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와 책
계 경 자
“예들아, 아빠 왔다 오늘도 재미 있게 놀았니?” 아빠의 귀가 인사에도 아랑곳 없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TV 화면에서 아이들의 시선은 움직일 줄 몰랐다
아빠는 아이들 얼굴 앞으로 다가서며, “얘들아, 아빠가 오셨는데 인사도 안하니?” 했더니 아이들은 아빠의 몸으로 가려진 TV화면을 보려고 고개를 옆으로 기웃거리면서 입으로만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라고 했다. 아이들의 태도를 보다 못한 남편은 옷을 갈아 입을 생각도 잊은 채, 한참을 서서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더니 TV를 가만히 껐다.
아이들은 그제서야 깜짝 놀라 아빠를 쳐다보며 “아빠! 왜요? 어린이 시간인데”라고 질문을 했다.
남편은 아무 말없이 아이들만 주시하고 있었다. 역시 아이들도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는지 더 이상 질문 없이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는 두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는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라고 말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해 보아라”라고 가르쳤다. 아이들은 조용히 따라 했다. 이어서 아빠는 그렇게 똑같은 인사를 열번 반복하라고 일렀다. 아이들은 그렇게도 재미 있는 TV 프로를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는 어색함, 그리고 아빠로부터 꾸중을 듣고 있다는 미안함과 자책감에서일까 두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열심히 아빠가 시키는 대로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를 반복하며 허리를 90”로 굽혔다. 그러자 그제서야 아빠는 아이들을 끌어안아 자신의 무릎에 앉혀놓고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얘기를 시작했다.
“얘들아. 아빠가 지금 어디 갔다 왔는지 너희들은 아니?”
“회사에요.”
“그래. 아빠가 왜 회사에 다녀왔을까?”
“열심히 열심히 일하러요.”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해야 할까?”
“음- 우리를 위해서요. 우리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그래요. 아빠! 아빠는 우리 모든 식구들을 위해서 열심히 회사에서 일하시는 거지요. 맞지요?”
작은 아이는 언니의 말을 받아 앵무새처럼 말하면서도 아빠의 동조를 얻기 위해 “맞지요”를 더 힘주어 외쳐댔다
아빠가 질문을 던지는 대로 아이들에게서는 퐁당퐁당 대답이 튀어나왔다.
이제 눈물은 그쳐졌고, 아빠와의 대화에 열중이다 보니 TV프로에서 관심이 옮겨졌다.
아빠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래 너희들 말이 맞아. 이 아빠는 우리 온 식구들을 위해서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지. 그리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빨리 가서 사랑하는 식구들을 만나야지 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단다. 그런데 너희들은 이 아빠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TV프로에 마음이 빼앗겨 아빠가 돌아온 것도 모른 채 인사도 안하고 TV만 보고 있으면 이 아빠마음이 얼마나 섭섭한지 아니?”
긴 설명이건만 아빠의 태도가 너무 진지했음이겠지, 아빠의 두 무릎에 앉아 듣고 있던 아이들의 표정 또한 진지했다.
“아빠, 미안해요. 이젠 아빠가 오시는 시간에 인사를 잘 할께요.”
큰 목소리의 또록또록한 작은 아이의 대답에 이어 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두요”라고 응수했다.
평소에 아이들을 잘 교육해 두지 못한 죄송함에 나는 한마디 거들지도 못하고 저녁 준비로 바쁜 양 손놀림만 부지런히 하며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자니 더욱 미안해졌다. 그러나 퇴근 후 모처럼 아빠와 함께 앉아 진지한 대화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흐뭇함도 비길데 없는 기쁨이었다.
이렇듯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여러 모양으로 신경을 써 보지만, 역시 이론뿐일까, 이토록 강력한 아빠의 교육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한 두 번 정중한 인사를 받아보는 것으로 족해야 했다. TV에 아이들의 마음이 빼앗기기는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아침식사 시간이다.
공교롭게도 이 시간 전후에 ‘뽀뽀뽀’와 ‘TV유치원 하나 둘 셋이 방영되는 시간이라 아이들에게는 늘 갈등이 있다.
그런데, TV를 시청하고 와서 앉은 아이들은 아침 밥상에서도 식사에 대한 감사보다는 머리 속에 어른거리는 TV영상으로 인해 온통 TV 얘기뿐이다.
저녁에도 마찬가지다. 어린이 시간이라 그냥 방치해 두었더니, 평소에도 “울트라 맨!” “자 어서 빨리 에너지를 공급하라.” “합체!” “지구 특공대, 지구를 지키자····등 우주 공상 만화 영화에서 외쳐대는 대화나 몸동작을 서슴없이 흉내낸다.
그때마다 꾸중을 해가며, 이렇게 해서는 안되는데, TV를 못보게 해야 할텐데 하며 마음을 애태우면서 어떤 분이 하셨듯이 우리도 TV를 부숴버려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한술 더 떠서 왜 우리 집에는 비디오가 없느냐며 비디오가 있으면 더 많은 만화영화를 언제든지 볼 수 있어서 참 좋을텐데 라며 다른 집에는 다 있는 것이니 우리도 비디오를 사 놓으란다.
물론 TV나 비디오가 다 나쁘다고만 하기에는 어폐가 있겠지만, 너무나 많은 경우 쓸데없는 오락물 위주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해로운 프로들을 많은 사람들이 여과없이 시청함으로 시간을 낭비함은 물론이고,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이를 모방함으로 사회나 가정 그리고 그 개개인이 얼마나 큰 피해를 보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교육 방송을 주로 보게 하고 어린이 시간도 분별하여 볼 수 있는 것과 봐서는 안되는 것을 지정하여 보도록 하지만, 이미 어린이들을 위한 시간에 하는 것을 아는지라 교육적인 효과와는 관계없이 계속 보겠다고 때를 쓸 때에는 몇차례 실랑이를 겪어야 했다. 그러니 이 철없는 아이들에게 그때마다 어떤 적절한 말로 설명하여 그들이 바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자주 고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비디오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니 기다리자고 했고, TV시청을 위해서는 몇가지 규칙을 정했다.
