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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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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27. 16:35 횃불/1992년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9)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들 되심(3)

-히브리서에서 -

-시드니 멕스웰 -

 

그분과 영원 및 시간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와 관계된 중요한 진리들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우리 주님의 아들 되심이 출생시에 시작되었다는 이론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주어진 풍성한 가르침에 모순된다. 이 글의 목적은 히브리서를 통해 이 중대한 주제를 상고해 보는 것이다. 이 고귀한 서신에는 그분의 영광의 빛나는 광채가 전편에 걸쳐 빛을 발하고 있다. 이것은 더 좋은 것에 대한 서신이며, 이 모든 더 좋은 것이 우리의 비할데 없는 주님과 연관이 있음을 볼 때 우리는 그러한 주제에 대해 의아해 할 필요가 없다.

그분은 선지자들과 천사들(1, 2), 아담(2:6~8), 모세(3:3), 여호수아(4:8)보다 뛰어나시다. 그분은 아론(5)보다 위대하시며, 그분의 영 단번의 제사 속에서 성취를 발견하는 옛 제도하의 모든 제사들 위에 뛰어나시다(9:26). 11장의 모든 위대한 선진들은 믿음의 주와 완성자 되신 분 앞에서는 하나같이 그 존재의 빛을 잃고 만다. 우리는 그분을 생각하라라는 권면에 주의해야 한다(12:3). 그러면 이 서신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들 되심의 문제를 다음 몇가지 사항으로 나눠 생각해보자.

 

계시된 아들

히브리서 1 1절에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말씀하신 수단의 부분적이고 불완전한(비록 부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성격을 요사하고 있다. 하나님은(그분의) 아들 안에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말씀하셨다(2). “아들앞에 관사가 생략된 것은 그분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속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관사는 신분을 밝혀주는 대신 관사가 없는 것은 자격을 부여해 준다. 여기에 관사가 안 쓰인 것은 얼마나 적절한 용례인지! 성령께서는 영원한 아들 되심의 속성 및 본질 안에서 하나님과 늘 관계를 맺고 계신 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상속권 지정이 그분의 창조 행위보다 앞서 있음을 주목해 보라. 왜냐하면 만물이 존재케 된 것은 아들로서의 그분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분의 상속권이 그분의 아들 되심에 의존하고 그분의 아들 되심이 창조보다 우선한 것으로 보아 그분의 아들 되심은 베들레헴에서 시작될 수 없었음이 확실해 진다. 그렇다면 그분이 아들이 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무한한 관계 속에 계신 아들이시다는 사실에 강조점이 두어져야 할 것이다.

 

소개된 아들

히브리서 1 5절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관계로 인해 그분이 천사들보다 뛰어나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네가 내 아들이라는 선언은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영원한 선언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는 것은 그분의 아들 되심의 시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부활을 통해, 아버지에 의해 그분의 아들 되심이 전달되었음을 가리킨다. 그것은 시편 2 7절과 사무엘상 714절을 인용한 것이다. 이 놀라운 선언 속에는 하나의 관계가 선포되고 묘사되어 있다. 6절에는 맏아들로서의 그분의 아들 되심이 공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독생하셨다”(only begotten)는 표현은 삼위 하나님 안에서의 시작이 없는 관계를 암시하는 반면 맏아들”(first begotten)이란 표현은 시간 및 공적인 나타남과 관계가 있다.

여러 차례 부활로 번역된 아나스타시스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시편2 6,7절이 인용된 사도행전 13 33,34절에서 성령께서 사용하신 단어이다.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한 복음서의 해설 가운데는 이러한 소갯말이 사용된 적이 전혀 없다. 요컨대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는 것은 부활을 요건으로 한다.

또 다른 소갯말이 8절에 나타나 있다. 그분은 천사들보다 뛰어나신데 그것은 그들은 종인데 비해 그분은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이제 그분은 아버지에 의해 위엄과 신성을 지닌 아들로서 표현되고 있다. 8절에서는 아들 앞에 관사가 사용된 반면 2절에서는 관사가 생략된 것은, 8절의 아들은 2절에서 영원과 관계되어 있는 바로 그 아들을 가리키고 있음을 잘해 준다. 성령께서는 이 아들이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신 그 동일한 아들임을 우리를 위해 밝혀 주고 계신다.

