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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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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9. 21. 16:42 빛 가운데로 걸으며

베다니의 마리아

J. R. 밀러

베다니에 있는 가정

베다니 집은 팔레스틴에서 가장 신성한 곳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적의와 증오 가운데서 사랑의 은신처인 그 가정을 찾으셨습니다. 불신과 비판과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피곤해지신 예수님은 그곳에서 안식을 찾으셨습니다. 그 안락한 집에서 발견하신 사랑의 확신과 자신에게 대하는 적대의 눈이 없으며 말할 때마다 트집을 잡는 불친절한 귀가 없는 위로를 생각하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주님의 아래에서

그 가정에는 두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둘은 자기들의 주님을 사랑하였고, 그분에게 둘은 소중하였습니다. 각자는 자기의 방법대로 사랑을 보여드렸습니다. 저는 이들 중 하나인 마리아에게 당신의 생각을 돌리고 싶습니다. 마리아는 언제나 똑같은 태도로 나타남에 따라서 우리 주님의 친구 중의 하나로 쉽게 분변이 됩니다. 우리는 마르다에게서 언제나 부지런하고, 열심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며, 마리아에게서는 예수님의 발 밑에서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봅니다. 복음서에는 마리아의 모습이 세번 나오는데 매번 늘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우리는 마리아가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으려고 하는 배우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발 밑에 앉아있음을 봅니다. 두번째는, 베다니의 집에 큰 슬픔이 닥쳤을 때입니다 그녀의 유일한 오라비가 죽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 마리아는 마음의 고통을 지니고, 만나러 나가서 주님의 발 아래 엎드립니다. 이번은 위로를 찾는 경우입니다. 세번째는 예수님께서 명예로운 주빈으로 식탁에 앉으셨을 때 마르다는 늘 하던 대로 식사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다시 주님의 발 아래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이번에는 매우 값 비싼 향유를 주님께 붓습니다.

 

제자로서 배우는 자리

마리아의 특징적인 모습은 모든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이 마음 속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암시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발 밑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셔야 할 교훈을 배우고, 동시에 우리 영혼에게 내려 주시는 축복을 받는 제자의 도의 장소입니다. 그곳은 또한 피난처와 안식의 장소이며, 위험과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달려가는 위로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헌신과 거룩과 봉사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나타난 세 개의 장면을 각각 순서대로 공부를 하려 합니다.

첫번째로, 우리는 마리아가 배우는 사람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의 가정에 오셨습니다. 마르다는 여주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해, 주님께 바쁘게 대접을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녀의 모든 일을 제쳐놓고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발 아래에 앉습니다. 롱 펠로우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말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 나의 상전이시여, 당신이 오실 때면

집 안은 항상 안식일입니다.

나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발 밑에 앉아서,

당신을 보면서,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나는 연약하고, 제멋대로이고,

의심이 많습니다. 참을성이 없으며,

위대한 생각도 하지 못합니다.

닿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위해

애쓰며, 좌절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상처 당하기도 하면서,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말씀을 들을 때만이 행복하고,

당신을 볼 때만이, 평화롭습니다.

오로지 당신과만 있고, 당신만을

보기를 원합니다.

나를 채워 주소서,

그러면 나의 마음은 평안합니다.

모든 젊은 여성마다. 먼저 배우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앉지 않고는, 그녀 자신에게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특성을 가질 수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축복스런 일과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영향을 쏟아 놓을 수 없다는 교훈을 배워야만 합니다. 주기 전에 먼저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만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습니다.

여름 햇살을 가득 담고, 향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장미를 보십시오. 당신은 말합니다. 나의 삶이 저 장미 같았으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장미는 어디에서 아름다움과 향기를 얻나요? 바로 햇볕 아래서 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꽃은 하늘을 보고 마음을 엽니다. 그러면 태양이 꽃의 중심부에 따뜻한 햇살을 비춰주고, 밤에는 바깥 공기에서 부드러운 이슬이 오므라진 꽃잎 사이 사이로 미끄러져 내려 옵니다. 그리하여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향기를 내뿜습니다.

