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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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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5. 31. 14:34 빛 가운데로 걸으며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

로저 P. 다니엘

 

매일의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간증은 우리가 무엇을 말하는 지와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우리의 영적 상태를 거짓 없이 드러냅니다. 아래에서 두 구절을 보십시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3:8~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12:36,37).

조심성 없이 말하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답게 말하기는 실로 어렵습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돕고자 하심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에 대해 주께서 안내해 주십니다. 언어 생활의 핵심 원리를 풍부하게 제시하십니다. 사단이 쳐놓은 언어생활의 덫에서 빠져 나오도록 그분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선 성도들의 올바르지 못한 언어의 예를 몇 가지 확인한 후에 지당한 언어생활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신성 모독

흔히 보는 악한 언어는 신성 모독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대면서 욕설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여기서는 이 말을 세 가지로 구분하겠습니다.

 

1. 공개적으로 주님의 이름을 헛되이 말함

헛됨무의미함 혹은 전혀 쓸모없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1) 하려는 이유 외에 다른 동기로 주의 이름을 사용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부주의한 사용은 어떤 경우든지 심각합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볍게 취급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2:9~11). 성경은 아주 명확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극도의 주의력과 공손함과 두려움이 필요합니다.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111:9)

1) 성경에서 영광스럽게 하다영광의 뜻은 탁월함을 나타내기 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말과 행동으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뛰어나심과 놀라우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함에 대한 그분의 생각은 모세 율법(십계명)에 최초로 나와 있습니다. 당신은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근본 방침은 절대로 불변합니다. 모세의 법은 은혜가 없는 진리이나, 여전히 진리입니다. 그래서 모세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신약의 은혜아래 있는 오늘날의 우리도 율법을 통해 중요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의 순서를 주목하십시오. 처음 네 계명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책임을 말합니다. 그 중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7) 하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상숭배 금지령 바로 뒤에 나오는 두 번째 계명입니다. 우상숭배란 하나님 말고 다른 무엇이 우리의 삶에서 첫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신성모독 이 두 가지를 모두 참지 못하십니다.

레위기 19 12절 또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욕되게 하다속되게 하다 혹은 더럽히다 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주변의 온갖 흔한 것에 연결 지어 말함은 그분의 이름을 상스럽게 쓰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의 불신자들은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란 말을 불경스러운 태도로 마구 불러댈까요?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저들의 마음을 무감각하게 만들어 귀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천박하게 부르게 합니다. 더욱이 그러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이 얼마나 통탄스런 일인지요!

구약 시대에 품으신 신성모독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이 신약 시대에 와서 바뀌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그 수정된 말씀을 오늘날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악한 말을 다루는 구약 구절들의 의미를 약화시키는 말씀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신약은 이 주제를 확대하고 명료화합니다.

 

2.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은 고의로 하나님을 해롭게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의 주된 헬라어는 악한 말, 욕설, 폭언 등으로도 번역됩니다. 레위기 24 10~16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 말을 엄숙히 듣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는 자에 대한 그분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뜻은 죽음의 형벌이었습니다!

성령님을 훼방하는 죄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불러옵니다(12:31~32, 3:28,29). 결코 용서받지 못하는 이 죄는 고의적이고, 단호하고, 완고하고, 오만 무례한 선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미워하는 죄입니다. 혹시 당신은 이런 죄를 범했을까 봐 염려하고 있나요?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신은 그 죄를 짓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이 죄를 범한 자는 걱정조차 안 합니다. 이것은 실수로 짓는 죄가 아니고 순간적인 부주의로 범하는 죄도 아닙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이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3. 완곡한 욕설

오늘날 흔히 장난 식으로 하는 말들이나 감탄사의 상당수는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을 대면서 내뱉는 완곡한 욕설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또는 중대하기 그지없는 영원한 문제들을 무시하는 말들이기도 합니다. 성도들 또한 종종 이런 말들을 별 생각 없이 씁니다. 하지만 그 진정한 뜻을 알고서는 충격에 빠집니다.

우리 언어는 불필요한 말이 없이 옳다아니라가 되어야 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에서 지나는 말은 사단에게서 온 것입니다(5:33~37). 성경은 이와 같이 불필요한 말들을 무익한 말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런 말들은 심판 날에 심문을 받습니다(12:36,37).

