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길리스
요한계시록 20:1-10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7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9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오전에는 7년에 해당하는 환난에 대해서 봤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에 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보았습니다. 이 환난은 예수님이 두 번째 지상으로 오시면서 끝납니다. 하늘의 군대들과 함께 오십니다. 이 세상의 땅으로 오십니다. 이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왕국에서 다스릴 것입니다. 천년왕국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직접 이 땅에서 천 년 동안 다스리는 시기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오실 때 첫 번째 일어나는 일은 구약 성도들이 모두 부활할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같은 구약 성도들이 그때 부활할 것입니다. 동시에 7년 환난 기간 중에 순교했던 사람들로 부활할 것입니다. 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대로입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요한은 “내가 보좌들을 보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보좌에 앉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을 다스릴 사람들입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서 책임을 주님께로부터 부여받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위에서 주님과 함께 세계를 다스립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서 바울은 법정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고린도서 6:4절에서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심판한다는 것, 즉 다스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왕국 때 전 세계를 다스립니다. 열 두 사도는 열 두 보좌에 앉을 것입니다. 열 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릴 것입니다. 따라서 열 두 사도는 이스라엘 12지파를 그 위에서 다스릴 것입니다. 열 두 사도 이후에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서 전 세계를 다스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한 므나씩 주고 멀리 여행 갔다 온 주인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돌아온 가운데 종들이 한 일을 회계했습니다. 열 므나를 남겼다는 사람이 있고 그 이하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열 고을을 다스릴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이 있습니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말씀하신 고을은 정말로 도시를 말합니다. 이 교회 시대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긴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실제적인 보상입니다.
어저께 말씀드린 그 면류관이 아닌 다른 면류관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지상에 있는 나라들 위에서 다스릴 것입니다. 저는 교회가 이 땅에서 발을 딛고 다스린다기보다 그 지상에 있는 그 사람들 위에서 다스린다고 보는데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에 속한 백성입니다. 우리의 유업은 하늘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유업은 땅에 있으며 우리는 이스라엘의 유업에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은 계시록 21장에서 하늘에 있는 성을 보았습니다. 신부가 신랑을 위해서 예비하고 단장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 이 성을 보면서 요한은 영원과 연결을 시켰습니다. 1절부터 9절까지는 하늘과 연결된다면 10절부터 그 이하는 땅과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높은 산꼭대기를 봤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성이 내려오는 것을 봤습니다. 내려오는 걸 봤지만 그 성이 땅에 닿는 것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천 년 동안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을 요한은 보았습니다. 그 성이 땅에 내려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요한은 19장에서 “내가 열린 하늘을 보니” 성경에서는 열린 하늘이라는 표현 이후에 하늘이 닫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땅과 하늘이 마치 차이가 없는 것처럼 그 이후로 열린 하늘이 닫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 말씀을 볼 때 열린 하늘에서 교회가 주님과 함께 땅을 다스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도들이 부활한 것도 첫 부활이라고 계시록 20:5절에서 말했습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둘째 부활에 참여할 사람들입니다. 둘째 부활은 심판을 위한 부활입니다.
첫째 부활은 모든 시대에 구원받은 사람들의 부활입니다. 따라서 요한은 구약 성도의 부활로 인해서 첫째 부활이 성취가 마감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첫째 부활은 이와 같이 단계, 단계,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가 첫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죽지 않은 몸으로 부활한 첫 번째 부활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휴거 될 때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의 두 번째 부활입니다. 따라서 첫째 부활이 예수님으로 출발해서 계시록 20장에서 첫째 부활이 마감되고 완성됩니다. 여기는 말할 것도 없이 구약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7년 대환난 기간에 순교한 성도들이 포함됩니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 부활이 완성되어 성취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민족을 모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5장에서 주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때 민족들을 모은 다음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민족들을 구분하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양들은 믿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사람들은 7년 환난 기간 동안에 믿은 이방인 민족들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천년 왕국에 들어갈 사람들입니다. 이 염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 믿지 않는 이방 민족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영원한 심판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때 땅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땅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7년 대환난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은 만신창이가 되고 예루살렘이 파괴될 것입니다. 7년 대환난 초기에 건설됐던 성전도 완전히 파괴됩니다. 예수님은 재림하신 다음에 파괴된 이스라엘을 재건할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에스겔서에서 예언한 성전을 건축할 것입니다. 이 에스겔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아닙니다. 에스겔 48장을 보면 이 성전의 길이가 몇 십 킬로가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에 에스겔서에서 예언한 성전을 건축할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시온산에서 전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언의 말씀을 시편 2:6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이사야 2:3절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라고 한 말씀대로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스라엘만 다스리는 게 아니라 전 세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앞으로 다가올 이 왕국에 관한 특성을 지금부터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전 범세계적인 정부가 될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명칭은 왕 중의 왕이요, 만 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고 하는 말이 이때 예수님에게 적용이 될 것입니다. 시편 72:11절에는 “많은 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 열방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이 영역을 정한 다음에 다스릴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한국도, 북한도 다스릴 것입니다. 스코틀랜드도 예수님이 다스릴 것입니다. 전 세계를 예수님이 다스릴 것입니다.
