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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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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5. 30. 14:26 빛 가운데로 걸으며

불신 남편을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에드가 쿤지

사도시대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역시 불신 남편을 둔 그리스도인 아내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사도 베드로는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명합니다(벧전 3:1~2참조). 구원받지 못한 남편이 아무리 불경건하다 할지라도 그가 그리스도인 아내더러 죄를 지으라고 요구하지 않는 한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순복해야 합니다. 만일 아내가 남편에게 말로써 복음 전하는 일을 남편 쪽에서 금지시킨다면 그때는 그리스도인 아내다운 순복과 온유와 온정과 신실한 품행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노라면 어느 땐가는 그 남편이 아내의 겸손과 사랑에 마음이 녹아 하나님의 말씀들을 깊이 생각하는 지점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C. S. 로베트(Lovett)는 실생활에 관한 책자에서 여자의 힘(woman power)에 관하여 논했는데 이것은 불신 남편에게 효과적으로 전도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아내의 훌륭한 품행이 짓밟히고, 전도도 금지되고, 논쟁도 쓸데 없고, 바가지를 긁거나 폭력을 사용할 수도 없는 입장이고···· 이럴 때 아내는 어찌해야 할까요?

로베트는 이른 바 호도까는 기술(nutcracker technique)을 제안합니다: 여러분은 호도까는 기구의 두 턱이 호도껍찔을 확 물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 그 기구의 경첩은 두 턱을 연결해 줌으로써 지레의 작용을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원리가 매우 간단하지요? 이제 하나님의 호도까는 기술에 관하여 생각해봅시다. 이 호도까는 기구도 역시 두 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한 턱은 이요, 다른 한 턱은 행위입니다. 그리고 두 턱을 경첩으로 연결하여 힘을 가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이 영적 호도까는 기구의 빛과 행위의 양 턱 사이에다 남편을 끼워 넣을 수 있도록 기회를 찾아보십시오.

예를 들면, 남편이 프레쉬-브류드 커피(fresh-brewed coffee)를 더 좋아한다고 가정 합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편의상 지금까지 인스턴트 커피를 끓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남편의 기호(嗜好)에 순복하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실천할 때 이것은 순종의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 것은 호도까는 기구의 한 턱에 불과하며, 호도에 힘을 가하려면 두 개의 턱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프레쉬-브류드 커피를 끓이는 커피 포트를 식탁 위에 갖다 놓고 구수한 냄새를 풍겨 그의 코를 자극합니다. 그러면 그는 기분 좋은듯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 이거 오랜만에 진짜 커피 마시게 생겼는데! 바로 이 순간이 이라는 다른 턱을 사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호입니다. 여보, 사실은 당신에게 더 좋은 아내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지금까지 주님께 기도 드려 왔어요. 그랬더니 주님께서 당신을 더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도록 저에게 즐거운 마음을 주셨어요. 이제부터는 당신이 매일 아침마다 프레쉬-브류드 커피를 마시게 될 거예요.

그렇습니다! 이제야 여러분의 빛이 광채를 발합니다! 여러분은 행위에다 말(언어)을 더했으며, 이 후부터 여러분은 프레쉬-브류드 커피를 담은 커피포트가 매일 아침마다 남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한 예에 불과하며, 아내가 영적 호도까는 기구의 빛과 행위라는 두 턱 사이에 남편을 끼워넣고 힘을 가할 수 있도록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사항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놀라운 일은, 그것이 효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존귀케 하며, 남편이라는 호도에 실제로 힘을 가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얼마 안되어 여러분의 남편은 매번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기 가정에서 발생하는 그 모든 기쁨과 즐거움이 예수님에 의해서 생겨난다는 것을 금새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있을 때 구원받지 않은 남편의 그 딱딱한 껍질이 얼마나 오래 견디겠습니까? 모든 껍질은 부서지는 지점(급소)이 있습니다.

남편이 불합리하거나 비영적(非靈的)인 지도를 할 때 인간의 지혜는 여자보고, 남편에게 반항하여 스스로 일을 처리하라고 자극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더 나은 충고를 하는데 그것은 자기 머리(남편)에게 계속 순복하면서 자기 남편의 머리(그리스도)에게 남편의 문제를 맡기라는 것입니다.

