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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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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교회에 칭찬과 책망

잭 해이

요한계시록 2 1~7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며칠 동안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활동한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행전 18장에서는 잠깐 동안 바울이 에베소에서 활동한 것을 보았으며, 주된 활동은 19장에서 있었습니다. 분명하게 영적인 진보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감독들이 일어났습니다. 이틀 동안 에베소 장로들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첫째는 지역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해야 됨을 말씀드렸습니다. 바울은 그 교회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붓을 들고 에베소서를 썼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를 보면 1,2,3장은 주로 가르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주로 비밀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 비밀은 회개한 유대인과 회개한 이방인이 한 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르침이 3장에 주로 나와 있습니다. 5장은 실제적으로 행하는 말씀이 나와 있는데 5번이나 믿는 자가 어떻게 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4,5장은 믿는 자가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말한 것입니다. 6장은 믿는 자들의 싸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6장에서 영적인 싸움, 즉 영적인 전쟁을 보는데 하늘에 권세 잡은 자와 싸우는 것입니다. 그 악한 세력을 대항하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신갑주를 예비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에베소서의 대략적인 개요입니다. 또한 디모데서도 에베소에 관련된 편지입니다. 이 때는 에베소가 침체되는 그러한 시기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잘못된 가르침이 들어왔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에 대적하도록 디모데가 에베소에 남겨졌습니다. 디모데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되는가였습니다. 그것을 3장 마지막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네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될 것을 알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서 전체는 하나님의 교회를 어떻게 다스려야 되는가를 말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행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가? 2장에 보면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되, 또 공적으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가를 보여주는데 남자들이 거룩한 손을 들어 다툼이 없이 기도하라고 권했습니다. 또한 자매들이 아담하게 옷을 읽고 행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기도집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3장에서는 장로와 집사들의 자질에 관한 말씀을 했습니다. 또한 4장 마지막에서는 말씀의 가르침의 집회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공적으로 말씀을 읽을 것을 말씀했으며 사람들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4장 마지막에 가르침의 말씀 집회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또한 과부들을 어떻게 돌봐야 되는지를 말씀했습니다. 또한 5장에서는 모임 내에 관계를 말씀했습니다. 이 전체의 주제는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다루고자 하는 요한계시록 2장의 에베소교회는 상당히 침체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주님은 이 지역모임을 말씀하시기를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이것을 보겠습니다만 이것은 빛과 같습니다. 에베소에 주님이 하신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한 계시록 2,3장을 보는 관점을 소개 드리면

첫 번째는 문자적인 교회로 보는 관점입니다. 문자적으로 모임이 있었다는 관점입니다.

두 번째는 이런 상태의 모임들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나 있다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상황에 이것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까웠음을 교회에 대해서 성령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 관점은 그 배경 속에 기독교계의 역사적인 흐름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말하기 위해서 말씀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교회역사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에베소에 주어진 말씀이 저희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관점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접근해 가실 때 주님 자신을 먼저 서술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오른 손에 일곱 별을 가진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해석하는 방법은 2장에 나와있습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이 사자는 주님에 대해서 책임이 있고 지역교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는 존재입니다. 이것을 별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성경을 보는 원리 중에 하나로 최초출현의 원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에 나오는 어휘를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그 어휘가 성경에 첫 번째 나오는 것을 파악하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별이 성경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곳은 창세기 1장입니다. 별을 창조했음을 창세기 1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왜 별이 창조되었는지를 보는데 징조와 사실을 이룬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늘을 보면 별을 볼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 항해할 때 그 배는 별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별이기 때문에 그 지역교회를 안내하고 인도하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에 보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을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인도하는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지역모임 내에서 그 지역모임을 직접 인도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창세기에 나오는 그 별의 의미는 빛을 비추는 것이었습니다. 인도할 뿐만 아니라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별은 그 모임에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빛을 발하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전서 5장에서 너희 가운데 가르치기를 잘하는 자들을 알아주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3장에서는 장로의 자격 가운데 가르치기를 잘하며라는 자격을 말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장로가 공적으로 잘 가르친다는 것을 말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것은 지역교회 내에서 그 장로가 그 모임을 인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장로는 말씀을 가지고 그 가정을 돕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마음 속에 빛을 말씀으로 비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5장에 나오는 장로는 공적으로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적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별은 모임 내에서 성도들의 마음 속에 빛을 갖다 주는 그러한 기능을 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를 모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이것을 성령이 또한 돕습니다.

창세기 1장의 별의 한 관점은 달과 함께 밤을 주관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별이 주관하는 관점과 관련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모임 내에서 장로들이 하는 또 하나의 기능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5장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철로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본을 보이고 주장하지 않는 자세를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소목자장으로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개념이 별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별이 인도한다는 것은 그 지역모임의 장로와 관련이 있습니다. 별이 빛을 비추는 것처럼 장로들은 성도들의 마음 속에 말씀으로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별이 밤을 주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지역교회를 다스립니다.

