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2. 11. 15. 12:09 횃불/1986년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까?(10)

 

-9-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잠언 23:23)

윌리암 윌리암즈

우리는 침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토론토에 있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천거서를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거하던 랜즈다운 애브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모임들의 소개를 알고 있었습니다. 정션집회소를 탐문하는 일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경찰조차도 어떤 명칭도 갖지 않는그리스도인들이 어디서 모이는지를 말해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안내 책자 조차도 그를 도와 우리를 그 이름 없는 장소로 안내하지 못했습니다.

정션 집회소를 찾는 일에 실패한 우리는 브루크 애브뉴를 더듬다가 거기에서 우리는 평범하게 보이는 집회소를 찾아냈습니다. 정면 잔디밭에 있는 게시판에는 스트래트포드에서 본 것과 똑같은 명칭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이라는 명칭이 적혀있었으며 그 다음에 집회 순서가 나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스트래트포드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따뜻함이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기에 소수의 사람들만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집회들의 질서와 단순성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형제들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과 삼가는 마음 때문에 사람들에게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W. 스티븐슨이라는 이름의 한 아일랜드 형제가 우리에게 관심을 좀 보이고 우리가 원하는 바를 알아낸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수 개월 동안 우리는 왜 그 브로크 애브뉴 그리스도인들이 스트래트포드의 그리스도인들에 비해 그렇게 딱딱하고 차가운지 궁금히 여겼습니다. 과연 우리가 그들과 동일시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옳았을까요? 하지만 복음 집회를 위한 천막이 칼톤 스트리트에 쳐졌고 우리는 그리로 가서 로버트 맥클린톡씨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자주 참석하는 중에 맥클린톡씨가 친절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겉으로만 그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천막을 떠나면서 그는 저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영원한 형벌에 관한 저의 견해를 물음으로써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물론 저는 영원한 형벌을 믿습니다. 왜냐 하면 한 성경 말씀이 그것을 저에게 분명히 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영원한 영광을 믿고 있다면, 물론 저는 그러고 있습니다만, 또한 영원한 형벌도 믿고 있어야 모순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저는 그분에게 마태복음 21:46을 인용했습니다. 그분은 당신은 정말 그것을 믿고 있습니까?” 라고 집요하게 질문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장담했으며 그분은 그런 말을 들어서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에 대한 주님의 백성들의 태도가 확 달라졌습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토론토의 G.T.R. 에서 있을 때 저를 알고 있던 한 대장장이 형제가 그들에게 저는 불링거 신봉자로서 아주 위험한 사람이며 영원한 형벌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경건한 조심성을 갖는 점에 있어서는 옳았습니다. 하지만 경건한 조심성에는 그저 혐의만 품는 것이 아니라 조사해 보는 일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한 때 제가 불링거 추종자였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영원한 형벌을 부인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맥클린톡씨가 했던 것처럼 만약 누가 저에게 솔직한 질문을 던지기만 했더라면 그 사람은 맥클린톡씨가 들었던 것과 같은 솔직한 대답을 들었을 것입니다.(왜냐하면 저는 제가 믿는 바를 한번도 부끄럽게 여겨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와 같은 것들을 자세히 진술하는 이유는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이 잘 정의해 놓은 것을 형제님들이 참고로 하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엄격함이 아닌 견고함, 혐의가 아닌 조심, 방종이 아닌 자유, 너무 허물없이 노는 것이 아닌 우정.” 만약 주님의 선하심이 없었다면 브로크 애브뉴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에게 보여 준 외관상의 관심의 결여는 우리를 멀리 몰아내고 말았을 것입니다. 대장장이 형제가 지나친 열심으로 인해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줬다는 것을 우리가 안 것은 오랜 후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들이 변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 연이어 초대되었습니다. 장로 형제들은 우리 보고 침례를 받고 교제로 영접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바로 그것이 우리가 기다리던 바라고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이내 두 명의 장로형제들이 와서 우리의 구원과 그 밖의 것들에 관해 면담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만족해 하는 것 같았으며 우리에게 브로드뷰 집회소에서 침례가 있을 예정이니 우리가 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조정해놓겠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신속히 진전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1907 11월 그 화요일은 저에게 끔찍한 갈등의 날이었습니다. 저는 침례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단계는 내 야망에 치명타가 되려 하고 있다. 이제 그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과연 나는 옳은가?’ 이와 같은 두려움과 의심이 온종일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밤이 되자 제 아내와 저는 브로드뷰 집회소로 차를 몰았습니다. 약간의 말씀이 있은 후 우리는 지하실로 내려가 침례 받을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15명 남짓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 사람이 자기 손에 빛나는 금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보고 그가 그 금반지를 손에 낀 채 어떻게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려하는지 궁금히 여겼습니다.(그 가련한 친구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자매들이 먼저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형제가 한명씩 호명되었으며 마침내 제 차례가 왔습니다. 저는 온 집회소에 사람들이 꽉 들어찬 것과 외투를 입은 한 형제가 큰 고무 장화를 신고 큰 물 탱크 속에 서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별다른 격식없이 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내 사랑하는 형제여,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줍니다등등의 말을 하고는 저를 물 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물이 첨벙 튀겼습니다! 제 생각에는 침례는 장사(葬事)를 상징하기 때문에 침례를 주는 형제들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장례식에서 우리가 시체를 천천히 그리고 공손히 무덤 속으로 내려놓듯이 침례식에서도 우리는 침례 받는 사람을 물 속으로 급히 던져 넣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라는 말씀을 좋은 공식으로 삼는 것이 좋겠습니다.

