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시야
이미 제시된 대로 웃시야의 통치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그의 부친과 흡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통치 기간은 아마샤 때뿐만 아니라 여호사밧 시대 이후의 어떠한 왕보다도 더욱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가 왕위 승계했을 당시 여로보암 2세는 이스라엘 북부를 이미 얼마간 통치해 오고 있었으며, 수리아 사람들에 대하여 이미 승리를 쟁취하기 시작했음에 틀림 없습니다. 이것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사해) 바다까지” 그 땅의 북쪽 및 동쪽 변경(邊境)이 회복되리라는 요나의 예언의 성취였습니다(왕하
하지만 고난을 당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당시 베풀어진 은혜는 여로보암과 웃시야에 의해 그릇된 대우를 받자 금새 철회되고 말았습니다. 요나의 선교 원정 대상이었던 앗수르 사람들이 몇 년 안되어 북쪽 왕국과 남쪽 왕국 모두에게 내린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그 이후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전의 소유권과 세력을 두 번 다시 회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을 제외하고 이스라엘이나 유다의 어떠한 왕도 웃시야만큼 다양한 관심과 업적을 가져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신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 왕(대하 26:1) (2) 전사(戰士, 6절) (3) 건축가(6, 9, 10절) (4) 농부(10절) (5) 기사(奇士, 15절).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만족하지 못한 그는 또 (6) 제사장까지 되려 했으나(16절) 이로 인해 결국 (7) 문둥이로 그의 생애를 마감해야 했습니다(21절).
솔로몬에 찬하여 다루고 있는 앞의 어떤 장(章)에는, 그의 계보를 따르는 왕들이 위대한 자기 조상의 지혜로운 훈계, 곧 잠언과 전도서에 제시된 훈계를 따를 수도 있었고, 아니면 적어도 그의 나중 생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훈계와 늘 일치하지는 않는 그의 행실을 모방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나쁜 쪽으로 선택을 내렸던 왕들이 여럿 있었으며, 웃시야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일반적 인 통치 성격상 솔로몬을 열렬히 모방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홍해의 항구였던 엘롯은 역대하
통치 초기에는 웃시야도 그의 조부 요아스처럼 선한 사람의 지도와 도움을 받았습니다. 5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웃시야가)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이 스가랴에 관해서는 여기의 언급 외에 더 이상알 말이 없으나 우리는 이 절로부터 그가 ‘좋은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것과 그 영향이 하나님의 묵시에 의지한 것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은 틀림없이 겸손한 사람이었을 것이며, 그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도 역시 겸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가랴의 죽음으로 그 영향이 중지되자 웃시야 왕은 다른 많은 왕들처럼 스스로 서 있을 능력이 없었고, 그 마음의 교만을 드러내고야 말았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놀라운 모습을 보고 그것을 6장에 묘사한 그 사건은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일어났었다고 진술되어 있으며, 그 장면은 바로 웃시야가 범죄한 성전이었습니다. 문둥이 왕의 최근의 죽음과 및 그의 범죄와 형벌에 관한 기억은 그 선지자의 마음 속에, 자기는 그처럼 거룩하고 위엄 있는 장소에 있을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고, 급기야 그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소리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화(禍)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이 부정한 입술은 레
이 경험과 및 그 왕에게 닥쳤던 심판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개념들은 여기저기 이사야서 전체에 걸쳐 우리 눈에 들어옵니다. “부정한 자”에 관한 언급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 제시되어 있습니다-35:8(우리말 성경에는 “깨끗지 못한 자”로 나와 있음-역주), 52:1,11, 특히 64:6이(이 구절의 “부정한 자”와 “더러운 옷”은 그 선지자의 마음에서 직유(直喩)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또
웃시야에게 작별을 고하기 전에 흥미로운 점 또 한 가지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의 힘”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역대하 26:8,15,16의 “강성하여”라는 언급의 근저(根底)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그의 또 다른 이름 “아사라”(열왕기하의 그에 관한 기록에서는 그가 흔히 이 이름으로 칭해져 있음)는 “여호와의 도움”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역대하 25:7,13,15에 더욱 분명하게 암시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두 이름에 대한 히브리 원명은 “아살”(azar)이기 때문이며, 이 이름으로부터 “아사랴”라는 이름이 합성되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역대기에서는(대상
(1991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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