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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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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9. 18. 11:09 빛 가운데로 걸으며

가정생활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혼을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과연 어떤 사람과 해야 하며, 또 언제 해야 할까요?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주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주님의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이 대단히 좋습니다. 그런데 결혼에 앞서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실제적인 사항들이 있는데, 결혼생활은 배우자 쌍방간의 새로운 책임들을 초래하며, 생활방식도 어느 정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반려자 될 사람은 이와 같은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먼저 여러분 자신을 영적으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은 주님과 및 그분의 백성들과 더불어 복된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공부하면서 그것을 여러분의 삶 가운데에 적용하여 실천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이 건강한 상태에 있다는 것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 생애의 목표는 주님을 사랑하고 경배드리며, 존중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배우자가 될 사람도 역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동일한 목표를 함께 추구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3:3).

결혼을 하면 더 신령해질 것이라고 더 영적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성(靈性)은 주님께 온전히 헌신된 마음을 요구합니다. 영적 성장은 시간과 경험을 요구합니다. 오랫동안 주님과 겸손하게 동행한 결과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결혼 전에 주님을 자신의 삶 가운데서 첫째 자리에 모시지 않은 사람은 결혼 후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심지어 바울은, 결혼하기 전에는 오직 주님만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애쓰던 사람일지라도 결혼하고 나면 마음이 나누이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고전 7:32~35)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나쁜 것이거나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기혼자나 미혼자나 다 필요하며, 간증과 섬김에 있어서 각자마다 독특한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혼자는 일반적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나 재물을 사용함에 있어서 더 많은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결혼한 부부는 부족한 점을 서로 보충할 수 있으며, 또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재능과 영적인 은사를 합쳐서 함께 일하면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도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특별한 능력이 약속되어 있으며, 한 사람보다 두 사함의 증거가 더욱 힘이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결혼한 부부가 심방을 하는 것이 최선일 때가 있습니다. 섬김의 효과적인 형태인 접대도 결혼한 부부의 영역입니다.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여 주님을 위해 살게 하는, 부모의 역할은 모두 섬김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6:4). 어느 곳에서건 간에 질서 있고 경건한 그리스도인 가정은 강력한 간증으로 널리 영향을 미칩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주어진 책임을 잘 수행하는 것은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장로(즉 목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자격입니다. 젊은이들은 이것을 명심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드러내기를 힘써야 합니다. 경건한, 늙은 여자들(이 여자들은 필시 아내와 어머니의 신분을 가진 자들일 것입니다)은 아내와 어머니로서 수행해 나가야 할 중요한 역할을 뛰어나게 잘하도록 젊은 여자들을 가르쳐야 합니다(2:3~5).

주님께서는 가족 개개인이 처한 모든 환경을 사용하여 귀중한 교훈들을 가르치시며,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교훈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시는 과정에 기여하는 것들입니다. 믿는 우리들은 주님에게 있어서 귀중한, 살아 있는 돌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가족들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있는 거친 부분들을 제거하십니다.

가정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또 다른 영역은 경제문제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심각한 어려움과 압박을 결혼생활에 안겨준다고 여겨집니다. 경제적인 압박이 가중될수록 마찰이 일어나고, 감정이 격앙되며, 말다툼이 이어지고, 성난 말들이 오가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하여 쌓인 불만과 불평은 결국 식구들의 마음과 가정의 평온을 깨뜨립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경제적인 책임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경제적인 책임이란 표현이 꼭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돈을 합당하게 사용하여 수입의 범위 내에서 생활하고, 빚을 지지 말며, 재물을 잘 관리하는 선한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상의 사항들을 성경에서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훈 - 피차 사랑의 및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13:8). (, 사업상 적당한 재정을 분별 있게 대부 받는 것은 예외입니다.)

보장 -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6:8).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4:19).

권면 -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5).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

순종에 대한 상급 -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

많은 젊은 부부들이 빚을 많이 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원래 자기 가정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던 물품들은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고 자기부모가 30년 동안이나 일하여 장만한 것들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물건을 구입할 돈을 저축할 능력이 없다면 대부받은 돈이나 외상값에다 이자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제시되어 있는 원칙들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대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곧,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말의 참 뜻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실하심을 항상 증명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삼상 2:30). 주님을 존중히 여기는 일에는 물질을 주님께 드리는 일이 포함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소득이 있을 때마다 일정한 음을 따로 떼어 두었다가 정기적으로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고전 16:2). 또 우리의 천부께서는 자신의 은총과 자비가 우리의 삶에 반영되어 우리의 소유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되기를 원하십니다.

결혼할 배우자 방방이 재정문제에 관한, 이 하나님의 원칙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그것들과 더불어 살 때 그들은 어려움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 서로 가까워질 것이고, 또 하나님께도 더욱 가까워질 것입니다.

가정생활에서 생각과 언어와 행동에 이기심을 버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것은 , 나의, 나의 것이라는 말 대신 우리, 우리의, 우리의 것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개선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라는 표현은 가족의 하나됨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남에게 주기를 좋아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을 결혼 안으로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누고 즐겨야 합니다.

결혼생활에 있어서 연합을 이루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관용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하지만 결혼은 그 눈을 뜨게 한다. 때때로 연애기간 동안의 낭만적인 분위기는 사람을 현실적으로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이상적(理想的)이고 공상적으로 만듭니다. 아무튼 결혼을 하고 나면 우리는 배우자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때때로 충격을 주기도합니다. 저이가 이 더러운 옷들을 이렇게 아무렇게나 여기저기 마구 늘어 놓을 줄은 정말 몰랐어!

저 사람은 치약을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짠단 말이야!

이 목욕탕 좀 봐! 저이는 매일 아침마다 목욕탕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그냥 나간단 말이야!

저 사람은 왜 하필이면 꼭 6에만 저녁을 차려놓지? 나는 이 시간에 뉴스를 보아야 하는데 말이야!

나는 저이가 가끔씩 만이라도 좀 다른 곡조를 흥얼거렸으면 좋겠어!

어휴, 왜 저렇게 꾸물대는지 모르겠네! 벌써 출발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예기치 않던 충격들, 때때로 속상하게까지 만드는 충격들은 이런 식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 충격들은 사실, 우리의 반응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배우자의 온전치 못한 점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대개 그 사람을 기쁘게 해 줄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므로 연애기간처럼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는 가운데에 문제점들을 서로 나누십시오. 그냥 꾹꾹 눌러 참다가는 언젠가 추한 모습으로 폭발할 수 있으며, 이것은 상대방에게 기습공격을 하는 것처럼 충격을 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사랑으로 관용하고 불쾌한 것들을 참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더 나은 변화를 초래할 지혜를 구하십시오.

에드가 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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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