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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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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31. 07:32 횃불/1992년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라(2)

- 무엇이 당신을 걸림이 되는 존재로 만드는가? -

J. H. 홀스버그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45).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인자는 섬기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분은 우연히 소수를, 혹은 많은 사람들을 섬긴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었다. 그것이 그분의 정해진 목적이었다.

한편 이 놀라운 말씀은 우리에게 인자에 관한 또 다른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것은 그분께서 섬김을 받기 위해 오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인자와 같이 항상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상황이 달라지겠는가! 한 두가지 실례를 더 살펴보자.

 

그리스도인의 봉사에 있어서 한편, 운동보다 한결 중요한 분야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당신은 그리스도인 사역에 종사하고 있다. 주일학교 교사이거나 교회 서무이거나 청년회 리더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맡은 일을 그만 두고자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건강 때문일까? 시간이 없어서일까? 집안 일이 너무 바빠서일까? 아니다. 그런 문제 때문이 아니다. 그러면 당신이 필요치 않아서일까? 더 이상 당신의 봉사가 필요하지 않게 되어서일까? 봉사의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겨서일까? 아니다. 그 일은 어느 때보다도 일손이 필요한 상황이다. 봉사의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있다. 그렇다면 왜 당신은 그만두려 하는가? 글쎄, 당신은 그 일에 지쳤고 그래서 손을 떼고 싶은 것 같다. 당신은 그 일이 당신에게 흥미로운 것이 되리라고 기대했다 그 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접촉하기를 기대했다. 교회에서 어떤 직책이 주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사실 당신은 자신이 그 일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 일을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에 싫증이 났다. ! 우리는 그 원인을 이해할 듯 하다. 당신은 그 일이 당신을 섬겨주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을 섬겨주는 동안은 기꺼이 그 일을 계속하고자 했다. 그런데 더 이상 그 일이 당신을 섬겨주지 않자 당신은 그것을 포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주려 함이다. 당신은 그분의 제자가 아닌가?

이상은 몇 가지 실례에 불과하다. 이것들은 당신에게 적용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실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신의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떠하든 당신은 얼마나 많은 당신의 불안과 얼마나 많은 당신의 고민이 섬기려 하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 하는 욕함이라는 동일한 원인으로부터 말미암는지를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가정에서

당신은 한 친구와 같이 기거하고 있다. 둘 사이의 우정은 사소한 문제로 훼방을 받는다. 당신은 성미가 급하고 친구는 느릿느릿하다. 당신은 검소한데 친구는 헤프다. 당신은 시간에 철저 한데 친구는 시간관념이 없다. 당신은 단정한데 친구는 지저분하다. 당신은 모든 일을 당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처리하기를 원하는데 친구는 아무렇게나 대충 처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둘 사이에는 늘 실랑이가 벌어진다. 그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당신이 당신의 친구를 섬길 수 없기 때문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매사를 당신 자신의 방식대로 하기 좋아하는 당신의 마음이 섬김을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 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당신은 자유분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당신의 그러한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섬김을 받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두 사람 모두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섬기려 하고 자신을 희생하고자 노력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얼마나 많은 사소한 문제들이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지! 당신의 오후 계획이 망쳐버렸다. 당신은 비가 오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온 종일 날이 밝았다. 당신이 금방 자리를 빈 사이에 한 손님이 당신을 찾았다. 노래를 해 달라고 부탁을 받았는데 음성이 굵직해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서신을 보냈는데 아직 답장이 오지 않았다. 당신의 요청이 승락되지 않았다. 흥미 있는 책을 읽고 있는데 왠 훼방꾼이 찾아왔다. 볼펜이 잘 써지지 않는다. 옷이 맞지 않는다. 성냥이 잘 켜지지 않는다. 저녁식사가 제 때 차려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정신없이 떠든다! 때로는 만사가 그릇돼 보인다. 이렇다 할 큰 일도 중요한 일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우리의 기호와 변덕과 취미와 습성대로 세상에 뛰어들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소한 일들에서 섬김을 받지 못할 때 우리는 쉬 낙심하고 우리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에게 실망하곤 한다.

