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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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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의 음악

James B. Currie

다른 견해들

오늘날 기독교의 특성 중 하나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형태로 음악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기독교 단체에서 목사나 성직자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지휘자입니다. 유명한 성경학교나 유사한 대학 중에 음악학부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더욱이 많은 영혼들을 복음으로 인도하고자 열리는 현대의 많은 대형 복음전도 켐페인에서 음악은 광범위하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곳에서 음악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준비하도록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두루 살펴볼 때 우리는 사도들과 초세기 믿는 이들이 어떻게 오늘날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음악의 도움이 없이도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에 관해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음악에 관한 이러한 일반적인 상태와는 대조적으로, 모임의 영적 실행에서 적절한 찬송을 직접 부를 뿐 실질적으로 악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모임도 있습니다. 이는 자연히 어떤 이들에게, 특별히 하나님의 일에 관해 아직 미숙한 이들에게 의문과 당혹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들이 의문을 품는 것은 자명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가운데 집에서나 사적인 장소에서 음악을 즐기지 않는 이는 드물며, 음악을 싫어하는 이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음악은 구약의 성전에서, 특별히 다윗 시대에 많은 부분을 담당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에도 음악은 믿지 않는 이들에 대해 영적 진리를 증거하는 적합한 방법일 쁀 아니라 영적 진리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도구처럼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교회에서 사용되는 찬양의 한 유형인 카펠라(cappella)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는 악기의 반주 없이 찬양하는 것으로서 순전히 우리들 가운데 있는 전통이며 성경의 가르침과 절대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이러한 실행이 온전한 진리로 입증되기 위해서는 모든 관계자들이 인내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음악의 특성

그러나 우리가 음악의 주요 특성에 관해 좀 더 진지하게 살펴볼 때, 우리가 단지 전통적인 면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며, 이 세대뿐 아니라 다른 세대에서도 성경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왜 교회 모임에 악기를 도입하는 것을 반대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대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지켜져 왔습니다. 음악은 그 자체가 감각적(sensual)이며 영적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감각적”이란 단어는 감각에 속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혼적(soulish)”이라는 용어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근래 음악의 한 유형은 실제로 “혼의 음악(soul music)”이라고 불려 왔습니다.

음악을 “감각적”인 것으로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성령에 속한 것들에 관하여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충분히 음미하고 누릴 수 있음을 말합니다. 매년 세계 각처에서 헨델의 메시아 연주를 듣기 위하여 모이는 많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주로 그들은 음악을 들으며 최고의 감동을 체험하고자 합니다. 오라토리오의 가사는 모두 권위역 성경(KJB)에서 인용한 것으로서, 신약과 구약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 고난과 죽음, 부활과 큰 영광가운데 다시 오심에 관한 약속과 실제적인 성취에 관한 것입니다. 청중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노래 가사의 영적의미에 의해 감동되는 사람은 대체로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성경의 진리를 이미 알고 있는 자에 국한됩니다. 이것이 최고의 음악(역자 주:헨델의 메시아)에 해당된다면 오늘날 “종교적”인 모임에서 통상적으로 드려지는 음악에 대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이 점에 관해서는 앞에서 이미 말씀 드린 것에 추가로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외양간에 음악을 들려줄 때 동물들은 보다 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어떤 템포의 음악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상점에서 매상을 올리는 것을 돕는다고 합니다.

 

영적 재능인가?

사도시대에도 음악가들과 유명한 성악가들도 있었다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성령님의 인도하심로 말미암아 교회의 머리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며 그분의 몸된 교회를 완성하기 위하여 주신 은사들을 나열할 때 찬양을 하는 이들과 음악가들은 포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우리의 시선을 더 끌게 합니다. 만약 그러한 은사들이 교회가 완성될 때까지 하나님의 백성의 영적인 축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전지(全知)하시며 교회의 머리되신 분께서 미리 예견하지 못하신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영에 속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그러한 견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다른 견해로는 교회의 머리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목적 안에는 우리가 언급하고 있는 “감성적”인 것에 관한 은사들이 영적 섬김을 위한 성도들의 능력의 한 부분으로 의도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된 “카펠라(cappella)”는 이 견해에 대해 역사적으로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채플(예배당) 또는 성소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성도들이 모이는 장소를 ‘채플(예배당)” 또는 ‘성소’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사도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수세기를 전해 내려오면서 고대 시대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반주가 없이 찬양을 드렸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목적의 실현

히브리서 4:2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을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사랑과 미움, 좋아함과 싫어함 등, 여러가지 감성적인 방법으로 감동을 주는 인간의 혼은 경건하지 않은 상태로 영과 매우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양날 선 검인 하나님의 말씀만이 혼과 영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만이 다시 태어난 사람에게 혼적인 것과 성령의 영역에 속한 것을 구별하는 능력을 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섬김에서 우리의 목적은 분명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섬김은 성령에 속한 것으로 잘못 받아드리도록 하는 종교적인 거짓된 분위기를 만들어서 감정적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켜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모든 수고에서 성령님의 분명하고 명백한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견해를 갖고 우리 각자는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손길과 조화를 이루어 우리들 가운데 참된 영적 권능이 충만하게 부어지는 것이 모임의 두드러진 특성이 되도록 계속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모임의 참된 특성이 될 때 이 시대와 다른 시대에서 무엇이 하나님의 길인지를 알고 있는 이에게 종교계가 제공하는 “반주”나 “음률”은 어떠한 매력이나 의미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성도들의 모임 가운데서 이 시대의 절박한 필요는 좀 더 즐거움을 주는 목소리가 아니라 성령님의 생명을 주시는 권능으로 일으켜진 사람입니다.

 

(어느 성도께서 제공해 주신 글입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