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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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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6. 12:44 빛 가운데로 걸으며

방언에 대한 잘못된 주장들

 

오순절주의자들의 성령과 방언에 대한 주장들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1) 구원을 받은 후에 성령의 세례(침례)가 있다.

어떤 이들은 사도행전 1장과 누가복음 1 49절을 근거로 내세워, 기도와 금식을 통하여 능력 받기를 기다리는 것이 필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2 13절은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성령의 세례(침례)를 받았다고 가르친다. 이 점은 육신적인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조차도 사실이다. 성령의 충만은 회심 이후에 있으며,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으나(5:18), 이것은 성령의 세례(침례)를 받으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령의 세례(침례)는 회심 때 단 한번이며, 성령의 충만은 자신을 매일 하나님께 드릴 때 경험한다.

 

(2) 성령의 세례(침례)를 받은 증거는 방언하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부분의 고린도 성도들은 그 세례(침례)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성령의 세례를 받았지만(고전 12:13) 그들 모두가 방언을 말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12:10,30). 그러므로 만일 오순절주의자들의 논리가 옳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 모두는 방언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니다.

세례(침례) 요한은 태어나기 전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으나 방언하지 않았고, 교회사 가운데 위대했던 성도들도 방언하지 않았다.

 

(3) 방언의 은사는 영성에 대한 표시이다.

고린도 교회는 전혀 영적이지 않았다. 이 교회는 바울이 서신을 보낸 교회들 중에서 가장 육신적인 교회였으며,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젖먹이)였다(3:1~4). 방언은 영적인 삶의 표시가 아니다.

영적인 은사를 받고도 영적인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일은 가능하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이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많은 은사들을 보유하는가에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끌었는가 하는 것이다. 방언은 미성숙의 표시이며, 더 신령한 은사가 아니다.

 

(4) 방언은 오늘날의 교회를 위한 것이다.

몇몇 은사들이 임시적인 것이라는 증거는 많다. 예언, 방언, 지식(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진리를 전함)의 은사는 신약성경이 완성됨에 따라 지나갔다. 고린도전서 13 8~13절은 이러한 은사들이 지나갈 것이며,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임을 명백히 한다. 그것들은 교회의 어린 시절에 속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교회의 생명과 사역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도행전 20 17~38절을 읽고 이상적인 사역의 모습을 찾아보라. 방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5) 신자는 방언하는 것에서 개인적인 유익을 얻는다.

성령의 은사들은 단 한 명의 성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졌다(12:7). 고런도전서 12~14장에서는 어떤 은사가 신자의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하여 허락된다는 암시는 일절 없다. 사실상 14 13~15절에서 바울은 방언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명백히 언급한다.

방언할 때는 반드시 통역이 있어야 하며(고전 14:5,13,28),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 때 영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축복도 없다. 방언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고린도전서 12~14장의 가르침에 위배된다.

 

(6) 방언의 은사는 신자들을 서로 결속시킨다.

오순절 운동은 방언에 대한 가르침을 온 교파에 스며들게 하고 있다. 그들의 잡지에 많은 교파들의 목회자와 평신도들의 간증을 싣고 있으며, 이 간증들은 성령의 세례를 통해서 놀라운 축복들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들을 규합시키는 표어들 중의 하나는 성령의 세례(침례)가 신자들을 단합시킨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신은 근본적인 신앙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성령의 세례(침례)는 모두를 위한 것이며, 방언도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른바 성령의 세례(침례)가 고린도에서 성도들을 하나되게 했는가? 교회는 네 파로 분열되었다(고전 1:10~13). 그곳 성도들 모두가 성령의 세례(침례)를 경험하고(12:13), 방언하는 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는 불협화음과 분열과 논쟁이 있었다. 우리가 살펴본 바로는, 방언은 교회를 연합시키기는커녕 교회를 분열시킨다. 방언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분열의 씨이다.

 

(7) 성령의 세례(침례)를 경험하는 한 그 용어가 어떻든 아무 차이가 없다.

이것은 사단의 그럴 듯한 거짓말이다. 성경의 단어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며, 우리는 이 말에 순종해야 한다(고전 2:9~16). 성령의 세례(침례)와 성령의 충만함을 혼동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분명하게 이것을 분리시키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기초로 그 위에 우리의 경험을 두어야 하며, 우리의 경험으로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이 무지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지 살펴보라. 14 20절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깨닫는데 어린아이가 되지 말라고 권면한다. 사단과 그 세력들이 얄팍한 그리스도인들을 삼키기 위하여 영적인 경험을 흉내 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곳에서는 활동할 수가 없다.

현대 방언 운동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하자. 이 운동이 교파의 경계를 넘어 휩쓸고 있으나, 교회에 덕을 세우거나 성도들을 연합시키지는 못한다. 어떤 데서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성령님은 하나님 말씀과 모순되게 역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시험하는 것이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성령과 그 능력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이지, 성경과 모순된 정신적인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