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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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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10. 22:08 삶을 생각하며

민 14:1-10 우리가 대장 한 명을 세우고 이집트로 돌아가자
[출 15:13-18]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주께서 주의 긍휼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안내하사 주의 거룩한 처소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그들의 눈이 오직 주 하나님을 향해 있어서 승리의 찬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홍해 바닷가에서는 그들의 찬양의 대상이던 하나님이었는데 여기서는 완전히 두려움에 잡혀있는 이스라엘입니다. 홍해를 건널 때는 신앙이 우세했지만. 지금은 불신앙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낙의 자손들과 굳게 성벽을 쌓은 큰 성읍들이 백성들의 마음을 두렵게하고, 보여지는 것들은 하나님이 그 땅으로 인도하여 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보이게 된 것입니다. 

 

홍해에서 승리의 찬양을 읊던 사람들이 가데스에서 불신앙의 통곡자들로 돌변한 것을 통해서 깊은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우리의 모든 문제점을 통해 우리를 올바로 인도하셔서 결국 그분의 영원한 나라로 안전하게 이르게 하시는 복되신 하나님을 보기 보다는 단지 우리 주변에 쌓인 문제점들을 보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때때로 우리가 넘어지고, 불평하게 되고, 우리 가운데서 찬양의 노래와 감사의 소리를 들리기보다는 불만과 성급한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그것은 우리가 환경 때문에 하나님을 제거하여, 하나님으로 우리의 눈을 온전히 덮지 아니하며, 우리 마음의 온전한 목표가 되지 못하게 한 때문입니다. 

 

고전 10:11 "이제 이 모든 일은 그들에게 본보기로 일어났으며 또 그것들은 세상의 끝을 만난 우리를 훈계하기 위해 기록되었느니라" 
우리가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서의 우리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우리에게 속한 것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셔서 은혜로 주신 영적이고도 하늘에 속한 그 유업에 우리가 발을 딛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불신앙때문입니다.

 

시 95:7-11 → 히 3:17-19 그들이 믿지 아니하여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음을 아노라.
우리도 우리의 참되고 합당한 지위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인해 우리의 하늘 유업을 바라보고 즐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의 아무런 지위나 명예나 분깃이 없으므로 오직 하늘에 속한 사람처럼 매일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서는 순례자요 나그네로서 앞서 가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밟아가는 일만 해야 하는 하늘에 속한 백성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불신앙 때문입니다. 신앙이 힘을 쓰지 못하고 빛을 잃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보다 우리 마음을 더 크게 이끌고 있으니 하늘 생활에 대해서 말만 하는 자가 되고, 실제로 하늘 생활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4절
호렙에서는 그들이 송아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신으로 만들고, 가데스에서는 애굽으로 되돌아가게 이끌어 줄 장관을 세우자고 했습니다. 전자는 불신앙의 미신이요, 후자는 불신앙으로 고의적인 독립을 주장하기에 주님이 거기에 없습니다. 

 

갈대처럼 왔다 갔다 하는 인생의 마음을 봅니다. 믿음으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 안에 있지 못하면 남은 것은 송아지이거나 장관입니다. 완전한 미신적인 신앙의 모습이던지 주님이 주인이 아니요 내가 주인(장관)입니다.
미신적인 종교생활은 광야에서의 영적 죽음입니다. 다른 장관을 세우는 것은 애굽으로 다시 가서 노예의 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지극히 육신적인 모습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이 보는 눈은 광야에서 죽는 것도 아니요,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요, 오직 주께서 함께하시고 복 주시는 약속의 땅으로 넉넉히 입성하는 일입니다(14:6-10상반절).
두 사람이 진리에 대해 담대하게 증거하고 땅을 탐지하고 와서 그 땅에 대해 참된 보고를 제공했습니다. 그들은 곧이곧대로 그 일을 말한다는 이유 때문에,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하고 필요한 것을 말하는데 귀를 막고 늘 큰소리치고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진리를 싫어하므로 진리는 결코 인기를 끌지 못합니다. 이 세상이나 인간의 마음 속에는 진리가 들어 앉을 자리가 없으며 거짓은 받아들이고 온갖 형태의 악은 쉽게 용납하고 교묘하게 위장하면서도, 진리는 결코 수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 11:9]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이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니라(천년왕국)  
이 말씀이 이루는 그 영광스러운 순간까지 그러할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진리를 명백하게 그리고 조금도 타협없이 증거했습니다. 성도들의 분깃과 유업에 관한 진리를 고수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진리를 부패시키려는 모습, 즉 진리를 조금씩 떨어내어 버려 표준을 낮추려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입니다. 비록 우리가 연약하지만 담대하게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한다"라고 말하면서 순종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 땅에 탐지하러 들어갔을 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신앙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 보고 그 땅이 하나님께서 선물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 땅을 소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도 알았습니다. 
[슥 4:6] 이르시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이와 같이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은 당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의지하고 좀더 당당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본연의 위치와 분깃을 잃어버리고 언제나 세상의 일들이 크게 보이므로 염려와 근심으로 가득 차 있고, 언제나 구름에 싸여 있고, 언제나 세상의 어두운 면만을 보며 자기들의 환경이나 자기들의 문제점만을 보므로 인해 어깨가 처져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결코 밝고 행복할 수가 없으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쁜 신뢰와 용기를 나타내지 못하는 삶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쁨을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이나, 지나온 일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약속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무리 미약한 자녀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특권입니다. 

우리의 눈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자신이나 환경이나 슬픔이나 문제들로 돌린다면 모든 것이 캄캄하고, 불안스럽고, 불평스럽고, 험담이 나오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코 이런 것이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어두움의 일이며 죽은 일입니다. 


(9절) 그들의 방어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주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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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