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3. 5. 27. 16:38 횃불/1992년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라

무엇이 당신을 걸림이 되는 존재로 만드는가?

J. H. 홀수버그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45).

 

여기에 인자에 관한 위대한 사실이 진술돼 있다. 말하는 자는 바로 우리 주님 자신이시다. 다른 모든 문제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그분은 이 점에 있어도 우리가 마땅히 좇아야 할 본을 우리에게 남기셨다.

그분의 이러한 말씀은 서글픈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그분의 제자들 중 둘인 야고보와 요한이 그분의 영광 중에서 으뜸되는 자리를 얻음으로써 섬김을 받기를 원했다( 10:35~37). 다른 제자들은 그 말을 듣자 심히 분개하였는데 그것은 그들 자신도 그러한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섬김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열띤 다툼 속에서도 주님은 선()을 이끌어 내셨다. 그분은 그러한 상황을 제자들에게, 그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겸손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기회로 삼으셨다.

예수님은 그들을 자기에게로 오도록 부르셨다”( 10:42). 그분의 부드러움과 연민의 정을 보라. 그분은 열 두 제자들에게 자신에 관해서, 즉 그 가증한 배반과, 극심한 고난과 멸시,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그 수치스런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해 오셨다( 10:32~34). 그들의 마음은 분명 녹아 있지 않았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그분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던 듯 보인다. 그들은 누가 가장 큰 자가 되는지에 대해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그들의 붉게 흥분된 얼굴과 격렬해진 어조와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한 몸짓을 한번 상상해 보라!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자기에게로 부르시고는 그 격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진정시키셨다. 그리고 입을 열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저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42~45). 한마디로 표현해서, “너희는 나의 제자들이니라 제자는 그의 주인과 같아야 하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분명히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 모두에게 깊이 관련된 교훈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심령을 소유해야 하며, 오늘, 아니 날마다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교훈해 준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인자는 섬기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분은 우연히 소수를, 혹은 많은 사람들을 섬긴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었다. 그것이 그분의 정해진 목적이었다.

한편 이 놀라운 말씀은 우리에게 인자에 관한 또 다른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것은 그분께서 섬김을 받기 위해 오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대충 훑고 넘겨버리거나,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쳐버리기 십상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섬기기 위해 오신 인자처럼 되어야 한다. 아울러 그들은 섬김을 받지 않기 위해 오신 인자처럼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 개인적인 간증을 이야기해도 된다면 나는 이 사실을 말하고 싶다. 다람쥐 채바퀴 돌듯이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생활 속에서 이 말씀만큼 나에게 도전이 되는 성경말씀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것은 나를 지적하고 책망하고 심문한다. 그것은 항상 나를 찾아낸다. 그리고 얼마나 나를 격려하고 진정시키고 힘을 주고 위로하고 도와주는지!

섬김을 받으려는 이러한 욕망은 유치원의 시끌시끌한 소란에서부터 학교의 싸움, 이웃간의 다툼 및 국가간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시비와 다툼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슬프게도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정신이 만연돼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와 허물이, 얼마나 많은 원한과 불만이, 얼마나 많은 짜증과 조급함이, 얼마나 많은 삶의 불화와 불행이, 다름아닌 섬김을 받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닌 섬김을 받으려는 욕망 때문에 초래되는지를 충분히, 아니 아마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자주 경직되고, 한을 품고, 초조해 하고, 화를 내지 않는가? 때때로 우리는 어리석게도 감정을 폭발시킴으로써 섬김을 받으려는 우리의 본심을 드러낸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을 억제하지만, 그러나 얼마나 불쾌한 심경으로 자신을 꾹 누르게 되는지! 그리고 어찌된 연고로 그러는지! 그것은 십중팔구 섬김을 받기 원하는 우리의 욕망이 꺾였기 때문이 아닌가!

사실 우리는 사람들과 환경과 행운과 날씨와 사물을 통해 늘 섬김을 받으려 하고 있다. 섬김을 받는다는 것은 어찌나 자연스럽고 어찌나 긴요하고 어찌나 고상한 것인지! 우리 는 늘 그것을 기대하도록 교육받아 왔다. 그런 연고로 종종 겪듯이 우리의 기대가 꺾이게 되면 우리는 곧잘 긴장하고 짜증내고 시무룩하고 신경질적이고, 결국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불행한 지경에 빠뜨리곤 한다. 만일 우리가 인자와 같이 항상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상황이 달라지겠는가! 몇 가지 실례를 살펴보자.

 

무시당한 기분이 들 때

당신은 무시를 당하고 무관심 가운데 사람들의 이목에서 제쳐졌다. 혹은 당신의 고용주, 혹은 고용인이 당신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혹은 당신의 이웃이 당신의 신분과 능력과 인품에 맞게 당신을 대우해 주지 않는다. 당신은 그것을 몹시 의식하고 있다. 사실 그것으로 인해 마음이 매우 상해 있다. 왜 그런가? 당신이 섬기고자 하는데 그러한 특권을 빼앗겼기 때문인가?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것은 당신의 감정과 당신의 권리와 당신의 재능과 당신의 지위와 당신의 위엄과 당신의 존재의 중요성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섬김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섬김을 받기 원한 것이다. 그런 연고로 그렇게 감정이 들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시기할 때

무엇보다도 혐오해야 할 요소인 시기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시기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이 칭찬을 받거나 당신 앞에 서게 된다. 다른 사람이 당신보다 일을 더 잘 해낸다. 다른 사람이 당신보다 행복해 보인다. 영예와 성공과 돈과 인기와 상급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그것들은 당신이 차지하려 한 것들이다. 당신은 섬김을 받기 위해 왔다. 그런데 당신 대신에 그가 섬김을 받았기 때문에 당신은 시기하고 있는 것이다!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나를 그렇게 무시하고 냉대한 것은 정말 부당해. 다른 사람이 내 머리 위에 군림한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것이 모두 사실일 수도 있고, 우리는 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이며, 따라서 나는, 만일 당신이 당신의 주인처럼 섬김을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온 것이라면 그렇게 불쾌하고 분하고 억울한 기분이 들겠는가?라고 묻고 싶다. 문제는 당신이 섬김을 받기 위해 온데 있다.

