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3. 8. 19. 12:14 횃불/1994년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여

- 윌리암 오어 -

 

음악과 스윙(Swing)

음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1:17). 하나님께서 우리의 귀를 만드셨고, 음파를 기류에 고정시키셨고, 화음의 범칙을 설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선율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음악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역량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음악 속에다 사람을 감동시키고, 위로하고, 인간의 영혼의 깊은 곳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위대한 힘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음악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음악의 최대의 기능은( 105:1~3) 인간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은 하나의 국제어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음악은 세계 공통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종교와 미신이 지배하는 어두운 지방의 음악은 얼마나 다릅니까? 이런 지방의 음악은 대개 슬픈 단조이며 공포의 분위기가 서려 있습니다. 이러한 음악은 빛과 사랑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암흑성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국가의 음악을 들어보십시오. 음률이 즐거움에 겨워, 명랑한 분위기가 마음을 감동시키잖습니까?( 150:1~6) 명랑한 분위기, 승리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와 음악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음악의 모든 수법과 기교는 위대한 작곡자,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력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104:23). 모든 음계의 표시는 정확한 수학적 정밀도의 바탕 위에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중간 C음은 일초 동안에 440번을 진동하고 중간 C음 위의 C음은 꼭 앞의 것의 배가 되는 880번을 진동합니다.

모든 음계는 각각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는 기본음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가 하면 또 은 영혼을 뒤흔드는 것 같은 음색을 가지고 있으며 어딘가 힘이 있습니다. ‘는 낭만적이며 이상적인 데가 있는가 하면, 는 명상적이며 약간 슬픈 기색을 띄운 것으로 각각 제 나름의 음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음의 조화입니까?

아주 최근에 와서야 우리는 빛과 음악과의( 38:7) 신기한 관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귀를 적당히 조절하면, 해가 지는 것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해지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풀밭에서 노래하는 종달새의 노래도 들을 수 있고, 그 노래와 어울리는 색깔을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허락하는 일이라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살전 4:17).

그러나 음악은 지금도 우리 모두의 생활의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것이겠습니까? 이 재미있는 하나님의 창조물을 악용하거나 남용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잘못이겠습니까?

 

스윙(Swing)은 그의 형 째즈(Jazz)와 함께 새로 나타난 음악의 다른 하나의 형태로서 평범한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최신형 미치광이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한 마음 속에서 탄생한 못된 염병으로서 글자 그대로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라디오가 이를 내뱉고 있으며, 레코드 상점과 전파상이 이것을 돌려대고 있으며, 땐스홀과 빠에서 이것을 비싼 값에 팔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이 못된 병균은 우리의 밝은 공기를 점점 혼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스윙은 한마디로 묘사하기가 힘든 음악입니다(이것을 음악이라 한다면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색욕적으로 달콤한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발악적으로 날카로운 불협화음을 발산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저류에는 항상 무법과 무절제의 시궁창이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참된 음악의 고상함과 마음을 다듬어주는 아름다운 영감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이 것은 하나님의 음악이 아닙니다. 이를 멀리 하십시오.

스윙이 부랑아들 간에서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스윙의 죽마고우로 우리는 춤과 영화관과 빠와 술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효과 또한 대단한 것이어서 감정적인 흥분을 불러 일으키는 데서 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정신착란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되어 그 후유증으로 일어난 저 스윙음악광(굉장한 몸부림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들의 데모시위는 수치를 모르는 야만적인 추태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스윙은 청년들을 죄로 유인하기 위하여 사단이 음악을 악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음악 같지 않은 음악에는 일체 발도 들여놓지 않을 것입니다(살전 5:22).

 

그러나 음악은 우리의 것입니다( 3:16). 음악의 장엄한 맛, 그 선률, 그 리듬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의 것입니다. 위대한 찬송의( 5:19) 위풍과 위엄에 우리는 얼마든지 스릴을 느껴도 좋습니다. 다윗의 시편을(시편 104:33) 노래하고, 복음 찬송을 부르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어디를 가나, 쉽게 외울 수 있는 찬송가의 음률을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의 특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음악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노래하는 것을 그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힘입니다.

규칙이나 기준 같은 것을 원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하나 제시할 수 있겠습니다.

당신의 음악으로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라”( 3:17).

현대의 사곡한 음악의 악마적인 유혹에 대한 해독제는 이것뿐입니다. 항상 당신의 구세주되신 예수님의 음성의( 1:15) 멜로디와 당신의 음악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라디오와 텔리비젼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라디오의 다이알과 텔레비젼의 채널을 조절할 때 강한 용단을 발휘해야 합니다. 물론 라디오와 텔레비젼 프로 가운데는 깨끗하고 유익한 프로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 그리스도인의 성장과 간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프로그램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꺼버리자가 좋은 표어가 되어줄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적절한 답이 아니겠습니까?

