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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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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5. 19:16 구원을 받았습니까?

영원한 지옥

 

누가복음 16: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6:19-31 참조.

영원이라는 단어는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말입니다. 우리가 영원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면, 아마 절반도 헤아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영원히 존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그리고 영원히 ... 과연 그러한 생각은 참된 것일까요? 성경은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관념적인 생각에서 감정적인 경험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영원히 존재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감정은 점차 즐거움에서 두려움으로 변하려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믿는 이들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하늘나라라고 불리는 곳에서 살게 될 것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하나님 없이 영원히 지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살게 될 것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옥은 우리가 생각하기조차 싫은 주제여서 대부분 불신자들은 지옥을 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 생각에서 빨리 떨어버리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불신자들 중에는 지옥의 존재 당위성에 대해 역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일 스탈린이나 히틀러와 같이 포악하고 큰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지옥에 가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죽는 것으로만 끝난다면 인생은 너무도 불공평하고 공정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성적인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에 대해서는 동의하려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성경은 지옥이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사람만 가는 곳이 아니라, 모든 불신자들이 가는 곳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표준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3:23).

누가복음 16장에서 부자와 나사로의 경우에, 성경은 우리에게 지옥에 대한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16절의 지옥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음부(하데스)로 훨씬 바른 번역됩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음부란 사망한 불신자들이 마지막으로 지옥에 들어가기 전에 현재 대기하고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라, 실제 이야기로 말씀하시면서, 부자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하데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인들이 심판받게 되는 그 마지막 심판의 날은 아직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 누가복음 16장에서 음부(하데스)라는 곳은 결국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된 영혼들이 거하게 될 지옥과 결국 하나인 셈입니다.

19-21절에서 우리는 지옥이 상황이 역전되는 장소임을 보게 됩니다. 이생에서 부자는 모든 것을 누렸으나, 나사로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바리새인들은(14) 부자란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쌍하고 큰 고난에 처했던 나사로는 하나님의 징계 아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결국 나사로는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고, 유대인들이 부정한 짐승으로 여기는 개들이 그 헌데를 핥는 상태로까지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가 죽은 후에, 그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서 안연히 쉬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사용한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말은 낙원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는 곳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극적인 모습인가요!

부자는 구두쇠 스크루우지나 시므온 레그리와 같은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음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사실 21절은 이 부자가 나사로에게 그 잔치상에서 남은 음식을 준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부자는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으나 가난하고 고난받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무관심한 전형적인 미국인을 가리킵니다. 형식적인 관심만 표명하는 것이 대부분 미국시민들의 특징입니다. 확실히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하나님은 지옥에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그러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기를 원하셨습니다. 성경은 여기서 모든 부자들이 지옥에 가고,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갈 것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은 부자가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지만, 사실 왜 이 부자가 지옥에 가고, 나사로는 하늘나라에 갔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적인 구원의 길이 그리스도이심을 여러 성경구절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이 이 이야기의 중심내용은 아닙니다. 이 누가복음 16장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생에서의 신분과 위치가 장차 오는 세상에서는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분과 지위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 사회에서 이러한 진리를 증거함으로 경고해야 합니다.

23-24절에서 우리는 지옥이 고통스러운 형벌의 장소임을 보게 됩니다. 어떤 불신자들은 어처구니없게도 지옥이 옛친구들을 만나는 즐거운 장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결코 그러한 생각에 대한 암시조차 없습니다. 부자는 괴롭고 쓰린 고통과(23), 고뇌(24) 중에 있었고, 아무도 이러한 무서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기를 바랐습니다(28). 지옥은 조금도 소망의 여망이 없는 곳이며, 쉼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한 형벌이 정당한가 하고 많은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지옥은 정당성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입니다. 내가 물에 빠졌다고 생각해 볼 때, 내가 나를 건져주기 위해 온 구조자를 믿지 않고, 선택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 결과는 정당하지 않은가요? 불신자들은 지옥가기로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리를 믿기를 거절했으며, 그에 대해 반응을 보이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42에서 주님은 지옥에 대해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는 장소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버리고 지옥에 가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어떤 불신자들은 영원한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영원히 하나님을 향해 분노를 발하면서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아직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옥의 고통스러운 형벌을 피하는데 지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옥에서 영원히 잃어버린바 되기 전에,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님으로 영접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을 주님께 맡기기를 기도드립니다.

25절은 지옥이 의식과 기억이 분명한 장소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옥은 기억이나 의식이 중단되는 곳이 아닙니다. 부자는 나사로를 보면서 자신이 잃어버린 바 된 사람임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과거의 기억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25절의 기억하라는 말은 명령으로 주어졌다). 우리는 이생에서 경험한 과거의 실수나 잘못 등 나쁜 기억들을 다행스럽게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에서 그러한 행운은 없습니다. 모든 범죄의 기억들이 살아나고, 양심을 송사할 것입니다. 아마도 주 예수님이 지옥을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는 ...(9:44-48) 곳으로 설명하실 때, 이러한 지극히 작은 죄로 인해서도 끊임없이 양심이 송사받는 곳으로 언급하신 것 같습니다. 하물며 이러한 복음의 단순한 진리를 믿는 기회를 저버린 기억이 영원히 되살아난다면 그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습니까?

26절에서 지옥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옥에서 두 번째 기회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환생이라는 개념은 성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지옥은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이러한 죄를 정결케 하는 기간이 마치면 하늘나라에서 다시 받아주는 일시적인 형벌의 장소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결국에는 하늘나라에 가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25:41,46을 보라). 큰 구렁이 끼어 있다는 사실은 지옥이 영원한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26절은 만일 하늘에 있는 어떤 사람이 지옥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오기를 원할지라도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복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즉 큰 구렁이 끼어 있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이 없음같이 하늘나라에서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이라고 하는 복된 위치에 영원히 닻을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1:6을 보라).

마지막으로 27-31절에 보면 우리는 지옥이 모든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부자는 성경의 진리를 거절하는 것이 영원히 잃어버린바 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의 다섯 형제들처럼 부자도 살아있는 동안 모세와 선지자들(29)에게 들어야 했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때에는 신약성경이 아직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진리에 대해 마음 문을 연 사람에게 있어, 성경은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사실입니다! 기적은 마음이 굳은 회의론자들에게는 부자가 생각하고 말했던(30) 것처럼 아무런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31절에서 말씀한 실제적인 증거가 되는 사건이 우리 주님이 이 이야기를 하신지 얼마되지 않아서 일어났습니다. 곧 나사로라 하는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돌아와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경이 진리임을 증거하였습니다( 11).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고자 하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이 있을지라도 믿는 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완고하고 완악한 불신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11:53). 게다가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했습니다(12:10)! 물론 우리 주님의 부활조차도 그들의 불신앙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처럼 성경을 거부하는 자들과 불신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죽음 이후에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요!

사복음서를 살펴볼 때, 주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보다는 지옥에 대해 더 많은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항상 선을 행하셨던 우리의 사랑하는 주님께서 왜 그토록 많은 시간을 유쾌하지 못한 주제로 말씀하셨을까요? 베드로후서 3:9절은 그에 대해 간단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옥에서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