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 The Local Church And Its Communications 존 M. 리들 | |
The Relative Purpose Of Tongues And Prophecy - Vv.20-25 These verses illustrate the way in which we should study our Bibles. We ought to ask ourselves: what does the passage say? v.21; what does the passage mean? v.22; how does the passage apply? vv.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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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과 예언의 상대적인 목적 - 20-25절 이 구절은 우리가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그 구절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21절), 그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22절), 그 구절은 어떻게 적용되는가?(23-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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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ection of the chapter commences with an exhortation to maturity. They should have known better than to conduct themselves as they did. “Brethren, be not children in understanding: howbeit in malice be ye children, but in understanding be men” v.20. The words employed should be noticed. “Brethren, be not children in understanding.” The word “children”, paidon, means a ‘little or young child’. It is used of the disciples in Jn.21.5, perhaps significantly in view of the circumstances, “Children, have ye any meat?” But another word is used next: “howbeit in malice be ye children”. Here the Greek word is nepios, meaning ‘a babe’. That is, someone unable to think or speak maliciously. Sadly, assembly malice seldom has such juvenile qualities! Believers can be well developed in malice. Paul has something far different in mind: “but in understanding be men.” The word means ‘perfect’ or ‘full grown’. This emphasises the need for maturity in assembly conduct. The word translated “understanding”, phren, refers to the mind, reminding us that assembly fellowship demands spiritual maturity and respons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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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의 단락에서는 성숙에 대한 권고로 시작된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행위보다 그들은 더 알아야 했다. “형제들아, 이해하는 일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너희가 오직 악한 일에는 아이가 될지라도 이해하는 일에는 어른이 될지니라”(20절). 쓰여진 단어가 주목되어야 한다. “형제들아 이해하는 일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아이” paidivon(파이디온)단어는 ‘작거나 어린아이’를 의미한다. 그것은 아마도 상황의 관점에서 두드러지게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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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should have understood that “In the law it is written, With men of other tongues and other lips will I speak unto this people; and yet for all that will they not hear me, saith the Lord” v.21. As already noted, Paul refers here to Isa.28.11-12: “For with stammering lips and another tongue will he speak to this people ... Yet they would not hear.” “This people” is the Jewish people. Since there was a synagogue 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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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율법에 기록된바, 내가 다른 언어들과 다른 입술들을 가진 사람들을 써서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21절).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바울은 사 28:11-12로 여기에 언급한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백성”은 유대인들이다. 고린도에는 회당이 없었기 때문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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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s “In the law it is written” v.21, refer to the Old Testament in general. See, for example, Jn.10.34, “Is it not written in your law, I said, ye are gods” (referring to Ps.82.6); Jn.12.34, “We have heard out of the law that Christ abideth ever” (referring to Ps.72.17); Jn.15.25, “That the word might be fulfilled that is written in their law, They hated me without a cause” (referring to Ps.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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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 기록된바”(21절) 단어는 일반적으로 구약 성경을 언급한다. 예를 들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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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Old Testament the un-interpreted tongue was a judicial sign. In Isaiah chapter 28 God stated His intention to speak to His people through a foreign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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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에서 통역할 수 없는 방언은 심판적인 표적이었다. 이사야 28장에서 하나님은 외국 세력 아시리아를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말하기 위해 그분의 의도를 언급하셨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들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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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use They Had Rejected God’s Word. They had heard the message, “This is the rest wherewith ye may cause the weary to rest; and this is the refreshing”, but they did not respond: “yet they would not hear” v.12. Whilst the “rest” and the “refreshing” are not defined here, there can be no doubt that they are explained by Isa.8.13-14 which refer to similar circumstances: “Sanctify the Lord of hosts Himself; and let Him be your fear, and let Him be your dread. And He shall be for a sanctuary.” The Lord Himself would be their “rest” and their “refreshing” in the same way that six hundred years later the Lord Jesus said, “Come unto Me, all ye that labour and are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 and ye shall find rest unto your souls” Matt.11.