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3: The Local Church And Its Censure And Comme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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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perhaps well-known that Chapters 2 and 3 of the Book of Revelation are comprised entirely of seven letters written toward the end of the first century to seven local churches or assemblies. The letters are from Christ, the Lord of the assemblies, but sent through John the beloved apostle. These seven churches were all located in Asia Minor, now better known 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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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요한계시록의 2, 3장이 완전히 첫 세기의 마지막 일곱 지역 교회들 또는 모임들에 대하여 쓰여진 일곱 서신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서신들은 모임들의 주님이신 그리스도로부터이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보내졌다. 이들 일곱 교회들은 지금 터키로 보다 잘 알려져 있는 소아시아에 모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많은 교훈들은 이들 특정한 모임들 각각의 상태와 형편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또한 칭찬과 책망 모두 그들을 향한 주 예수님의 접근 방식과 자세에 관해서 서신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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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are invaluable lessons here concerning the centrality and sovereignty and authority of the Lord in the midst of the churches. There is clear teaching also as to the responsibility and the ministry of each church in its locality and there is too a very definite demonstration of the autonomy of the individual church. Yet, important also is the unity between the churches, a unity without union, an association without amalgamation, a fellowship without federation and an interdependence without inter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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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들의 중심에 주님의 중심적 역할과 주권과 권위에 관한 여기에 귀중한 교훈들이 있다. 분명한 가르침은 또한 책임과 그 지역에 있는 각 교회의 사역에 대한 것으로, 개별적 교회의 자치권에 관한 매우 명확한 증거가 있다. 그러나, 또한 중요한 것은 교회들 사이에 통일성이며, 연합이 없는 통일성, 융합이 없는 단체, 동맹이 없는 교제와 간섭이 없는 상호 의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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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ch of these assemblies was a golden lamp bearing light in its own locality, nevertheless it was most desirable that they should, in oneness, shine together for the glory of the One who walked among them. Because they are indeed autonomous each church is held accountable to Him for any failings which there may be in the testimony, and likewise the Lord Himself will heartily commend whatever there may be in that testimony for His pleasure. Censure there will be for what may be wrong, but commendation there will also be for what is commend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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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임들의 각각은 그 자체 지역에서 빛을 비추는 금촛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독자적으로 해야 하는 가장 바람직했던 것은 그들 사이에서 거니시던 분의 영광을 위해 함께 빛나는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자율적이기 때문에 각 교회는 거기에 증거에서 할 수도 있는 모든 실패에 대해 그분에게 책임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주님 자신은 진심으로 그분의 즐거움을 위한 그 증거에서 있을 수 있는 무엇이든지 충분히 칭찬하실 것이다. 책망은 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 것에 있을 것이지만, 칭찬도 또한 무슨 칭찬할만한 것이 있는 것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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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seems to be a principle in the letters, a principle adopted by Paul in his letters to churches, that there will always be commendation first, if there is anything to be commended, and that the censure will follow after. Who would have thought, after reading those earliest verses in 1 Corinthians, that there would be much to reprove in that assembly? They were a church of God; sanctified in Christ Jesus; called saints; in everything enriched; all utterance; all knowledge; the testimony of Christ confirmed in them; coming behind in no gift; waiting for the coming of the Lord Jesus Christ; in the fellowship of God’s Son. How rich indeed they were 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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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들에서 원칙이 되는 것으로 보이는 원칙은 교회들에 대한 그의 서신들에서 바울에 의해 채택되었고 항상 칭찬이 먼저 있다, 만약 칭찬받을 아무것이나 있다면 책망은 나중에 따른다. 누가 고린도전서에서 초반의 구절들을 읽고 나서 모임 안에 책망에 대한 것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했다; 성도로 불리었다; 모든 일에 풍부했다; 모든 언변; 모든 지식; 그리스도의 증거가 그들에게서 확인되고; 배후에 오는 아무 은사도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교제 안에. 그들은 실제로 고린도에서 얼마나 부자들로 있었는지, 그리고 사도는 그들이 가진 것과 그들이 있었던 모두 인정하는 것이 빠르다. 그러나 분열, 거짓 교리, 도덕적인 악, 자랑, 악한 것을 판단하는 데 실패하고, 주님의 만찬에서 무질서가 있었다. 이러한 모든 이탈들을 바울은 함께 다루지만 그는 먼저 그들을 칭찬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에 관해 생각하게 하는 이 지혜 안에 있으며 우리가 그분에게서 가진 것은 우리의 실패에 대한 후회를 일으키고 더 잘 할 수 있는 열망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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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ill be profitable then to consider each of the letters to these churches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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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동시에 칭찬과 책망에 관해 읽는 것과 우리 각자가 속할 수 있는 특정한 모임에 적합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정직하게 결정하기 위해 아시아에 이들 교회들에 대한 각각의 편지를 숙고하는 것은 유익이 될 것이다. 