다니엘서 2장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큰 신상을 보았습니다. 머리는 금이었습니다. 가슴과 양 팔은 은이었습니다. 그 밑에 허리와 허벅지 쪽은 놋이었습니다. 그리고 발과 발 아래 종아리는 철이었습니다. 그리고 발과 발가락은 진흙과 철이 섞여 있었습니다. 열 발가락이 있습니다. 이 열 발가락은 7년 대환난 기간 동안에 있을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의 열 왕국을 말합니다.
이때 느부갓네살 왕은 꿈에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한 뜨인 돌을 보았습니다. 그 돌이 발을 쳤습니다. 적그리스도의 나라가 주님의 공격으로 일시에 붕괴되는 것을 느부갓네살 왕은 보았습니다. 이 금신상이 대표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방인 시대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부터 시작해서 7년 대환난 때 다스리는 적 그리스도의 나라까지를 전부 포함합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왕권을 이방인들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금신상의 발치를 뜨인 돌이 치듯이 예수님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돌은 그렇게 큰 돌이 아닐 것으로 보이는데 그 돌이 신상에 발을 쳤습니다. 전체 신상이 모두 부서졌습니다. 타작마당에 겨를 날리듯이 말입니다.
이방인의 다스림이 영원히 끝나는 것입니다. 신상을 친 돌이 산을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산은 성경에서 정부를 말합니다. 금신상을 친 돌이 태산을 이루었다는 이 산은 예수님의 전 세계를 다스리는 정부를 말합니다.
이 미래에 관한 말씀을 보고 현재 우리들에게 적용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에 거하게 하시고”라는 말씀이 바로 그 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시고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하는 우리의 마음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전 세계적인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하박국 2:14절 “대저 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니.”
그 해답이 바로 시편 72편에 나오는 다윗의 시입니다. 거기서 다윗은 무엇이라 기도합니까? 시편 72:17절에서 다윗은 기도하면서 방금 하신 말씀에 대한 응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모든 사람이 주 예수님의 영광을 그때 볼 것입니다.
먼저 시간에 형제님이 고린도후서 3장 말씀을 하셨는데 현재 우리가 거울처럼 하나님의 예수님의 영광을 본다는 말씀을 형제님이 찾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주의 영광을 보며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점점 주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는 전 우주적인 예수님에 관한 지식입니다.
이사야 11:9절에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31:34절에서도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때 새 약속의 복을 예레미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죄 용서받았을 뿐 아니라 주님을 아는 지식이 점점 많아지는 복을 예레미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다스리는 주님을 점점 더 알게 된다는 복을 말해 지금 현재도 이 원칙을 우리들에게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알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지난주보다 지금이 더 주님을 아는가 제가 생각을 합니다.
네 번째는 전 세계적인 주님에 대한 경배가 있을 것입니다.
스가랴 14:16절에 “예루살렘을 치러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민족들이 매년 초막절에 올라와서 주님께 경배한다고 했습니다. 에스겔이 예언한 그 성전에 와서 주님을 경배할 것입니다.
이것도 현재 우리들에게 적응을 저는 시키고자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으로서 성전이어야 합니다. 조금 전에 형제님이 로마서 12:1절을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에게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은 성전에 올 때 동물의 제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바울은 우리들을 산 제물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 행위로 우리의 몸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주일날 떡 상을 둘러앉아서 주님을 기억하는 경배를 합니다. 이때는 모든 성도들이 영적인 제사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아버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는 주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먼 장래에 사람들이 예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섯 번째는 전 세계적인 의가 있을 것입니다.
시편 72:2절에서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저가 주의 백성을 의의로 판단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하니” 이사야 11:4절에서는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5절에서는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는 이 시기를 일컬어 말하기를 전 세계적으로 의가 드러날 것을 말했습니다. 이 왕국에 들어간 사람들은 전부 다 의로운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그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드렸는지를 베드로는 설명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금 현재 실제적인 매일매일의 삶에서도 적용을 해야 합니다.
