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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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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16. 09:18 횃불/1983년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이 춘원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수양회나 캠프와 같은 모임으로 쏠리게 마련인가 봅니다. 다람쥐 채 바퀴 돌리듯 매일 반복되는 분위기 속에서 살다가 비록 잠시 동안이지만 변화 있는 새 환경 속에 묻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쉼을 얻으며 즐거운 친교를 하고픈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수양회에 대하여

우리 동양인들은 수양(修養)을 하기 위해 모인 집회를 수양회라고 부르고, 서양인들은 보통 그것을 컨퍼런스(Conference 의논, 협의, 회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호칭이나 단어들이 우리가 말하려는 수양회를 온전히 다 설명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다음과 같은데 그 의의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① 우선, 수양회는 회()에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 지역에 각기 떨어져 자기 생업에 종사하고(여러 지역 교회에 흩어져)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한 장소, 한 기간에 함께 모여 서로 만나 인사하고, 사귀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배우고, 같이 먹고 쉬고, 찬미하고, 간증과 말씀을 나누고 의논하고, 도와주고, 담소하고, 서로 우애를 나누고····여기에 수양회 개최의 큰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0:24,25)

② 수양회는 글자 그대로 수양을 얻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원래가 수양이란 말은 품성과 지덕을 닦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과 인격을 마땅히 본받아 배워 실천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에 그리스도의 마음과 인격을 닮지 못하고 기독교적인 품격이 함양되어 있지않고 성도로서의 진실하고 교양있는 생활을 못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③ 수양회는 평상시 서로 떨어져서 각기 자기 생업에 종사하던 그리스도인들이 그 일손을 잠시 동안 놓고 그 기간 그 장소에서 서로 만나 교제하며 마음과 몸이 푹 쉬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양회에 가서 장사 의논을 하거나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거나 비난을 일삼거나 어떤 문제를 일으키기 위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골치 아픈 세상사를 잊고 또는 그곳에서 해결하고 정신이 쉬고자 하는데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수양회에 가거나, 갔다 온 후 도리어 머리가 더 무겁고 심령에 더 큰 병이 든다면 그 모임의 의의와 필요성이 어디 있는 것일까요?

주님 안에서 참 쉼을, 참 평안을 얻는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6:31)

④ 수양회는 성도의 사랑을 서로 나누기 위해 가는 것이고, 온유한 심령으로 서로 섬기기 위해 가는 것이고, 간증과 찬미와 축복을 서로 교제하기 위해 가는 것이고, 성도들 간의 안부와 기도제목을 알기 위해 가는 것이요, 신령한 말씀을 듣고 배우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 1:23)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써, 말씀으로써, 성령님으로써, 겸손으로써 차고 넘치는 수양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간구합니다. 아멘.

 

실천적인 수양회

참으로 유익하고 뜻있는 수양회, 합당하고 바람직한 수양회, 덕이 되는 수양회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질문하고 싶고 우리 모두가 그 해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양회의 의의와 목적에 부합되기 위해서는 아래의 방법대로 우리 모두가 실천적으로 순종한다면 우리들의 모임은 축복을 받고 기필코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① 우리가 열고 우리가 참석하는 수양회에서는 어떤 사람의 주장이나 이론이나 비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주님의 마음과 인격과 그 사역이 어떠하심을 전하고 간증하고 가르치고 본을 보이고 실천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낮아 지신 마음,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인격, 희생으로서 나타나신 사랑, 그 거룩하시고 향기로운 생애, 신령한 진리의 말씀을 우리 모두가 배우고 나누고 본받는데 수양회의 개최와 참석 의 의의가 있습니다.

요나가 박 넝쿨 밑에서 잠시 피서를 하고 있었으나 그의 마음은 불평과 성냄과 무자비와 교만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비뚤어져 있었습니다( 4).

