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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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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31. 07:30 횃불/1992년

성경의 여인들(2)

열국의 어미

사 라(1)

-에디쓰 딘 -

인간의 영적인 발전에 대한 극적인 이야기 가운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첫 여인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내인 사라이다. 아름답고 뛰어난 여인 사라와 그녀의 남편 믿음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에서 창조 이후로 그들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전체 인류의 이야기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사라의 생애는 열국의 어미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그녀의 믿음을 시험받는 끊임없는 시험의 생애였다. 이 시험을 통해 그녀는 능력 있는 여인이요, 신실하고 사랑받는 아내요, 결국 영예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어머니로서 입증되었다.

아마 B.C. 19세기나 20세기의 어느 시점이 될 사라 시대에는, 남자는 그 아들을 통해서 삶을 이어나간 까닭에 여자는 남편에게 아들을 낳아줄 때까지는 존재가치가 거의 무시되었다. 사라는 일찌기 아이를 낳지 못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으나, 생애 후반에 이르러, 인간적으로 말해서 어머니가 될 연령이 지난 후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남는 기적을 체험하였다.

그 기적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녀의 남편에 대한 사라의 충성을 통해서 성취되었다. 그들이 하란에 거하는 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12:1,2)라고 말씀하셨다.

사라의 생애는 곧 아브라함의 생애가 되었다. 그가 가는 곳에 그녀도 갔다. 그의 그림자로서가 아니라 강한 영향력으로 그를 좇았던 것이다. 그들은 함께 유목 생활의 애환을 경험했으며 그러한 생활을 통해 중요한 영적인 의미를 발견했다.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은 평생의 동반자인 사라와 함께 기꺼이 고향을 버리고 알지 못하는 땅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사랑과 충성은 그녀에 대한 아브라함의 헌신에 의해 보상을 받았다.

그들이 아는 유일한 땅인 그들의 본토를 떠난 일이 사랑에 있어서나 가치관에 있어서나 그들 사이를 가르지 못했다. 그들의 여정에는 여러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었건만 사라는 후에 롯의 아내가 소돔을 떠날 때 행했듯이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다. 사라는 남편의 모든 신체적 위험과 정신적 고통에 한결같이 동참했으며 그의 목적과 이상을 공유했다.

여행 초기에 아브라함은 세겜의 비옥한 계곡에 있는 모레의 울창한 숲 아래서 여호와께 단을 쌓았다. 그리고 이어서 예루살렘 북부 20마일 떨어진 벧엘 근처에서 단을 쌓은 다음 마므레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또 단을 쌓았다. 우리는 사라가 이 단에서 남편과 함께 예배드렸다고 쉬 상상할 수 있다. 비록 남편만큼 사려 깊지는 않았지만 종용히 순종한 면으로 보아 사라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를 중요시 했음이 분명했다. 그녀는 베드로의 표현대로 생명의 은혜를아브라함과 함께 유업으로 받을 자가 되었던 것이다(벧전 3:7).

그들을 나일 계곡을 따라 내려가게 한 기근의 위협도, 기나긴 생애 동안 줄곧 아브라함을 따랐던 번성도 그들 사이를 가르지 못했다. 그들의 연합의 강도는 깊어만 갔으며 아브라함의 둘째 아내이자 그의 맏아들 이스마엘의 어머니인 하갈 조차도 감소시킬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결속을 이루었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당시 그들은 모두 숙성한 연령이었다. 사라는 65세였고 아브라함은 75세였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들이 종전에 알고 있던 땅이란 페르시아만 어귀와 바그다드 중간에 위치한 우르라는 고향뿐이었다. 갈대와 진흙으로 만든 가옥들로 이뤄진 이 고대 도시로부터 사라는 남편과 함께 유브라데 강 안을 따라 여행을 출발하여 비옥한 초생달지역을 지나 지중해를 오른쪽에 두고 남으로 내려왔다. 이 당시 이 팔레스타인 지역은 부유한 대상 무역지로 번성하고 있었다.

이 부부의 여행행렬은 처음에는 인상적이었으며 아브라함은 여행하는 동안 부를 축적해 갔다. 그들의 긴 행렬은 양, , 노새 등의 가축떼는 물론 남녀 종들로 이루어졌다. 그들의 가산이 이후에 얼마나 되었는지는 아브라함의 명령을 따라 318명이나 되는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들이 그의 조카 롯을 구하러 그의 뒤를 따랐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아마 그가 소유한 엄청난 수의 가축떼를 돌보기 위해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수도 싸움터로 나간 사람들의 수 못지 않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없는 동안 사라가 대신 가산을 관리하는 모습에서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신뢰와 진정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아브라함은 그녀를 자신과 동등한 권한을 가진 자로 인정했다. 그녀는 자신을 사소한 역할에 제한시키지 않았으며 아브라함도 결코 그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위에 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양털과 구슬 장식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짐승들로 길게 늘어진 그들의 행렬이 비옥한 푸른 계곡에서 마른 떨기나무를 비롯한 몇몇 열대식물 외에는 거의 보기가 힘든 건조한 땅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아마 이 행렬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있다면 그는 다름아닌 사라였을 것이다. 비록 성경은 그녀가 아리따웠다는 사실 외에 아무 자세한 사항도 제공해 주지 않지만 우리는 그녀가 여러 화려한 색상-아마도 고대 영주들에게 친숙한 분홍색과 하늘색-을 띤 긴 옷을 휘날리며 가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그녀의 긴 옷자락은 머리 부분까지 연결되어 부분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리웠다. 우리는 곱게 땋아 올려져 후광(後光)처럼 은은한 빛을 발하는 그녀의 매혹적인 갈색 머리와 고운 갈색 피부, 붉은 입술과 뺨, 미소를 발할 때마다 빛을 발하는 깊고 푸른 눈, 그리고 때로는 명령을 내리고 때로는 사랑을 베푸는 그녀의 기품 있는 거동 등을 쉬 상상할 수 있다.

