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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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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19. 12:19 횃불/1994년

그리스도의 현재 사역(1)

중재 사역(히브리서에서)

- 필립 하딩 -

 

우리가 우리 주님의 중재사역이란 주제를 깊이 상고해볼 수 있다는 것은 나그네 된 하나님의 백성에게 크나큰 격려의 원천이 됩니다. 갈보리의 희생자께서 현재 하나님의 보좌에 좌정해 계신다는 사실은 우리 속에 경배의 심령을 일깨웁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광야생활을 돕기 위해 우리를 위하여 그곳에 계시다는 것은 깊은 감사의 원인이 됩니다. 그분은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갈보리로 가셨는데, 이것은 우리의 현재의 찬양의 제목이요 장차 나타날 영광 중의 찬양의 주제가 될 것입니다( 1:5). 우리가 그분의 천상 사역을 통해 현재 구원(생활구원)과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경외심을 갖고 상고해볼 만한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의 직임상의 구별에 대해서 분명한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중보자로서 그분은 나의 죄인으로서의 필요와 관례가 있으며(딤전 2:4), 변호자로서 그분은 나의 자녀로서의 신분과 관계가 있으며(요일 2:1,2), 중재자로서 그분은 나의 광야생활과 관계가 있습니다( 4:15,16). 아담 안에 범죄한 자로서 나는 중보자가 필요했으며( 9:32,33),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나는 현재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께 감사를 드리며, 그리고 광야를 지나는 나그네로서 나는, 솔로몬의 아가의 표현이 실현되어 우리가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올때까지( 8:5) 주님의 제사장적인 도움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벧전 2:11, 13:14).

그러면 히브리서에 나타난 주님의 현재의 중재 사역을 아래의 몇몇 주제로 나눠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귀한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 상징적으로 예시됨

레위기의 제사 제도의 상징적인 가르침은 영적인 교훈으로 가득합니다. 이것들은 그림자를 보여주는데 비해( 10:1), 우리는 제사든 제사장이든 그 실체가 신약성경에 계시된 것을 봅니다. 성막에 대해 주어진 하나님의 지시에서( 25~27, 35~40) 제사장과 그들의 성별에 대한 묘사가 나올 때까지 금향단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28,29). 30장에 이르러서(1~10) 비로소 제단의 양식이 주어지고 아침 저녁으로 그 위에 향을 피울 것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기서의 교훈인즉, 제단보다 제사장에 더 강조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의깊은 독자는 속죄가 일년에 한번, 속죄제의 피가 제단 뿔에 발라짐으로써 행해졌다는 것을 눈 여겨 볼 것입니다(30:10), 금향단 앞에서 행한 제사장의 사역이 하나님 앞에 열납된 것은 뜰에 있는 놋제단에서 완성된 제사에 기초했습니다. 뿔에 발라진 피는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께서 하늘에 있는 휘장 안에서 행하시는 사역의 능력을 나타내 줍니다. 제단 사면의 뿔에 피가 발리운 것은 그분의 사역의 우주적인 가치를 말해줍니다.

대제사장은 영광과 아름다움의 옷을 입고 향단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 어깨와 가슴에 있는 보석들은 그가 백성들을 대신해서 그 단 앞에 섰다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모든 보석이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우리가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의 위() 안에서 열납된 그 영광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어깨의 보석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집합적으로 나타내 주고, 가슴의 보석들은 그들을 개인적으로 나타내 줍니다( 28:9~12,17~21) 그 보석들은 색깔이 모두 달랐는데 이는 금촛대에 비친 그 아름다움을 연상케 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히브리서에서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의 중재사역을 상징하는 것으로 발전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교리적으로 선언됨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성막과 제사와 제사장직에 대한 상징적인 가르침이 우리를 위해서 특별한 방법으로 계시된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세가지 가르침이 모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 안에서 그 답을 발견합니다. 성막에서 우리는 쉐키나(영광의 구름)가 지성소에 거하는 것을 봅니다. 주 예수님, 곧 이 땅에서 사람들 가운데 장막을 치셨던 그분 안에서( 1:14),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봅니다( 1:3). 제사들은 하나님의 어린양 안에서 그 성취와 완성을 발견합니다( 1:29, 9:28). 우리는 아론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제사장직을 대합니다. 그것은 왕들과 싸움을 마치고 오는 아브라함을 만난 고대의 인물 속에 예표되었습니다( 14:18~24). 이 제사장직은만물보다 크신 분, 우리의 승천하신 주님 안에서 그 완성을 발견합니다( 7:23).

