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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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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악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H. G. Dobson

 

교회에서 악기를 사용하는 문제에 관한 답을 찾는데 있어서 필자는 논쟁의 영으로 하지 않고 냉정하고 신중하게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찾으며 답을 얻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집에서 질서를 세우고 유지하는 일에 있어서 신성한 권위이며 최종 상고법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문제를 다음의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사도교회와의 관계, 둘째, 속사도 교회와의 관계, 셋째, 유대 경륜(Jewish economy)과의 관계 또는 대조

 

사도 교회

사도교회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과연 오순절에서 사도 시대를 거쳐 초세기에 이르기까지 예배나 복음집회에서 악기를 사용했을까요?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고백하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마태복음 28:20에서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또한 사도행전 1:2-3에서그분께서 친히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님을 통해 명령들을 주신 뒤에 들려 올라가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한 것이라. 그분께서 수난을 받으신 뒤에 또한 자신이 살아 계심을 절대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그들에게 보여 주시고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것들을 말씀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필자는 주님께서 그분의 명령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교회시대에서나 그분이 율법 아래 계셨을 때나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막과 관련해서 모세에게 가르침을 주셨을 , “너는 주의하여 산에서 네게 보여 준 양식대로 만들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5:40). 출애굽기 39장에서 우리는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라는 구절이 아홉 번이나 되풀이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동일한 명령이 출애굽기 40장에서는 일곱 나옵니다. 그리고 16절에서는모세가 그와 같이 행하되 곧 주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라고 말씀합니다. 모세의 주요 관심사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이는 또한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마음에 갈망이 되어야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주지해야 주요한 사항 중의 하나는 교회 안에서 악기를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서 오늘날과 같은 실행을 찾아볼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계속해서 서신서를 공부해 나갈 우리는 성경이 예배나 복음집회에서 악기를 사용하는 것에 관해 전적으로 침묵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약성경에서 계시록 앞부분까지 음악이나 찬양과 관련한 관주는 다음의 8개가 있을 뿐입니다. 마태복음 26:30, 사도행전 16:25, 로마서 15:9, 고린도전서 14:15, 에베소서 5:19, 골로새서 3:16, 히브리서 2:12, 야고보서 5:13. 대부분의 신뢰할만한 권위 있는 그리스어 학자들은 이들 어느 구절이나 문맥도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 관해 암시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반면에 찬양을 하는 이의 마음에 멜로디가 있어야 함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 악기를 사용하도록 하셨다면 틀림없이 사도행전의 28 () 바울의 14 서신서와 요한의 서신서와 베드로의 서신서와 유다와 야고보의 서신서 어딘가에서 알려 주셨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그렇게 중요시하는 실행이 70년에 걸쳐 6명의 그리스도의 종이 기록한 22개의 서신서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가 도달할 있는 유일한 영적인 결론은 교회 안에서 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일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현대를 사는 어떤 이들이 모세의 시대에 살았다면 하나님께서 장막에 창문을 다는 것을 간과하셨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아시며 창문을 설치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은 것은 그분의 주권적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실 일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율법 아래 주어졌든 은혜 아래 주어졌든, 명령으로 주십니다. 모세가 그러했듯이 오늘날 우리도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성경기록이 없기 때문에 악기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동일한 논리를 적용하면 모세는 창문을 다는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을 거슬리는 일을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모세가 장막에 창문을 달았다면 하나님께서 장막에 관해 주신 양식을 망쳤을 것입니다. 다음의 기본 진리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구속받은 백성들이 지켜야 원칙과 양식과 교훈을 신약성경에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잘못된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의무가 없으십니다. 예로, 고속도로를 주행할 우리는 방향을 가리키는 도로표지를 적절히 따라갑니다. 그러나 고속도로 관리국이 모든 교차로마다 길로 가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을 세울 의무는 없습니다. 신약의 표지판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주께 아름다운 가락을 만들어 노래하며( 5:19)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의 입술의 열매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라고 말합니다( 13:5). 당신은 그것이 입술의 열매이지 결코 손가락 끝의 열매가 아님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계시록은 악기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물을지 모릅니다. 그러한 질문에 대해서 교회는 지금 하늘에 있는 집이며 광야는 지나갔다고 답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장막은 하늘을 향한 순례의 여정을 통과하는 교회의 예표인 반면에 성전은 천년왕국의 영광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의 예표였습니다. 천년왕국에서 악기가 언급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속사도 교회

