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윌리암 켈리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하나님의 사랑” 이것은 실로 놀라운 진리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고, 또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면 알수록 이것은 더 놀라운 진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여기에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지 않았는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여러 가지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하신 것이 아닌가!
여기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믿는 자에게 주신 성령, 그리고 그 사랑을 누릴 수 있는 권세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참으로 이러한 것들은 사람의 방법도 아니며, 더욱이 사람의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앞장에서 사도 바울은 인간의 유죄상태와 드러난 범법행위로 인해 (그 심령이)황폐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악은 더 이상 애매모호한 문제가 아니다. 성경은 이미 단호한 판결을 내렸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상태가 비참하고 처참한 지경에 처해있음을 인정하는데 반해, 철학자들은 그것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방인의 편에 서서 변호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당신은 과연 자신의 상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고 묻고 있다. 만약 유대인이라 칭하는 당신이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면서, 실제로는 율법의 이런저런 가르침을 어긴다면, 바로 그것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모독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들과 선지자들은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해 율법으로 정죄했던 것이다. 따라서 율법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할 때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따라서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인 것이다.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인 것이다(롬
그러나, 이제 율법 외에 새로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목적에 따라, 이방인보다 더 죄악된 유대인들의 불신앙 가운데 세상의 극악한 범죄에 대한 완전한 증거인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높이 세워진 것이다. 이것이 율법이 요구는 하지만 타락한 죄인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율법의 행위를 통해 얻게 되는 인간의 의와 대조를 이루는 하나님의 의(義)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의인(the Righteous)으로서, 의를 이루기 위해 오셨다. 유대인들에게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두지 아니하셨느니라····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고 말씀하신 주님은 참으로 의로운 분이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여 죄인의 자리에 서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알지도 못했고, 죄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는 이가 마치 범죄한 자처럼 그 죄값을 감당하도록 하시지 않았는가? 이것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우리 죄를 없이하기 위한 화목제물로 죽기까지 내어주심으로 이루어진 대역사(大歷事)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지만 할 수가 없는 우리의 그분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이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우리와 같은 죄인을 위한 희생제물로 자기 아들을 죽음에 넘김으로 증명하는 사랑인 것이다.
그 아들을 죄인들을 위한 속죄제물로 내어준 이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으며, 어느 누구나 이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이 단번에 드려진 희생제사는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 영원한 효력을 미치고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도 의로우시며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신다.
확실히, 하나님이 빛이신 것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래 사람을 창조하신 때로부터, 사람이 타락했을 때, 그리고 그분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을 다루시고 함께 하는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이, 비록 하나님의 도덕적인 통치하에 있었지만, 범죄했을 때 아비의 죄악이 자식에게, 또 자식의 자식에게, 그리고 삼사대까지 미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것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은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고 빛이신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시며(출 34:6), 많은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죄악과 불순종과 죄를 용서하신다. 하나님은 또한 이방인에게 자신을 계시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에게 선한 일을 하시되, 곧 하늘로부터 비와 과실과 계절을 주시고, 또 먹을 음식을 내려주심으로 그들의 마음에 풍족함과 기쁨으로 채우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 바울이 아테네인들에게 증거한대로,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 않으시며, 오히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시다(행
이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은 그 아드님을 통해 알려지셨다! 이제 하나님께서 율법(단언하건대 어떤 것도 온전케 할 수 없는)의 지배를 받는 육신적인 백성들에 대한 경륜을 넘어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러내신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는 인간의 죄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우리가 영적 소경이 아닌 다음에는 모두 인정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은 인간이 변명할 수 없는 범죄에 의해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다는 최종 결론이다(요
아아! 교만하고 이기적인 사람에게, 은혜는 율법보다 더 역겨운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은혜는 그러한 자기 의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그렇다 은혜는 율법의 행위를 오히려 부정한다). 바로 은혜가 하나님의 해답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고전
여기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들에게 단순히 전파되기만 하고 끝나는 사랑이 아니라, 오늘날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분의 선물로 인해 기뻐하며, 누릴 수 있는 사랑이다. 따라서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부끄럽지 아니한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으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정도와 그 빛을 측량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란! 이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모든 것과 완전히 다르다. 이 사랑은 우리에게 분에 넘치는 것으로써 완전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며,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풍성하심(complacency)에서 나온 것으로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것이다.
따라서 이 사랑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어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다. 이 선물이 단번에, 그리고 완전하게 주어진 것이며, 그 결과는 영원하다.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확증하셨듯이 성령님은 그리스도와 및 그의 구속사역의 거룩한 증인이시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는 성령님은 믿는 이 안에 거하시며 영원히 그들과 함께 계시는 분이시다.
더 나아가서 그 사랑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부은바 혹은 쏟아 부어진바 되었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임재로 인해 능력 안에서 보존되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충만해진다. 그리고 하나님은 주 예수를 믿는 믿음에 의해 쉼을 얻은, 즉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모든 죄를 용서받은 자들에게 참으로 계시되신 것이다. 그 후에 내주하는 죄와 율법에 대한 경험,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위치와 신분에 대한 기
술 후에 개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로마서 8장에 나타나 있다.
사랑하는 독자들이여, 지금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부은 바 된 것을 경험하였는가?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대로 믿는 사람인가? 당신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받아들였는가?(요일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면서도, 그 주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쉼을 누리지 못하면서도, 놀라울 만치 영적인 욕구를 가질 수도 있고, 각성된 양심과 하나님을 향해 경건한 삶의 모습을 가질 수도 있고, 더군다나 사람의 영혼에 대한 구령의 삶을 살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직도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상태이며(엡
200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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