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08. 3. 29. 21:39 빛 가운데로 걸으며

바리새인과 전통

 

미국에는 유대인들이 약 600만 명이나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 중에 대부분은 아직까지 그들의 메시야를 기다리며, 안식일을 지키고 장로들이 그들에게 전해 준 유전을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사사건건 주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 장로의 유전을 범한다고, 아니 모세의 율법을 범한다고 비난했던 유대인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까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만 오늘날의 유대인들도 당시의 유대인들 못지않게 그들의 조상들이 전해 준 유전에 매여 있는 것을 보면서 그것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유대인들의 회당 가까이에 상점을 경영했던 어느 형제님이 유대인들의 범해서는 안 되는 안식일의 규율 때문에 가끔 그들을 도와주었던 일에 대해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바로 전날에 문을 열어 놓아야 했는데 열어 놓지 못하여 형제님이 열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안식일날 열쇠로 문을 여는 것도 일로 생각했습니다. 또 더운 여름날 안식일이 되기 바로 전에 에어컨 스위치를 올린다고 올린 것이 그만 잘못하여 난방 스위치를 올려, 찜통같이 더운 곳에 있으면서도 그 스위치를 내리는 것이 일이어서 그냥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철저하게 전통에 매여 있는 그들에 대해 마음에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전통, 그것은 좋은 것도 있지만 사실 나쁜 것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들을 그들의 지도자들이 해석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생각이 들어가고 규칙을 만들어 처음에는 그냥 참고로 하는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권위를 갖게 되고 더 나아가 말씀보다 더 큰 권위를 갖게 되는, 그래서 그것으로 사람들, 곧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정죄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 그들은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까지가 일이 아닌가를 알아야 했습니다. 안식일에는 얼마나 먼 거리까지 걸어갈 수 있는 것일까? 물건은 어느 정도 옮길 수 있는가? 병자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없이 많은 것들에 대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해석과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물건은 마른 무화과 열매 하나 정도의 무게보다 무거운 것을 옮기면 그것은 일이요, 그것보다 가벼운 것을 옮기는 것은 일이 아니라고 했고 병자는 도와주기는 하되 병이 낫게 해서는 안되고 현상유지만 하도록 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을 때에 안식일을 범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며 메시야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사람의 가르침을 가지고 하나님의 법을 파괴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전해 준 유전과 전통에 따라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했고 그들을 배척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대인들의 전통과 유전이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두려운 마음을 갖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만 그런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전통과 유전의 피해자이면서 또 그들의 유전을 배척하고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며 주님을 중심으로 모였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둘씩 그들의 지도자들과 조직의 가르침에 무게를 두면서 나중에는 주의 말씀과 동등한 권위를 갖게 되고 그 후에는 오히려 말씀보다 위에 서게 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배척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이고 추방하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는 교회사가 사사 시대의 역사와 유사함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죄를 자백하고 돌이켰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건지시고 축복하셨지만 평안한 태평의 세월이 지속될 때 그들은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간 것처럼 교회 또한 처음에 개혁을 했을 때는 말씀을 중심으로 순수한 마음들이 하나님을 향해 가다가 차츰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 나름대로의 전통과 유전에 빠지게 되고 말씀이 그 중심점에서 멀어지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바리새파, 사두개파 그리고 에센파라는 교파를 가지고 그들 나름대로의 가르침과 전통을 발전시켰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기독교계 안에는 수많은 교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어떤 면에서 그들의 선진들로부터 받은 유전과 전통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다, 우리 교회가 정통이다, 우리 목사님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 목사님이 잘못되셨을 리는 없다.' 우리 교회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들을 합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 나름대로 전수받은 전통과 유전을 지키다 보니 바리새파는 하나님 말씀보다 장로들의 유전을 더 높은 곳에 두어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자들을 이단으로 물아 세울 정도로 변질되어 갔고, 사두개파는 부활을 믿지 않고 천사도 믿지 않는 단체로 변질되어 갔던 것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판단의 기준은 성경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시대이든 베뢰아 사람들과 같은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7:11).

모든 사람들은 다 자기가 다니는 교회가 또는 자기 교단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말씀과 어떤 중요한 교리적인 문제도 아닌 어떤 유전과 전통에 속한 것이 자기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이단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선진들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전해 준 대로 해내려 오다가 약간만 예배의 형태나 모임을 변형시켜도 잘못된 것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늘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아 예배를 드리던 사람이 의자에 앉아 예배드릴 때 그 마음에 평강을 잃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기도집회에서 늘 함께 기도하던 것을 그룹으로 나누어 기도하는 것으로 인하여 평강을 잃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자매들이 자매들을 가르치는 것에 평강을 잃습니다. 과연 이러한 것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이러한 것들을 자신의 믿음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좋지만 그러한 것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 사람은 어떤 틀에 매이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틀을 하나의 진리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교회나 단체이든 세월이 가면서 변해 가기 마련입니다. 세상의 역사가, 성경이, 그리고 교회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교회 또한 30년 전과 지금이 같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세에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베뢰아 사람들과 같은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말씀과 장로들이 우리들에게 전해 준 유전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선진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전통과 유전이 모두 100% 다 옳다고 만은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진들이 해 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해야 한다는 자세는 옳지 않습니다. 우리의 선진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유전과 전통에 의해 사람들을 판단하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말씀에 따라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모든 유전이나 전통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전통을 봐야지 전통에 따라 말씀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진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라든지 우리가 지금까지 그렇게 계속 해내려 오고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은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느냐?라는 말보다 권위가 없습니다.

어떤 일은 성경에 분명히 말하고 있는 데도 선진들이 그렇게 해내려 오지 않았다고 해서 등한히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성경에 말하고 있지 않는 데도 선진들이 실행해 오고 있는 것이라고 해서 진리 마냥 고수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들만 고수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그러한 것들을 하나의 참고 사항이 아니라 말씀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 것으로 간주해 하나님을 믿는 다른 사람들을 나누고, 분쟁을 가져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즉 세부적인 것들까지도 자신들과 같지 않으면 잘못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지, 어디까지가 일이며 어디까지가 일이 아니라고 하나하나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에 우리가 무화과 열매 하나보다 무거운 것을 옮기는 것은 일이요 가벼운 것은 일이 아니라는 법을 만들어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는 이러한 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면들이 우리가 말씀의 한계를 넘어 나의 사적인 분별과 주관적인 분별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과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나(14:5,6), 우상의 제물을 먹은 형제에 대해서는 다릅니다(고전 8). 우리는 우리의 주관에 따라 이러한 자들을 판단하거나 정죄하기 보다는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는 자들임을 믿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14:6).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전통과 유전에 따라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이단으로 내몰고 핍박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 선진들 또는 어느 개인의 주관적인 깨달음에 의해 주님의 귀한 지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이단으로 내몰게 한 것은 큰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 병자를 고치신 것, 밀 이삭을 비벼 먹은 것 등 단순히 그들이 그토록 철저히 지키고 있는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정죄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손을 씻거나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일들로 인한 문제는 없지만 우리 나름대로 새로운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적은 것들로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귀한 지체들을 판단하지 맙시다. 오히려 내가 주님을 위해 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 또한 주님을 위해 살려고 노력하고 있음을(14:7,8)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닌가 합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