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구원(21)
H. P. 바커
영원한 구원을 반대하는 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성경구절들(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닫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히
아울러 히브리서
이 말씀들도 우리가 살펴본 히브리서
첫 번째 해석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이 불신자들에게 말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자들”이란 불신자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진리를 몸소 실천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다리를 건너 본 일은 없다 할지라도 그 다리에 관한 온갖 지식은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다리를 설계한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고, 또 그 다리는 훌륭한 다리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다리를 건너지 않는 한, 그 다리는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월리암 R. 뉴웰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배신자의 행위 이상으로 ‘적대 행위’가 되는 행동이 어디에 있겠는가. 배신자란 여러 가지 특혜만을 누리다가 마지막에는 배반하고 돌아서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양 무리에 대한 영원한 구원을 가르치는 이 복된 교리에는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그리스도에게 영원히 주신 자들 가운데서(
두 번째 해석
이 구절에 대한 보다 더 나은 해석은 구원을 놓친다는 것이 아니라 짐짓 죄를 범하면 거기에는 무서운 결과가 따른다는 경고를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거기에는 생활상의 무서운 징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따른다는 것입니다.
렌스 B. 라잠은 이 말씀과 그 아래의 몇 말씀에서 언급된 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각하는 이유 몇 가지를 다음과 같이 열거했습니다.
“히브리서
이어서 29절 말씀에서는 ‘거룩하게 된 자’(성결의 체험을 한 자)들을 가리켜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 나타나 있다.
또 30절에서는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는 말씀이 나타나 있다.
또 33절 말씀과 34절 말씀에 따르면 이들은 신자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증거까지 가지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 나타나 있다. ‘이들은 하늘나라에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알고 있었다!(34절),” 렌스 B. 라잠은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짐짓 범하는 죄’란 어떤 죄를 가리키는 것일까? 이 ‘짐짓 범하는 죄’는 여기에서 보통 죄와는 달리 취급되어 있다. 왜냐하면 죄에 관한 여러 곳의 성경 말씀을 보면 거기에는 고백이 있고 난 후 용어와 화해의 소망이 따르는데 여기에서는(히
이들 유대인 신자들은 구약의 의식과 제사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이들 유대인 신자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단번에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를 배격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 유대인 신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고귀한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며,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였던 것이다(히
여기에 나타난 ‘형벌’은 대단히 무서운 것이다. 진정한 신자의 경우에 그 상황이 어떠했든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27절 말씀에서 ‘대적하는 자’는 소멸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함정에 빠진 이들 신자들에게는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27절)고 하였다. 신자들에 대한 이와 같은 형벌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영원한 지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구약시대에 있어서는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28절)이라고 말씀되었다. 여기의 이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을 가리킨다. 여기의 ‘짐짓 범하는 죄’는 ‘죽음보다 더 중한 형벌’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을 영원히 놓치는 것이라고는 말씀되지 않았다. 우리가 이 땅 위에서 받는 형벌 가운데는 죽음보다 더 중하고 가혹한 형벌도 있을 수 있다. 오랫동안 앓고 누워있는 질병이라든지 암과 같은 그런 무서운 질병 등등은 죽음보다 더 가혹하고 중한 형벌이라고 할 수 있다”.
렌스 B. 라잠은 다음과 같이 덧붙여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5장에서 신자가 특이한 음행을 범한 극단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그것에 대한 형벌은 어떠한 것이었던가? 성도들은 이와 같은 자와는 개인적으로나 교회 안에서나 교제를 끊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디모데전서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히
그러나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이 말씀에서 가리키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하나가 뒤로 물러나는 일이 있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고 징계를 받게 되지만 구원까지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성경말씀들 이 이 사실을 잘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롬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였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전
아울러 로마서
위에서 소개한 로마서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롬
고린도전서
요한복음
로마서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
요한일서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거짓 선지자란 구원을 받았다가 그 구원을 놓친 자들이 아니라, 처음부터 구원을 받은 적이 없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거짓 선지자들이 구원을 받았다가 그 구원을 놓친 자들이라는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요일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義)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이 말씀도 역시 “거짓 사도들”이 구원을 한 번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언급은 없습니다. 15절 말씀에 의하면 저들은 사단의 일꾼들이라고 불립니다. 이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닌, 단순히 가장한 자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여기 이 말씀도 역시 앞에서 살펴본 두 곳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거짓 선생들”이 주님을 참으로 알았던 적이 있었다는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전체를 읽어보면 이들 “거짓 선생들”은 구원을 받은 바 없는 자들임이 분명해집니다.♠
200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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