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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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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27. 16:45 횃불/1992년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10)

그리스도의 성육신(1)

-요한복음과 서신서에서 -

-헤롤드 S. 페이슬리 -

 

이제 요한복음과 서신서에 계시된바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교리를 경외심과 경이감을 가지고 상고해 보기로 하자. 이 말씀을 상고하는 우리의 태도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큰 광경을 보려고 몸을 돌이키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리라는 하나님의 영화로운 말씀을 들을 때에 모세가 취한 태도와 같아야 한다( 3: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모든 중대한 근본 교리들은 그분의 성육신과 연결되어 있다.

이 주제는 다음 세가지 측면에서 상고해 볼 수 있다.

1. 구약성경의 예언적인 진술들

2. 마태와 누가의 역사적인 기록들

3. 요한복음과 서신서의 교리적인 진리들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to this end was I born)”( 18:37).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단 한번만, 그것도 빌라도 총독과 같은 존경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사람에 게 언급하셨다는 것은 기이한 사실이다.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라는 우리 주님의 복스런 말씀 속에는 그분의 두가지 완전한 속성, 즉 그분의 인성과 신성이 계시되어 있다. 그분의 영화로운 한 위()속에 있는 이 두가지 완전한 속성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그 두 가지를 분리시키거나 하나는 하나님으로 다른 하나는 인간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라는 말씀을 토대로 그분의 성육신에 대해 말씀하는 몇몇 성경구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중대한 근본 진리 중 일부가 그분의 성육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1:14), 성육신은 실로 위대한 비밀이다(딤전 3:16).

이것은 설명될 수는 없지만 믿어질 수는 있다. 이 진리는 기독교 교리의 기초가 되는 까닭에 반드시 받아들여져야 한다.

사도 요한은 동정녀 출생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마리아가 그의 보호에 맡겨져 노년기에 그의 집에 거했기 때문이었다. 의원 누가는 2천개 이상의 단어를 동원하여 주 예수님의 출생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어부였던 요한은 성육신을 다음과 같은 네 단어로 묘사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The word became flesh).” 그분은 육신으로 지어진(made flesh)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에 의해 육신이 되신(became flesh) 것이다.

이 아름다운 번제(燔祭)의 복음의 특성과 부합되게 요한은 그분의 강림을 그분 자신의 의지의 행위로 강조하고 있다. 그는 그 일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 과정을 소상히 밝히기보다는 다만 어떤 변화가 일어난 때, 즉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 전에 경험치 못한 상태가 되신 때만을 밝히고 있다. 그 일의 목적은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이 위대한 진리가 이 동일한 장에 전개되어 있다.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 여기서 우리는 그 아들께서는 육신을 입고 세상에 계시던 동안에도 항상 아버지 품속에 계셨다는 사실을 부연할 수 있다. 그분은 아버지 품속에 계시기를 결코 중단하지 않으셨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 전체에 걸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분임을 강조했다.

 

[2]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3).

성육신에 대한 요한의 설명 속에는 번제가 나타나 있으나 여기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서신 속에는 속죄제가 나타나 있다. 여기서 주 예수님은 율법의 연약성과 대조되는 능력과 위엄을 지닌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육신 과정을 통해 그분을 보내셨다. 그분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지니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실제적으로 인간의 육신을 취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강조해야 할 점은 그분이 죄와는 무관하셨다는 것이다. 그분은 성육신 안에서 자신을 인간의 육신과 동일시하셨으나 이것은 다른 모든 인간과 정면으로 대조되었다. 왜냐하면 그분의 거룩한 속성 안에는 죄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렇게 되신 목적은 친히 죄를 위한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였다. 그분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죄를 속하기 위해 오셨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근거를 마련해 놓으셨다.

 

[3] “그 아들을 보내사···· 속량하시고”( 4:4,5).

이 놀라운 구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서 나게 하신 것은···· 속량하시고····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여자에게서 나다”(come of Woman)는 표현은 그분께서 보잘것없는 처녀에게서 태어나시기 위해서 자원함으로 하늘 보좌를 포기하신 것을 암시해 준다. 그렇게 하신 영광스런 목적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우선적으로 유대인을 위한 것임)을 율법의 심판과 지배에서 구속하시기 위해서였다. 또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분께서 구속주로서 육신을 입고 희생을 당하시기 전에 처했던 종의 신분과 대조되는 아들의 신분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서였다.

 

[4]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신 것은 하나님이시기를 중단하거나 자신의 영원한 속성의 어느 하나를 포기하신 것이 아니다. 성육신 상태에서 그분은 언제나 아버지와 온전히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행동하셨다. 그분의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이 그 인성 속에 감취어 있었다. 황금방주가 아름다운 휘장 안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분은 잔인한 십자가 형벌을 당하고 죽으시기 위해서 본래의 영광을 간직한 채 종의 형체를 입으셨다.

 

[5]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2:17).

히브리서 기자는 그분의 성육신에 관해서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분은 천사의 상태로 오신 것이 아니라 천사보다 조금 못한 모습이 되셨다. 그분은 천사는 경험할 수 없는 상태를 경험하고자 하셨다. 그분은 주리시고 지치시고 눈물을 홀리시고 동정하시고 민망해하시고 그리고 갈하셨다. 그분은 인간의 모든 감정과 정서를 체험하시되 죄와는 무관하셨다. 그분은 연정을 나타내셨고 고통을 느끼셨고 슬퍼하셨으나 완전하신 까닭에 결코 질병에 걸리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예비된 주의 거룩한 몸인 관계로( 10:5)죄가 없었으며 더럽혀질 수 없었다. 그 성육신에 있어서 그분의 속성은 죄로 인해 더럽혀지지 않았으며 그 죽음에 있어서 그분의 몸은 전혀 썩음을 보지 않았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는 까닭에죄는 오직 피 흘림에 의해서만 제거될 수 있었다( 9:22). 염소와 황소의 피로서는 죄를 제거할 수 없었으므로 부득불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으셔야 했던 것이다. 그분은 사람들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친히 오셔서 혈육있는 육신의 모양을 취하셨다. 주 예수님은 인간의 속성을 취하시긴 했지만 인간의 죄를 공유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죄를 범치 않으셨고 죄를 알지도 못하셨으며 죄가 없으셨고 죄를 범할 수도 없으셨다.

이 목적을 위해 그분은 나셨으며 이 일을 위해 그분은 욥이 고대하던 구속자로서 오신 것이다. 그 신성을 통해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를 접하실 수 있으셨으며 그 인성을 통해 그분은 죄 많은 인간을 접하실 수 있으셨다.

결론적으로, 이 거짓된 가르침이 만연된 시대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요한의 기록을 분별의 시금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2,3). -다음 호에 계속-

 

(1992 5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