집회소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이 이 좋은 날 내 천한 몸 참 중생한 새 몸일세라는 찬송으로 활기를 북돋았습니다.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내가 좋은 날을 사랑하는지 알고 있을까?” 두려움과 의심이 사라지고 달콤한 평안이 제 영혼을 가득 채웠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그 단순한 순종의 행위가 새로운 날의 시작처럼 여겨졌습니다. 사랑하는 제 아내도 똑 같은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주님의 백성들의 악수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참으로 풍성한 곳으로 인도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진작 말씀 드렸던 것처럼 우리는 아침집회에 한 번도 참석해 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만찬의 문제에 관해 수 년 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18세 일 때 제 부모님은 제가 교회에 가입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저는 그 교회에 가입한다는 말이 교회 회원이 되어 성예전(禮聖典, sacram)”에 참석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그것을 합당치 않게 행하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된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 때는 제가 막 구원받으려던 참이었으므로 저는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오든 선교회에서는 만찬(communion)”을 행했습니다. 만찬이라는 단어는 성예전이란 단어보다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저는, 주님의 만찬이 기념되려면 그것은 주님의 명령대로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성경을 충분히 읽었었기 때문에 다시 그만 두었습니다. 나중에 불링거리즘 속으로 빠져 들어가자마자 저는 이 엄숙한 의식에 참예하고자 하는 마음을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브로크 애브뉴 집회소로 갔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뒷좌석으로 안내되어 믿는 자의 찬송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좌석 배열이 아주 달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 주위에는 120개 정도의 좌석이 놓여 있었고, 상 위에는 한 덩어리의 빵과 두 개의 큰 포도주 잔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일정한 공간이 있었고, 그 다음에 의자들이 흔히 볼 수 있는 배열로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린이들과 일부 남녀들이 들어갔습니다.

집회소 안에는 그 엄숙한 의식에 걸맞은 침묵이 감돌았습니다. 시간이 되자 한 형제가 적절한 찬송가 한 곡을 선택했습니다. 그 다음에 한 명씩 차례차례로 경배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새로웠습니다.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는 말씀은 원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귀하신 임재(presence)”는 그 날 아침에 틀림없이 사실이었습니다. 형제들이 감사를 드리는 가운데 우리 주님의 거룩하신 삶을 요람에서 십자가까지 더듬어 올라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울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이곳이 우리가 그처럼 오랫동안 찾던 장소이구나.” 떡이 나뉘어 돌아갔으며 포도주가 뒤이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오직 상 주위에 앉은 사람들한테서만 헌금 걷혔습니다. 찬송이 한 곡 더 불려지고 성경 말씀 한 구절이 읽혀진 다음 기도로 그 집회는 끝이 났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이 집전(執典)하는 성직자가 없이 그분의 정하심대로 기념되는 것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상 주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성령님 외에는 아무도 그 순서를 지도하지 않았으며 예기치 않은 방해나 혼란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경이와 찬양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지껄이고 비평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침례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은 우리를 다시 하나님께로, 그분의 말씀으로, 그분의 백성들에게로, 우리의 처음 사랑으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것으로, 우리가 7년 전쯤에 벗어났던 그 궤도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시라 할 순 없습니다. 우리는 그 침례와 주님의 만찬과 그분의 이름으로 모이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속하게 된 것이 다 성령님의 참된 역사라고 믿습니다.

45년 전에 우리가 발렌샤로 갔을 당시 거리에는 궤도 위를 달리는 조그만 차들이 있었는데 몇 마리의 훌쭉한 말들이 그 차를 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그 차 중에 하나를 타고 철도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몹시 많이 내린 관계로 우리가 탔던 차가 궤도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운전수는 말을 채찍으로 때리고 소리를 치며 차를 다시 궤도 위로 올려 놓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한 승객이 우리가 모두 내려서 차를 밀어 다시 궤도 위로 올려놓자고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다시 전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제가 말씀 드린 사항들을 잘 보여 주는 좋은 그림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침례를 보았을 때 마땅히 우리는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인정하고 그것에 순종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궤도를 벗어났습니다. 그 후 많은 외침과 채찍질이 있긴 했지만, 침례와 주님의 만찬으로 주님께 순종함으로써 우리가 궤도에 다시 올라가기 전까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도리 안에서진정한 전진은 없었습니다. 집회 후 광고를 하는 형제가 일어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제 아내와 제가 교제로 영접되고 싶어한다는 것과 우리가 다음 주일부터 주님의 상에 참예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광고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여 모임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48년 동안 그분이 자기 이름과 임재를 두기를 기뻐하시는 그 에 온전히 만족해 왔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저에게 교회는 황폐해 졌다든가 오늘날에는 집단적인 증거가 없다든가 하는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 외의 어떤 다른 이름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반대하는, 거의 가치 없는 탁상공론적인 의론을 신뢰하는 대신 주님께 속한 것들 안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산 경험에 호소할 수 있습니다.

 

(1986 5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