지성적이고, 영적이고, 활동적인 성품은 여자에게 있어서도 분명 고귀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만 그렇다고 이와 같은 성품이 남편으로 하여금 열등감을 갖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또 아내는 자신의 고상한 성품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자기 남편을 얕보게 해서도 안됩니다. 아내는 그가 개인 이상의 존재, 자신의 배우자 이상의 존재라는 사실 때문에 그를 존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신성한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존중할 때 그 사람의 위치(직책)를 보고 그렇게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결혼을 통해 우리 곁에 두신 남편을 얼마나 더 존중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에 의해 남편이나 아내로 정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서 가장 고귀한 책임의 위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고난을 당하는 일은 종종 있습니다. 19세기 중엽에 살았던, 독일의 목회자이며 교수인 하인리히 티에르쉬(Heinrich Thiersch) 박사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Christian Family Life)이라는 소책자에서 다음과 같이 제안했습니다: 화합이 끊어진 부부들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경우를 가상해 봅시다. 아내는 매우 경건한 여자인 반면 남편은 세상적이고 폭군적인 불신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규례에 의해 정해진 아내의 위치가 조금이라도 변경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책무는 전과 같이 여전히 동일합니다. 아내는 가장 신사적이고, 가장 교양있는 남편에게 하듯 그에게 동일한 존경을 표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기독교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무거워집니다. 결혼을 통해 이루어진 결합이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것처럼 결혼 안에서 순종하라는 명령도 절대로 확고합니다. 주님이 친히 정하신 권위를 어떤 여자든 침범해서는 안되며, 특히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오히려 아내는 자기 남편에 대하여 공순(恭順)과 존경을 끊임없이 나타내야 하며, 온유하고 조용하며, 범사에 순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참으로 인정하는 것은 이런 덕목(德目)들 안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런 덕목들을 버리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아내는 한결같은 믿음의 행위로 이것에 집착해야 합니다. 자기 남편을 존중하는 것은 그를 아내의 머리로 정하신 그리스도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받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고난을 끼친 형들에 대하여 요셉이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지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45:4~8, 50:20). 아내는 시련의 환경이 인내를 배울 수 있는 학교라고 인식하는 가운데에 이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내는 그리스도인이 배워야 하는 덕목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지만 이 시련과 고난의 학교에서 우리는 참된 기독교가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아내는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가운데에 겸손한 태도로 자기 남편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하나님의 지혜로 그녀를 위해 정하신, 바로 그 어려움들을 통하여 도움이 오리라는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밖의 다른 방법으로는 로마서 8:28이 어떻게 사실로 이루어지겠습니까? 이상에서 말씀드린 사항들을 다 행하기 전에는 자기 남편한테서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이상스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아내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심장에 감동을 주는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이것은 실로 고역(苦役)이긴 하지만 확실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방법은 남편의 양심에 역사하며, 조용하고 느릴지라도 승리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방법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내 편에서 소망과 인내를 가지고 조용히 남편을 사랑하는 가운데 정결한 모습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고아(高雅)한 품행에 대해서도 남편은 한 동안 오해하고 그 감동을 자기 양심에서 지워 버리려고 애를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직접 관여하시는 날은 기필코 오고야 맙니다. 이 날에 그의 눈을 가리고 있던 수건이 벗어지면서 그는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훌륭한 인품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의 축복의 시간에 그는 이것을 인정하고, 자기 아내가 당해온 고난과 인내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에 순복한 결과로 얻는 축복은 어찌나 귀한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과연 이것은 무엇일까요? 주님으로부터 직접 그 대답을 들어보겠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14:21,23). 그렇습니다. 필설로 표현할 수없이 귀한 그 축복은 바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시련과 시험을 축의통로로 만들어 줍니다.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같은 사람은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긴채 하나님의 뜻을 충성스럽게 따르다가 결국 여호와의 함께하심을 체험했는데,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와 같은 사람들의 대열에 끼일 수 있는 복된 기회를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얼마나 놀라우신 분입니까!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