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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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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구스타프슨

바람직한 만장일치

만장일치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다. 그것은 단순히 만장일치로,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는 감독자들이 모임 결정과 가장 많은 관련이 있지만 감독자들 스스로 만장일치일 때 얼마나 좋은가라고 가르친다. 모든 중요한 결정에서 감독자들의 만장일치는 성도들 사이에 만장일치를 불러일으킨다. 모임에서 모든 신자들은 만장일치의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고인이 된 G.H. 랭은 하나님의 교회들이라는 훌륭한 책을 썼다. 그 책에서 그는 “만장일치: 교회 질서와 그리스도인 협력의 신성한 규칙”이라는 제목의 매우 중요한 기사를 썼다.

그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관여하는 신자들의 다수결로 사안을 결정하는 데 제재를 가하느냐, 아니면 주님이 오히려 우리에게 단일한 판단이 나올 때까지 판단을 미루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닌지 여부이다”라고 썼다. 주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만장일치가 이루어질 때까지 결정을 미루기를 바라시는 것은, 서두름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실수를 경계하는 것도 다른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길로 이끌기 쉬운 방법은 신성한 방법이 될 수 없으며, 신성한 본성을 가진 자들이 따라가서는 안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수 있고 그분 안에는 일하는 실수들이 알려져 있지 않다”(벧후 1:4; 고전 2:16).

 

신약의 모든 책에는 만장일치를 격려하는 혹은 적어도 우리가 서로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언가가 있는데, 이것은 같은 마음을 가지는데 필수적이다.

 

마태복음: “누구든지, 너 어리석은 자여, 하고 말하는 자는 지옥 불(혹은 불 지옥)의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마 5:22).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다음 구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네가 네 예물을 제단으로 가져오다가 너를 대적할 어떤 일이 네 형제에게 있음을 거기서 기억하거든 네 예물을 거기에, 제단 앞에 두고 네 길로 가서 맨 먼저 네 형제와 화해하고 그 뒤에 와서 네 예물을 드리라”(마 5:23- 24). 하나님의 말씀은 섬김보다 예배가 먼저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친다. 여기서 주 예수님은 예배보다 먼저 오는 것, 즉 우리 형제와의 올바른 관계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모임 동료들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거기에 그들의 한가운데 있느니라”(마 18:20)라는 말을 올바르게 인식하겠지만, 우리는 서로 잘 지내는 것을 다룬 구절들 중의 맥락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일부분이며 모임의 증거에 필수적이다.

 

마가복음에는 주 예수님을 하나님의 완전한 종으로 소개한다. 그분은 개인에 대한 그분의 사랑과 인내, 동정심을 강조하신다(막 1:40-41; 5:35-36; 10:21). 확실히 우리가 주 예수님을 닮을수록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 좋아질 것이다.

 

누가복음에는 이렇게 썼다.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라. 만일 네 형제가 네게 범법하거든 그를 꾸짖고 그가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라”(눅 17:3). 마태복음 18:15절 명령처럼 (다른 사람들이 없이) 홀로 그를 책망하라. “그가 만일 하루에 일곱 번 네게 범법하고 하루에 일곱 번 네게 다시 돌아와 이르기를,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그를 용서하라”(눅 17:4). 주께서 여기서 가르치신 것이 무엇인가? 개인적인 범죄에 관해서는 회개의 진정성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진실한 사람의 회개라 해도 상대방이 “그저 그런 말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실제로 일곱 번이나 회개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신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분은 그가 단지 회개했다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7:20-23에서 주 예수님은 아버지께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말로 인하여 나를 믿을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오니 이것은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나니 이것은 그들이 하나 안에서 완전해지게 하려 함이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

 

G.H. 랭은 다음과 같이 썼다. “다음 세 가지만 알아두면 충분하다: 주께서는 그분의 모든 백성이 하나로 완전해지기를 원하시며;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가 된 하나됨의 모본; 그리고 이 하나됨의 목적은 세상에 주어진 증거가 되기를 바라신다.”

“주님의 기도는 사실상 성령님이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보내사 각 사람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치의 모본은 성령의 교제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됨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 아들과 성령님은 친히 하나일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행동에서도 하나이다. 그 모든 행동에는 가장 완벽한 조화로운 일치가 있다. 두 위격의 결정에 의해 신격의 행위가 규제되고, 다른 한 위격이 두 위격의 견해에 반대하거나, 단순히 지배를 받으며 순종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순전히 신성모독일 뿐이며 사실상 논리적으로 가장 절대적인 무신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의 하나됨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됨과는 완전히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써, 같은 성령의 내주하시는 자들에게 어찌 더 이상 순종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하나됨의 모본을 따르도록 그렇게 연합되어야 하며, 우리 주님이 기도하신 대로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지막 요점과 관련하여, 신자들은 공적으로 집합적인 연합을 나타내야 하는데, 이는 세상이 그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목적은 그분이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음을 세상이 알고 믿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자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의 공유자임을 믿는 것이다. 다수결이라는 관행을 채택하여 행동의 하나됨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려는 것은 그러한 연합된 활동을 이루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따라서 그분이 하나됨만이 줄 수 있다고 가르친 증거를 얻을 수 없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