양관, 그러니까 울창하고 시원한 수목과 그늘, 수려한 경관과 쏟아지는 폭포, 웅장하고 그윽하고 아름다운 절경, 앞으로는 툭 터진 넓은 바다의 고운 모래밭, 옆으로는 맑은 시냇물까지 흘러내려 샤워 시설이 필요없고, 그 옆엔 적당한 바위들이 가려져 탈의실도 필요없고, 한없이 조용하여 새 소리만 들리고, 넓은 강당들과 아늑하고 편한 숙소들이 많고, 좋은 음식과 시원한 생수가 공급되고, 거기다가 편리한 교통편과 기타 모든 환경과 시설과 조건이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곳에 낮아진 주님의 마음과 부드럽고 친절한 이해와 사랑, 온유하고 겸손한 인격에서 흘러나오는 진리의 말씀과 신령한 노래 가운데서 이뤄지는 훈훈한 성도의 교제가 없다면 그 수양회는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믿습니다. 즉 우리 주님의 사랑과 겸손을 나타내고 체험하고 본받고 실천하는 수양회, 신령한 진리의 말씀과 그 복음이 풍성히 넘치는 수양회, 온 성도들의 찬미와 간증이 은혜롭게 나눠지는 수양회, 진실하고 깨끗한 심령으로 서로 교양있는 인격을 가지고 섬기는 수양회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29)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4:17)

② 뭐니뭐니해도 수양회는 참으로 주님 안에서 푹 쉬는 모임이어야 합니다. 심신이 고달프고 무거워져 가는 수양회는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쉰다는 것은 성서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잘 먹고 한가하게 쉬면서 멋지게 노는 것을 뜻하겠으나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쉰다는 의미에는 특이성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한적한 곳에 가셔서 잠깐 동안 쉬실 때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물론 피곤하신 몸을 뉘어 주무시거나 음식을 잡수실 수도 있었겠으나, 우리 주께서는 그 한적한 곳에서 우선적으로 하신 일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 1:35) “예수는 물러가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5:16) 이렇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나 모임적으로나 호실로 나뉘어 있을 때나 향상 주야로 아침 저녁으로 한적한 기회와 장소에서 주님 앞에 엎드려 그 거룩하신 뭇을 찾고 그 뜻을 명상하고 그 뜻을 순종할 때 수양회 참석의 의의가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기도로써 주님께 아뢰고, 말씀으로써 그 응답을 받고, 믿음으로써 그 뜻을 순종하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참 쉼은 주님 안에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그대로 순종할 때,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을 배울 때, 생명의 물가 푸른 초장에 거닐 때, 원수까지 사랑할 때, 영원한 나라에 들어 갈 때 참으로 안식할 수 있습니다.

신령한 말씀을 듣기 위해,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 드리기 위해, 찬미하고 간증하고 섬기고 화답하기 위해서 모이는 수양회에서는 평안함이 있고 참 쉼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 모임의 초기 수양회

전언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7,80년 전 한국 모임 초창기에 형제님들이 수양회를 할 때에는 흰색 바지 저고리에 짚신 감발을 하고 보통 수 십리 수 백리 길을 걷거나 조랑말을 타고 참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목숨을 내어 놓는 형제애를 가지고 뜨거운 눈물 가운데서 서로 만났다고 합니다. 주께서 저들 가운데서 나타나신 은혜와 그 역사하심을 간증하며 밤이 새도록 말씀 안에서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황소까지 한 마리 잡고 기쁨으로 음식을 나누면서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은 사랑 속에서 정말 헤어지기 싫은 심정으로 친교를 계속 했었습니다.

그 옛날은 그만 두고라도,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회비 걱정 같은 것은 안 했고 진리의 문제나 어떤 성령의 부담되는 문제들로 인하여 수양회에 참석하지 않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필자가 알기로는 그 때에는 성도들 사이에 불평과 비난을 일삼거나 자기를 주장하거나 자랑하는 육신적인 일들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 때에는 깨끗하고 단순한 믿음으로 피차에 뜨겁게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모임들 안에 이상한 복음이나 변질된 가르침을 가르치는 일이 없었습니다. 지역모임 안에나 수양회 때 다른 성격이나 다른 진리를 주장하는 이들이 없었고 또 전혀 발붙일 틈이 없었습니다. 복음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그 믿음의 바탕이 순수했고 또 도덕적으로 더러운 문제들을 다반사로 일으킨 일이 없었습니다. 후욕하거나 당파를 짓거나 비난을 일삼는 일은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 때에는 항상 어디서나 일반으로 얻은 구원 곧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느라고 여가가 없었습니다. 그 때에는 옛 복음을 그대로 전했고 옛 계명을 그대로 지켜 순종하고 있었습니다(요일 2:7, 3).

! 주님이시여, 처음 믿음과 처음 사랑을 그대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복음의 진리 안에서 항상 사랑과 겸손으로 행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1983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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