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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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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9. 11:03 구원을 받았습니까?

돌아온 탕자

(누가복음 15:11~32)

그 날은 감정이 격앙될대로 격앙되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가정생활에 넌더리가 났으므로 이제 집을 아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한 가지 문제는 그에게 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돈은 아버지가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만 한다면 그는 재산의 일부를 상속받을 수 있겠지만 아직은 아버지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소 냉정한 태도로 아버지에게 요구했습니다. 저에게 올 유산을 지금 주시는 게 어떻겠어요?

그의 말에 아버지는 칼에 찔린 사람처럼 잠시 동안 고통을 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요구하는 것을 그에게 전부 주었으며, 둘째 아들은 이것을 받자마자 죄악의 도성을 향해 곧장 떠났습니다.

그는 이제야 정말로 살 맛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잔소리도 더 이상 없고, 세대차도 더 이상 없습니다. 노인의 간섭에서 마침내 완전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재미 있는 쇼도 많이 보고, 먹고 마시며, 마약과 도박도 즐겼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의 친구였으며, 특히 그가 멋있는 재즈광()이라는 것을 아는 젊은 여자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돈을 물쓰듯 썼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그는 휘황찬란한 나이트클럽에서 자기 친구들을 위해 셈을 치렀습니다. 이걸 보고 그들은 저치 말이야, 재미 있는 곳만을 찾아 다니며 돈을 뿌린다구라고 말하며 놀려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서까래가 내려앉았습니다. 돈이 다 떨어졌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하는 수 없이 일자리를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그를 고용해주지 않습니다. 물가는 높기만 하고, 식량은 바닥이 났으며, 만기일이 넘은 계산서는 자꾸만 쌓여갔습니다.

한량(閑良)에서 돼지치기로

이 멋쟁이는 배가 고팠지만 그의 친구들은 이미 그를 떠났습니다. 가진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목이 마를 때에도 그에게 마실 것을 주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셋돈도 지불할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에 결국 거리로 쫓겨 났습니다.

그러다가 그에게 일자리가 주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돼지 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돼지들을 부러워했습니다. 돼지들의 배는 채워져 있었지만 그의 배는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코를 찌르는 돼지우리 옆에 서서 자기 가정, 잘 꾸민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을 종종 생각했습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그의 코에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생각이 자기 집의 종들에게 미쳤을 때 그들의 처지가 자기보다 훨씬 나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지금 배를 곯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몹시 어리석은 자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가 자신이 그처럼 나쁜 부랑아였던 것에 대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자기 아들을 알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들에게로 달려갔습니다. 탕자는 흐느끼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 시작했지만 아버지의 포옹과 입맞춤으로 인해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어떠한 환영입니까! 꾸지람도 없고, 거 봐. 내가 뭐라든!이라는 말조차 없는 것입니다. 사랑, 그저 사랑뿐입니다! 그들이 집에 이르자마자 종들이 사방에서 달려 나왔습니다. 이 종은 옷을, 이 종은 금가락지를, 이 종은 새 신을 들고서···· 그런 다음에 그들은 송아지를 잡아서 굽고 온갖 음식을 마련하여 잔치를 벌였습니다.

아버지는 기쁨에 넘쳐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그리고 잔치는 밤 늦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맏아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그 잔치가 어찌된 영문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화를 벌컥 냈습니다. 아버지가 그에게 왜 잔치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투덜댔습니다. 저는 집을 떠나본 적도 없고, 죄악의 도성으로 가본 적도 없으며, 아버지의 돈을 젊은 여자들에게 허비해 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저를 위해 이와 같은 잔치를 벌여 본적이 있나요? 송아지는커녕 염소새끼 하나 구워준 적이 없단 말이에요. 저 동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저런 녀석이 집으로 돌아왔다고 잔치를 다 차려주었군요. 저는 지금까지 늘 바른 품행을 가져왔는데도 아버지가 저에게 해준 것이 도대체 뭐예요? 아무 것도 없단 말이에요!

