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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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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 29. 21:08 빛 가운데로 걸으며

속의 다섯

FIVE KINGS IN A CAVE

여호수아 10:5~27

"이러므로 아모리 다섯 왕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서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들에게 갑자기 이르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패하게 하시므로, 크게 도륙하고 그 다섯 왕이 도망하여 막게다 굴에 숨었더니 혹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가로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왕의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여호수아가 가로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 너희는 지체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로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붙이셨느리라 여호수아과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도륙하여 때에 여호수아가 가로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자기와 함께 갔던 군장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여호수아가 군장들에게 이르되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희가 더불어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 죽여 다섯나무에 매어달고 석양까지 나무에 달린대로 두었다가 해 질때에 여호수아가 명하매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리어 그들의 숨었던 굴에 들여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당신은 굴 속의 다섯 왕에서 전략을 연구하여 보았습니까? 지금, 우리는 카드 게임에서 이기는 전략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굴속의 다섯 왕은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 같이 바깥에서 하는 게임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굴속의 다섯 왕은 전쟁놀이 - 자라나는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관계된 전쟁놀이(이것을 깨닫든지 그렇지 않든지) - 와 관계가 있습니다. 전쟁놀이가 사실 잘못 표현된 용어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진정한 행복 단순한 게임이 아닌 영적 행복-에 대해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굴 속의 다섯 왕의 전략을 연구하는 것은 영적 행복을 위한 전쟁터에서 이기는 어떤 성경 원리를 보여줍니다.

 

분열과 정복

이 굴속의 다섯 왕 제목은 여호수아 10장에서 기인합니다. 이 장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군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서 굴을 봉하여 다섯 왕을 실제로 가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하에, 가나안을 정복하는 첫 단계는 여리고와 아이의 중심 성읍들을 파함으로 땅을 분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군사계획은 분열과 정복 전략을 완성시키기 위해 남군과 북군을 불러냈습니다. 주요 도시국가의 다섯 왕들이 이스라엘인들과 상호 방위 조약을 한 기브온을 치기 위해 협약하였을 때 적군은 여호수아 장군의 손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태양이 중천에 머물렀던 놀라운 기적을 포함해서), 여호수아는 기브온을 성공적으로 방어했을 뿐만 아니라, 한 전쟁터에서 다섯 왕의 모든 적군들을 파했습니다. 그 왕들은 굴속에 숨어 이스라엘 전투부대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여호수아의 정보통이 그들의 위치를 알려주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적을 추적하는 것을 늦추기보다는 굴 어귀를 큰 돌로 막고 이스라엘군과 도망하는 적군을 쫓았습니다.

패배한 적군들이 완전히 진멸됐을 때, 여호수아는 그 왕들을 상대했습니다. 다섯 왕들은 굴에서 끌려나왔고 여호수아는 군장들에게 그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고 명했습니다 - 그 시대에 완전한 정복을 상징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런 다음 여호수아는 왕들을 죽여 석양까지 다섯 나무에 매달아 하나님의 백성의 이방의 적이 완전히 패배한 것을 모든 사람들이 보도록 하였습니다. 해질 때 여호수아는 다섯 왕의 시체를 그들이 숨었던 바로 그 굴에 들여 던졌고 그곳은 그들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왜 모두 죽이는가?

우리가 여호수아 10장에서 영적 교훈을 찾기 전에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의문들을 나눠야 합니다. 왜 여호수아 말씀 모두 끔찍한 유혈장면으로 돼 있을까요? 왜 하나님은 이 모든 유혈을 허락하시고, 명하기까지 하셨을까요? 신명기 7:1~520:16~18은 왜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을 죽이라고 지시하셨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을(또 다른 구절들도) 하나님의 그의 백성이 가나안 땅의 이방족속들의 모든 우상과 행음에 오염되거나 더렵혀지길 원치 않으신 것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사실 이스라엘군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과 그들의 음란하고 악한 행위의 땅을 제거시키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무자비하게 다루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15:13~16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분의 백성들이 사대에 걸쳐 애굽에서 머물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그때까지 아모리 족속(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보응받기에 준비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가나안 이방족속을 다루실 때에 오래 인내하신 것입니다. 수 백년 동안 그분은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멜기세덱, 욥과 같이 신실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의뢰하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전형적인 사람들인(그때나 지금이나), 가나안인들은 돌이키지 않습니다. 그들은 참 하나님의 선포에 응답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이제 심판의 때가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군의 군사력은 이방 가나안 족속을 완전 소멸하고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한 수단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들은 처음 정복 성공 후에 약속의 땅에서 적을 완전히 없애는 철저한 작업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방 민족의 우상숭배와 음행의 관습이 그 땅에 남겨져 있었고 점차 하나님의 친 백성에게 침투하여 물들게 되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교훈이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영적 축복의 땅에서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1:3), 그리고 영적으로도 부요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세상적 요소들과 행사들이 그들의 삶 속에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6:11~13).

