속성과 사랑의 성품을 따라 우리의 삶을 가장 합당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 드리는 분은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 자산을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잘 아십니다.

하나님의 성품 및 그분을 아는 사람들의 경험에 추어 볼 때 저는, “하나님의 뜻에 굴복한다는 표현을 몹시 싫어합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그 표현이 마치 거절하는 것 갈등하는 것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나에게는 다른 길이 없다. 나는 열심히 도망가고 있지만 꼼짝없이 붙잡혔군. 나는 무너져 내리고 굴복해야 해. 만사는 다 끝났어. 이제 포기해야지.” 저는 그 표현보다 하나님의 뜻을 긍정한다라는 표현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우리가 조금만이라도 지각(知覺)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뜻을, 확신과 기쁨과 큰 만족으로 긍정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번째의 선행 조건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것은(예를 들면, 인간관계에 있어서나 야망, 자격 등등에 있어서)여러분의 삶 속에 존재하는 저항의 영역을 제거하는 일을 수반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다음과 같이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저는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리로 가서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러이러한 조건을 먼저 채워주셔야만 하겠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저를 창조하셨고 저는 주님의 소유입니다. 제가 주님께 반역할 때조차 주님은 저를 위해 죽으실 정도로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제가 어떠한 사람이든지 간에 제가 어떠한 것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것은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저는 저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값으로 사신바 되었습니다. 저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제 자신을 주님께 헌신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여러분이 이 지점에 이를 때에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라고 말했던 바울의 말을 여러분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정으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성경에 제시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성정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은 사항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우선 선행되어야 할 조건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세번째로는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사항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87 11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