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냐, 은혜냐?”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인가, 은혜로 구원받는 것인가? 성경을 전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유주의자들과, 말로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실제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데 게으른 로마카톨릭 신자들을 제외하고는, 행위로 인한 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우리가 극단적 칼빈주의를 공박하는 것은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상식적인 진리를 거부하고 행위구원을 주장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인간의 어떠한 노력이나 교육이나 훈련으로도 구원받을 육체가 한 명도 없음을 알고 있다(갈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의 가장 큰 실수는 믿음을 행위로 여기는 것이다. 분명히 믿음은 인간의 편에 있지만, 믿음은 결코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완성하신 구원계획을 각자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행위가 없이도 믿음이 있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위는 또한 믿음을 헛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롬
성경은 믿음과 행위가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갈
믿음과 행위는 둘 다 인간 편에 속한 것이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한 것이며,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성령의 약속인 반면, 행위는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인간의 신실함에 기초한다.『이는 아브라함의 복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에게 미치게 함이며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는 것이라』(갈
성경에서 은혜와 믿음은 칼빈주의자들의 논리처럼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은혜는 하나님 편에 속하고 믿음은 인간의 편에 속한다고 해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신인협력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는 것이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칼빈주의자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나 각 사람에게 그 선물을 가져다주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를 따라 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것이 은혜를 따라 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되거니와 마침내 그 약속을 모든 씨에게 확고히 하려 함이며 율법에 속한 자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들에게도니라. 그는 우리 모두의 아비라』(롬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놋쇠로 만든 뱀이 높이 들려졌기 때문에 독사에게 물려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은 “물린 자마다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민
이와 같이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기본적인 성경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믿음을 행위로 여기게 만들어 믿음을 행사하지 못하여 결국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결여되어 있는 자는 눈멀고 멀리 볼 수 없으며 자신이 옛 죄들에서 깨끗하게 된 것을 잊은 것이라』(벧후
진리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으면 속고 마는 것이다.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골
“셋인가, 둘인가?” “믿음이냐, 은혜냐?”를 통해 총 2회에 걸쳐 살펴본 극단적 칼빈주의의 치명적인 오류 두 가지는 혼이 구원받고 영이 거듭나는 것을 가로막으며, 믿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미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에게도 그 영향력은 치명적이다. 영으로 하나님께 다가서는 것을 막고,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을 가려버림으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믿음의 하나 됨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의 하나됨에 도달하게 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엡
(바이블파워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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