이제 속사도 시대의 교회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떤 이는 교회사에서 거의 700년이 지난 후에야 악기가 도입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지도 모릅니다. 당시 교회는 두아디라 상태로 타락했으며, 오늘날 우리는 때를암흑시대라고 부릅니다. M. C. Kurfees 교회 안에서의 악기 사용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초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Sucier, 암브로시오(Ambrose) 같은 이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악기 사용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배사(Vassar) 대학의 음악학교장인 리터(Ritter) 박사의 말을 인용하면서기독교인들의 초기 회중 음악의 특성은 단순히 성악(聲樂)이었다 주장합니다. 오벨린(Oberlin) 대학 음악사 교수인 에드워드 디켄슨은 폴리캅시대 이후 위대한 교부중의 사람이었던 크리소스톰(Chrysostom) 인용하면서옛적에 다윗이 시편에서 노래하였으며, 오늘날 우리도 시편을 노래한다. 다윗이 가지고 있던 수금의 현은 생명이 없는 현이었지만, 오늘날 우리의 혀는 음조는 다르지만 보다 일치된 경건을 노래하는 수금의 현이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초대교회 교부인 어거스틴은 믿는 이들이 극장 악기로 마음을 돌이키지 것을 엄명했습니다.

모든 초대교회 교부들이 교회에서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였다면 언제 악기가 도입되었는가 라는 의문이 제기될 있습니다.

A.D. 670년에 교황 Vitalian 일부 서부유럽 교회에 처음으로 올간을 도입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최초로 악기를 도입한 일에 대한 신뢰할만한 기록은 A.D. 775년에 그리스 황제 콘스탄틴 코포니무스가 프랑코왕 페핍(Pepip)에게 올간을 선물로 보냈으며, 이에 대한 답례로 페핍왕이 Compiegne 소재한 코르넬리 교회에 올간을 선물했다는 기사입니다. 교회 고고학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악기가 Vitalian 교황에게 출처를 것보다 훨씬 후에 사용되었다는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추가의 연구에서 13세기 저명한 이태리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우리 교회는 유대교화 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210년에 마리나스 사누투스가 처음으로 교회에 올간을 도입했습니다. 종교개혁 동안 악기는 천주교의 관습 가장 사악한 유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악기가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현재 1 2500 이상의 회원을 가진 그리스정교회의 역사에서 미국을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에서도 악기를 결코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조차 1900 까지는 악기가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신약성경 언어를 아는 그리스정교회 신자들로서는 교회 안에서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할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콜롬비아 대학의 Giberdeau 교수와 장로교도는교회가 비록 진리가 오염되고 사도적인 실행이 부패했지만 1200 동안 악기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주장합니다. 그때까지 악기는 널리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칼빈주의 교회는 악기를 천주교의 요소로 배척했습니다. 장로교 작가는이단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종종 듣는 이야기로 스코틀랜드 교회의 장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로는 알지 못하는 어떤 여자가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귀머거리였고 회중 가운데로 커다란 호른 모양의 보청기를 휴대하고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악기라고 생각한 장로는 얼마동안 그녀를 응시한 그녀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훈계하였습니다. “ 번이라도 불기만 하면 쫓아낼 거요.”

감리교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악기를 사용하는 음악은 용납되지 않는다. 악기를 사용하는 음악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 필자는 학문으로서 음악을 존중하고 높이 평가하지만 하나님의 집에서는 혐오하며 거부한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는 교회 안에서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칼빈은 이상 향을 피우지 않거나 등잔불을 밝히지 않거나 다른 율법의 그림자들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듯이 악기도 교회 안에서 위치할 곳이 없다 말했습니다. 유명한 찰스 스펄전이 수많은 회중들을 향하여 말씀을 선포했던 런던의 메트로폴리탄 장막교회에서는 악기를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수년전 영국 국교회에서 악기를 예식에서 배제할 것인가에 대해 표결에 부쳤을 차로 악기를 사용하는 실행이 유지되었습니다. 1634년에서부터 1649년까지 웨스트민스터 의회 의장을 맡았던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에 따르면 침례시 물을 뿌리는 것과 물을 붓는 것도 동일한 방법으로 표결에 부쳐졌고, 표차로 실행이 유지되었습니다.