 

행복의 비결

나는 우리의 삶의 행복은 주로 날마다 새로운 심정으로 세상에 뛰어드는 자세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만일 우리가 섬김을 받기 위해 세상에 뛰어든다면 곧 우리는 짜증을 내고 안절부절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기 위해 세상에 나간다면 전혀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는법이다.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것이 더 행복하고 더 고귀한 법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20:27).

 

주의해야 할 사실

그러면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성경은 우리가 금욕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그릇된 감정을 느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다. 신경질, 조급함, 낙담 등, 위에서 언급된 감정적인 요소들은 우리가 늘 상 느끼는 것들이다.(만일 그러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를 낙심시키게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이는, “당신은 까마귀가 당신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까마귀가 당신의 머리 속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섬김을 받기를 원할 때 우리는 불평을 품게 되고, 그것을 키우고, 그것에게 굴복하고, 그것으로 둥지를 틀고 악한 알을 낳도록 허락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기를 원할 때는 그러한 불평을 품지 않게 되며, 그것을 즐겨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에 거의 관심을 주지 않고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된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본받자. 그분은 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섬기는데 분주하셔서 자신이 섬김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쓸 여유가 없으셨다. 우리의 마음이 상하는 것을 예방하는 한가지 좋은 방법은 우리의 이웃을 돌아보는데 분주하는 것이다.

아울러 성경은 우리가 섬김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성경은 우리가 항상 무시를 당해야 한다거나, 성공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어떤 상급이나 보상도 받지 않아야 한다거나, 불공평과 모욕과 박대를 찾아서 세상을 돌아다녀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그러한 가르침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섬김을 받는 것 자체는 아무 잘못이 없다. 인자도 종종 섬김을 받으셨으며, 그것을 아주 흡족하게 여기셨다. 우리는 종종 섬김을 받는데 특히 우리가 기대하지 않을 경우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섬기기보다는 늘 섬김을 받으려 하는데 있으며, 그것을 위해 온갖 마음을 쏟으며 혹 우리의 기대에 어긋날 때는 낙심하고 좌절하고 분을 품고 당황해 하는데 있다.

이상과 같이 장황하게 섬김을 받으려는 욕망의 그릇됨에 대해 살펴본 것은, 그것이 너무 만연돼 있고 그 결과가 너무 슬프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우리 중 습관적으로 잘못을 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죽어야 한다

그러면 이러한 태도를 고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자. 어떤 문제와 그 모든 결과들의 밑바탕에는 자아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 자아라는 오랜 적은 반드시 억제되고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 우리는 자아에게 어떤 여지도 주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나는 너의 생일 선물로 나의 최선의 소원을 보내고자 한다. 나는 네가 죽기를 희망한다고 쓴 적이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나의 유일한 소망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는 것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그렇다. 자아는 마땅히 죽어야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섬김을 받지 않는 것을 실로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낙심을 환영하라! 곤경을 환영하라T. 무시를 환영하라! 괴로움과 쓰라림을 환영하라! 이것들은 모두 훌륭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것이 멋진 행복의 비결이 될 수 있다! 따돌림 받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유익할 수 있다! 우리의 희망이 꺾이는 것이 의외의 축복이 될 수 있다! 천대를 받는 것이 빛나는 영광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섬김을 받지 못하는 그 모든 순간마다 우리의 자아가 죽을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상케 하는 사람은 우리의 큰 대적인 자아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일을 도와주는 까닭에 우리의 친구로 간주될 만하다! 자아는 죽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복한 삶과 승리의생활은 반드시 자아가 죽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한다

그러나 자아가 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자아는 죽고 그 대신그리스도께서 사셔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얼마나 충만하게 사시는 가는 자아가 우리 안에서 얼마나 죽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이 죽음, 즉 자아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사셔야 만이 우리는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섬기기 위해서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과 우리의 동료의 유익을 위해서, 지극히 적으나마 우리의 삶을 드리고 우리 자신을 희생하기 위해서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1992 5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