그런 다음 응답할 책임이 따를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조정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이들 교회들은 물론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피아와 라오디게아에 위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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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both interesting and important to see that there is one expression which is common to all the letters whatever the condition of the particular church may be. To each assembly the Lord says, “I know”, and the import of this will become clear as each of the letters is read and exam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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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특정한 교회의 상태가 될 수 있을지라도 모든 서신들에 공통되는 하나의 표현이 있음을 보는 것은 흥미 있고 모두 중요하다. 각 모임에 대한 “내가 알고 있다”라는 주님의 말씀은, 그리고 이것의 중요함은 서신들의 각각이 읽혀지고 검토되는 것에 따라 분명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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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hesus – Where Was That First Love? - Rev.2.1-7There was so much to commend in the assembly at |
에베소 - 첫 사랑이 어디 있는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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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there were the Nicolaitanes, probably self-asserting arrogant men lording it over the saints just as Diotrephes did in John’s day, 3 Jn.9. The assembly at Ephesus shared the Lord’s hatred for the deeds of these men and this was commendable too. It was indeed an evidence of spirituality that they abhorred that which the Lord Himself h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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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거기에 바로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드오드레베가 요한의 시대(요삼 9)에 있었던 것처럼 아마 자기 주장하는 거만한 사람들의 니골라당이 있었다. 에베소 모임은 이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주님의 증오를 공유했고 이것은 또한 칭찬받았다. 그것은 그들이 주님 자신이 싫어하셨던 것을 혐오하는 것은 실제적인 영성의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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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 it is for that assembly which has as many fine features as the Ephesian assembly had. The Lord of assemblies will never hesitate or be lacking in His praise of such. Everything appeared desirable in Ephesus and ‘desirable’ is in fact the meaning of the name “Ephesus”. Could there be anything in this assembly that required censure? Outwardly everything seemed beyond reproach but He who says, “I know”, will soon reveal what is lacking in their testi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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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 나위 없이 그것은 에베소 모임에 있었던 많은 뛰어난 특징만큼 있었고 모임을 위한 것이다. 모임들에 관해 주님은 결코 그분의 그러한 칭찬이 주저하거나 결핍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에베소에서 바람직하게 나타났던 것과 ‘바람직한’ 것은 “에베소”라는 이름에 관해 의미하는 사실에 있다. 무언가 책망을 필요로 했던 것이 이 모임에 있을 수 있었는가? 겉으로는 모든 것이 나무랄 데 없어 보였지만 “내가 알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그분께서는 곧 그들의 증거에 부족한 것을 드러내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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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a certain sadness in that word “nevertheless”. The Lord is not at all unmindful of all that is commendable in this assembly, “but”! Notwithstanding His words of approval there was something missing of which onlookers may not have been aware. They had left their first love. This does not necessarily mean first in order of time although it is indeed often the case that the early love of new-born souls may be more fervent than that of later life. The word “first” (Gk.protos) is in fact the word translated “the best” in Lk.15.22, “the chiefest” in Mk.10.44 and “the chief” in Lk.19.47 and in several other places throughout the New Testament. So that while the early ardour of the Ephesians could well have been the more intense, nevertheless it may be that the Lord’s complaint is that they had left a love of a better quality. They used to love Him more, with a love that gave Him pleasure. Where was that ardent affection now? If perhaps men could not appreciate what was missing, note now the importance of that word of His, “I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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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그 단어에서 어느 정도의 슬픔이 있다. 주님은 이 모임의 칭찬할 것이 있는 모두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정하시는 그분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방관자들이 인식하지 않을 수 있는 뭔가가 빠져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첫 사랑을 떠났다. 