M. C. Kurfees 교회에서의 악기 사용을 주제로 자신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크리스토퍼 박사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 교회 안에서의 악기 사용을 정당화할 있는 사실이나 논거나 이유는 가지도 찾을 없다. 그것은 사도적 실행에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다른 이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것에 만족하도록 해야 것입니다. 악기를 사용하는 실행의 근원이 되는 배도한 교회의 부패한 실행 가운데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것입니다. 700 동안 교회 안에서 악기가 사용되지 않았으며 후에도 700 동안 악기 사용을 반대 했던 점을 고려할 초대 교회는 악기를 사용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다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교와의 대조

이제 유대교와 대조해서 주제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악기를 사용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믿는 이들이 서로 다른 경륜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5:37에서 주님께서는아무도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 쓰게 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구절에서 유대교와 기독교를 대조하는 그림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혼합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각각의 정체성과 중요성을 파괴시킬 것입니다.

유대교는 세상에 속한 모든 약속들과 함께 아브라함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유대교 안에는 사람에게 적합하도록 제정된 예배 형식이 있습니다. 유대교는 화려한 성전, 의복을 입은 제사장들, 성가대, 악기, 향로, 동물의 희생물 등을 요구합니다. 유대교는 외적이고 형식적이며 의식적(儀式的)이고, 땅에 속한 것으로서, 미세한 사항들까지 전부 지킬 것을 요구하는 계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대조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육적인 것에 전혀 호소하지 않는 영적인 영역이며 우리의 축복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유대교는 대제사장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는 반면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지성소에 들어갈 있는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유대교는 계속적으로 새로운 희생물을 요구하는 반면에 우리는 죄를 위하여 영원히 희생물이 되신 분을 압니다( 10:12). 유대교에서 성전은 사람에 의해 지어진 지극히 화려하며 장식된 값비싼 건물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계가 성전과 대성당의 양식을 얻은 것은 양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을 집을 수용하는 특정한 건물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심을 압니다(고전 3:16, 17).

성전에서의 섬김에 관해 말씀하는 역대하 5:12-14 레위지파들이흰 아마 옷으로 차려입고 심벌즈와 비파와 하프를 가지고노래하며, 나팔로 소리를 내는 제사장 백이십 명이 동쪽 끝에 서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좋은 상태의오래된 포도주 보게 됩니다.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은 결과 오늘날 기독교계의 타락한 상태를 낳았습니다.

포도주는 반드시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할 악기를 사용하는 음악을 도입해서는 됩니다. 영적인 것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공공연한 목적으로 육적인 것에 호소하는 어떠한 시도도 확신컨대 포도주를 잃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일찍이 그리스도의 실제(實際) 사람을 떠나면 의식주의(儀式主義) 자리를 차지할 것이며, 생명 없는 형식이 도처에서 일어나서 사람들을 즐기게 하는 일이 회심시키는 일보다 우세하게 되고, 결과 참된 기독교의 특성이 낮아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19세기 초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이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가운데 계시는 그분을 발견하기 위하여 유대교화 기독교 진영을 떠났습니다( 18:20). J. N. 다비, 윌리암 켈리, C. H. 메킨토시, 로드 콩그레톤과 같은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시대의 영적거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사도시대 이후에 결코 증거한 적이 없는 신성한 진리들을 그들에게 열어주셨습니다. 그들은 영적 분별 종교적 칭호, 의식(儀式), 의복, 건물, 올간, 찬양대, 기도서, 고해제도 등을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이 지불한 대가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보배로운 것이며 하나님이 주신 유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가볍게 여겨서는 됩니다. 오히려 주님으로부터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라는 말씀을 들어야 것입니다( 3:8).

(어느 성도의 제공해 주신 글입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