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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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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28. 09:53 횃불/ 2000년

모임의 진리 (5)

놀만 크로포드

모임의 7가지 집회들

초대 신약성경 시대는 여행하기도 매우 어려운 환경이었고, 모임에 모이는 많은 성도들은 가난했고 또 노예도 있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있는 것 같이 주일날을 쉬는 특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임에서 주님을 기억하고 가르침을 받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들에 많은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20:612).

다음은 요약된 7가지 집회들의 특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주의 만찬(고전 11:2334)

권위상으로 - 주의 만찬(고전 11:23).

단순함으로 - 떡을 뗌( 20:7).

만찬의 제정( 22:1520).

만찬의 명령(고전 11:24).

만찬의 의미(고전 11:26).

만찬에서 배제되어야 할 사항(불순물)들(고전 11:1122).

만찬을 위한 자신의 점검(고전 11:28).

 

주의 만찬은 다른 집회들보다 더 많이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집회입니다. 그것은 공적 예배의 표현입니다. 이 예배는 하나님을 향하는 반면 다른 여타 집회는 주로 다른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예배가 모임의 집회 중에서 가장 우선적이고 으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영원히 드릴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주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주의 날( 1:10)에 행하는 주의 만찬(고전 11:20)은 지구상에서 있을 수 있는 하늘에 가장 가까운 의미의 장소입니다. 매 주일마다 행하는 이 예식을 지루하다거나 일반적인 장소로 여겨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우리를 위하여 값으로 사신 영원한 구속의 제물이 되심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는 말씀은 주님의 명령이며 지키기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2) 기도를 위한 집회( 2:42, 12:5)

개인적인 기도는 믿는 자들의 생활 속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우리의 호흡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공적인 기도집회는 또 하나의 특권이며 모임 내에서 계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2:42).

바인(W. E. Vine)은 기도회를 소멸시킬 수 있는 7가지 요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습니다

(1) 불참하는 것.

(2) 참석해도 기도는 하지 않는 것.

(3) 주 중의 계획을 세우는데 기도시간을 이용하는 것.

(4) 길게 기도하는 것.

(5) 특별한 내용이 없는 기도.

(6)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는 것.

(7) 성령의 인도 없이 기도하는 것.

분노와 다툼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3) 말씀 집회(고전 14:15, 2940)

성경공부를 포함한 모임의 안위나 권면이나 덕을 위하여 하는 집회들을 성도(말씀)집회라고 부릅니다(고전 14:3). 모임에서는 가르치는 집회와 복음집회가 확실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이 구분이 확실하지 않을 때 믿는 자들은 가르침이 자기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겠지만 그 가르침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그들을 위한 것인지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것이 확실하게 구별되지 않을 때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자기 자신들에게 적용하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요즈음 많은 곳에서는 죄인들을 죄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새 생명의 필요성을 반복해서 헌신한다는 생각과 혼동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은 캠페인 보고서로서는 좋을는지 모르지만 영원한 결과를 보면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큰 신학교 도서관에는 모임에 관한 책들을 함께 모아 놓았습니다. 일찍이 많은 저자들은 자신의 책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저자가 모임의 성도인가의 여부를 결정하는데 몇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그 책이 성도(말씀)집회와 다른 기타 집회를 구별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직까지 성도(말씀)집회가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28:20)고 말씀하신 것같이 우리들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큰 사명 중에 하나로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를 온전히 준행하여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20:27)고 말했습니다.

 

(4) 복음 집회( 13:4249, 살전 1:8)

우리는 공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등한시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왜 그렇게 되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전도를 위하여 새로운 방법들이 촉진되고 있으나 복음이 빠져 있습니다.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이 개인전도를 해야 하며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믿는 자들이 복음전도의 은사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복음전도자에 의해서 공적인 복음집회는 개인전도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 공적 복음집회를 등한시함으로써 신약성경의 가르침이 무시된 결과가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하는 것이라”( 20:21)고 말씀함과 같이 연약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영적으로 일깨워줍니다. 요즈음 가볍게 믿는 주의가 성령님의 구원의 능력과 회개를 대치하고 있습니다

전도를 하는데 신약성경에서는 5가지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모든 방법의 일반적인 단어는 복음전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2 1절에서 하신 말씀은 메시지를 가진 자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의 내용은 고린도전서 1 23절에 사용한 전한다는 단어는 케루그마(kerugma)”라고 표현합니다.