아버지는 다정한 태도로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의 대답의 요지는 결국 이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나에게는 흠이 없으므로 나는 너보다 더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자기 죄를 자복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탕자를 더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의미

주님께서는 이 탕자의 비유를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하셨는데 그들은 그분이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신 것에 대하여 그분을 비방했던 것입니다(2). 비유 속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의미하며,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둘째 아들은 죄인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맏아들도 역시 죄인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동생과 비교한 후 자기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기뻐하시지, 자신의 선행과 결백을 늘 자랑하고 다니는, 부서지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 죄인은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이 비유의 요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유에서 다른 교훈들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집을 떠나고자 하여 유산을 요구했을 때 아버지의 가슴은 틀림없이 찢어졌을 것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할 뿐 아니라 그분의 가슴까지 찢어지게 만듭니다.

둘째 아들은 먼 타국으로 가 거기서 방탕하게 지냈습니다. 우리들도 대부분 그러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제공하는 것을 맛보고 싶어하며, 죄악의 쾌락을 누리고 싶어합니다. 우리도 탕자처럼, 죄악의 쾌락이 얼마 가지 못한다는 것과 영원한 만족을 결코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이 떨어지지 않는 동안에는 그에게 많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들을 참으로 필요로 할 때는 그들이 그를 내동댕이쳤습니다. 그에게 무엇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마귀의 나라에서는 아무 것도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무엇이든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고 사야만 한다.

그런데 흉년, 즉 어려운 시기는 겉보기와는 달리 하나의 축복입니다. 예를 들면, 비극이나 사고, 질병, 슬픔 또는 어떤 심각한 위기 따위는 우리로 하여금 제 정신이 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탕자가 구할 수 있었던 일자리는 오직 돼지 치는 일뿐이었는데 이 일은 부랑자들이나 하는, 실로 불명예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죄도 이와 같습니다. 죄는 사람의 품위를 떨어뜨립니다.

탕자는 곤궁에 처해서야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으며, 이것은 하나님께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렸습니다.

인간의 막다른 골목이 하나님께는 좋은 기회이다. 우리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을 때 언제나 하늘을 처다 볼 수 있습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그가 집을 나간 후부터 줄곧 그를 위해 기도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기도는 사태를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사람도 변화시키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혹은 아버지)의 기도가 늘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아버지의 따뜻한 환영은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너무나 잘 보여줍니다. 좋은 의미로 서두르시는 하나님이 기록된 갖은 오직 이 탕자의 비유에서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돌아오는 죄인을 맞이하려고 그렇게 달려 나가십니다.

제일 좋은 옷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에게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의()의 옷입니다(고후 5:21). 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가족으로 들어오되 종으로서가 아니라 상속자로서 들어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당시의 종들은 신을 신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죄인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면 그 기쁨은 한량없습니다.

현대판 탕자

몇 해 전에 어떤 청년이 자기 가정을 떠나 다른 곳에서 호사스럽게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마구 자랑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무려 십 년 동안이나 하여 그는 자기 부모에게 부끄러움을 끼쳐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비유에 나오는 탕자처럼 집으로 돌아가 잘못을 바로잡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과연 나를 다시 받아줄까? 그는 확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계획을 편지에 쓰고서, 만일 자기가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면 어머니가 하얀 천 조각 하나를 집 앞에 있는 라일락나무 위에 매달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는 자기 집을 지나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대답을 자연적으로 알게 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하얀 천조각이 보이지 않으면 그는 그냥 지나치기로 작정했습니다. 버스가 마침내 자기 고향으로 들어가자 그는 잔뜩 긴장했습니다. 드디어 눈에 익은 농가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라일락 나무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으며, 그 나무 위에는 수 백개의 하얀 천 조각들이 뒤덮혀 미풍에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이와 같으십니다. 하나님도 집 앞에 갈보리의 십자가 나무 하나를 내놓으시고, 도처에 있는 죄인들에게 팔을 내뻗으셔서, 그들보고 회개하고 돌이켜 죄인들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간절히 권하고 계십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