당신의 생애가 장미와 같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 하려면 당신은 그리스도와 가까이 사귀어야 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주님의 사랑의 따뜻함에 열어 놓아야만 합니다. 당신의 영혼은 주님의 말씀으로 젖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자신의 복되신 삶으로 가득 차야만 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께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은 당신 자신이 상태이어야 합니다. -참회와 겸손과 목마른 영혼의 빈 마음. 시인은 마리아의 눈을 조용한 기도의 집으로 표현합니다. 그녀의 기도하는 눈은 거대한 마음의 갈망을 말해 줍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대신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야기해주기를 원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그녀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축복이 되었으며, 그녀의 온 생애를 통하여 아름다운 영향을 뿜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리아로부터 첫번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서 배우는 자세를 가지고 앉아야만 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가르치시게 하십시오. 주님 자신의 생애와 사랑을 당신의 마음에 쏟아 넘치게 하십시오. 처음의 일은 당신이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얼굴에서 나는 빛이 당신의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에 비칠 수 있도록 당신의 영혼의 모든 창문을 주님을 향해 열어놓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당신의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사랑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묵상하십시오. 그리하여 마침내 그 말씀들은 당신의 마음에 보이게 되고, 생활과 영혼에 가득차게 됩니다. 드라몬드 교수는 말합니다: 매일 그리스도와 사귀는 10분이, 만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마음과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라면, 모든 일들이 달라질 것입니다. 당신의 행동은, 하루 온종일, 아주 자세한 데까지, 일찍이 보았던 비젼에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신성한 영향력

우리는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앉아서 배운 교훈의 결과로 인해, 신성한 영향력이 그녀의 영혼 속에 침투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요소

거기에는 마음의 청결이 있었습니다. 깨끗함에 관한 주님의 산상수훈을 기억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그리스도의 눈에 마리아가 그렇게 아름답게 비쳤던 것은 그녀의 깨끗함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발 앞에 앉아 있었을 때에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영혼을 깊숙이 내려다 보시면서 청결함과 깨끗함을 보셨습니다. 아름다운 여성의 요건 중에서 깨끗함이 첫번째 필수적인 특성의 하나임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손상되기 쉬운 청춘 시대의 여성들이 소중한 가정의 보금자리를 잃고서 더럽혀진 세상의 거친 손길에 내맡겨져서, 그들의 삶의 여정 가운데 가장 싱그러운 시절에 순결함이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밤마다 길거리에서 끼리 끼리 이야기를 하며, 함께 어울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젊은 여자들을 매우 안타깝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은 영원히 그들이 그리스도와 닳은 가장 고귀한 아름다움으로 다듬어지는 여성이 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소녀들의 엄마는 자기 딸들의 생활을 세상의 악한 유혹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고 청결한 마음의 신성함을 어릴적부터 가르쳐야 만합니다. 소녀와 젊은 여성은 청결한 이상을 마음 속에 끊임없이 두고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그 이상에 도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한 늙은 조각가가 자기의 이상을 손상되는 상태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바쳤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가난으로 인해 작업실 겸 침실이었던 다락방에다 진흙으로 만든 그의 위대한 걸작품을 두었습니다. 어느 날 밤, 날씨가 몹시 추워졌습니다. 그 늙은 예술가는 진흙의 틈 사이에 있는 물이 얼면 작품이 망치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어나서 침대에 깔려 있는 이불을 벗겨서 조각품을 존경스럽고 사랑스럽게 둘러쌌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 것도 덮지 않은 채 누워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해가 떠 오르고, 그의 친구들이 다락방에 왔습니다. 그들은 따뜻하게 싸여져서 보존된 조각품과 침대에서 싸늘하게 죽어 있는 늙은 조각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름다운 이상에 손상을 입히지 아니하려고 목숨을 바쳤습니다.