사라는 그녀의 이름이 의미하듯이 품행과 인격에 있어서 왕비였다. 처음에는 사래라는 이름으로 바벨론에서 나왔으나 그로부터 14년 후에, 그녀가 어머니가 될 때가 가까워 왔을 때 하나님은 그녀의 이름은 사래에서 사라로, 그리고 그녀의 남편의 이름은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셨다( 17:5,15).

그들과 더불어 우르에서 하란까지 여행했던 그들의 아버지 데라 편에서 볼 때 사라는 그녀의 남편의 이복 누이였다. 그러한 근친결혼은 초기 족장시대에는 흔히 있었다. 사라와 아브라함이 낯설고 위험한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는데 사실 이 말은 사실 반 거짓 반인 셈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그가, 당시 고대 군주들이 눈부시게 아리따운 사라를 보면 그녀를 그들의 후처로 들이기 위해 어떤 잔인하고 파괴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행 초기에 사라는 바로 왕의 궁궐로 취해졌는데 성경의 기록으로 보아 애굽 왕의 화려함과 부귀와 권력에 의해 아브라함에 대한 그녀의 진지한 사랑이 조금도 감소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요세푸스는 사라가 용기 있고 담대하게도 바로 왕에게 자신이 아브라함의 아내라고 고백했으며, 그 결과 바로는 아리따운 사라로 인해 아브라함에게 많은 예물을 주었다고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사라는 자랑스럽게도 아브라함에 대한 충성심으로 인해 자신을 위험에서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남짓 흐른 후, 사라와 아브라함이 그랄 왕 아비멜렉의 지경에 이르렀을 때 동일한 상황이 일어났다. 그랄 왕도 바로와 마찬가지로 사라를 후처로 취하고자 했다.

아브라함의 약속된 아들이 출생하기를 기다리는데 지친 나머지, 그리고 그토록 지체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에 사라는 자신이 장애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 약속은 11년 전, 그러니까 사라와 아브라함이 처음 그들의 고향을 떠날 때 주어졌었다. 아직도 잉태하지 못한 까닭에 사라는 족장시대 관습대로, 아마도 바로에게서 예물로 받은 종으로 여겨지는 자신의 종 하갈을 남편에게 후처로 줄 계획을 생각해 냈다. 하갈은 분명 사라의 많은 종 가운데 특별한 총애를 받아왔던, 말하자면 그녀의 여주인이 각별히 신뢰하는 종이었을 것이다.

흔들리는 믿음을 가지고, 그러나 자신의 허영심을 기꺼이 포기하리라는 결단으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다가가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16:2)라고 말을 건냈다.

사라는 자신이 아이를 낳을 능력이 있을까에 대한 믿음이 결여된 까닭에 앞으로 오랜 기간 동안 시련을 맛볼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차후에 깨달았듯이 여종 하갈이 낳은 아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고대 관습에 의하면 사라가 제안한대로 그녀의 종과 그녀의 남편 사이의 결합을 통해서 남은 아이는 사라 자신의 아이로 간주될 수 있었다.

아브라함 곁에 있도록 허락받은 후에, 그리고 자신이 그에 의해 잉태된 것을 안 후에 하갈은 교만과 허영심에 사로잡혀 종의 위치에서 후처의 위치로 자신을 높여준 여주인의 배려를 속히 잊어버렸다. 이에 사라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적으로 남편에게 이렇게 원망함으로써 자신의 추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16:5).

하갈의 거만함과 무례함에 대해 불평하는 사라에게 아브라함이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대로 그에게 행하라”( 16:6)라고 대답한 것으로 보아 우리는 여전히 사라가 남편의 사랑과 신망을 받고 있었음을 명백히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사라에 대한 아브라함의 애정이 변함없었으며, 그에게 아이를 낳아준 종에 대한 사라의 우월성을 아브라함이 인정했음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사라는 종의 배은망덕한 태도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서 즉시 그녀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러한 학대를 감수할 마음이 전혀 없는 하갈은 광야로 도피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16:9).

그로부터 14년이 지날 때까지 사라와 하갈 사이에 다툼이 계속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이 없다. 사라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녀의 양자인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며 심지어 그를 약속의 아들로 여겼을는지도 모른다. 그 아이가 열세살이 되자 아브라함은 그가 하나님과의 언약 속에 들어왔음을 의미하는 할례를 그에게 행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게 나타나 자신은 이스마엘과 언약을 맺지 않고 사라가 날 아들과 언약을 맺겠노라고 말씀하셨다.

이 일이 있은 직후에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아 있을 때 세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그들을 최선으로 대접해 주기 위해 급히 사라의 장막에 들어가 손님들을 위해 떡을 만들어 달라고 그녀에 게 부탁했다. 이 봉사를 통해 사라는 성경에서 손 대접을 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알고보니 그녀의 손님들은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임을 아브라함에게 전해 주기 위해 온 하나님의 사자들이었다. 사라는 호기심이 생겨서 그녀의 장막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그녀는 이 낯선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른 채 속으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18:12)라고 했다. 그녀의 웃음과 즐거움의 근원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마음의 슬픔과 근심을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14:13)

사라는 믿음이 크게 진보되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성경에서 기적 적인 출산을 한 최초의 어머니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년의 이야기를 기록한 옛 기자들은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으며 심지어 출산 연령이 지난 지 오랜 여인에게도 출산이 가능하게 하실 수 있다고 믿었다.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그의 서신에서 율법이 아닌 믿음을 통해오는 구원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삭의 출생의 기적을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브라함)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4:19). -다음 호에 계속

 

(1992 5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