또한 주님은 이 별을 붙잡고라고 했습니다. 1 16절에 보면 별이 오른 손 안에 있고라고 했습니다. 20절에는 오른손(위에)라고 했는데, 16절은 손 안에 20절은 손 위에라는 뜻입니다. 안에 있다, 붙잡고 있다는 것은 안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위에 있다는 것은 그것을 지지하고 돕는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이 이 별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장로들을 돕고 안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주님이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위뿐만 아니라 별을 붙잡고라고 했는데 이 말의 의미는 안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의 사자에게 먼저 책망하지 않고, 나중에 첫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했습니다. 처음 사랑에서 떠났다고 했습니다. 처음 사랑에서 떠났지만 붙잡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참된 진리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주님께 충성하지 못하면 주님께서 내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고 충성되지 못하면 구원도 잃어버린다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교리이고 가르침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은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할 수 있음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만일 죄를 범하면 하나님 앞에 대언자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죄를 범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 대언자가 있습니다. 한 번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집에서 추방되는 것을 허락지 않습니다. 어떤 소년이 잘못해도 집에서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한 가정의 가족이 되면 영원히 가족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믿고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여러분이 죄를 범한다 할지라도 요한은 말하기를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결코 잃어버려지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오른손에 별을 붙잡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요한복음 10장으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거기서 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손을 말씀하시며 또 아버지의 손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이 그리스도가 주신 안전에서 빼앗아가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여러분 용기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구원을 받았으면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구원은 우리의 선한 행위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신 그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받은 구원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격려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십니다. 일곱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1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옷이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셨습니다. 이 모습은 제사장의 옷의 모습입니다. 성막의 촛대에 제사장이 불을 켜러 들어갑니다. 제사장은 그 촛대에 불을 밝히도록 책임을 맡았습니다. 주님께서 이와 같이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시고 지역모임 사이에 걸어 다니십니다. 촛대가 증거의 불빛을 발할 수 있도록 주님은 관리하시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성막에서 심지를 자르는 것은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촛대 사이를 걸어 다니시는 것이 신기합니다. 조금 전에 최초출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걸어다니는 말씀이 성경의 어디에 최초로 나오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에 그 말씀이 나옵니다. 에덴동산에서 날이 서늘할 때에 거니시는 이라고 나옵니다. 에베소는 타락했습니다. 이 편지는 에덴동산에 타락한 직후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맨 나중에는 하나님의 낙원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여기서 걸어 다니는 모습이 창세기 3장에 주님이 걸어 다니시는 모습과 재미있는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날이 서늘할 때 동산을 거니셨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동산을 뛰지 않았습니다. 아담이 범죄했을지라도 주님은 당황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당황한 상태로 에덴동산을 뛰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마음 속에는 이미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창세 전에 준비된 어린양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뛰지 않고 동산 안을 거니셨습니다.

에베소를 칭찬한 것을 말씀드리면 칭찬이 먼저요 나중에 책망하셨는데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책망하기 전에 먼저 칭찬을 하셨습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동일한 순서로 말씀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칭찬하노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내가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책망하기 전에 칭찬하는 것은 재미있는데 심리적으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선 비판하기 전에 그 사람을 격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칭찬하기 전에 비판을 먼저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칭찬을 먼저 하시고 책망을 나중에 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알고 주님은 모임에 대해서 여러 번 알고, 알고, 알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성도들의 환경을 주님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서머나 교회 도 알고 계셨는데 서머나는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주님은 내가 네 고난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환경과 관련을 지으십니다. 주님은 모든 성도들이 경험하는 것들을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너에 관한 것을 모두 안다.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 중에도 매우 어려운 환경에 있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모든 것을 아노니 어떤 경우에는 배를 타고 폭풍 가운데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환경을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그렇게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보시고 내가 너희를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욥은 말하기를 그가 나의 가는 길을 아노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아버지께서 너희 필요를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에게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알까라고 걱정하면서 그 사람이 하는대로 행동하고자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은 모를지 모르지만 내가 너희를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정확하게 나를 아십니다. 내가 믿는 자로 어떻게 행하실 것을 아시며 내가 듣는 것을 아십니다. 또한 내가 하는 것을 지키십니다. 이 모든 것 가운데 주님은 내가 너희를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에베소에게 내가 네 행위를 알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행위 가운데도 선한 행위, 바울은 편지 가운데 선한 행위에 대해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 행위로 구원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며 10절에서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선한 행위는 구원받은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믿는 자의 선한 행위는 정말 구원받은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동일한 관점을 디도서에서 강조합니다. 우리의 행한바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선한 행위를 지속하라고 바울은 디도서에서 권면했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선한 행위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렇습니까?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이 여러분의 선한 행위를 봅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선한 행위를 인정합니까? 이러한 행위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자녀인 것을 증거하는 행위입니다.