 

현저한(드러나 있는) 죄와 원죄(Open sins & Root sins)

이제 굴 속의 다섯 왕에서 교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수아에서 모든 적들의 활동은 오늘날 신자들의 삶에 육신의 죄와의 싸움을 포함한 영적인 적의 어떤 형태들을 대표합니다. 여기 이야기에서의 영적 부요를 위한 전략은 실제로 우리 마음의 원죄와 상관됩니다. 다섯 적군들은 그들을 지배하는 다섯 왕이 있었습니다(왕 자신들은 숨어있었지만), 그래서 우리 삶의 공공연한 죄들은 우리 삶 중에 숨어있는 원죄들에서부터 자라납니다. 예를 들어, 시기,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판단, 수군거림, 원수를 갚는 것과 같은 현저하고 명백한 죄들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이 현저한 죄들 뒤에 숨어있는 굴 속의 왕은 교만이라는 원죄입니다. 다른 예로서 많은 재정상의 부패의 현저한 죄들을 보기 바랍니다. 이러한 죄들 뒤에 숨어있는 돈을 사랑하는 원죄라는 굴 속의 왕! 디모데전서 6:10에서 말씀하듯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교만과 돈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상대해야 할 많은 숨어있는 죄들 이나 원죄()중에 두 가지 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불신이라는 원죄는 의심과 믿음의 결여와 같은 현저한 죄들의 많은 종류 속에서 일어납니다. 아마 모든 죄 중에 가장 큰 원죄는 우상숭배의 원죄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도, 우리 삶 중에 어떤 것이라도 더 소중해지거나 중요해지기 시작할 때 우상숭배의 원죄는 우리 마음가운데 숨겨진 채로 있습니다.

 

영적 부요를 위한 전략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원죄들을 다뤄야 할까요? 영적 행복을 위해 우리는 더 많이 드러나 있는 현저한 죄들 뒤에 숨어있는 원죄들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상대하기 위해 써야 할 전략은 무엇인가요? 노출되어 있는 대적들이 추적 당하여 진멸될 동안 다섯 왕을 가둬 놓았던 이야기처럼, 우리는 우리 삶 속에 죄의 존재를 인지함으로써 시작해야 합니다. 드러나 있는 죄들을 다룰 동안 원죄는 저지되어야만 합니다. 원죄는 쉽게 제거되지 않아서 이것은 주님 앞에서 합당한 방법으로 다뤄져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적군을 추적하여 진멸한 것처럼, 우리도 판단, 수군거림과 원수를 갚는 등의 죄들을 추적하여, 종결시킬 필요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야 합니다. 같은 방법으로, 빚을 갚지 않거나, 부당한 값을 요구하거나, 세금 신고를 간과 해 버리는 등의 드러나 있는 죄들을 추격해서 소멸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돈과 관련된 문제의 근원은 우리가 돈을 사랑하는 숨어있는 왕(원죄)을 주님께서 다루시도록 맡기기까지는 실제로 해결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원죄들을 다뤄야 하는지는 여호수아가 다섯 왕들을 굴에서 끌어내었을 때 취했던 방법에서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주 예수님의 놀라운 모습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것처럼, 주님도 그분의 백성을 영적 축복과 영적 전쟁의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여호수아가 다섯 왕을 공식 상에서 불러냈던 것처럼, 주 예수님도 우리 마음의 숨겨진 죄를 그분 앞에 드러내어 인정하길 원하십니다.