모든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의 영혼 안에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녀 자신의 생애를 모양지을 이상에 따라서 빛을 발합니다. 그 어떤 것도 얼룩으로 이 형상의 깨끗함과 광택을 잃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어떤 오점을 남기기보다는 차라리 자기의 생명을 던질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마음의 청결은 영혼 전체를 정화하고 지극히 속된 삶이 천사와 같은 광채를 발할 수 있도록 변화시킵니다. 어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참된 우아함은 외모의 광택이 아닙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가서 성격의 바로 밑 바닥에 까지 침투합니다. 그것은 향기를 뿜어 내어 온 공기를 감미롭게 흠뻑 적시는 한 떨기 꽃처럼, 마음에 있는 청결과 온유함과 은혜입니다. 그것은 수양이 아닙니다. 진정한 우아함은 종종 교육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속에서 우리는 흠과 잘못을 알아 채게 됩니다. 반대로 진정한 우아함이 없는 높은 수준의 교양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청결은 실로 깨끗하게 합니다. 이것은 정말 참된 말입니다. 마음의 청결은 지극히 수수한 여성을 아름답게 만들고 가장 평범한 삶에 세련됨을 가져다 줍니다. 당신이 설합을 열었을 때 구석구석이 몹시 좋은 향기로 흠뻑 젖어 있는 냄새를 맡은 적이 있습니까? 무엇이 그렇게 하였을까요? 그것은 설합의 구석에 감춰진 소량의 진기한 향수 때문입니다. 어떤 여성의 삶에서든지 참된 마음의 청결의 효과는 이러한 것입니다. 그 순수함은 얼굴의 모든 표정, 모든 움직임, 언어, , 행동과 영혼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전체를 통해 느낌을 줍니다. 한 사람에 의해서도 다른 사람의 삶에-가정과 주위전체와 공동사회-영향을 주고 풍요롭게 하는데, 그것은 그 사람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마음의 섬세한 정결에서 나왔습니다.

젊은 여성마다 영혼의 깨끗함을 지키도록 합시다. 그것은 참다운 여성에게 필수적입니다. 여성적인 특징에 섬세한 정결이 없다고 하는 것은 장미나 백합에게 아름다움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비록 당신의 운명에 가난과 어려움과 고난과 병고와 슬픔이 주어졌다 할지라도 깨끗함을 지키십시오.

한 자루의 양초는 어둠 가운데서 조용하고, 한결같은 빛으로 비칠 것입니다.

당신은 순결하다고 말합니다.

당신의 생각은 한밤중의 고요함 속에

떨어지는 눈처럼 깨끗합니까?

당신은 온 세상이 읽을

빛의 편지에서 널리 알려진 것들을

얼굴을 붉히지 않고 읽을 수 있습니까?

신속히 세월이 지나간 후

잘못을 알지 못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쁜 인사 가운데서,

만일 당신이 하늘의 심판대에 서서,

그들 모두에게 당신의 흉금을 털어

놓는다면 그 흠 없는 무리에게

눈을 찌푸리지 않고 쳐다볼 수 있습니까?

 

평강의 비밀

마리아의 성격 중에서 또 하나의 장점은 평화스러움이었습니다. 마르다는 자기의 생활에 애태우고 속상해하였습니다. 그녀의 임무는 너무 컸습니다. 마르다는 평정하지 못하고, 조용하지 못하고, 생활의 아름다움과 상냥스러움을 크게 손상시킨 마음의 초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축복스런 평강의 비밀을 배웠으며, 그것은 그녀를 그처럼 아름답게 만들었던 내면의 평강에서 온 성스러운 조용함이었습니다. 어떠한 것도 마리아를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높은 산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은빛 호수가 아주 깊이 숨겨지고 풀러 싸여져서 어떤 폭풍우에도 조용한 중심을 결코 흔들 수 없는 것처럼, 마리아의 영혼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평강은 모든 그리스도인 여성들이 아름답게 되는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짜증, 걱정, 불만족, 성냄, 그리고 어떠한 형태에서든지 절제의 부족은 인간의 아름다움에 손상을 줍니다. 그러나 평강은 얼굴을 빛나게 합니다. 그것은 거친 곳에서 조용함, 혼란 속에서 조화, 위험 속에서 확신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슬플 때에 조용한 기쁨의 등불입니다. 그 비밀은 하나님께 고정된 마음에서 나옵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26:3)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발 밑에 앉아서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시는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14:27)고 주님은 속삭이십니다. 모든 젊은 여성들은 마음의 평강의 비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여성다움에 있어서 가장 값진 매력 중의 하나입니다.

 

온유한 심령

마리아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특징은 온유함이었습니다.