우리는 보좌 위에 높이 되신 그분의 자리로부터( 1:3), 고리고 참 장막의 성소로부터(8:2), 그분께서 현재 행하고 계신 중재사역을 상고해 볼 것입니다. 기자는 그분의 신성에 대한 계시(1:8)에서 그분의 언성에 대한 계시(2:14)로 나아갑니다. 주 예수님의 제사장직이 이 놀라운 서신의 주요 주제임을 감안할 때 우리는 왜 기자가 신성과 인성이 아들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를 높이고 있는 서신을 계속 살펴봄에 따라 우리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 그분의 중재 사역의 이면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 화목제와 관련된 중재사역

히브리서 2:17에서 기자는 주 예수님의 제사장직의 특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비하고(그분의 백성에 대하여) 충성되십니다(하나님에 대하여) 그분의 갈보리 죽음의 결과로서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에 온전한 만족을 드리셨습니다. 화목을 이루는 것은 진실로 제사장의 사역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피가 속죄소( 16:14)와 향단 뿔( 30:10)에 뿌려진 것과 똑같이 확실히, 그 자신의 피를 통해 그분께서 하나님 존전에서 우리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변호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중재사역이 충분한 것은 그분의 변호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앉아계신 장소 때문임을 주목해야 합니다( 1:3, 8:1, 10:12, 12:2). 우리에게 그분 안의 온전한 지위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은 그분의 하나님 앞에서의 열납되심입니다. 그분의 중재사역은 죄가 아니라 우리의 연약과 관계가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시험 당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우리로 실족치 않도록 보호하시는 사역입니다( 24).

히브리서 2:18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이전에 당하신 고난에 대한 묵상으로 인도됩니다 그분은 사단의 시험의 결과로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4:1~11). 이 시험은 그분의 거룩한 성품에 공격을 가했으나 우리의 흠 없으신 주님에게서 아무 반응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시험을 받을 때 죄를 범하거나 실족하기 몹시 쉬운 우리를 그러한 경험에서 능히 건지실 수 있습니다. 그분의 중재사역은 조력의 사역입니다 여기에 언급된 돕는다는 단어는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는 필사적으로 부르짖을 때 그 가나안 여자가 사용한 단어와 동일합니다( 15:225). 그것은 어떤 아버지가 그 아들에 대하여 우리를 도우소서!”라고 외칠 때 사용된 단어이며( 9:22), 계시록 12:16에서 땅이 여자를 도울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이러한 용례는 히브리서 2:18의 용례에 대한 빛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분은 시험의 때에 우리를 도우시며 실족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2)그분의 하늘에 계심과 관련된 중재사역

그분께서 하늘에 오르신 위대한 사실에서 우리는 그분께서 예수라는 아름다운 이름에 암시된 참 인간이라는 것과 또 그분께서 아들이시라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 번 휘장 안에 들어가 속죄소에 제물의 피를 뿌렸습니다( 16:14). 그렇게 하여 또 한 해 동안 백성들에게 은혜와 자비가 베풀어졌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히브리서 1:3에는 우리 주님의 위치의 영구성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연약을 체휼하실 수 있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은 친히 죄의 문제를 떠나서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신 까닭에 우리와 함께 느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때 자비를 얻으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발견합니다( 4:16). 10장에서는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담대함을 가지는 반면 여기에서는 광야 여행자로서 그분께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3) 그분의 머리 숙이심(salutation)과 관련된 중재사역

히브리서 5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제사장의 사역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인자하게 용납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5:2). 또한 제사장 자신이 연약에 싸여 있었다는 것과(2), 그런 까닭에 백성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죄를 위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습니다(5:3). 그러나,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으신 우리의 놀라운 주님은 얼마나 다른지요!( 7:26).

