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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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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7. 15:56 말씀의 분변

율법(律法)과 은혜(恩惠)

 

진리의 말씀을 나누고 있는 가장 뚜렷한 구분은 율법과 은혜이다. 사실상, 상호 대조를 이루고 있는 이 원리들은 가장 중요한 두 시대, 곧 유대교시대와 기독교시대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1:17).

이것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는 은혜와 진리가 없었다는 뜻이 아닌 것처럼 모세 이전에도 율법이 없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따먹지 말라고 아담에게 금한 것은 율법이었다(2:17).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범죄한 그 죄인들을 찾으시며 가죽옷을 입히시는 그 아름다운 일은 확실히 은혜이었다(3:21). 이것은 우리에게 의로움이 되신 그리스도를 잘 상징한다(고전 1:30). 어느 정도 하나님의 뜻이 나타난 의미에 있어서의 율법과 어느 정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타난 의미에서의 은혜는 언제나 있었던 것이고. 또한 성경은 그것을 곳곳에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 도처에 언급되어 있는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고 시내산 때부터 갈보리 때까지의 시대를 지배하며, 또한 그 시대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마치 은혜가 갈보리에서 시작되는 시대를 지배하며 그 시대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 것과 똑 같다. 은혜의 시대는 교회 휴거와 더불어 끝나는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이 어느 시대에서도 이 두 원리를 결코 혼합시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율법은 언제나 은혜와 구분되며 전적으로 이질적인 입장에 있고, 또한 그렇게 역사한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금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권하시고 부여하시는 것이다. 율법은 정죄하는 일을 한다. 은혜는 용서하는 일을 한다. 율법은 저주하며, 은혜는 그 저주에서 속량한다. 율법은 죽이나, 은혜는 살린다. 율법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입을 닫게 한다. 은혜는 모든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미하게 한다. 율법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큰 거리를 만들어 놓는다. 은혜는 범죄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오게 한다. 율법은 말하기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한다. 은혜는 말하기를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한다. 율법은 말하기를 "너희 원수를 미워하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한다. 은혜는 "믿으라 그러면 산다"고 말한다. 율법은 선교사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은혜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전파되도록 되어 있다. 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을 정죄한다.

그러나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이라도 값 없이 의롭다고 하신다(23:43/5:8/ 딤전 1:15/ 고전 6:9-11). 율법은 시험의 제도이다. 그러나 은혜는 은총의 제도이다. 율법은 간음한 여자에게 돌을 던진다. 그러나 은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한다. 율법 밑에서는 양이 목자의 손에 죽는다. 그러나 은혜 아래에서는 목자가 양을 위하여 죽는다.

어느 곳에서나 성경은 율법과 은혜를 예리한 대조로 제시하고 있다.

율법과 은혜의 혼합은 그 양자를 다 손상시킨다. 왜냐하면 율법은 그 엄위성을, 그리고 은혜는 그 무료성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 언급된 율법은 언제나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그 율법을 뜻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7:23만 유일한 예외다). [저자는 이 문제를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실은 율법이 모세의 율법을 언급하고 있지 않는 예들이 많이 있다. 3:27과 갈 6:2도 그 좋은 예들이다 -편집자 註).

그러나 때로는 온 율법이 이른바 도덕 율법(6:14/ 2:16, 3:2), 혹은 십계명(3:19/ 7:7-12), 그리고 의식의 율법(2:14-17)을 망라한 의미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의식의 율법 가운데는 성막( 25-30)과 레위기 중의 예물 ( 1- 7)과 같이 제사장과 제물로서의 주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아름답게 예시하는 그 신기한 예표가 간직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예표들은 언제나 신령한 사람들의 경탄과 기쁨이 되어 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하는 의문의 직분으로만 국한하여 생각한다면 설명이 불가능한 시편의 표현들도 그리스도나 구속함을 받은 자들에 언급된 것으로 볼 때 그 뜻이 설명해진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편 1:2).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119:97).

⊙ 율법과 은혜의 관계에 관한 문제로 교회를 소란하게 만든 세 가지의 오류가 있다.

 

1) 무법주의

곧 신자들에게는 이제 아무런 법이 없다고 주장하는 주의로, 이는 신자가 자신의 선행 없이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거룩한 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1:16).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4).

 

2) 의식주의

그 원래적인 형태로는 신자가 레위기 주의 규례를 다 준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의이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15:1).

이 오류의 현대적 형태는 교회의 예식이 구원을 얻는데 필요불가결 하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3) 갈라디아주의

곧 율법과 은혜의 혼합주의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일부는 은혜, 일부는 율법으로 말미암는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혹은 은혜가 주어지는 것은 절대로 무력한 죄인으로 하여금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 오류에 대해서 갈라디아서의 엄숙한 경고, 대응할 수 없는 논리 및 강력한 선언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종적인 답이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미치겠느냐"(3:2,3)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 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1:6-8).

