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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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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구스타프슨

갈라디아서: G.H. 랭은 좋은 기록을 가졌다. “서신의 직접적인 목적은 논의된 문제에 대해 성도들이 한 마음을 갖게 하고 그들 모두에게 성령을 따라 행하도록 권하며, 육신에 속한 것이라고 선언된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을 피하는 것이었다”(갈 5:20).

 

에베소서: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참아 주며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3). 우리는 성령의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두 구절을 보면 서로 어느 정도 용납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부디 조금만 참아주세요 하나님은 아직 나를 끝내지 않으셨으니!”라는 표지를 달 수 있다.

 

에베소서에는 만장일치로 우리를 돕는 다른 구절이 있다. “그런즉 거짓말을 버리고 각 사람이 자기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라. 우리는 서로 지체니라”(엡 4:25). “너희는 모든 쓴 것과 진노와 분노와 소리 지르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고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엡 4:31-3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 것 같이 사랑 안에서 걸으라”(엡 5:2).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복종하라”(엡 5:21).

 

빌립보서: 서신 도처에는 소주제들이 있다; 무언가 빌립보 모임의 일치를 방해하고 있다. (처음 여덟 구절과 2:17,26; 4:23에서 “모두”라는 단어를 다섯 번 사용하고 나타냄). 바울은 그 어려움에 대해 두 명의 자매들을 지목했다. “내가 유오디아에게 간청하며 순두게에게 간청하노니 이것은 그들이 주 안에서 같은 생각을 품게 하려 함이라.” “주 안에서”는 신자들 간의 차이를 극복하는 최고의 근거다.

 

첫 번째와 일곱 번째 복들은 잠언 6장에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첫 번째와 일곱 번째 것들과 대조적이다. 마태복음 5:3절의 첫 번째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는 잠언 6:17절의 “교만한 눈빛”과 대조적이다. 일곱 번째 복인 “화평케 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마 5:9)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곱 번째 것과 대조적이다. “형제들 가운데 불화를 뿌리는 자.”

또한 일치에 관한 모임의 책임도 있다. “오직 너희 행실('삶의 태도' 개정역)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에 대한 일들 곧 내가 가서 너희를 보든지 떠나 있든지 너희가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복음의 믿음을 위하여 한마음으로 함께 싸우며”(빌 1:27). 바울의 투옥이 복음을 방해하지는 않았지만(1:12) 신자들 일치의 부족이 복음을 방해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일도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생각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빌 2:3)라고 읽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빌립보서 2:5-11절의 주 예수님에 관한 놀라운 구절들은 빌립보서가 우리 주 예수님의 인격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들이 모임 교제 안에서 조화롭게 살도록 돕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골로새서: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생각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입고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며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 사랑은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2-14). 이 구절들을 순종하는 것은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그러나 형제의 사랑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서로 사랑할 것을 너희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느니라. 참으로 너희가 온 마케도니아에 있는 모든 형제들을 향해 그 일을 행하는도다. 그러나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더욱더 많이 하고”(살전 4:9-10). 비록 그가 그들을 그렇게 높이 칭찬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권할 수 있었다.

 

데살로니가후서: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로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나니 그것이 마땅함은 너희의 믿음이 심히 많이 자라고 너희 모두가 각각 서로에게 베푸는 사랑이 넘치기 때문이라”(살후 1:3). 이 구절은 데살로니가인들이 권고에 순종했음을 보여준다: “이제 평강의 주께서 친히 모든 방법으로 항상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너희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3:16), “또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너희 안에서 영광을 받고 너희가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살후 1:12). 확실히, 그것은 모임이 모든 것을 만장일치로 하려고 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양한다.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디모데에게 보내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서신에는 특정한 사람들이 있다(딤전 6:3-5, 딤후 2:23-25), 디도서 3:9에는 책망 받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 “성별(性別) 분쟁”을 하기 때문에 그들을 피하도록 권한다. 어리석은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다툼이 심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논의에 불화를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다수결로 결정될 때마다 다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다수결로 사태를 수습하는 데 분쟁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그것을 피하도록 이끌기에 충분하다.

 

빌레몬서: “너의 동의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14절). 모든 것을 만장일치로 하려는 모든 모임의 신자들은 이런 욕망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한 감독이 피아노 반입을 반대하는 모임에 대해 알고 있다. 그가 영국을 방문하는 동안 그들은 피아노를 들여왔고 그것이 명백히 모임의 악화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이 형제가 악기를 모임 집회에 끌어들이는 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