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속죄(3)
서신서와 계시록에서
-필립 하딩 -
비록 “속죄”란 단어가 신약의 단어는 아니지만 그러나 속죄를 말할 때 우리는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내포된 모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십자가는 모든 성경에 스며 있다. 역사서는 그 필요성을 입증하며, 레위기는 그 의미를 미리 보여주며, 시편은 그 경험을 묘사하며, 선지서는 그 고난을 예고하며, 복음서는 그 성취를 묘사하며, 사도행전은 그 축복을 선포하며, 서신서는 그 교리를 설명하며, 그리고 계시록은 그 열매를 드러낸다”(윌리암 호스테).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묵상으로 나아갈 때는 그 분명한 한계를 인식하고, 우리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나아가야 할 갓입니다.
속죄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인간은 부패하고 전적으로 타락한 범죄한 존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분명히 가르쳐져 있습니다(롬
죄는 범죄한 인간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데려갔으며(롬
속죄는 자발적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만일 무죄한 사람이 범죄한 사람을 대신해서 고난당해야 했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극히 불공정할 것이나, 만일 그가 자발적으로 죄인의 위치에 섰다면 그것은 적법할 것이며, 어떤 면으로든 공의가 훼손되지 않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그 영원한 보좌의 영광을 떠나서
영광의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오셨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 보배로운 피로
죄인의 속전을 치르셨네”
로마서
속죄는 가치가 있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만족하셨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속죄의 우선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을 보존하는 것이다”(윌리암 호스테). 우리는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공의는 무한한 희생에 의해서만 만족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무한하신 사랑으로 인해 그러한 희생을 예비하셨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의가 만족되었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사역의 무한한 가치로 인해 다시는 속죄가 반복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충만히 드러내 줍니다. 속죄의 가치를 인간 편에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용서를 위한 의로운 기초를 제공하며(엡
속죄의 가치는 그것을 성취하신 그분의 무한한 가치에 비추어 봄으로써 비로소 측량될 수 있으며, 우리는 우리의 유한한 마음으로는 그리스도의 무한한 가치를 측량할 수 없으므로 속죄의 가치 또한 측량할 수 없습니다.
속죄는 대리적이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그리스도의 갈보리 사역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이 디모데전서
그러나, 속죄의 대리적인 성격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마련된 우주적인 예비책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죽음의 대리적인 성격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리적”(Vacarious)이란 말은 “····대신에 “라는 뜻이며 따라서 대속의 개념을 드러내 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고후
속죄는 승리적이었다
갈보리는 비극이었을까요, 아니면 승’리였을까요? 분명 그것은 승리였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하나님께서 영원히 영광을 얻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위가 세워졌고 사단이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갈보리에서 우리의 아담 안의 위치(옛 사람)가 처리되었고(롬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승리적이었다는 것은 그분이 만물 위에 좌정해 계시고(엡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 게 실제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었다는 것과,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바 된 자들이므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의 지체를 하나님을 위한 의의 도구로 드림으로써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의 마음에 새롭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롬
그리스도의 사역은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내시기 위함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를 죄와 자기 중심의 삶에서 건져내시기 위함이었으며, 우리를 하늘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를 의로움과 거룩함의 삶을 살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벧전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십자가가 현재우리의 삶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요? 우리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는지요?(갈
(199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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