이것은 시간의 순서에서 반드시 첫 번째 의미하지 않으며 비록 그것이 종종 실제의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새롭게 태어난 영혼의 처음 사랑은 나중에보다 더 열정적이 될 수도 있다. “처음” (헬라어 prw'to"(프로토스) 단어는 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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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 “somewhat” in the Lord’s charge against them in Rev.2.4 must be omitted for it seems to minimise the charge. It was not a mere “somewhat” which He had against them. Their departure from their better love was solemn indeed. It was a fall from the bridal affections of which Paul had written to them years earlier in Ephesians chapter 5. Orthodox they certainly were, and busy in His service, but is it then possible that we may be busy in a mechanical fashion, not truly motivated by love for the Lord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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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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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h was the seriousness, and the sadness, of their condition that it required repentance. There must be a searching of the heart and a return to that better love for the Saviour. His censure and His loving appeal may be summed up in three words, “Remember! Repent! Return!” Such repentance would be suitably rewarded but if it was not forthcoming He may decide to remove them as a lampstand, and this indeed is what has happened literally 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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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회개를 필요로 했던 것은 그들의 상태에 관한 중대함과 슬픈 일이었다. 구주를 위해 더 나은 사랑으로 마음을 살피고 되돌아 가야 했다. 그분의 책망과 그분의 사랑의 호소는 “기억하라! 회개하라! 돌아서라!”는 세 단어로 요약 될 수 있다. 그와 같은 회개는 적절한 보상을 받을 것이지만 그분께서 곧 오시는 것이 아니었다면 등대로서 그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으며, 이것은 실제로 그분에 대한 모임 증거가 없는 지금 에베소에서 문자 그대로 일어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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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lessons there are here for us of this later day. May we assess with frankness and honesty just how much, or how little, we love Him. May we strive faithfully for His commendation and earnestly seek to avoid any condition or practice which would warrant His cen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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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훈이 이 시대 이후에 우리를 위해 여기에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많이 또는 얼마나 적게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는가를 솔직함과 정직함을 가지고 평가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분의 칭찬에 대해 충성스럽게 노력할 수 있는가, 그리고 진지하게 어떤 상태나 실행을 피하고 그분의 책망을 정당화할 것에 대해 추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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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yrna – Reproach For Christ - Rev.2.8-11The story of this suffering assembly is told in four verses in Revelation chapter 2 and indeed the name “ |
서머나 - 그리스도를 위한 치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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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e to His gracious character the Saviour withholds all censure from the assembly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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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그분의 은혜스런 품성으로 구주께서는 서머나 모임에 모든 책망을 보류하신다. 그것은 거의 어떤 교회도 완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망의 필요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가정할 수 없다. 그것들은 서머나가 고난 받았던 것과 고난중의 성도들이 징벌이 없는 위로를 필요로 했다. 그들은 편안함과 격려를 필요로 했다. 만일 징벌되어야 하는 일들이 있다면 더 적절한 시간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신자들에 대해 말씀 사역하는 사람들을 위한 어떤 모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부드러움을 말하고(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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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emblies are all precious to Him but perhaps a special preciousness may be concealed in the very meaning of the na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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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들은 그분께 모두가 소중하지만 아마도 특별한 소중함이 “서머나” 이름의 바로 그 의미에 숨겨져 있을 수 있다. “서머나” 이름의 중심적 역할은 “몰약”이다.” “S-myr-na”. 몰약은 출애굽기 30장에서 거룩한 기름부음의 재료였으며 그것은 단맛과 쓴맛의 혼합이었다. 그것은 냄새가 달콤했지만 맛이 썼다. 서머나 모임은 그녀 앞에 있었던 그녀의 주님처럼 고통의 쓴 맛을 경험했지만, 그것은 이러한 성도들이 그분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아야 했던 그분에게 실제의 향기였다. 그들의 고난은 거룩한 관유처럼 그분에게 향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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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His opening remarks to them the Lord will not even refer to their works, which word should be omitted from the text, as in original manuscripts. Doubtless He appreciated any service rendered for Him but there is something even more precious to Him and He goes directly to that, saying, “I know thy tribulation and thy poverty” (J.N.D. and most others). Note that their sufferings were linked with their poverty and it may well have been that the tribulation which they endured was the very cause of their poverty, as it had been with other saints of whom it is said that they took joyfully the spoiling of their goods, Heb.10.34. In their tribulation they were under pressure, like grapes being crushed in a wine press. This is implied in the Greek word for tribulation, (thlipsis Strong 2346) and the Saviour Himself knew such anguish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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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그들에 대한 서두 말씀에서 주님은 심지어 어느 단어가 원래의 사본에서와 같이 본문에서 생략되어야 하는 그들의 일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분은 자신을 위해 하게 된 어떤 섬김을 인정하셨지만 그분에게 더 소중한 무언가 있으며 그분은 말씀하시는 그것에 대해 직접 향하신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JND 대부분의 다른 것들). 