언니가 자기를 책망할 때에, 우리가 때때로 가정에서 한 사람이 정당하든지 또는 부당하든지 간에 비판을 할 때 상대방이 대응하는 것처럼 마리아는 기분이 상해서 성급한 말대꾸나 반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드러운 마리아의 심령은 마르다의 짜증이나 안달에 의해 손상을 받지 않았고, 방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마리아에게서 그러한 온유함을 또 한번 봅니다. 예수께 향유를 부어 드리는 마리아의 사랑의 행동에 대해 유다가 잘못한다고 그토록 매정하고, 불친절하게 말했을 때입니다. 마리아의 마음은 그러한 냉담한 비판에 마음이 아주 아팠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녀는 참았고,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무례함과 무자비함, 모든 부당하고 불친절한 대우 가운데서도 격동되지 않고 부드러운 심령을 잃지 않은 온유한 심령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지니셨던 아름다운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와같이 주님은 무정하고 불친절한 세상을 지나시면서 위협을 받으시되 대신 위협하지 아니하셨고, 주님의 민감한 영혼은 사람들의 무례함과 증오를 받으시면서도 결코 한 순간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온유함은 예수님을 기쁘게 했던 마리아의 심령 중의 하나였습니다. 일 잘하고 유능했던 마르다는 짜증을 내고, 남의 흠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런 가운데서 늘 상냥했습니다.

쓸모있는 옥수수가 아름답기만 한 백합을 냉대하고 있을 때에 주께서 오셔서 옥수수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으나 백합에 대해서는 어떻게 칭찬하셨는가를 작은 싯귀는 말합니다.

옥수수가 백합에게 말했습니다.

내 발에 가까이 닿지 말아라.

너는 단지 백합에 지나지 않아.

옥수수도 아니고 밀도 아니잖니,

아름다움 자체 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니?

백합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긴긴 날 동안

더욱 아름답게 자랐습니다.

마침내, 주님께서는 그 길을

우연히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발 아래에서

쉬고 있을 동안에,

옥수수는 자기를 먹으라고 뽐내면서

바스락거렸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삶에는 음식보다 더한 가치가 있느니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아름답게 자라는가 보라!

왕의 모든 영광으로도 비교되지 않는····

그러나 수고도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주께서 백합화를 그렇게 사랑하시니

그들은 얼마나 행복하였으리오.

세련되고, 아름답고, 교양있고, 또한 평범하지 않은 매력을 지닌 젊은 숙녀에게 신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이 모든 재능과 성취를 제외하고도, 그녀는 매우 온유한 소녀입니다. 그는 그녀의 특징 중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것은 온유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옳았습니다. 아무리 그녀가 훌륭한 교육과 감탄할만한 학벌과 예쁘게 생긴 얼굴과 세련된 매너로 가득찼다 할지라도, 만일 거칠고, 상냥하지 않고 불유쾌하며 발끈하는 성미를 가졌다면, 결코 그녀는 아름답지 못할 것입니다.

온유한 심령 안에는 놀라운 매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집 안에 있는 온유한 소녀는 아름답게 생기지 않았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여러가지 재능도 별로 없고 똑똑하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가 어디에든지 움직일 때 마다, 그녀는 축복을 남깁니다. 그리고 상냥스러운 그녀는 자기의 귀에 들리는 날카로운 말 때문에 결코 심란해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녀가 자기들을 싫증내지 않으므로,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녀는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고, 안달하며 짜증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부숴진 장난감을 고쳐줍니다. 그리고 인형의 옷을 만들어 주며, 엉클어진 것도 풀어줍니다. 또한 그네들 사이의 작은 말다툼과 서로 다른 의견을 잘 조정해 주고, 가장 바쁜 날에도 어린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을 찾습니다. 집에 아픈 사람이 있을 때면, 그녀는 일하면서 위로해 주는 천사입니다. 그녀의 얼굴은 사랑으로 인해 언제나 밝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귀에 명랑하고 부드럽게 들리는 음악입니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은 늘 병상의 고통을 덜어주려 친절하게 돌보아주는 일을 하는데 사용됩니다.