고린도전서 1 21절에 사용된 케루쏘(kerusso)”는 신약에서 60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이 모든 경우를 자세히 읽어보면 모인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전달자의 외침으로 사용되어졌습니다.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의 병거에 올라갔을 때 그는 예수님에 대하여 전했습니다”( 8:35). 빌립은 전도자였으나 이 때에는 공적인 은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한다라는 단어를 케루쏘(Kerusso)”가 아니고 에반제리조(Evangelidzo)”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중전도가 아닌 개인적으로 전도했기 때문입니다. 공중전도가 아니고 개인전도가 오늘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앞의 구분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은사의 하나인 전도인의 일”(딤후 4:5)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20:24)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을 믿습니다. 전하는 복음에는 깨우침과 생명의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교회들에서 만찬과 복음집회가 완전히 등한시되거나 없어져 가는가를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전도집회는 사람들의 흥미를 멀리한다고 하며 주의 만찬은 지루하고 싫증나게 한다고 말합니다. 19세기에 사용된 묵상이라고 불린 것은 지금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밤낮으로 묵상하는 것은 성경상 거룩한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주 예수님은 완전하신 묵상의 모형입니다( 1:2). 묵상은 19세기 형제들의 구식 실행이 아닙니다.

복음전도에 대한 열망은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잘 나타냅니다. 고린도전서 1 18절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약에 주님을 기억하는 것이 싫증이 난다거나 주님의 묵상이 구식이라고 생각하고 십자가의 도가 흥미가 없다면 우리의 마음을 점검해야 하며 주님께로부터 우리가 멀어져 있음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그 대답은 새로운 방법을 창안한다던가 새로운 기구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회복해야 합니다.

 

(5) 보고를 위한 집회( 14:2628)

이 집회는 가끔 선교에 대한 보고집회라고도 부르며, 선교지역은 일반적으로 국외라고 생각하지만 본국의 일꾼들로부터 받는 보고도 동일하게 성경적입니다. 이와 같은 집회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도행전 14 27절에서는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라 했습니다.

우리는 복음 전도자와 선교사들을 구별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은 두 가지 은사가 아니라 같은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는 그의 본국에서나 외국에서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일하도록 부르는 어떤 장소에서든지 그는 복음 전도자로서의 은사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형제가 본국에서 복음 전하기에 충분한 은사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외국 땅에 그런 형제를 보내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며 옳지도 않습니다. 경건함과 은혜와 경험이 우선 되어야 하나 은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6) 장로들의 모임( 20:1738)

장로들은 정기적으로 기도하기 위하여 모여야 하며 성도들의 영적인 필요성에 대하여 의논해야 합니다. 장로모임의 목적이 단지 건물이나 재산을 관리하는 사업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이들 형제들은 적어도 네 가지 이름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영적으로 장성했다는 의미에서 장로라 부릅니다(딤전 5:17).

둘째로 업무상 감독이라고 부릅니다( 20:28). 글자 그대로 감독하거나 혹은 책임감 있게 모임의 영적인 사항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투표로 선출되지 않고 성령님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적은 무리를 돌보는 장로들은 목자(사역자)”입니다( 4:11, 벧전 5:2). 목자는 모든 은사를 사용하는 교회 위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독교계에서는 이와 같은 체계(교회 위에 군림하는 일인성직체계)가 보통이며 어떤 모임이라 불리는 곳에서도 이와 같은 것을 모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4가지 신약성경의 큰 진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1) 주 예수님의 탁월하심.

(2) 모든 성도의 제사장직.

(3) 다양한 은사들

(4) 복수 장로들에 의해 결정된 것은 거부할 수 없음.

이것은 어떤 지역교회의 일인 목사 신분을 가진 자에 대한 개인적인 경건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체제를 미워하시며 그 체제를 책망하셨습니다( 2:15).

넷째로 장로들은 봉사하는 입니다(딤전 3:813). 이 말씀은 그들이 실제로 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목회에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모든 장로들은 종입니다. 형제들이나 자매들이 종으로 일을 하지만 장로는 아닙니다( 16:12). 인정된 장로회가 있지만 영적으로 적합한 모든 성도들은 모임에서 주어진 일을 할 때 집사의 기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7) 징계를 위한 집회(고전 5:35)

이 집회는 모임에서 교제를 격리시키는 징계에 대한 독특하고 분리된 집회를 말합니다. 어디까지나 모임 내에 한하는 것입니다. 징계를 위한 집회가 다른 집회와 혼합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마태복음 18 30절에 묘사된 집회는 역시 징계에 대한 집회입니다. 이 사실은 이 구절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모임의 가장 작은 집회에도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 20절과 고린도전서 5 4절의 구별은 먼저 것은 범죄한 성도에 대한 징계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이며 나중 것은 징계를 실행하기 위하여 온 교회가 함께 모인 것입니다. 단지 모임은 하늘에서 결정된 것을 실행할 뿐입니다( 18:18).

징계는 내부적이며 또는 출교가 요구됩니다. 왜 출교를 시켜야 하는지를 마태복음 18 1520, 고린도전서 5 113, 디모데전서 1 20절에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항상 회복을 전제로 해야 하며 다른 성도들에게도 경각심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딤전 5:20). <다음 호에 계속>

 

2000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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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