많이들 쓰는 몇 가지 예의 사전적인 의미를 우선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집어넣어 만든 욕설들에는 무엇 무엇이 있는지 잘 확인해보고, 이후에는 당신의 입에서 그런 말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각 언어의 정의는 1961년에 간행된 웹스터 국제 대사전 3(W)이나 미국 속어 사전(DAS) 등을 인용했습니다. 아래의 목록이 완전하지는 않으나, 우리의 대화에서 경계해야 할 단어의 특성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말들

Gee - 그리스도의 첫 음을 따서 만들어진 아주 일반적이면서도 상당히 완곡한 어구(DAS). 기분을 상하게 한 이를 향해 악의 없이 가볍게 내뱉는 말 이런, 어럽쇼 제기랄 등의 뜻.

Gosh - 하나님의 완곡어. 가벼운 욕설 (W).

Cripes - 그리스도의 완곡어. 가벼운 욕설의 감탄사(W).

Dad - 하나님의 완곡어. dad-blamed(경악이나 분노의 표현. 망할 놈의, 빌어먹을)과 같이 결합어가 되어 쓰이는 가벼운 욕설(DAS)

Gad - 하나님의 완곡어. 가벼운 욕설의 감탄사(W).

Jiminy Cricket - 예수 그리스도를 다소 경멸하며 일컫는 말(RPD)

Geepers or Geepers-Creepers -Gee의 뜻에 가깝게 예수 그리스도를 경멸하며 일컫는 말(RPD)

 

엄숙하고 거룩하고 영원한 문제들을(천국과 지옥) 우습게 여기는 말들

Darn -damn 의 완곡어(W).

Damn, Damn it - 어떤 사람을 유죄로 판결. 영원한 형벌을 선고. 종종 골치 아픔, 역겨움, 놀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함(W).

Doggone -God damn(빌어먹을 )의 완곡 어구(W).

Heavens - 강조나 놀라움 따위를 나타내는 감탄사. 정말, 참으로, 천만에 (W).

Hell - 분노나 놀라움이나 가벼운 욕설의 감탄사. 혹은 강조어로 쓰임(W).

Heck - 지옥의 완곡어로 사용되는 감탄사(W).

하나님의 속성인 선하심, 은혜로우심, 자비하심 등도 경망스런 대화에서 강조어나 감탄사로 사용되는 때가 많습니다.

 

악한 말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문제가 싹트게 하기 위해 사단이 즐겨 쓰는 은밀한 속임수는 무엇일까요? 악한 말들을 쉽게 내뱉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악한 말들은, 완전히 거짓을 말한다거나 혹은 사실의 절반만 말한다거나 혹은 듣는 이들 앞에서 누군가에 대해 조심성 없고 불필요하게 이야기해서 그를 상처 내는 등의 언어입니다. 다른 형태의 악한 말로는 아첨하는 말과 권위자를 대적하는 말이 있습니다.

 

악의적인 말

악의적인 말은 의도적으로 이야기 대상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말입니다. 동기를 찾아보면 복수심, 시기심, 싫어함 등입니다. 거짓말이 포함될 때도 있으나 악의적인 말은 단순한 거짓말 이상입니다. 거짓말은 타인을 해치려는 생각 없이 행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라면 누구든지 다른 신자를 향해 이런 악한 동기를 일절 품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옛 성품이 이렇게 활동하도록 허용한다면, 사단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악한 동기를 알고 이를 이용하여 우리의 혀가 타인들을 악하게 말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태에 빠진 사람의 목구멍열린 무덤으로 묘사하셨습니다(5:9, 3:10~18).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다음 말씀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34:13).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비밀 이야기를 퍼뜨리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18:8). 야고보서 3 5,6절은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과 말을 잘 살펴야 합니다. 실수로 혹은 필요 없이 다른 성도의 감정이나 평판을 상하게 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이며 자매입니다. 그러므로 다음의 놀라운 말씀을 따라 행합시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벧전 3:10). 하나님은 비방하는 수군거림을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2 3~13절은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우리를 징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4:11), 너희는 모든 ····악한 말(한글개역성경에는 떠드는 것) ····버리고(4:31). 디도서 3 2절과 베드로전서 2 1절도 읽어보십시오.