 

자원함이 없는 그리스도인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자주 이런 것을 행하는 데 힘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경건한 삶의 모양을 만들어내기 위해 드러나 보이고 현저한 죄들을 억제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마음의 원죄를 제거하기 위해 주 앞에 가지고 나오는 데는 자원하여 힘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마음속에 잠복한 교만이나 돈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숨어있는 죄()과 살아가는 것을 감수합니다. 그들은 아마 주님께 이 원죄들을 다루시도록 진정으로 고해보지 않는 반면 그들의 삶 속에 드러나 있는 죄들을 끊어버리려고 노력할지 모릅니다 - 그럴듯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들의 마음 상태가 변화되지 못한 채로 있다면, 모든 드러난 죄들을 결국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원죄들이 그들 삶 중에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조차 않는 들의 방식이 물질주의와 교만에 의해 나타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세상적인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드러나 있는 죄들을 합리화하고 변명하려 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그들처럼 출세나 재정상에 성공 하지 못한 신자들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교만과 돈을 사랑하는 원죄가 여전히 거기에 숨어있다는 증거입니다. 슬프게도,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다루시어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되도록 맡기기보다는 죄와 타협되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만의 성경지식과 의로운 삶에 의해 눈이 가려져 있어 그들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교만과 다른 원죄들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그들의 독선적인 삶의 위선을 쉽게 알아차립니다.

 

죽음의 장소

모든 원죄들의 문제에 대한 성서적인 해결책은 우리가 주님께 우리 마음을 드러내어 이 죄들을 다루시도록 기꺼이 맡기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원죄들과 숨어있는 죄들 과의 타협적 태도와 평화 공존의 방책은 더 이상 유지시키지 맙시다! 굴 속에 숨어있던 다섯 왕이 여호수아 앞에 끌려왔듯이(17), 우리도 우리의 숨겨진 죄들을 기꺼이 인정하고 그것들을 주님 앞으로 가져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을 그분의 말씀의 빛으로 비취시며, 원죄들을 드러내어 깨끗이 없애도록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이 고백했듯이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139:23, 24)

또 다른 영적 묘사는 여호수아가 군장들에게 "적군의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이런 행동은 로마서 16:20의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는 말씀을 상기시켜 줍니다. 여호수아 10:8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약속하신 것 같이, 주님도 또한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물론, 사단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 축복의 땅에서 우리를 패배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모든 종류의 원죄들을 사용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러한 죄들이 진정 어떠한 것인지를 보고, 그것들을 죽음의 장소에 두기를 원하십니다(6:11; 3:5).

여호수아처럼, 주님은 친히 우리의 죄된 속성과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는 모든 죄들에 대해 일격을 가하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24). 그러나,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경험한 것 같이 받아들이기 전에는, 우리 마음에 숨어있는 죄들은 여전히 살아서 잘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숨어있는 육신의 정욕을 이루지 않기 위해 성령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5:16).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고 죄를 짓지 않는 새로운 육신을 갖기까지, 우리 마음에 숨어있는 원죄들은 잠재적인 문제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 10장의 왕들과 달리, 원죄들은 반드시 죽은 상태로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다! 그 죄들의 정체가 확인되고, 처리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여전히 굴 속에 머물러 있으며, 다시금 그들의 추한 머리를 쳐들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아마 이 영적 진리는 36절에서 볼 수 있듯이, 헤브론에 이미 새 왕이 다시 세워져(소생되어) 있는 사실에서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이 모든 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것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요! 모든 원죄들은 심판을 받았고, 주님은 매일의 삶의 그 죄들을 해결하는데 친히 도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신자는 바울과 같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굴 속의 원죄들을 죽은 상태에 있도록 결심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 사실을 깨닫고 매일 상고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6:11, 12에서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로 여길지어다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건한 삶을 위해 이러한 원리를 따를 때, 우리는 로마서 6:14의 놀라운 약속을 더욱 더 많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라.

갈라디아서 2:20과 로마서 6:14의 말씀이 우리에게 중요한 암송구절 그 이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까? 이 말씀들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과 경험을 결정짓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적군의 왕들이 굴 속에서 잘 살아있는지 아니면 죽어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David R. R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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