 

사역 속의 아들

히브리서 3장의 서두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두가지 놀라운 묘사가 주어져 있다. 먼저, 기자는 그분께서 아버지에게서 보냄을 받은 분(사도)이셨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이어서 대제사장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그분께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신 것을 암시해 준다. 전자의 칭호는 사람들에게 그분이 친히 나타나신 것을 말해 주는 반면 후자의 칭호는 사람들을 위한 그분의 변호 사역을 말해 준다.

1장에서 그분은 아버지와 관계를 지닌 영원한 아들이시며 만물의 후사이자 왕위 의 후사이시다. 이제 3장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집과 관련하여 나타나 있다. 그 집은 모세가 종으로 충성스럽게 수고한 곳이며, 모세에 대한 주 예수님의 뛰어남이 2절과 6절의 대조 속에 나타나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충성한반면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 맡은 아들이라는 점을 주목하라.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3). 이 영광은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4절 속에 분명히 나타나 있듯이 신성의 나타남을 가리킨다. 6절에서 말하는 집은 그리스도의 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다. 그 집에 대한 주 예수님의 권위는 그분이 아들이 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1:1).

 

고난 속의 아들

이 시점에서 우리의 묵상의 소재는 히브리서 5 8절에 담긴 중요한 사실들이어야 한다. 성령께서는 이미 1 3절을 통해 그분께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는 중대한 사역을 행하시기 위해 영광의 보좌로부터 갈보리의 어두운 형장으로 내려오셨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2 14~17절에는 이 놀라운 사역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아들이신 그분께서 전에는 결코 경험하지 못한 역할을 감당하셨는데 그것은 친히 인간이 되시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상태 속에서 그분은 사단을 굴복시키시고 죄에 관한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셨다(17).

이제 우리는 베들레헴으로의 그분의 내려오심과 십자가에서의 그분의 희생 사이에 5 8절의 설명이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고 한 8절 말씀은 문자적으로 볼 때 매우 의미가 깊다. 이것은 그분의 아들 되심의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숭고하고 영원한 관계의 완전성을 가리키는 것임이 분명하다(1:1). 결과적으로 여기서 묘사된 순종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자발적으로 고난의 길을 경험하실 때의 그 순종을 가리킨다. 만일 그분께서 영광 중에, 신성의 본질 속에 머물러 계셨다면 그러한 경험은 그의 것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표자로서의 아들

4 14절에서 이 영광스런 분은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으로 나타나 있다. 그분은 출생 시에 주어진 이즘으로서 예수였으며, 영원전부터 지니신 속성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4 15절은 5 8절에 의해서 비로소 설명될 수 있다 그분은 친히 유혹과 고난을 경험하신 까닭에 우리의 연약을 동정하실 수 있으시다.

7장에서 우리는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설정에 이르게 된다. 멜기세덱이란 이름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이 신비로운 인물의 출생과 부모 및 죽음에 대한 기록이 구약 성경에 생략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해서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었다(3). 요컨대 주 예수님께서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없었던 것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신 자격으로서 그러했던 것이다.

5장에는 그분의 제사장직과 관련된 두가지 중요한 소갯말이 나오는데 하나는 5절의 너는 내 아들이니 라는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6절의 네가 영원히····제사장이라는 표현이다. 후자의 언급은 전자의 언급의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7 21절에서 후자의 표현이 반복되어 있다(그분의 신성이 강조된 시편 110 4절의 인용임).

이와 같이 인간이 되신 그분께서는 영원 전부터 아들이신 자신의 변함없는 신분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으시며, 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이러한 찬송으로 그분께 경배드려야 할 것이다

천사도 능히 헤아릴 수 없는

그분의 이름의 그 드높은 신비!

, 아버지께서만이

아들을 온전히 아실 수 있나이다.

-다음 호에 계속

(1992 4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