남의 험담하기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 여인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남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건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 13-15절은 젊은 과부들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이 말씀이 기록될 당시에는 결혼한 여인들에게 실없는 잡담이나 하러 돌아다닐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습니다. 주부들은 젊은 나이부터 전적으로 집안일에 매달려야 할 형편이어서 여기저기 들락날락할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았습니다. 젊은 과부들만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의 이야기를 일삼을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문명의 이기들과 전화기는 대부분의 여인에게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잡담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 자매들은 주의해야 합니다. 자기의 말이 타인에게 유익을 끼치는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몸을 파괴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이 잠언 31 10~31절의 현숙한 여인처럼 되고자 진실한 소원을 갖고 열심히 기도하는 자매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현숙한 여인은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합니다(26).

혹시 어떤 형제나 자매의 개인적이고 비밀스런 뭔가를 알고 있습니까? 그런데 그 비밀이 성경에서 심각한 잘못으로 지적하지는 않으나 공개되면 그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까? 그렇다면 누구에게도 소문을 내지 마십시오. 대신에 그의 상태를 바로잡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비밀을 폭로하고 싶은 충동을 걷어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다른 성도들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무관심의 증거입니다. 친구들을 만나서 자기 아들 얘기를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 엄마를 본 적이 있나요?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형제들에 대해 아예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초점은 우리가 무엇을 말하는가왜 그렇게 말하는가 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말하는 동기가 선합니까? 우리는 지혜롭게 말합니까? 사람들이 나를 화제로 삼아 이야기하면 그들이 내게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을 맛보아야 합니다. 남들이 항상 나를 헐뜯고 있다면서 끊임없는 의심 속에서 오히려 그들을 욕하는 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타인을 향해 지나치게 거친 언사를 쏟아내는 성도들을 보면 그릇되었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 우리는 단어를 적절하게 선택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서를 작성할 때 하듯이 말입니다. 아니면 니트로글리세린(폭발물 또는 화약의 중요한 원료-역주)을 취급할 때 하듯이 말입니다.

어떤 성도는 자꾸자꾸 남의 말을 미루어 짐작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들은 말의 좋지 않고 비밀스런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씁니다. 어떤 성도는 말하는 사람이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여 듣습니다. 어떤 성도는 아무리 말해도 귓등으로 흘려 듣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남을 해치려는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이 내게 하는 말 속에서 숨겨진 뜻을 밝혀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생각 없이 순간적으로 하는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마십시오. 우리는 혹시 상대방의 말 한 마디 때문에 그를 적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는 형제들을 신뢰하여 그들이 나를 해롭게 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철저히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성내지 아니하며····모든 것을 믿으며(고전13:3~7). 이 같이 하지 않을 수 있는 경우는, 다른 이들이 나를 헐뜯었다는 아주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뿐입니다. 그런 순간이 올지라도 사랑이 깃든 마음으로 상황을 바로잡으며 당사자들을 회복시키도록 애써야 합니다. 주님 안에는 복수가 들어설 자리가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경적인 해결책

누군가가 나를 헐뜯는다는 것을 어떻게 성경적인 방법으로 입증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경우 보통은 자신의 마음을 노여움 상태에서 곪아가도록 그냥 방치하여 실제 상황보다 훨씬 심각하게 사건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신경과민에 빠지고 간증은 더욱더 손상됩니다. 최후에는 지나친 피해의식을 갖게 되고, 이중 되면 화해가 훨씬 어려워집니다.