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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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기 때문. 그들은 메시지를 들었다,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그러나 그들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12절). ”휴식”과 “산뜻함”은 여기에서 정의되지 않으며, 유사한 상황을 언급하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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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use Of How They Regarded God’s Word. It was nothing more to them than childish and annoying repetition: “But the word of the Lord was unto them precept upon precept, precept upon precept; line upon line, line upon line; here a little, and there a little” v.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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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방법 때문에. 그것은 유치하고 짜증나는 반복보다 그들에게는 더 아무것도 없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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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vasion by the Assyrians, with their foreign tongue, was therefore a sign of pending judgment. So it is here, tongues as a sign to 9 J. M. Davies. “The Epistles to the Corinthians.” Published by Gospel Literature Serv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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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외국 방언과 더불어 아시리아의 침공은 따라서 절박한 심판의 표적이었다. 그래서 여기에 있어, 이스라엘에 대한 표적으로써 방언은 민족에 대한 심판을 나타내었다. 방언은 구원의 표적이 아니었지만, 심판의 표적이었다. 이것과 관련하여 그것은 이러한 말함의 목적과 그것들의 내용 사이에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안디옥에서 방언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그들의 목적은 바울의 경고에 의해 요약 될 수 있다: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행 9 J.M. 데이비스.” 고린도 서신서. ” 복음 문학 서비스의 출판, 봄베이,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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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view of the fact that Isaiah chapter 28 refers to the unbelieving Jew, Paul concludes: “Wherefore tongues are for a sign (i.e. of judgment consequent upon unbelief), not to them that believe, but to them that believe not” 1 Cor.14.22. The purpose of prophecy is quite different: “But prophesying serveth not for them that believe not, but for them which believe” v.22. This is applied in vv.23-25 where Paul visualises “the whole church ... come together into one place”. See also v.26. We must notice the phrases “whole church” and “together into one place”. There were evidently no ‘house-meetings’ (in the modern sense of the expression) 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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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8장에서 믿지 않는 유대인을 언급한 사실의 관점에서, 바울은 결론짓는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믿지 않는 자들의 결과로 생기는 심판)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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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Speak With Tongues” - v.23 “If therefore the whole church be come together into one place, and all speak with tongues, and there come in those that are unlearned, or unbelievers, will they not say that ye are mad?” For the meaning of “unlearned” see the definition given in connection with v.16. Whilst it could be argued that the “unbeliever” would not be a Jew, since the use of tongues was a sign to the Jews; it seems more likely that Paul is describing the effect upon any “unbeliever” if “all speak with tongues”. The confusion would be indescribable. Hence the need for the gift to be properly regulated, see vv.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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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방언으로 말하기”- 23절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배우지 않은”의 의미에 대해 16절과 관련하여 주어진 정의를 참조하라. 그것은 “불신자들”이 유대인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될 수 있을지라도 방언의 사용은 유대인들에게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만일 “모두가 방언으로 말하는” 경우 어떤 “불신자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는 것이 더 있음직하게 보인다. 혼란은 형언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은사에 대해 제대로 규제되어야 할 필요성은 7-28절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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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Prophesy” - vv.24-25 “But if all prophesy, and there come in one that believeth not, or one unlearned, he is convinced of all, he is judged of all: and thus are the secrets of his heart made manifest; and so falling down on his face, he will worship God, and report that God is in you of a truth.” These verses emphasise the power of God’s Word. It will have a fourfold effect on the vis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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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예언”- 24-25절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강조한다. 그것은 방문자에 사중의 영향을 미친다. |
* “He is convinced of all” or “he is convicted by all” (J.N.D.): his conscience is touched.
* “He is judged by all” or “he is judged of all” (J.N.D.): the word “judged” (anakrino) is rendered “examined” in 1 Cor.9.3, that is, the teaching searches and sifts him.
* “And thus are the secrets of his heart made manifest.” This does not infer public exposure, rather that his very life and character are brought before him.