 

나도 인기를 끌 수 있습니까?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하면서 동시에 뭇사람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적지 않은 젊은이들의 깊은 고민거리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친구를 많이 사귀고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기도 끌면서 동시에 우리의 가장 진실한 친구( 15:13~15) 예수 그리스도와 맺은 귀한 우정도 그대로 지탱해 나갈 수 있을까요? 한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여기 잠깐 주시해 보십시오. 당신의 믿음이 순수하고 진지한 것이라면,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바대로 생활한다면 주위의 친구들이 당신을 철저히 존경하고 올려다 보게 되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많은 친구를 사귀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생활을 넉넉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것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나는 청년들이 이중인격적인 생활을 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살 때에 이것이 그대로 실현되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통하여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두개의 커다란 무리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7:24~27). 한 그룹은 그리스도인들의 무리이고 또한 그룹은 그리스도인을 제외한 사람들의 무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아버지는 하나님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의 아버지는 사단입니다( 8:44). 한 그룹은 천국 행이고, 또 한 그룹은 지옥 행입니다

 

한번 당신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딤후 3:12) 세상 사람들 앞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할 때에 경건하고 언행이 일치하는 생활을 한다면 사람들은 정말 당신을 보고 미쳤다고 비방하고 손가락질을 할까요? 물론 그렇지 않겠지요.

왜 그렇습니까? 왜 그리스도인들이 존경을 받습니까? 또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의 미움을 삽니까?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당신의 생활은 항상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의 죄악성에 대한 도전이며 질책입니다.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당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딤후 4:2) 그들의 불의에 대하여 말없이 설교를 하고 있으며 그들에게도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변화를 받지 않은 육적인 마음에 인기를 끌리가 없고 맛이 좋게 느껴질 리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3:23). 때에 따라서 이들은 자기에게 죄인이라고 지적해 주는 사람에게( 8:40)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고 불평을 뒤집어 씌우기도 합니다. 바로 당신이 이런 경우에 해당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성격이 부드러워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인격이 훌륭해서도 아니며 당신의 제일 친한 친구에게라도 숨길만한 것이 당신에게 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반발하는 것은 개인적인 증오심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죄인들은 성도들을 싫어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그들의 죄를 상기시켜줍니다. 그러면 이것이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이 아닙니다. 아마 언젠가는 그들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구세주 앞으로 나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예로 들어봅시다. 그리스도는 세상이 보는 앞에서 죄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완전한 의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분의 인기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많은 죄인과( 5:32) 세리와 평민들이 그리스도 앞에 그들의 마음을 열고 영원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종교인들( 26:3~5), 탐욕자들, 이기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생활하시는 동안 줄곧 그분을 반대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의 사악한 손으로 그분을 끌고가 나무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인기를 끌었다고 보십니까?

성경은 인기라는 문제를 주제로 하여 몇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인기를 주제로 하여 제자들에게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더라도 조금도 놀라거나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내용의( 15:15~25) 긴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아무 이유 없이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환란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16:33). 베드로와 바울은 둘 다 현재의 고통과 앞으로 오는 영광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멧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상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전개될 끊임없는 갈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미리 경계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인기에 관하여 너무 마음을 쓰고 걱정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세상의 인기를 생각하기 전에 주님과의 인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왜냐하면 주님의 귀한 얼굴이 당신의 생활표면에( 1:21) 환히 비췰 때에는 다른 것은 별로 큰 의의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친구들끼리 친교를 나누십시오. 당신과 마음이 통하고 주님의 언어로 생각하는 친구들을 찾으십시오.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른 영혼에게 전함으로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히 우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참된 친구들을( 6:19,20) 많이 사귀십시오. 이 문제에 관하여 더 알기를 원하시면 성경을 업으시고 성경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태도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를 배우십시오.

하늘나라의 인기( 25:21)를 위하여 힘있게 싸우십시오.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인기라면 반드시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결국 한마디로 축소해서 결론을 지을 수 있겠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과 사단에게 동시에 인기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세상과 육신과 마귀를 외면해야 합니다. 사단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새로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누구의 인기를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서 더 이상 의문이나 문제가 없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1994 3월호)

 

'횃불 > 1994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재의 고난은  (0) 2013.08.19
당신은 구원받으셨습니까?  (0) 2013.08.19
여성의 사역(2)  (0) 2013.08.19
고부 사이의 갈등(1)  (0) 2013.08.19
인물 중심 성경공부-베드로  (0) 2013.08.19
TV와 책  (0) 2013.08.19
요한계시록 강해(14)  (0) 2013.08.19
그대여 영원한 속죄를 아는가?  (0) 2013.08.19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