그들의 고난은 그들의 궁핍과 연결된 것을 주목하라, 그것은 바로 그들이 인내했던 환난은 그들의 궁핍이 바로 그 원인이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은 다른 성도들과 함께 있었던 것처럼 그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해치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했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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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in the letter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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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서머나에 보낸 서신에서 우리는 “내가 알고 있다”는 그 작은 단어의 중요성을 다시 볼 수 있지만 거기에 현재 차이점이 있는가? 이것은 “내가 알고 있다”는 전지하심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으로 “내가 알고 있다”이다. 그분은 그들이 누구를 위해 그들이 고난 받는 것은 그분의 육신의 날 동안 환난과 궁핍을 알고 계셨다. 가장 부드러운 방법으로 그분은 그들의 고난을 인정하시며 “내가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얼마나 가난했는가를 그분은 말씀하신다 “내가 알고 있다.” 누가 자신이 같은 경험을 하신 분보다 고난받는 사람들을 보다 잘 위로하고 도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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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many believers who suffer for Christ, the persecution 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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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많은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서머나의 박해는 종교인들로부터 왔다. 서머나에서 유대인이라 고백하는 불경스러운 사람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성도들을 참소하는 바로 사탄의 그 회당에 있었다. 이 동일한 근원에서 그들의 주님은 고난을 인내하셨고, 그분은 그들을 격려하신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성실해야 했다. 그들의 고난은 그분을 위해 제한될 것이고 다스려질 것이다. 그것은 끝날 것이고 그들은 한 번 죽은바 되시고 지금 살아계신 그분으로부터 삶의 승리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만약 그들의 고난이 죽음에까지 이어진다면, 그들도 또한 살 것이고, 자신들의 궁핍으로 그들은 실제로 풍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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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hardly possible to comment up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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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에 유명하고 존경 받았던 순교자 폴리갑을 언급하지 않고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그는 유명하고 이 서신을 받아 읽을 때 이 모임에 거의 확실히 있었다. 비록 성경에서 결코 언급된 적이 없지만, 폴리갑은 충성스런 증인이었고 사도 요한과 함께 그의 초기 시대에 가까운 동반자였다. 저명한 기독교 교사로서 그는 지역 유대인의 선동으로 로마인에 의해 사형집행에 지목되었다. 얼마나 그의 주님과 같은가! 크게 공공연한 승부의 때였고 도시는 붐볐다. 바로 그 날과 날짜는 우리를 위해 보존되었다; 그것은 “폴리갑을 찾으라”는 외치는 소리가 올라갔을 때가 서기 155년 2월 23일 토요일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을 맡겼지만, 몇 번이고 그리스도를 포기하고 “가이사가 주님이다”고 말할 것을 요구 받을 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들에게 그의 마지막 대답은 잘 알려져 있으며 종종 인용된다, “이 팔십 육 년 동안 나는 그분을 섬겼고 그분은 나에게 아무 잘못한 일이 없다. 어떻게 나의 왕을 모독 할 수 있는가?” 그것은 “폴리갑, 강하라, 그리고 남자답게 행하라!”고 구경꾼들에 의해 들었던 그 목소리를 따라 이끌리고 있었으며 그가 고난이 왔을 때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그를 화형하기 위해 묶었고 그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나뭇가지 단들을 모았다. 잠시동안 불은 타는 것을 거부했고 그것이 그가 단검으로 관통할 것을 명령했다. 이것은 그들이 했다. 그의 생명없는 몸은 그때 불에 태워졌지만 그의 불에 탄 유골의 보관은 자신의 친구들에게 거절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그의 뼈를 되찾았고 존경함으로 그것들을 매장했다. 폴리갑의 이야기는 서머나 모임의 이야기와 정신이며 하나님의 모든 고난받는 교회를 격려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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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no reproof or censure here, but the promise of a crown of life for their faithfulness, and an eternal security with Him. What an example and encouragement it is for saints today, “Be thou faithful”. Some of us will never be asked to suffer imprisonment, scourgings, confiscation of our goods, or martyrdom, as did many of those early believers, but it behoves us nevertheless to be faithful to Him whom we love and at all costs to avoid those things which would call for His cen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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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어떤 책망이나 비난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충성에 대한 생명의 면류관의 약속과 그분과 함께 영원히 안전하다. 오늘날 성도들을 위해 어떤 모본과 격려가 있는가, “네가 충성하라.” 우리 중 일부는 그 초기의 신자들 대부분이 했던 것처럼, 투옥, 채찍, 우리의 좋은 것들의 몰수 또는 순교의 고난을 결코 요구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에게 충성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당연히 할 일이며 모든 것에 그것들을 피하기 위한 비용은 그분의 책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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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ssemblytestimony.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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