아론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5:4). 우리 주 예수님이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그분에게 너는 내 아들이니····네가 영원히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5:6, 110:4). 그분의 아들되심과 머리 숙이심은 그분의 온전한 인성 및 그분의 복종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분은 비록 아들이셨지만 받으신 고난으로순종함을(경험적으로) 배우셨습니다(8). 이것은 아버지와 함께 보좌에 머물러 계셨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분은 직임적으로 완전해 지셨으며 그로써 그분은 완전한 중재자이십니다.

 

(4) 그분의 생애의 영존성과 관련된 중재사역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에 복종해야 했으므로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7:23). 우리에게 하늘 중재자가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격려가 되는지! 다른 아무 교체자도 필요치 않는 영원한 중재자가 계시다니! “예수는 영원히 계신고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7:24,25) .

 

(5) 그분의 희생의 영원성

히브리서 9:24~28에서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의 사역은 그분의 희생의 영원한 가치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분은 현재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하늘 중재 사역의 효험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분이 그 인격과 사역의 모든 만족함 가운데 그곳에 계시다는 사실은 그 사역이 영원하고 확실함을 보증해 줍니다. 광야 여정이 곧 끝날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서 오실 것이며, 구원이 완성될 것입니다. 영광스런 전망이 아닙니까!(9:28) 결론적으로, 주님의 중재사역의 진리 속에는 도덕적인 가치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3. 실제적으로 제시됨

우리는 이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그로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을 담당하게 하라고 한 출애굽기 28:38의 진술을 기억합니다. “여호와께 성결이란 문구가 새겨진 금패가 아론의 이마에 부착되어야 했습니다( 28:36).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28:38). 오직 절대 거룩의 기초 위에서만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나 그들의 예물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들의 가장 거룩한 제사 속에도 불의가 하나님께 보였으며, 그들의 예물이 열납 될 수 있도록 그들의 대제사장이 중재에 나서야만 했습니다 대제사장의 어깨(힘의 장소)와 가슴(사랑의 장소)에는 백성들이 대표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와 관계가 있으며 우리의 마음에 지속적으로 새겨져 있어야 할 매우 엄숙한 진리입니다. 그것은 예배든 봉사든 우리의 가장 거룩한 순간에도 연약과 실패가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로 인해 종종 그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룩한 순간에 내재된 죄에 대한 심판조차도 현재 하늘 성소에 우리를 위해서 나타나시는 그분에 의해 담당되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우리의 빈약하기 짝이 없는 찬양과 종종 불완전한 예배가 우리 주 예수님의 제사장으로서의 나타나심에 의해 하나님께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것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거룩한 봉사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 자신을 판단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4.4 11:28 같은 여러 신약성경 구절들에 이 사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물두멍에서 씻었습니다. 우리 모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라고 한( 139:1,23) 시편 기자처럼 진실로 자신을 살피는 자가 되기를!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우리가 지성소에 들어갈 완전한 자격을 구비했음을 확신합니다( 10:19~22).

우리의 상태가 그러한 특권과 위치와 부합될 수 있기를!

 

휘장이 찢어졌네.

주 예수님이 은혜의 보좌 앞에 서 계시고

그분의 손에서 아름다운 향 피어올라

그 영광의 장소를 가득 채우네

지성소 안은 그분의 보배로운 피로 정케 되었고

그 보좌 앞에 그분의 자녀들이 엎드려

우리의 하나님께 경배를 올리네.”

 

(1994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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