* “And so, falling down on his face, he will worship God, and report that God is in you of a truth.” W. E. Vine suggests that this indicates conversion, and this may well be the case. At the very least, he will acknowledge that he is in the presence of God, not amongst a bunch of luna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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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달으며” 또는 “모든 사람에 의해 죄를 깨달으며”(JND): 그의 양심은 감동된다. *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또는 “그는 모든 판단을 받고”(JND): “판단”(ajnakrivnw 아나크리노) 단어는, 고전 *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이것은 공적인 노출을 추론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로 그의 삶과 특성이 그 앞에 주어진다. *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E.W. 바인은 이것이 개종을 나타내는 것을 제시하며, 이것이 잘되는 경우 일 수도 있다. 적어도, 그는 정신병자들의 무리가 아닌 사이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것이다. |
Participation In Tongues And Prophecy - vv.26-35 What kind of meeting will make for the result above? The answer is clear from these verses: it will be an orderly meeting. We should notice the following in this section: the regulating principle v.26; participation in tongues vv.27-28; participation in prophecy vv.29-33; participation by sisters vv.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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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과 예언에 참여 - 26-35절 어떤 집회의 종류가 위의 결과를 만들 것인가? 대답은 이들 구절에서 분명하다: 그것은 질서있는 집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단락에서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 규제의 원칙(26절); 방언에 참여(27-28절), 예언에 참여(29-33절), 자매들의 참여(34-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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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gulating Principle - v.26 “Let all things be done unto edifying.” This principle is to govern both the contributions and the contributors. Paul looks at assembly meetings in 10 W. E. Vine. “The Collected Writings of W. E. Vine - Vol.2.” Published by Thomas Nelson Publishers,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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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원칙 – 26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이 원칙은 공헌과 기여자 모두를 제어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에 모임 집회들을 바라보며 질문을 묻는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대답을 진행한다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W.E. 바인10은 이것이 나타내는 것을 제시하는 것은 신자들이 그들이 무엇을 말할 것과 그들이 기여하는 방법을 미리 결정하기 위해 함께 오고 있으며 이것이 그 혼란에 대해 만들어졌다. 그것은 따라서 가장 중요성 안에서 있었으며 모든 형제들은 전반적인 복리와 안녕에 관계하고 그들의 기여를 조정한다. 원리는 남아있다 - 선호하는 찬송가와 구절은 모임 집회들에서 항상 반드시 덕을 세우고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그 경우에 대해 어울리는가의 여부를 특정한 주제로 모임에 말하기 위해 완전히 결정하고 집회에 도착하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이른바 ‘사역’은 종종 모든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 원칙으로 어떤 참여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여기에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고전 10 W.E. 바인.” 바인의 수집저서 - 2집.” 토마스 넬슨 출판사 출판,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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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cipation in Tongues – vv.27,28 “If any man speak in an (unknown) tongue, let it be by two, or at the most by three, and that by course; and let one interpret.” Paul states some important principles:
* The use of tongues was not to be excessive: “let it be by two, or at the most by three”.
* Brethren were to take part one at a time: “and that by course”, or “and separately” (J.N.D.). Participation was to be orderly.
* There was to be one interpreter: “and let one interpret”. This could mean that one was to interpret for them all, or that only one was to interpret at any given time: interpretations were not to be given simultaneously. As J. Hunter observes, “if this (the first case) were so it would fully ensure that only one could take part at a time, the next speaker having to wait until the interpretation was finished.” 11 “But if there be no interpreter, let him keep silence in the church; and let him speak to himself, and to God.” Compare v.4, “he that speaketh in an (unknown) tongue edifieth himself”. 11 J. Hunter. “What The Bible Teaches - Vol.4.” Published by John Ritchie,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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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에 참여 - 27,28절 “만일 누가 (알지 못하는)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바울은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을 말한다:
* 방언의 사용은 지나칠 수 없었다: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 형제들은 한 번에 한 역할을 수행했다: “차서를 따라” 또는 “따로따로하고”(JND). 참여는 질서대로 되었다.
* 한 사람의 통역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통역할 것이요”. 이것은 하나는 그들 모두에 대해 통역하는 것을 의미할 수고 있고, 또는 하나는 어떤 주어진 시간에 통역이라 할 수 있다: 통역은 동시에 제공 할 수 없었다. J. 헌터가 인정하는 것처럼, “만약 이것이(첫 번째 경우)라면 그렇게 완전히 한 사람만 한 번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안전할 것이며, 다음에 말하는 자는 통역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11 “하지만 만일 통역자가 없다면 교회에서 침묵을 유지하자; 그리고 자신에게 또 하나님께 말하자.” 4절을 비교하라, “(알지 못하는)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11 J. 헌터.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가 - 4집. ” 존 리치에 의한 출판,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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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cipation In Prophecy - vv.29-33 “Let the prophets speak two or three, and let the other judge. If anything be revealed to another that sitteth by, let the first hold his peace. For ye may all prophesy one by one, that all may learn, and that all may be comforted. And the spirits of the prophets are subject to the prophets. For God is not the author of confusion, but of peace, as in all churches of the saints.” We should notice the follo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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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에 참여 - 29-33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우리는 다음 사항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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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 with tongues, participation in prophecy was not to be excessive. “Let the prophets speak two or three.” We also notice that there was no question of one man in control.