여섯 번째로 전 세계적인 평화입니다.
이사야 9:7절에서 “그 정사와 평강에 더함이 무궁하며” 즉 “끝이 없으며”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72:7절에서도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 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전 세계적으로 오늘날 우리는 불화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이때는 전 세계적으로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 2:4절에서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평화가 있습니다. 이 평화는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동물에게도 있고,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있는 평화입니다. 이사야 11:6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해서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라고 하는 상태대로입니다. 이와 같이 전 세계적인 평화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평화를 누리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이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염려하는 자들을 향해서 말합니다. 빌립보 4:6-7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합니다. 믿고 나서도 주변 환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한 평강이기보다는 이 하나님께 속한 평강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평강이라는 것은 그 평강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평강을 말합니다. 이 평강은 개인의 평강에서 모임안의 평강으로 확대됩니다. 빌립보에 바울이 쓴 서신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모임 안에서 성도들이 다툴 위험성에 대해서 바울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떤 두 자매가 서로 의견이 달랐습니다. 그 이름을 바울은 기록해 두었습니다. 한 자매님은 유오디아이고 한 자매님은 순두게였습니다. 빌립보 모임에서 이 서신을 읽었을 때 이 두 자매님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 두 자매는 영적으로 좋은 자매였다고 생각합니다. 바울과 함께 복음에서 수고한 자매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사이에 의견이 어떤 것들이 달랐습니다. 아마 서로 뒷담화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들이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보통 분열은 두 사람의 의견 차이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그 두 사람의 각각 편을 드므로 분열은 확대됩니다.
이것을 극단화라고 보통 말합니다. 화학에서 화학적인 변화로 양쪽으로 끌려서 결집한 현상을 생각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떤 원소가 한쪽으로 가고 어떤 원소가 한쪽으로 가서 서로 극단화되는 분열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임에서는 이런 양극단화가 돼서는 안 됩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됨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는 전 세계적인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 51:11절에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앞으로 다가올 그리스도가 세울 그 나라는 전 세계적인 평강이 있고 전 세계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 4장에서 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한 말씀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원천적으로 기쁨을 가지고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우리는 기뻐할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 구원의 기쁨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쁨을 가하고 있습니다. 의의 기쁨이 있고 그것을 누리는 기쁨이 우리의 우리 됨을 증명해야 합니다.
로마서 14장에서는 약하고 강한 형제 사이에 먹고 마시는 문제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바울이 다룹니다. 로마서 14:1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시간에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님이 세울 그 나라의 특징을 우리의 성품 속에 생활 속에 드러내야 합니다. 의와 평강과 기쁨이라고 하는 특성을 우리 삶과 우리 인격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여덟 번째는 전 세계적인 번영이 있을 것입니다.
시편 72:16절에서 “산꼭대기의 땅에도 화곡이 풍성하고 그 열매가 레바논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같이 왕성하리로다” 전 세계적인 번영이 있기 때문에 부족함은 어느 지역에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모스 9:1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밭 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굉장한 수확량을 수확하는 모습이 묘사돼 있습니다. 이것을 지금 현재 오늘날 우리의 마음에 적용시키고자 합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은 풍성한 열매가 맺기를 원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22-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성령의 열매는 아홉 겹의 열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풍성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매일 영적으로 열매를 맺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주님이 건져내셨고 이사야 5:1-2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참 이스라엘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참 이스라엘이십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과 매일 정말로 접촉이 돼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홉 번째는 전 세계적인 건강이 있을 것입니다.
계시록 22:2절에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했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건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 많은 사람들은 건강에 많은 걱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건강해지려고 온갖 좋은 것을 찾아서 사람들이 먹기를 시작합니다. 어제 저는 인삼을 먹었습니다. 진시왕이 생각했던 것처럼 영생하려고 인삼을 먹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씀처럼 이때는 전 세계적으로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강이 보장되는 세계입니다. 잎사귀들만 먹어도 건강이 유지되는 상황이 묘사됩니다. 이 소식은 의사들에게는 절망적인 소식입니다. 의사들이 모두 실직을 할 것입니다. 병원에게도 정말 나쁜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환자가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천년 동안 지속이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사업을 하겠습니까? 환자가 없는데 따라서 놀라운 시대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참예하면서 주님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이 장래를 말씀해 주신 이유는 우리에게 지금 현재 그 특성을 살면서 나타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2025년 5월 5일 강서집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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