어느 날, 초원을 가로질러 가는데, 나는 향기로 가득한 곳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위 어느 곳에서도 꽃을 볼 수 없었으므로 그 향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마침내 나는 발견했습니다. 지면에는 키가 큰 풀에 의해 감춰진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꽃들이 깔려 있었습니다. 온 대기를 가득 채웠던 향기는 바로 그곳에서 퍼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어떤 집에 들어갔었습니다. 그 집 구석구석에는 풍요한 사랑의 정취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 가정이 호화로운 집이든지 또는 장식이 없는 단순한 집이든지 관계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무엇인가가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집 전체를 채우고 있는 화목한 생활의 향기가 흘러나온 곳은 바로 그리 화려하지 작은 꽃처럼 조용하고, 인내하며, 자신을 내 세우지 않는 온유한 여성인 어머니였습니다.

세상을 그처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수줍음을 타면서 아름다움을 숨기는 꽃입니다.

우리는 그 꽃을 발로 마구 밟으며

지나 다닙니다.

그러나, 은신처를 향기로 채우고

조금씩, 조금씩, 우리를 기쁘게 하고

위로하는 것이 바로 그 꽃인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천사와 장미 봉우리의 짧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꽃들을 돌보는 천사가 어느 봄 날, 장미 봉우리의 그늘 아래서 편안히 잠을 잤습니다. 깨어나면서 그는 말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내 아이들아, 상쾌한 네 향기와 시원한 그늘이 참 좋구나. 지금 내게 어떠한 부탁을 해도 좋아 그 부탁을 기꺼이 들어 줄께! 그럼, 제게 새로운 매력을 주세요. 장미 봉우리가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 천사는 가장 아름다운 꽃에다가 수수한 이끼로 장식을 하였습니다. 이제 모든 장미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끼 장미가 우아하게 서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젊은 여성의 바로 곁에는 천사보다 더 위대한, 즉 손에 온갖 은사와 은혜를 쥐고 계신 분이 서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더욱 많은 은혜를 받으려고 기도할 때, 그리고 우리가 받을 새로운 단장을 청할 때 당신의 얼굴을 깊이 들여다보십니다. 온유한 심령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어떤 다른 선물로도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그러한 축복을 줄 수 없습니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앉았던 그 현장에는 아름다운 교훈들이 스며 있습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낮은 의자에 앉아서 위대한 선생님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배웠던 교훈들입니다. 모든 소녀와 젊은 여성은 똑같은 자리에서 동일한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주님께 문을 열어 놓는다면, 주님은 당신의 집에 들어 오십니다. 이 일은 그야말로 진부한 이야기 거리가 아닙니다. 마리아의 시대로부터 다른 무수히 많은 젊은 여성들이,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앉아서 동일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생활에서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조용한 시간을 많이 만드십시오. 하루 하루의 날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고, 주님의 사랑에 안식하기 위하여 묵상과 기도의 많은 순간을 찾으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은 감미로운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여성으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슬플 주님의 아래서

이제 마리아의 삶의 두번째 장면을 보기로 합시다. 그 행복한 가정에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오라비가 죽었습니다. 그 집은 참으로 애정 깊은 가정이었습니다. 두 누이와 오라비는 서로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지극히 성스러운 친밀함이 그들의 삶을 연결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라비가 죽었을 때 누이들의 가슴은 매우 쓰라렸습니다.

 

애도자의 예배

장례식 후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을 맞이하려 고 나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녀가 예수님의 발 아래에 있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는데, 이번의 경우는 마리아가 굉장한 슬픔에 싸여 있을 때입니다. 그녀가 어떠한 위로를 그 곳에서 찾았는지 당신은 압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함께 우셨습니다. 그리고 영생의 복된 소망을 나타내는 말씀을 하셨고, 또 잃어버렸던 오라비도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주님의 발 아래에서 울고 있는 여성의 모습에 당신의 생각을 계속 집중시키고 싶습니다. 슬픔의 기간에 참된 위로를 주님 외의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생에 있어서 이 두번째 모습은 그녀가 첫번째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당신에게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만일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서 배우는 자로서 주님의 말씀을 흡수하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과 믿음과 평강의 교훈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슬픔 속에서 위로를 찾으러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갈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없이 어떻게 슬픔을 감당할 수 있었을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슬픈 나날들을 대비한

