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명령- 거룩하라
월리암 맥도날드
제19장 : 혀를 길들임
그리스도인들의 혀가 곧 그 인격의 척도라는 것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마
진실이어야 한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
가치있는 것이어야 한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엡
덕을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내 친구 중에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약간의 험담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는 “이것은 덕을 세우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군”이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다 듣지 못한 이야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한게 있었지만 혀를 어떻게 길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알렉산더 화이터 박사가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안에서 변호사가 “이 늙은 죄인에게 무슨 소식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는 자기가 묵상했던 말씀을 인용하였다. “하나님은 인애를 기뻐하신다”(미가
은혜로워야 한다
우리의 말은 때에 맞는 것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운혜로워야 한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골
순결해야 한다
성도들의 언어는 물론 순결해야 한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
맹세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언어는 맹세로 확정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땅으로도 말라 네 머리로도 말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나느니라”(마
주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것과 외설적인 말에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하찮은 것, 금지된 것에 대한 완곡한 표현 같은 것은 어떤가? 예를 들어 하나님에 대한 무익한 부르짖음 즉 “오, 하나님 이럴수가” 라든지 “오. 하나님 맙소사” 라든지 또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욕하는 것들은 어떤가? 이러한 것들은 성경말씀을 어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정에 서서 맹세하는 것은 어떤가? 우리 주님께서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으실 때 대제사장은 “내가 너를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했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으로서 요구한 것에 대해 맹세로 답해야 했다(레
경건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성스러운 것을 가볍게 말하거나 무례히 사용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가지고 농담해서는 안된다. 즉 성경말씀의 내용을 떠나 의미없이 농담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관해서나, 것이나 말씀에 대해서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깨끗하고 유익한 농담을 나쁘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너무 헤픈 농담은 그 사람으로 영적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 가능성이 많다. 때로 성령님은 흥미있는 이야기들로만 가득한 집회(모임)로 인해 근심하신다. 엄숙한 복음이 때로는 영접을 위한 하나의 일화로 비쳐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빈정대는 말이나 거만한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의 대화에 억지로 끼어드는 것이나 농담이나 대화를 통해 자신을 높이거나 영적 평판을 얻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될 일이다.
간단명료해야 한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그리스도인들의 그 혀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스도인은 그 혀를 통제하여 대화를 혼자 독점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필요성을 느끼는 만큼 다 말하지 않도록 훈련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거짓이나 절반만이 사실인 말, 악의 있는 말, 빈정대는 말, 조롱, 부정한 말 또는 무익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간증이나 고백 또는 격려의 말을 하는데 그 혀를 사용해야 한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사람은 자유스럽게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도록 그 혀를 훈련시키며 그 안에 있는 교만의 악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혀는 생각을 따라야지 앞장서서는 안된다. 말을 많이 하는 자가 적은 자보다 회개할 것이 많다. 말하는 자는 심지만 듣는 자는 거둔다.
우리의 험담을 용서하소서
몇년 전에 애틀란타 져널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있었다.
“나는 죽음보다 무거운 곡사포이다. 나는 죽이지 않고 이기며 가족과 마음을 부서뜨리고 삶을 파선하게 만든다. 나는 바람을 타고 돌아다닌다. 나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만한 의인도 없으며 겁을 줄만큼 깨끗한 사람도 없다. 나는 진리와는 상관 없으며 공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연약한 자들에 대한 자비도 없다. 나에게 희생된 자들은 바다의 모래알보다 더 많으며 그 중에는 무고한 자들도 있다. 나는 절대로 잊는 일이 없으며 용서하는 일 또한 별로 없다. 내 이름은 험담이다.”
아마도 야고보가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말한 것을 보면 특별히 험담에 대해 생각했던 것같다.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험담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몸에 배어 있어 그러한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 험담이란 무엇인가? 월리암 마샬은 험담을 “전혀 유익이 없는 것을 말하는 예술”이라고 말했다. 빌 고드는 “문제에 관련된 사람 또는 해결책과 관련된 사람이 아닌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좀더 넓은 의미에서 험담을 정의하자면 “그곳에 없는 사람의 명예나 품격 또는 가치를 손상하게 하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험담은 그 자리에 없는 어떤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고 그에 대해 불친절하거나 손상케 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전면에서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비난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암살과 그 성격이 같은 것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 아주 엄하게 말씀하고 있다. “너는 제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레
내가 말했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마
우리는 때로 험담을 기도를 위한 정보 제공으로 꾸며서 말할 때가 있다. “이거 기도해달라고 한 이야기인데. 너 이거 알고 있니?” 또 은밀히 말함으로 상대방의 마음에 충격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때로 다음과 같은 결과가 일어나기도 한다. 두 여인이 길거리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틸리가 내게 그러는데 내가 너에게 틸리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한 것을 이야기 했다며?” “틸리는 왜 그러냐? 내가 말했다는 것을 너에게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도 틸리가 내게 말했다는 것을 너에 게 이야기 하지 않기로 했지만...” 삶의 계절이라는 책에서 찰스 스윈돌은 또 다른 형태의 험담인 소문을 만드는 자들에 대해 다루었다 다음은 그가 말한 것이다.
“소문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작고 호기심이 많은 심령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비좁은 골목길에서 사람들을 밀치며 지나다니는 것과, 미묘한 문제를 제기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혀 놓는 것에 기쁨을 얻는 자들이다. 그들은 사실이 아니라 오직 불확실한 것에 근거하여 위로를 얻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들이 그러는데요’, ‘들어보셨어요?’ 또는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데...라고 말함으로 소문을 만든 사람을 감추려 한다. ‘당신은 그 어느 교회가 갈라지기 직전에 있다는데 들어보았어요?’’그 어느 사람이 그 아내와 이혼하게 되었대요. 그 아내가 아마 바람을 피웠나봐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 사람 부모가 엄청난 부자래요.’ ‘아무개 목사님이 그 교회에서 쫓겨나게 되었다는데 혹시 들으셨어요?’ ‘누구한테 들었는데 그 집 아들이 마약 중독자래요.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들켰대요.’ ‘어떤 사람이 그러는데 그들이 결혼할거래요.’ ‘누가 그러는데 그 사람은 알콜 중독자라던데요?’ ‘그 여자는 음탕한 여자라고 들었어요. 조심하세요.’ ‘그 사람은 권모와 술수로 그렇게 출세하게 되었다고 소문이 다 퍼져있어요.’ ‘여러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래요.’ 우리는 소문이나 험담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을 통하면서 얼마나 과장되어 가는지 잘 알고 있다. 각 사람들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부정적인 요소를 점점 가미시켜 나중에는 원래의 이야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이야기가 된다.
바울도 사람의 이름을 들어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어떤이들은 바울도 후메네오와 알렉산더(딤전
이것은 험담과는 다르다. 험담을 다루는 데에는 몇 가지 긍정적인 단계가 있다. 첫째로, 말하는 사람에게 이야기의 근원을 분명히 밝히게 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99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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