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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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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16. 12:47 횃불/1991년

술 취하는 것과 성령충만

-윌리암 맥도날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5:18).

 

북미(北美) 문화권에서는 위의 명령이 충격적이고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기 십상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금주(禁酒)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통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성경이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을 위해 기록되었다는 것과 또한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포도주가 일상 음료로 식탁 위에 오른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정죄하는 것은 포도주를 사용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남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포도주를 약으로 사용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31:6, 딤전 5:23), 주 예수님께서도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음료수로 사용하도록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2:1~11).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합당치 않으므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1) 무절제한 생활을 야기시키는 경우( 23:29~35).

2) 습관적으로 마시는 경우(고전 6:12 하반부).

3) 다른 성도의 연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경우( 14:13, 고전 8:9).

4) 지역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간증을 상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는 경우(고전 10:31).

5) 음주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이 마음 속에 약간이라도 의심이 있는 경우( 14:23).

 

바울은 술 취하는 것 대신 오히려 성령의 충만을 받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한 구절 속에 술 취하는 것과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두 상태를 비교해 봄으로써 그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술 취한 사람과 성령으로 충만해있는 사람의 유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두 사람 다 외부로부터 오는 힘의 지배를 받는다. -전자는 술의 힘, 후자는 성령의 힘에 지배를 받습니다.

2) 두 사람 다 뜨겁다(열정적이다). -오순절 날 다 한 곳에 모인 제자들의 성령에 의해 뜨거워진 모습이 새 술에 취한 것으로 오인되었습니다( 2:13)

3) 두 사람 다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 - 전자는 육체의 행동에, 후자는 도덕적인 품행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또 이 두 부류의 상태는 다음과 같이 확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1) 전자의 경우에는 방탕과 난봉이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것들이 결코 없다.

2) 전자의 경우에는 절제(자제)를 잃어버리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오히려 절제(자제)라는 열매를 맺는다( 5:23). - 성령으로 충만해 있는 성도는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제 정신을 잃어버리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예언하는 자의 영은 예언하는 자의 영() 자신에게 항상 제재를 받기 때문입니다(고전 14:32).

[역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고전 14:32)라는 말씀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그의 저서(著書)(즐중) 「고린도전서 강해(1 Corinthians)」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매우 중요한 원칙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충만해 질수록 자제심을 더욱 잃어버린다고 고린도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무아경(황홀경)에 빠진 것으로 생각했으며, 고데트(Godet)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사람이 영()에 사로잡히면 사로잡힐수록 이성과 자의식을 더욱 잃어버린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성령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은 수동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말이나 말하는 시간의 길이, 또는 일반적인 행동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성경 말씀은 그와 같은 개념을 전적으로 반박합니다. 예언하는 자의 영은 예언하는 자에게 제재를 받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예언하는 자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아경에 빠지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 장()의 교훈을 모면해 보려고, 자기도 어찌할 수 없었다는 말로 얼버무릴 수 없습니다. 그는 언제, 또는 어느 정도 길게 이야기 해야하는지 스스로 정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성경에는, 성령의 충만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사(선물)로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며, 그 예로 침례요한이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함을 입었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1:15). 이와 같은 경우, 당사자는 어떠한 선결조건도 이행함이 없이 성령의 충만을 받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사자가 노력하거나 기도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기 뜻대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반해 여기 에베소서 5 18절은 믿는 자에게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는 자에게 행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는 반드시 어떤 조건들을 만족시켜야만 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자동적인 것이 아니라 순종의 결과로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다른 사역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다음에 제시한 어떠한 사항과도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1) 성령의 침례 - 이것은 믿는 자를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시키는 성령의 사역입니다(고전 12:13).

2) 성령의 내주(內住) - 보혜사께서는 바로 이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의 몸 안에 거주하시면서 그에게 거룩과 예배와 봉사를 위한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14:16).