1. 꼭 필요한 시청을 위해서만 TV를 켠다.
2. 어린이를 위한 시간일지라도 함께 식사를 해야 할 시간에는 TV를 켜지 않는다.
3. 저녁 어린이 시간에도 우주공상만화 영화보다는 명작동화 만화로 서정적인 것을 본다.
4. TV를 보고 있는 중에라도 손님이 오시거나 아빠가 퇴근하여 돌아오실 때에는 일어서서 고개 숙여 인사한다 등이었다.
역시 얼마간은 잘 지켜졌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아이들은 규칙을 깨고, 조용히 TV를 켰다. 안된다고 했으나, 이미 켜진 TV에서는 뽀뽀뽀가 진행되고 있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는 것인가? 우린 하는 수없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뒤늦게 밥상에 와서 앉은 아이들에게 아빠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건낸다.
“얘들아, 아빠하고 엄마가 너희들에게 왜 TV를 못 보게 할까?”
아무 말이 없다.
“너희들이 TV를 보는 동안 가만히 너희들 얼굴을 쳐다보면 멍청하게 화면만 보고 있어, 너희들만 그런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사람들이 TV를 ‘바보상자’라고 별명을 붙여주었단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기 생각없이 멍청하게 화면만 보고 있으니까 바보처럼 멍청해 보이거든.”
“그래도 아빠! TV가 재미 있어요.”
성미급한 작은 아이의 대답이다.
“재미있으니까 많이 많이 보고 싶은데, 왜 자꾸 안된다고만 그러셔요?”
재미있어서 많이 많이 봐야 했다구. 아무리 재미있어도 볼 수 있는 것이 있고 봐서는 안되는 것이 있는데. 아무리 맛이 있어도 먹을 수 있는 것이 있고 먹을 수 없는 것이 있듯이. 어떤 것은 입에 쓰지만 몸에 좋은 것이어서 먹어야 하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입에는 달지만 몸에는 나빠서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지 않은가. 이래서 주님께서는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읽혔다고 하셨겠지. 그래서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낸다시며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한다시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급한 마음에 아이들을 향해 ‘엄마나 아빠가 나쁘다고 하면 나쁜 것인 줄 알고 “예 “하고 대답해야지 어디서 그렇게 말대꾸를 하니’라고 윽박지르듯 한마디 내 뱉으려다가 아빠와의 대화를 중단시킬 수 없어 간신히 참고 기다렸다.
“TV보다 더 재미 있는 것이 있는데.
아빠도 질새라 말을 이었다.
“뭔데요?”
“책! 너희들 밤마다 잠자기 전에 엄마가 책을 읽어주시지? 어때, 재미 있지?”
“f예.”
“책은 우리에게 재미있는 여러가지를 전해준단다. 지금은 너희가 글을 잘 몰라 읽을 수 없으니 엄마나 아빠가 읽어 주시지만, 너희가 글을 배우게 되면 너희들이 직접 여기 있는 이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지” 하면서 작은 방 삼면으로 둘러싸인 책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이들은 입을 딱 벌리며, “이렇게 많은 책을 우리가 다 읽는다구요? 그리고 이 책은 다 아빠랑 엄마 것이잖아요?” 했다.
“물론 그렇지. 이 책은 다 아빠 엄마 것이지. 그러나 너희들의 것도 될 수 있지. 책은 누구의 것이 없어. 읽는 사람의 것이란다. 그리고 너희들 저녁에 엄마가 책을 읽어주시면 너무 재미있어서 조금만 더 읽어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 그래서 다음날 너희끼리 놀면서도 그 책을 꺼내어 재미있게 읽던 것을 기억하며 또 읽어보잖니? 바로 그거야. 이렇게 좋은 책은 두고두고 또 읽고 또 읽고 해서 내 것으로 하는 것이란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거야. 그러니 너희들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니? 바보 상자인 TV만 많이 보고 멍청한 사람이 되고 싶으니, 아니면 책을 많이 읽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으니?”
“책을 많이 읽겠어요.”
두 아이가 합창을 했다.
참기를 잘 했구나. 나는 얼마나 자주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차근차근 설명하기 보다는 아이들을 향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함을 억압적으로 강요해왔던가. 오늘도 그런 강압적인 태도를 보임으로 눈에 보이는 순종을 만들어낼 수는 있었겠지만, 그들 마음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강요됨으로 노여움이 쌓이는 결과가 되어버렸겠는가.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식사는 계속되었다.
아이들은 책을 잘 읽기 위해 글을 더 많이 배워야겠다며 식사 후에 많이 많이 가르쳐달라며 밥을 급히 먹었다.
배움은 그렇게 성급한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닌데 라고 혼자 생각하며, 결혼 전에 근무했던 직장에서 모시고 있던 분이 생각났다. 그분도 책을 꽤 많이 가지고 계셨다. 가끔 그분을 찾아오신 분들 중 어떤 분들이 서재에 가득한 책을 둘러보며 “선생님,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습니까?”하고 여쭈면, “허허허허, 다 읽다니요. 그저 책제목과 저자만 알고 있어도 꽤 유식해지지요” 하시며 웃으셨다. 어찌 책 제목과 저자를 알고 계시면서 그 내용을 모르셨을까, 그분의 유머이셨다.
그날 아침은 바보 상자 덕분에 책의 소중함에 대하여 배우면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
(199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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