⊙ 다음은 중요한 주제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의 개요로서 도움이 될 것이다.

 

1) 율법이란?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7:12).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7:14).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7:22)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딤전 1:8).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3:12).

 

2) 율법을 법 있게 사용함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7:7,13).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3:19).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3: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2:10).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고후 3:7).

"정죄의 직분"(고후 3: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7:9).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율법 없이 2500년 동안 살아 온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먼저 유죄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고, 후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요구에 비추어 자신의 완전한 무력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1:17/ 3:17). 율법은 순전히 그리고 오로지 정죄와 죽음의 직분이다.

 

3) 율법이 할 수 없는 것.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음이니라"(3:20).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고...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2:16).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2:2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 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3:11).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8:3).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13:3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7:19).

 

4) 신자는 율법 아래 있지 않다.

침수 세례가 상징하는 신자의 그리스도 죽음에의 일치화의 교리를 선언한 후(6:1-10) 로마서 6장은 11절부터 신자의 생활규범 곧 행동강령들을 선언하는 말씀을 시작하고 있다. 그것이 나머지 12절의 주제다. 14절은 신자가 죄의 지배, 구속으로부터 해방을 받는 데 원칙을 말씀하고 있다. 죄책은 그리스도의 피로 해결되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6:14).

이 말씀이 경건한 생활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 괴악한 무법주의로 인도할까 염려하여 성령님께서는 즉각 이런 말씀을 덧붙였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6:15).

진정코 거듭난 마음은 이 말씀에 다 아멘으로 화답한다. 이러므로 로마서 7장은 율법에서 해방을 받는 또 하나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육신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죽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7:4-6/ 이 말씀이 의식의 율법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는 것은 7절을 보면 분명하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함이니라"(2:19).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 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3:23-25).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딤전 1:8,9).

 

5) 신자의 생활규범은 무엇인가?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일 2: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12,13을 찾아보라).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4:1,2).

"그로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5:1,2).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5:8).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5:1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5:16).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3:15).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15:10).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15:12).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14:21).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 3:22,23).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10:16).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7:50).

이 원리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국법은 부모가 자녀를 보호할 책임이 있음을 규정하고, 자녀를 임의로 방임할 경우 처벌할 것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러한 국법이 있음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자녀들을 따뜻하게 보호하고 있는 어머니들이 얼마든지 있다. 왜냐하면 법이 어머니들의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율법판을 증거궤 안에 두도록 지정하신 것을 기억하는 것은 교훈이 된다. 율법판과 더불어 그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 양자 다 은혜를 말해주고 있다)가 있었다. 율법판은 속죄의 피가 뿌려지던 금속죄소로 인해 가리워져서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은 오직 피를 통해서만 사람들이 어긴 그 율법을 바라보실 수 있으셨다. 왜냐하면 피는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하게 변호하며 그의 진노를 화해했기 때문이다(9:4,5).

현대 율법주의자들은 이 거룩하고 공정하면서도 잔인한 율법판을 속죄소와 속죄 피 아래서 가져다가 그리스도인 생활규범으로 교회 안에 세워 놓았다.

 

6) 은혜란 무엇인가?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3:3,5).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2:7).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7)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2:8,9).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고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2: 11-13).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3:7).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4).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5: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서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20:32).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1:6,7).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6).

은혜는 얼마나 완전하고, 얼마나 포괄적인가! 은혜는 구원한다. 의롭게 한다. 세워준다. 열납되게 한다. 구속한다. 용서한다. 기업을 준다. 하나님 앞에 설 신분을 준다. 우리로 대담히 나아와 자비와 도움을 얻도록 은혜의 보좌를 예비하신다. 은혜는 삶의 태도를 가르쳐주며, 복스러운 소망을 준다.

마지막으로 명심할 것은 이상의 여러가지 원리들이 혼합되어서 안된다는 것뿐이다.

"만인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11:6).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삵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4:4,5/ 3:16-18/ 4:21-31도 겸하여 읽어 보라).

 

마지막으로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4:31).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12:18-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말씀하신 것은 도덕의 율법과 의식의 율법으로 구분될 문제가 아니다. 신자가 이른 곳은 그 산이 절대 아니다.

-번연은 이렇게 말했다.

"신자는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그렇게 완전하고 복된 의로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뇌성을 발하는 이 시내산의 율법이 그에게서 아주 미소한 허물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것을 가리켜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라고 한다".

혹 불신자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가 이미 범한 그 거룩하고 공정한 법이 선고하는 그 참된 선고에 마음을 기우리기 바란다.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밤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2-23)

그러나 그러한 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 이것은 성경에

"내가 만일 내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10:9)라고 약속하고 있는 바와 같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10:4)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