3) 성령의 기름 부음 - 바로 성령자신이 기름 부음이 되시며, 주님께 속한 것들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2:27).

4) 성령의 보증과 인치심 - 성령자신이 보증과 인치심이 되셔서 성도의 기업(유업)을 보증하십니다( 1:13,14).

이와 같은 사항들은 성령의 사역의 일부로서, 어떤 사람이 구원받는 순간에 그 자신이 스스로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각 사람은 성령의 침례, 내주하심, 기름부음, 보증, 인치심을 자동적으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충만은 다릅니다. 이것은 제자의 삶 가운데 있는 단 한번의 위기경험(危機經驗, crisis experience)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적인 과정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있으라(받아가라)”(Be being filled with the Spirit). 성령의 충만은 위기 경험으로 시작될 수는 있지만 그 후에도 순간순간마다 지속되어야 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충만은 내일까지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크게 사모해야 하며, 사실, 그것은 이 땅에 있는 성도의 이상적(理想的)인 상태 입니다. 성령의 충만이란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서 성령이 근심하는 일이 없이 자유로이 활동하시므로 믿는 자가 시시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는 성령의 충만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여기 에베소서에서는 사도 바울이 그 비결을 알려 주지 않고 그저 명령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다른 말씀들로부터,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으려면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자각되는 모든 죄를 자백하고 버려야 한다(요일 1:5~9). - 죄가 용인(容認)되는 삶 가운데서는 그처럼 거룩하신 분이 자유로이 일하실 수 없으며, 이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2) 우리 자신을 성령의 지배에 온전히 헌신해야 한다( 12:1,2). - 이것은 우리의 의지, 우리의 이성(異性), 우리의 신체, 우리의 시간, 우리의 재능, 우리의 재물을 양도할 것을 요구합니다. 삶의 모든 영역이 그분의 지배에 드려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해야 한다( 3:16). - 이것은 말씀을 읽는 일과 공부하는 일과 순종하는 일을 요구합니다. 성령의 충만에 여러 가지 결과들이 뒤따르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할 때에도 동일한 결과들이 뒤따릅니다.

4) 마지막으로 우리는 자기를 비워야 한다( 2:2). - 잔에 새로운 물질을 채우려면 먼저 잔을 비워야 하듯 우리에게 성령을 채우기 위해서도 먼저 자기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주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죄의 짐을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사역에 맡기고 그 위에서 쉬십시오.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매일 아침마다 자신을 그분께 내어드리고, 그분이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하루를 주장하시도록 맡겨드리고, 찬양과 안심 속에 나서십시오. 그분이 인도하시고, 빛을 비춰주시고, 책망하시고, 가르치시고, 사용하시고,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것을 여러분 속에서 그리고 여러분과 더불어 하시리라는 것을 기대하면서 온종일 그분께 기쁨으로 의탁하고 순종하는 습관을 개발해 나가십시오. 보이는 것이나 느껴지는 것을 전혀 상관하지 말고 그분의 역사하심을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의뢰하십시오. 성령을 자신의 삶의 지배자로 믿고 순종하며, 스스로 무엇을 해보려고 애쓰는 수고를 중지하십시오. 그리하면 그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원하시는대로 성령의 열매가 우리 속에서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 있을 때 스스로 그것을 자각할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가 주님께 더욱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죄악됨을 더욱 자각하게 됩니다( 6:1~5). 그분 앞에서는 우리가 자랑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5:8),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다거나 소위 나는 어떤 경지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 있는 성도는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삶 속에서,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하여 일하고 계심을 실감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어떤 사건들이 초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간파합니다. 상황이 기적적으로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자연의 힘이 그의 편을 들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의 병거바퀴에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는 이 모든 사항을 간파하며,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또 자기를 통해 일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이 모든 것으로부터 영예(영광)를 취하는 일에 있어서 이상스럽게도 초연해집니다. 그는 이 모든 현상들이 바로 주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가슴속 깊이 실감합니다.

 

(1991 1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