* The prophets were to be listened to with discernment: “and let the other (Greek allos, of the same kind: i.e. another prophet) judge.”
* The prophets were to participate with mutual consideration. “If any thing be revealed to him that sitteth by, let the first hold his peace.” “No one was to prolong his speaking so as to occupy the whole time, or even extend his speaking to an undue length. Each was to recognise that others possessed the gift besides himself.”12 Attention is drawn to the expression, “If any thing be revealed to him that sitteth by”. The gift of prophecy involved direct revelation.
* The prophets were to be orderly in participation. “For ye may all prophesy one by one.” Such orderliness would promote the benefit of the company: “that all may learn, and that all may be comforted (exhorted).” It does not take too much imagination to visualise a meeting in which several people are all trying to speak at once!
* The prophets were to exercise self-control. “And the spirits of the prophets are subject to the prophets.” They were to take part with intelligence and understanding. They were not to be excitable, and certainly not to lapse into an ecstatic condition. Their business was to communicate the Word of God clearly and intelligently. 12 W. E. Vine. “The Collected Writings of W. E. Vine - Vol.2.” Published by Thomas Nelson Publishers,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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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언과 마찬가지로 예언에 참여도 과도하지 않았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우리는 또한 관리에서 한 사람의 의심도 없었다는 것을 주목한다.
* 예언하는 자는 인식과 함께 듣게 되었다: “다른(헬라어 a[llo" 동일한 류의 즉 다른 선지자)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 선지자들은 상호배려와 함께 참여했다.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아무도 그의 말하는 것이 전체 시간을 차지할 정도로 연장하거나 심지어 그의 말함을 과도하게 길게 확장할 수 없었다. 각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 외에도 은사를 소유한 것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12 배려는 표현으로 묘사되었다.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예언의 은사는 직접적인 계시를 포함했다.
* 선지자들은 참여에서 질서대로 했다.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그러한 질서는 교제의 유익을 증진할 것이다: “모든 사람으로 권면(훈계)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그것은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말을 하려고 하는 집회를 시각화하는데 그렇게 많은 상상을 갖지 않는다!
* 선지자들은 자기 통제를 행할 수 있었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그들은 지성과 이해로 참여했다. 그들은 흥분하기가 쉽지 않았고, 확실히 황홀경 상태에서 실수하지 않았다. 그들의 직무는 명확하고 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12 W.E. 바인.” 바인의 수집 저서-2집. ” 토마스 넬슨 출판사의 출판,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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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important principles reflect the harmonious way in which God Himself acts: “For God is not the author of confusion, but of peace, as in all the churches of the saints” v.33. Hence, “Let all things be done decently and in order” v.40. In summary, a local assembly should be characterised by Divine order, reverence, harmony and mutual consideration. It is clear that no assembly is free to ‘do its own thing’: “For God is not the author of confusion, but of peace, as in all the churches of the saints.” See also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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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중요한 원칙은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는 것에 조화로운 방법을 반영한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33절). 따라서,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40절). 요약하면, 지역모임은 하나님의 질서, 존경, 조화와 상호 배려로 특징되어야 한다. 그것은 아무 모임도 ‘자신의 일을 하는’ 것에 마음대로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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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cipation By Sisters - vv.34,35 “Let your women keep silence in the churches: for it is not permitted unto them to speak: but they are commanded to be under obedience, as also saith the law. And if they will learn anything, let them ask their husbands at home: for it is a shame for women to speak in the church.” This is the last of three prohibitions so far as public participation in the assembly gatherings is concerned. Regarding tongues he says “But if there be no interpreter, let him keep silence in the church” v.28. Concerning prophets he says “If any thing be revealed to another that sitteth by, let the first hold his peace” v.30. Now concerning sisters he says “Let your women keep silence in the churches” v.34. Only the men are to participate audibly in the gatherings of the saints: the sisters have no part in the oral ministry of the assembly. We should no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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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들의 참여 - 34,35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이것은 지역 모임 집회들이 관련되어 있는 공적인 참여에 관한 한 세가지 금지의 마지막이다. 방언에 관해서 그는 말한다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28절). 선지자에 관해서 말하기를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30절). 지금은 자매들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34절). 남자들만이 성도들의 집회들에서 들리도록 참여하는 것이다: 자매들은 모임의 구두 사역에 대해서는 역할이 없다.