모든 젊은 여성들이 유쾌한 나날 가운데서 어두운 나날을 위하여 예비하는 빛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려고 할 때, 저는 현재 그들의 즐거운 생활에 어떠한 조금의 그림자를 던지려고 하는 의도는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미국의 켄터키주에 있는 거대한 맘모스 동굴 안으로 들어 가려고 한다면, 안내자는 당신이 아직도 바깥의 햇볕 아래에 있을 동안에 당신의 손에 등잔을 들려 줄 것입니다. 당신이 초목이 푸릇푸릇한 언덕 아래로 걸어갈 동안에는 등잔의 빛은 흐리고 가물하게 비추어서 아무 쓸모 없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커다란 동굴 속으로 들어섬에 따라서 불빛은 어두움 가운데서 환하고, 아름답게 비쳐지게 되고 당신은 비로소 등잔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현재 그리스도의 위로의 등잔은 아마도 쓸데없이 보일지 모르나, 언젠가 당신에게 어두움이 드리워지고, 세상의 어떠한 빛도 당신의 여정에 비추어지지 않을 때, 이 하늘의 등잔은 가장 반가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습-슬픔의 날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서-을 당신의 마음 속에 간직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영혼에 밤중이 다가올 때, 어디로 가야 할 지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감사의 봉사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하는 봉사가 마리아의 삶에 있는 세번째 모습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마리아에게 익숙한 모습을 봅니다. 그때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바로 이·삼일 전입니다. 나사로는 다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예전의 가정 생활이 화목했듯이 지금도 역시 그런 분위기가 어려있습니다. 누이들의 마음은 커다란 감사로 넘쳤으며, 그러한 감사는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에서 되살아나게 해준 친구를 주빈으로 모시는 잔치에서 보여졌습니다. 예수님과 나사로는 나란히 식탁에 앉았습니다. 마르다는 언제나 그러 하듯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의 자리-예수님의 발 아래-에 있는 마리아를 다시 한번 봅니다. 이번에는 자기의 삶을 그토록 축복해 준 주님을 높이는 감사의 태도로 그곳에 있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이 일은 이 글을 읽고 있는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사랑하는 주님의 발을 씻기 위하여 가져올 옥합이 있습니까?

 

봉사의 기회

그리스도의 발은 상쾌하게 고통을 덜어주는 당신의 향유 때문에 더 이상 지치고, 쓰라리며, 피를 흘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은 틀림없이 당신의 온유한 사역이 그들에게 심히 감사한 축복이 될 주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자녀들입니다. 쉼을 필요로 하는 고통스러운 손과 피곤한 발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 여성들에게 주어져 있는 아름다운 봉사를 할 기회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녀는 맨 먼저 자기의 가정에서 할 일을 찾습니다. 눈에 쉽게 띄는 커다란 봉사를 찾아서 눈이 저 멀리를 바라보는 동안에 아주 가깝게 놓여 있는 의무를 놓치는 끊임없는 위험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에 대해 말했습니다. 끊임 없이 밖에서 활동하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가정에서는 매우 쓸모가 없음은 굉장히 유감스럽습니다. 가정에서의 상냥한 기질과 희생정신, 매일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은 일을 거들려는 자세는 주일학교 봉사 및 주님의 일과 충돌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기름의 향기가 제일 먼저 꼭 퍼져있어야 할 곳은 가정입니다. 당신의 따뜻한 사랑과 사려 깊고 희생적인 봉사는 먼저 가사에 지친 어머니와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아버지와 유혹 받기 쉬운 시기의 동생과 집안에 있는 아이들과 잠깐 들른 손님들과 집안 일을 도우러 온 일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이 거하고 있는 모든 집은 끊이지 않는 아름다운 사랑의 생활의 향유 냄새로 가득 차야만 합니다.

 

선함의 향기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온 집안을 가득 채웠던 향기는 바깥으로 풍겨나갔습니다. 사랑으로 자기집을 축복하는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은 어디를 가나 축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봉사는 멀리에 있거나 온 세상이 찬사를 보낼만한 눈에 확 띄는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으나 하나님께서는 주의를 기울이시는 조용하고, 품위 있는 작은 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당신이 방문을 하여 위로할 아픈 이웃이 있습니다. 힘겹게 수고하며 염려하는 그녀를 위로하며 힘을 북돋워주는, 돈이나 선물이 아닌 작은 친절한 행동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 일주일에 한 두 시간, 책을 읽어주고, 자신이 결코 볼 수 없는 굉장히 아름다운 세상에 대하여 이야기해줄 수 있는 장님인 여자가 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가정의 참된 행복을 맛보지 못했거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듣지 못한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당신은 이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구원을 얻는데 도움이 되도록 그 아이에게 그리스도와 같이 친절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접촉