 

칭찬을 듣지 못할 때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당신이 그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그것은 당신으로서는 약간의 희생을 치른 것이다. 당연히 당신은 자신의 선행이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당신이 예상한 만큼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다. 당신은 넘치는 감사와 떠들썩 한 사례를 기대했는데 당신의 친구는 전혀 냉담한 반응이었다. 당신은 마음이 몹시 상했다. 차라리 그를 도와주지 말걸 하고 후회가 되었다. 다시는 아무에게도 친절을 베풀지 않겠노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왜 그런가? 당신은 다른 사람을 섬겼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었다. 그런데 당신은 섬김을 받지 못한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몹시 선하고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기 원했다. 다시 말해서 감사와 칭찬과, 다른 사람의 입에 떠올려 짐으로써 섬김을 받기를 기대했다. 그렇다. 우리는 섬김을 받고자 할 때 때때로 적지 않은 실망을 당하곤 한다!

 

당신의 조언을 구하지 않을 때

당신은 훌륭한 통찰력과 예리한 판단력과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당신의 조언이 무시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당신이 자신하는 분야에 대해서도 아무도 물어오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신은 비위가 몹시 상했다. 마음이 안정이 안되고 매우 혼란스러웠다. 어찌된 연고인가? 당신은 친구를 섬기기 원하는데 그 친구가 당신의 조언을 무시하고 듣지 않음으로써 궁지에 빠졌기 때문인가? 천만에. 사실 그 친구는 당신의 도움 없이 일을 잘 처리했다. 문제는 당신이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분별하고 처리하는 방면의 권위 자로서의 당신의 명성이 섬김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섬기려 하기 보다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렇게 낙심한 것이 아닌가!

 

당신이 대중 설교자일 때

당신은 일전에 어떤 특별한 주제에 대해 말씀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제법 많은 청중이 참석했는데 특히 K라는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한 그리스도인이 참석한데 대해 당신은 마음이 흡족했다. 당신은 중요한 주제에 대해 아주 유창하게 설교를 했다. 설교가 끝나자 당신은 스스로 매우 만족해 했으며, 당연히 K씨가 즉시 다가와 당신의 손을 잡고 대단히 설득력있고 흥미롭고 감동적인 설교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는 인삿말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K씨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집회장소를 빠져나가지 않는가! 당신은 얼마나 풀이 죽었는지! 방금 전까지 느끼던 기쁨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사라져버렸다! 어찌된 연고인가? 당신은 많은 사람들을 섬길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당신은 그러한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당신은 마음 속으로 그러한 설교를 통해 섬김을 받기를 원한 것이었다. 문제는 당신이 섬김을 받으러 온데 있었다.

 

직장 생활에서

당신은 전문 분야의 연구원이거나 아니면 사업가이다. 당신은 일을 아주 훌륭히 해내는 중이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충분히 받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보다 큰 일에 마음이 가 있다. 그리고 당신이 이룬 성취는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당신의 마음이 눌려 있다. 날마다 그 문제로 마음이 편치 못하다. 늘 의기소침한 기분이 든다.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당신이 섬기기 위해 왔는데 당신의 기대만큼 충분히 섬기지 못했기 때문에 낙심이 된 것인가? 천만에. 그렇지 않다. 당신은 자신을 보다 높이기를 원하고 있다. 보다 큰 인물이 되고, 보다 주목을 받고, 보다 부유해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당신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 것이다. , 당신은 섬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기소침한 것이 아닌가!

 

여가 활동에서

당신의 여가활동조차 이러 한 섬김을 받기 위해 온 정신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당신이 반을 대표해서 옆 반의 동료와 장기를 두었는데 당신이 지고 말았다. 당신이 패배했다니, 얼마나 비참한지! 오늘 이 시간까지 그러한 패배감이 당신을 괴롭힌다. 그 친구가 세번이나 연속해서 장기를 이겼다. 이번에도 또 이긴다면 더 이상 그와 둘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그가 패하고 말았다! 내가 듣기로 수주간 그는 웃음을 잃었다고 한다. 그는 장기시합을 통해서 친구들로부터 섬김을 받기를 원했다. 그는 친구들이 그를 주목하며 쟤는 정말 아무도 상대할 수 없는 굉장한 실력자야!”라고 말하는 것을 듣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러한 섬김을 받지 못하자 낙심이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시합을 하든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어. 우리 의 목표는 섬김을 받는 것이어야 해라고 당신은 반문할 수 있다. 물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시합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그러한 시합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운동에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는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섬기기 위해 온 정신을 나타낼 수 있다. 혹 패배할지라도 오히려 승리자를 섬길 기회를 활용한 것으로 인해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1992 4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