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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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 your women keep silence in the churches: for it is not permitted unto them to speak.” The “silence” here must be the same as in v.28, “let him keep silence in the church”. The word “speak” here must have the same meaning as throughout the passage. It cannot mean ‘chatter’: otherwise vv.28-29 would become a nonsense: “But if there be no interpreter, let him keep silence in the church; and let him ‘chatter’ to himself, and to God. Let the prophets ‘chatter’ two or three, and let the other judge”. There is no need to say more about this ridiculous sugg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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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여기에 “잠잠함”은 28절에서와 같이 동일해야 한다,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여기에 “말하다” 단어는 구절 전체로서의 같은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수다 떠는 것’을 의미할 수 없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28-29절은 무의미한 말이 될 것이다: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이 터무니 없는 제안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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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 your women keep silence in the churches.” Notice “churches” in the plural here, following the plural in v.33. Whereas in v.28 it is in the singular referring particularly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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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여기에서 복수의 “교회들”은 33절의 복수를 따라가는 것에 주목하라. 28에 반하여 이 방언의 은사가 존재했던 고린도에 특히 언급되는 것은 단수에 있다. 11:16절에 나타내는 것에 비교하라 “고린도는 여자들이 쓰지 않는 것을 허락할 때는 혼자이었다.”13 분명히 고린도는 또한 자매들 참여의 문제에서도 혼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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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y are commanded to be under obedience (J.N.D. ‘but to be in subjection’), as also saith the law.” This is the second reference to “the law” in this chapter, see v.21, and again indicates the Old Testament generally, with particular reference to Gen.3.16: “Thy desire shall be to thy husband, and he shall rule over thee.” The reasons are given in 1 Tim.2.11-15: “Let the woman learn in silence with all subjection. But I suffer not a woman to teach, nor to usurp authority over the man, but to be in silence. For Adam was first formed, then Eve. And Adam was not deceived, but the woman, being deceived, was in the transgression.” Teaching in connection with participation in the assembly prayer meeting is given in the same passage: “I will that the men (aner: male persons) pray in every place” 1Tim.2.8 (J.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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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순종(JND ‘복종’)하도록 명령을 받았느니라” 이것은 이 장에서 두번째 “법”에 대한 언급이며, 21절을 보라, 다시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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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 if they will learn any thing, let them ask their husbands at home” [J.N.D. “ask their own husbands at home”]: for it is a shame for a woman to speak in the church.” J. Hunter is worth quoting in full here: “Leadership is vested in the man. Both the man and the woman occupy a place of honour bestowed upon them by God, and all godly persons will acknowledge this to be so, and submit to the ordering of the wisdom of God. The women, if not clear in their minds concerning any matter, must not ask questions publicly, but seek help of the men-folk at home. The word rendered “husbands” (aner) while used in certain contexts in that way, is really men as distinct from women. The matter is concluded by the strong statement: “it is a shame for a woman to speak in the church.”13 The word translated “shame” means ‘disgraceful, unbecoming, indecorous, indecent’. 13 J. Hunter. “What The Bible Teaches - Vol.4.” Published by John Ritchie,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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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JND 그들 자신]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J. 헌터가 여기에 전부 인용한 것은 가치가 있다: “지도권은 남자에게 귀속된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하나님에 의해 그들에게 수여된 영광의 위치를 차지한다, 모든 경건한 사람들이 그렇게 이것을 인정할 것이며, 하나님의 지혜의 질서에 복종시킨다. 여자들은 만약 어떤 문제에 관련하여 자신의 마음에 명확하지 않을 경우, 공개적으로 질문을 하지 않아야 하지만, 가정에서 남자 가족의 도움을 요청하라. 그런 식으로 특정한 문맥에서 사용되는 동시에 “남편”(ajnhvr아네르)을 표현했던 단어는 실제로 여자와는 다른 남자이다. 문제는 강력한 표현에 의해 결론지어진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13 “부끄러움”이 번역된 단어는 ‘수치스러운, 부적절한, 무례한, 버릇없는’을 의미한다. 13 J. 헌터.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가 - 4집. ” 존 리치에 의한 출판,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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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lusion - vv.36 - 40 The assembly at