희미 하고 광택을 잃은 한 개의 오팔이 상자에 있습니다. 그것은 한 순간 따뜻한 손에 쥐어졌습니다. 그랬더니 무지개 빛깔의 영롱한 빛을 반사하면서 빛났습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어린아이든지 또는 나이가 들었든지 간에 영원한 생명을 드러내주는 내재하는 빛남이나 영적인 광채가 없이 냉정하거나 아름답지 않게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따뜻한 인간의 사랑의 손길이 닿기만 해도 그들 안에 숨겨져 있는 영적인 아름다움이 발산될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경우에 있어서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의 손은 바로 이 무미 건조하고, 윤택이 없는 영혼에 닿아서, 그들을 찬란한 생애로 바꾸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손입니다.

 

사역의 형태

일이 어떠한 특별한 형태일 것인가 하는 것은 상관이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당신의 자녀들이 무엇을 하여야 적합한지를 아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디를 가든지 간에 축복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모든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이 자기의 기도로 삼기에 알맞은 짧고, 아름다운 기도가 여기 있습니다.

나와 접촉하는 모든 영혼들마다 -

아주 미세한 접촉이라도 -

그곳에서 어떤 좋은 것을 얻게 하소서,

작은 은혜와 친절한 생각을,

아직 느끼지 못한 어떤 포부와 약간의 용기를,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밝히는 한 줄기의 믿음을,

더욱 더 가해지는 생활의 고통을

헤쳐 나가기 위한

자욱한 안개를 벗어난 자은 하늘의 광채를,

이 생애를 가치 있게 하고

하늘을 더욱 확실한 기업이 되게 하기 위해서!

죠지 · 맥도날드는 말합니다: 만일 내가 장미 빛 노을의 촉감을 어떤 남자나 혹은 여자의 삶에서 느끼게 할 수 있다면, 나는 하나님과 함께 일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처럼 아름다운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은 유행만을 좇으며 공허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면서 세상에 아무런 축복을 남기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확실히 낫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마리아는 향유를 붓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를 기다리지 않고 미 리 그것을 부었다는 이야기는 언제나 저에게 아름다운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친구들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향기를 발하게 하기 위하여 사랑의 옥합을 깨뜨립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마치 이별, 포옹, 흐느낌과 신음, 한밤중의 뒤척임, 황혼의 슬픔, 마음이 어두운 정오, 이 모든 것은 지나가 버린 땅에 이미 도착한 것인양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곁을 지나고 있는 친구나 이웃이 곧 가버려서,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온유한 일들을 하려고 할 때는 이미 때를 놓치게 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사람들이 우리 곁을 지나가 버린 후에 다만 눈물로써 우리의 부끄러운 사랑을 표할 것이 아니라 고난의 한가운데 있는 그들의 지친 발에 부을 향유를 미리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당신의 친구나 이웃의 관에다 보낼 꽃을,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삶의 험준한 여정을 밝게 하고, 슬픔과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미리 보내십시오.

 

봉사의 보답

마리아를 기념하는 일은 그 사랑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되풀이하여 말하는 사람들에게 또한 격려가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온 천하에 어디에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그래서 그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생애의 마지막 부분의 기록 가운데 씌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몇 세기를 걸쳐서 내려오는 동안에도 마치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새롭게 남아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그 일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분에 대한 사랑으로 행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해진 어떠한 아름다운 일도 잊지 않으시는데, 이 일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기억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느 것도 잊으시지 않을 것입니다. 부드러운 진흙 위에 떨어진 양치류 식물과 잎사귀와 꽃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 안에서 굳어져서 바위 속에 박혀진 것을 사람들은 가서 망치로 바위를 깨서 자국을 찾아냅니다. 모든 선과 잎, 맥과 접혀진 흔적이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위해 한 어떤 작은 일일지라도 잊혀지는 듯 보이나, 하나님의 생명 책에 기록될 것이며, 그들의 이야기는 후세에 천사들과 사람들에 의해 잊혀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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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