앙갚음은 나 역시 상대와 똑같은 수준의 죄를 그에게 범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찰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12:19).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6:28). 다시 말합니다. 반드시 어떤 조처를 취해야만 하는 때일지라도 증오심을 품거나 복수하는 건 무조건 불가합니다. 나를 대적하는 이를 향해 참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명한 해결 방법은 부드러운 항의입니다. 상대의 악이 멈추지 않을 때에만 좀더 엄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6:1)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18:15). 그가 당신을 화나게 할 때마다 그를 사랑하십시오. 이와 같이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분노케 하는 사람에 대해 불평할 권리가 전혀 없습니다! 사실 화난 감정을 끝없이 유지하는 것은 당신을 화나게 한 그 사람만큼 하나님 앞에서 잘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18:16,17). 이처럼 지역 모임을 향해 거세게 도전해올 경우는 출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불경스럽게 말하며(악하게 말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참소하며····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흠정역). 어떤 사람이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 우리의 할 일은 그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4:32).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나 많은 용서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셨나요? 가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주님만큼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의 용서는 단순한 망각이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우리의 마음에서 영영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용서는 실질적인 잊어버림이며, 용서한 죄는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따라서 용서한 후에는 그를 대하는 우리의 행동이나 감정이 옛 죄의 영향에서 벗어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의 죄를 자꾸만 되씹지 말아주십시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용서해야 할까요? 상대가 죄를 자백하는 한 언제까지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21,22). 일곱은 완전수입니다. 철저함을 뜻하는 수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완전하고 철저한 용서를 교훈해주신 것입니다.

 

뒤에서 험담하기

악한 말의 또 다른 형태는 뒤에서 하는 험담입니다. 내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나와 의견이 맞지 않는 누군가가 나타날 때, 우리는 뒤에 가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를 빈정거리면서 폭언을 퍼붓기가 쉽습니다. 적을 철저히 짓누르고 때려눕히고 상처 내려는 의도를 품고 그를 물어뜯듯이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다음과 같이 행할 때가 자주 있는 것입니다. 저희가 칼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64:3).

따라서 토론을 벌이면서 서로의 차이점들이 두드러질 때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독설을 내뱉고 상처를 안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토론의 장이 치고 받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5:2).

 

거짓말

우리는 의도 없이 다른 이를 해치는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거짓말은 거짓말입니다. 선의의 거짓말 따위는 없습니다. 시편 119 163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잠언 6 17~19절에 보면 주님은 거짓말하는 혀와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을 미워하십니다.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12:22). 잠언 19 5절도 함께 읽어보십시오.

거짓말은 절대로 그리스도의 몸을 돕거나 세우지 못합니다. 몸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려면 지체들의 정확한 상태가 서로에게 거짓 없이 알려져야 합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진리를(한글개역성경에는 참된 것)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4:25).

진리를 말함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차원을 훨씬 넘어섭니다. 중립을 지킴으로써 거짓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이나 비 진리가 우리 면전에서 전해질 때 이를 바로잡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면 그것은 이웃으로 더불어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름 아닌 거짓말입니다. 미워함을 감추는 자는 거짓의 입술을 가진 자요(10:18). 그러므로 진리를 말함은 긍정적인 측면입니다.

거짓말을 즐겨 하는 자는 지극히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22:15). 거짓말쟁이의 특징을 가진 사람이 정신적으로 이상이 없으면서도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한다면, 그가 정말로 구원받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딤후 2:19).

 

권위자를 대적하는 말

권위를 업신여기는 말은 불신자들의 특징을 이루는 것인데, 성도들마저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권위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위치에 세우신 것입니다. 여기에 예외는 없습니다(4:17,25, 13:1~6). 그래서 권위자들을 거스르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말이 됩니다.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딤후 2:10~12). 성경은 이들에 대해 무척 강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8~10).

 

아첨

아첨은 듣는 이의 허영심을 채워주거나 비위를 맞춰줄 목적으로 과다하게 칭찬하는 말입니다(웹스터 사전).칭찬받을 만한 이상으로, 혹은 진심 어린 잘했다, 고마워요 이상으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신을 위한 동기에서 나온 거짓말의 한 형태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이런 행동에 대해 꾸짖습니다. 시편 12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유다서 16절 또한 불경건한 자들의 언어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아첨의 또 다른 형태는 이것입니다. 저희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미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28:3)

 

저주

저주 또한 악한 말의 한 유형으로, 대상자를 향해 마음의 악감정을 표출하거나 그를 진짜로 해치고자 하는 동기를 심중에 품는 것입니다.

저주는 우선 십대 소년소녀와 그들의 부모 사이에서 눈에 띄게 나타납니다. 오늘날 이런 현상은 예외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반화 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우리에게 이를 말해줍니다.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 하는 세대가(한글 개역성경에는 무리가”) 있느니라”( 30:11). 하나님은 이를 꾸짖으시고 엄숙한 경고를 더하십니다.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20:20).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