The Word Of God Did Not Originate In Them “What! came the word of God out from you?” v.36. Since they did not originate the Word of God, they could not set their own precedents in the matters discussed. If the Word of God had found its source in them, then they might well have the right to interpret it. But this was not the case. They were not free to do as they pleased. Once again J. Hunter’s telling comments are worth quoting: “Being the first of the churches to depart from the Word of God, especially in relation to women taking part (the immediate context), they were setting themselves up as a superior authority, so the apostle censures them.”14 14 J. Hunter. “What The Bible Teaches - Vol.4.” Published by John Ritchie,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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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36-40절 고린도의 모임 그 자체가 법으로서 그 자체로 여기지 않았다. 바울은 두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나왔느냐?”(36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논의되는 문제로 그들 자신의 선례를 설정할 수 없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서 출처를 발견한다면, 그들은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경우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이 좋아했던 대로 해도 좋은 것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J. 헌터의 논평을 말하는 것은 인용할 가치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출발하는 교회의 첫 번째가 되는 것은 특히 여성과 관련하여(아주 가까운 문맥), 그들은 뛰어난 권위자로 자신을 세우는 것이었으며 그래서 사도는 그들을 책망한다.”14 14 J. 헌터.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가 - 4집. ” 존 리치에 의한 출판,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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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 Of God Did Not Come To Them Alone “Or came it unto you only?” v.36. It was not a special revelation to them, making them different to everyone else. They were given no ‘special treatment’. J. Hunter again: “Were they the sole recipients and repositories of such a revelation that they could introduce such practices? Could they act on their own and ignore other churches? This was arrogance indeed. Independent authority was not invested in them. Yet, today, we have the same attitude, and the same claim to be progressive and liberated. But it is progressing away from the Word of God; liberation from obedience to it.”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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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만 임하지 않았다 “혹은 그것이 너희에게만 임하였느냐?”(36절). 그것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 그들을 다르게 만드는 그들에게 대한 특별한 계시가 아니었다. 그들은 더 ‘특별 대우’가 주어지지 않았다. 다시 J. 헌터는: “그들은 그들이 그와 같은 실행을 도입할 수 있었던 그러한 계시를 단독으로 받고 보관하고 있었는가? 그들을 스스로 행동하고 다른 교회들을 무시할 수 있었는가? 이것은 실제로 오만함이었다. 독자적인 권위는 그들에게 부여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동일한 태도를 가지고, 그리고 동일하게 진보적이고 자유롭게 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떨어져 진행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순종함으로부터 해방.”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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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s teaching in respect of the local church is as mandatory as his teaching elsewhere: “If any man think himself to be a prophet, or spiritual, let him acknowledge that the things that I write unto you are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v.37. As J. Hunter rightly observes, “The unmistakable claim of Paul, that he is writing the Word of God, cannot be ignored, and everyone must submit himself to the teaching marked by apostolic authority, no matter what experience he may claim.”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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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교회에 관련한 바울의 가르침은 다른 곳에서 그의 가르침만큼 의무적이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37절). J. 헌터가 정확히 진술한대로, “명백한 바울의 주장, 즉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쓰고 있는 것은 무시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은 그가 주장할 수도 있는 어떤 경험의 문제가 없이 사도적 권위에 의해 나타낸 가르침에 대해 그 자신을 복종해야 한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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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concludes, “Wherefore, brethren, covet to prophesy, and forbid not to speak with tongues” v.39. The chapter therefore ends as it begins, “Follow after charity, and desire spiritual gifts, but rather that ye may prophesy” v.1. In this way, the two gifts were to be valued and regulated whilst they existed. The overall principle was “Let all things be done decently and in order”, that is, “in a seemly manner, and according to Divine arrangement”.15
Happy is the assembly whose communications are governed by the principles taught in this passage of Holy Scripture. 15 W. E. Vine. “The Collected Writings of W. E. Vine - Vol.2.” Published by Thomas Nelson Publishers,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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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결론짓는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39절). 그것을 시작하는 것으로 장은 그러므로 끝난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1절). 이 방법으로, 두 은사들은 그것들이 존재하는 동안 평가되었고 규제되었다. 전반적인 원칙은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즉, “알맞은 방식, 그리고 하나님의 배분에 따라서”.15
행복이 의사 소통하는 모임에 있는 것은 거룩한 성경의 이러한 구절에서 배운 원칙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15 W.E. 바인.” 바인의 수집 저서 - 2집. ” 토마스 넬슨 출판사의 출판,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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