사도행전에 도르가는 선한 일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모든 자매님들이 이러한 자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이 모임을 인정하시면서 네 행위를 알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수고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엄청난 힘(에너지)을 씁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좋습니다. 느헤미야 시대의 사람들은 그 일을 할 마음을 가졌습니다. 여러분이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이와 같이 열심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장 좋은 힘을 주님이 아닌데 사용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힘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를 말씀드렸는데 3,4장을 보면 역사를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주님의 일을 두 번째로 하지 않고 첫 번째로 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목까지 내어놓는 일을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서 하십니까? 주님은 여러분의 수고를 아십니다. 그 수고는 사랑이었습니다. 이 수고는 데살로니가전서 1장에 보면 바울은 사랑의 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서 수고를 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참된 동기는 무언지 모르겠지만 그리스도를 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네 인내를 알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내를 하나님을 위해서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쉽게 포기해버립니다. 우리들은 장애물을 만나면 포기해버립니다. 우리에게 반대가 올 때에는 조용한 시간을 갖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인내를 하는 것입니다.

스가랴 4장에 보면 스룹바벨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짖는 일을 했습니다. 그의 손이 하나님의 집에 기초를 놓았으며, 그의 일이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일을 시작한 그 손이 일을 끝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일의 끝냄의 인내를 우리가 가집시다. 주님께서도 이러한 인내를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기도하시기를 나에게 주신 일을 내가 이루었사오니 주님께서 부여된 일을 끝까지 이루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칭찬하신 또 다른 것을 보겠습니다. 모임을 계속 지속한 것을 칭찬했습니다. 지속하더라도 깨끗하게 지속했음을 칭찬했습니다. 깨끗하게 지속했다는 말은 말씀적으로 유지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도덕적으로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않은 것을 칭찬했습니다. 악한 일이 모임에 일어날 때 그것을 다루어야 합니다. 두아디라에 그러한 것이 나와 있습니다. 두아디라는 악한 일을 용납했습니다. 고린도도 악한 것들을 용납했습니다. 죄가 모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에서 그것을 다루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도덕적인 깨끗함을 유지하십시오. 고린도전서 3장에서는 하나님의 지역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렇게 거룩해야 합니다. 죄를 범한 사람들이 모임에 있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죄를 지음으로 모임의 증거를 깨는 사람들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어서 말씀적으로 깨끗함을 유지할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거짓된 교사들이 들어왔는데, 자칭 사도라는 자들이 에베소에 들어왔습니다. 이 사람들이 모임을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모임에 잘못된 것을 집어넣으려고 왔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성도들은 이 거짓된 것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되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거절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씀의 거룩함을 지킨 것입니다. 모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지역교회를 정결한 처녀라고 언급했습니다. 지역교회의 도덕적인 거룩함뿐만 아니라 정결한 처녀라는 것은 도덕적인 거룩함이라기보다도 말씀적으로 깨끗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역교회가 정결한 처녀로 유지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지역교회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과 말씀적으로 잘못된 것들을 구분해서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이 사람들의 행동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3절에도 보면 참고라는 인내를 칭찬하셨습니다. 그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그들이 핍박을 받을 때도 견뎠습니다. 2절의 인내는 주님을 섬기는데 대해 참은 것이었고, 3절에서는 시련이 온 것을 참는 것을 말합니다. 핍박이 오더라도 계속해서 진전하여 우리의 고백한 믿음이 그대로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씨뿌리는 비유를 보면 어떤 씨들이 돌밭에 떨어져서 빨리 자랐습니다. 빛이 쬐자 말라서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들으면 금방 기쁨으로 받아드립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순전하게 믿음의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해가 뜨는 것입니다. 그 빛이 비추어서 즉 시련과 어려움을 주어서 정말로 그렇게 되었는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순전하지 못하다면 그것이 시들어 버릴 것입니다. 고난이 오더라도 계속하는 사람은 진정하고 순수한 그리스도인인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서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칭찬했습니다.

