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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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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16. 12:44 횃불/1991년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간증

일본의 무디

폴 가나모리

 

일본의 무디라 불리는 폴 가나모리는 현대 일본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이자 교사요 전도자였습니다. 과는 수 백명의 학자들이 다니던 일본의 유명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 성경 한 권을 입수하여 아무런 주석의 도움도 없이 읽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그는 성경에 몰입하게 되었고, 보통 소년이라면 으레 그러는 것처럼 그것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지를 못했습니다. 이리하여 다른 학생들도 성경을 읽게 되었고, 그 수는 무려 백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일종의 교제를 형성해 나아갔습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이 소년들은 선생의 도움이나 다른 어떤 도움 없이도 한 명씩 한 명씩 확실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기쁨은 그들의 영혼에 차고 넘쳤으며, 그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야외시장으로 나가서 자기들이 소중히 여기는 진리들을 증거했습니다.

이것은 무려 50년 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혹독한 핍박을 받아 큰 시련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원수에게 항거하지 못하고 한 사람씩 무너졌으며, 겨우 40명 가량만이 충성되고 진실되게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이 무리는 화초산이란 곳으로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하나님과 구주로 섬기겠다고 온전히 헌신했으며, 그들의 재능을 그분에게 드렸습니다. 그들은 신앙진술서를 작성하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 신앙에 충성하겠다고 서약했습니다. 이 소년들의 연령은 13세에서 18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습니다.

바로 이 소년들 중의 하나가 가나모리였는데 그는 나이가 많은 축에 들었으며, 그 무리의 지도자였던 탓으로 자연히 감시를 받았으며, 끝내는 투옥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수감되자마자 즉시 몸수색을 당했지만 이미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을 조끼 안 쪽에 숨기라는 주의를 받았기 때문에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는 이 말씀을 섭취했습니다. 그러다가 이것이 발각되어 그 귀중한 말씀을 빼앗길까 염려한 나머지 그는 자기 영혼에게 그처럼 소중한 생명의 벽을 암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를 상기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저에게서 그 성경을 모조리 빼앗아간다 하더라도 제 기억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손댈 수 없었습니다.”

석방된 후에 그는 성경 한 권과 천로역정한 권을 입수하게 되었고, 그 후 얼마 안되어 신학교에 들어가 소정의 과정을 거친 후, 결국 한 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슬픈 사실은, 바로 이 신학교와 관계하고 있는 동안 그가 오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소위 신신학(新神學, the new Theology)이라 불리는 것과 고등비평(The Higher Criticism)이라 불리는 것에 홀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성경에 대하여 신해석(新解釋)을 내리는 독일서적들에 매료되어 가장 현대적이고 똑똑하다는 저자들의 작품을 탐독했으며 거창한 현대주의 신학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학문과 업적에 결코 지칠 줄 모르는 위대한 학자이자 또는 언어학자였습니다. 그의 이론에 많은 진보가 있자 그의 양심은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다른 이론을 갖고 있으면서도 강단에서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이 그에게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는 어찌해야 좋을지 많은 친구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는데 모두다 그에게 강단에서 설교를 계속하라고 설득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주 강경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위선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포기해야만 해 교회로부터 돈을 받는 한 복음 전하는 일을 등한히 할 수는 없어.” 결국 그는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철저한 현대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잘못으로 가득차 있고, 신화와 오류도 허다하고 성경책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습니다. 그에게는 성경이 모하메드나 부처, 또는 다른 사람들의 경전과 똑같이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가 읽는 것은 모두다 파괴적인 것들뿐이었으며, 그는 불가지론자나 매한가지였습니다.

이제 저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국을 누비면서 사회주의와 경제학을 강의했고, 복음과 십자가는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었으며, 훌륭한 인격을 지닌 선한 사람으로서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단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에 불과했으며, 동정녀 탄생은 전혀 신화에 불과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분의 부활은 상상에 불과했고, 제자들은 기만을 당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그의 전력(前歷)에 비추어볼 때 그 후 무려 24년이 넘도록 그처럼 흑암 가운데서 살면서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독일의 저술들을 자기 나라 말로 번역했고, 그 많은 책들은 당시의 열정적인 젊은 학자들에게 탐독되었습니다. 그의 저술들은 모든 지성인들에 의해 읽혀졌으며, 마침내 그는 학자와 교사로서 일본 전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실로 그는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방랑자였으며,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는탕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기나긴 세월의 결국에 가서 그로 하여금 자신의 행실을 살펴보게 만드는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는 비록 자기 하나님 아버지를 잊어버렸을지라도 그분은 그를 잊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아홉 명의 자녀를 둔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이것은 몹시 슬프고도 엄청난 손실이었으며,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의 자녀들은 밤낮 울어댔으며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과 신학에는 어떠한 위로도 없었으며, 그의 신념 역시 공허하고 무의 미 하기만 했습니다. 그가 도대체 어디로 가서 누구에게 도움과 위안을 청할 수 있었겠습니까? 자녀들은 계속 다가와 도움을 구했지만 그는 아무 것도 줄 수 없었습니다. 자녀들은 자기 엄마가 하늘에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러나 이 땅에서는, 그 가정에서는 그 엄마가 몹시 필요하기만 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자기 엄마 사진을 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방마다 사진을 비치해두었고, 하나는 부엌에다 비치해 두었습니다. 아이들은 사진에게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엄마는 아이들의 마음 속에 아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가장 어린 아이가 자기 아빠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빠는 밖에 나가셨다가도 다시 돌아오시는데 엄마는 왜 다시 돌아오지 않으세요?” 그는 겨우 네 살밖에 안된 그 어린 자식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엄마는 하나님이 필요해서 데려가셨단다. 엄마는 아주 바쁘고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그러면 아빠, 아빠가 엄마에게 가서 엄마 대신 일하고 엄마를 여기로 보내면 되잖아요? 우리는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단 말이에요.” 그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였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가 가나모리는 문득 부활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그는 자신의 유일한 소망이, 다시 살아나사 영원히 죽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구주에게만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갈등과 깊은 회개의 경험을 겪다가 어느 날 드디어 빛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하늘 아버지께서 탕자를 받아들이셨던 것입니다. “그분이 저에게 옷을 입히시고, 제 손가락에 상속자의 반지를 끼워주셨으며, 제 발에 신을 신겨 주셨을 때 저는 그분이 저를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의 기쁨과 경험이 되살아났고, 저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한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저는 어린 아이 같이 순수하고 단순한 확신과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오류와 불신에서 구출해 주시라고 구주를 다시 한 번 영접해 들였습니다. “그분은 저의 배역(背逆)함을 고치셨으며, 무조건 사랑해 주셨습니다”( 3:22).

이 말을 하면서 그는 흐느꼈습니다. 그냥 허비한 것보다 더 악한 자신의 과거와 및 자신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허다한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을 지워 없앨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목숨을 10년 동안 연장시켜 주심으로써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에 대하여 기뻐했습니다. “저는 가는 곳마다 오직 한 가지 주제,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만을 전파했습니다.” 또 그는 지난 10년 동안 7,500명이나 되는 자기 나라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과 많은 사람들이 불신과 오류에서 돌이켜 그 옛 길과 십자가의 구원의 능력으로 돌아온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면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고 철저히 믿는다고 증거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쳐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첫 장부터 끝 장에 이르기까지 믿습니다.”

 

(1991 1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