4절에는 책망이 나옵니다.(~ 끊김)

처음 사랑이라는 것은 순서의 처음이라기 보다 가장 고귀한 사랑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동일한 헬라어에서 탕자의 비유에서 이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할 때의 제일 좋은의 용어가 동일합니다. 이 배경 속에 있는 처음이라는 말은 가장 좋은 옷이라고 하는 가장 좋은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생애 가운데 전적으로 주님께 충성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마음을 씁니다. 그러나 그것이 슬프게도 과거가 되어버립니다. 주님의 사랑이 꼭대기로 갔다가 그 다음에는 떨어져버립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런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시간을 더 가져야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더 관심있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회개하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좋습니다. 주님을 섬기는데 힘을 쓰는 것들을 여러분이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될 것을 오늘 저녁에 인정을 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인정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이 모든 것이 회개할 여지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1장에 보면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말씀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요한은 말했습니다. 그 말씀에서 시제를 보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시제가 계속적으로 사랑한다는 어의의 시제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과거에 사랑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나를 사랑하사 자기 아들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갈보리를 뒤돌아보면 여러분을 사랑한 것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록에 나오는 것은 지속적인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처음 사랑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안 할지라도 주님은 계속해서 사랑하십니다. 2절에서는 물음표를 붙입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에 감정적인 느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좋은 감정을 갖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한 말을 거절하면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모든 생활영역에 해당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어떻게 행할 것인가도 범위가 들어있습니다. 또한 직장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인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모임에서 어떻게 행할 것인가도 범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은 어느 영역에서 적용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생활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지배하도록 허락하고 계십니까?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니 또한 그렇다면 우리들의 동료들에게도 사랑을 나타낼 것입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렇다면 내 양을 치라, 나를 사랑한다면 직접 그 사랑을 나의 양들에게 나타내라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동료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요한은 서신서에서 이것을 말씀했습니다. 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감정적으로도 나타내고 우리 동료들에게도 사랑을 나타낼 것입니다.

오늘 저녁 그리스도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은 어떠하십니까? 우리가 처음 사랑에서 떨어졌다고 말을 들어야 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5절에서는 네가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에베소로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회개한 것을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구원받을 때 모든 구원 받은 사람들은 100% 그리스도였습니다. 네가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옛날을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핍박을 잘 견뎠다고 히브리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일부는 약해져 있습니다. 이전 그 날을 기억해 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처음 믿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어디에서 떨어진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처음 행위를 가지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회개는 죄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도 회개가 있습니다. 때때로 주님 앞에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는 회개했습니다. 그들의 경험 속에서 거룩한 회개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죄를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스스로 의지적으로 그 죄에서 돌아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기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에베소 모임은 없습니다. 아마 촛대가 옮겨졌을 것입니다.

6절에서도 주님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니골라당이 누구인가? 어떤 파가 있다는 것을 찾는 것은 아마 헛될 것이지만 대답은 말씀 안에 있습니다. 니골라라는 말의 뜻은 백성을 지배한다, 백성을 이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권위를 가진 무리들을 말합니다. 처음 말씀의 씨가 뿌려졌습니다. 처음에는 시원찮게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배해 버립니다. 그러면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조직이 생기는 것입니다. 니골라는 바로 이러한 체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공식화하고 교리화 시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니고라당의 행위를 미워한다고 하십니다. 너희들이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을 나도 미워하므로 칭찬한다고 하셨습니다. 성직자 제도는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경에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개념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 사람이 목회하는 것은 성경의 어디에도 근거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복음과 말씀을 전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어저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한 정결한 처녀이고, 적은 무리, 하나님의 건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몸된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지역교회가 몸 같은 성전 같다는 것입니다. 그 구절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다양한 지체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 모든 기관들은 기능을 합니다. 동일하게 몸된교회가 아니라 한 몸처럼 지역교회는 기능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체들은 무언가의 은사를 갖고 있습니다. 모든 지체들은 주어진 은사들을 기능할 책임들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한 사람이 한다면 그 사람의 어깨에 모든 기능이 다 갈 것입니다. 성직자 제도는 한 지역교회가 몸 같이 기능하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러한 제도를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7절에 앞의 말씀들을 우리 모두에게 적용시킵시다. 또한 마지막 이 약속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합시다. 여기에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절대로 둘째 사망을 맛보지 않습니다. 동일하게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낙원에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이기는 자들을 순전한 믿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모임 안에 참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습니다만 그래서 지역교회를 말할 때 성도들의 교회라고 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지역교회가 모든 성도가 포함되는 온 교회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지역교회 내에는 입으로만 고백한 사람들이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기는 자들은 순전하게 믿는 자들입니다. 약속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영원한 것을 풍성하게 누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영적인 축복은 미래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믿는 다면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이 구원이 마지막 때에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미래에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주님을 믿는다면 구속을 받은 것입니다. 또한 미래에 여러분의 구속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로마서 8장에 보면 우리의 몸이 구속이 될 것을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영생을 갖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도서에서 이 생명이 미래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원의 미래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는 그 날에 영원을 충분히 우리가 누릴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역사를 생각하면서 에베소교회를 생각하면 교훈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활 속에 적용할 수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것은 우리 개인 생활에 적용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것들은 모임 생활에 적용해야 될 것입니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말씀을 따라 하는 것은 좋습니다.

(2004년 2월 2 강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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