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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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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의 비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 15:51)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의 주요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구약과 신약에는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는 그분의 지상재림에 관해 수백번의 언급이 나옵니다. 그 때 그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들을 처리하시고 천년 동안 통치하실 것입니다. 이와 갈은 성경 말씀들은 영적으로 해석되어지거나 교묘하게 해석되어져서는 안됩니다. 그 말씀들은 그 말씀들이 표현하는 그대로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사람의 눈에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시기 전에 선택받은 자기 백성들을 하늘로 데려가시려고 먼저 비밀히 오시는데, 이것은 심판이 배교의 땅에 내리기 전에 있으며, 이 진리는 구약에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추는 이 사건을 가리켜 흔히들 휴거(the rapture)라 부릅니다.

구약의 상징적인 부분에 비밀의 휴거에 대한 그림이 다수 나와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직접적인 가르침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에녹은 홍수 이전에 악한 시대에 살면서 하나님과 3백년 동안 동행하다가 대홍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라고 권면할 때 그는 이 에녹의 일을 마음에 두었던 것 같으며, 그 다음에 그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의 똑같은 문맥에서 휴거의 비밀을 계시했습니다.

도 믿는 자에 대한 또 하나의 예로서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이 내리기 전에 옮기워졌습니다. 그가 비록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지 말아야 할 곳에서 살긴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인으로 부르셨으며(벧후 2:8), 그 평지의 도성들에 쏟아진 불과 유황으로부터 그를 구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똑같은 원리를 죽지 않고 옮기운 선지자 엘리야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왕하 2). 우리가 신약에 계시된 교훈에서 얻은 유리한 입장에서 뒤돌아볼 때 그와 같은 그림들과 상징들이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구약에는 두 단계의 그리스도의 재림-처음에는 교회의 비밀스런 휴거, 그 다음에는 그분이 영광 중에, 눈에 보이게, 공공연하게 나타나시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가르침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고린도전서 15 51절에서 그것을 가리켜 비밀 즉 지금까지는 드러나지 않은 어떤 것이라고 불렀던 이유입니다. 교회의 비밀스런 휴거와 그리스도의 영광 중에 나타나심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신약 성경에는 휴거에 관해 이야기하는 주요 구절들이 네 군데에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다락방 사역을 묘사하는 요한복음 14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자신의 재림에 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자신의 왕국에서 통치하기 위해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전에 먼저 환난의 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4~25장과 마태복음 13, 누가복음 21장에 나오는 비슷한 구절들은 이것을 분명히 해줍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가르침은 다릅니다. 여기에서는 그분이 자기 백성들을 아버지의 집으로 영접하기 위해 오십니다. 그분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처소를 강조하셨습니다.

둘째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나와 있는데, 여기에서 바울은 오실 인물을 강조했습니다. 그 인물은 주님 자신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교회를 세우는 3주간의 기간 동안만 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틀림없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개요를 가르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가운데에는 사건의 순서에 관해서 다소 혼동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온 후 핍박이 뒤를 따랐기 때문에 그들은 주의 날이 이미 핍박과 심판과 함께 임한 것이 아닌가 궁금히 여겼습니다. 바울이 거기에 있던 그 이래로 그들 중 몇이 죽었으므로 그들은 죽은 사람들이, 바울이 이야기했던바, 죽지 않고 하늘로 휴거되는 영광스러운 경험을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데살로니가서는 그와 같은 문제들에 관해서 그들의 마음을 안심시킬 목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휴거시에는 살아 있는 자들이라 해서 이미 죽은 자들보다 유리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먼저 영광스러운 몸으로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 있는 자들도 변화되어 다 함께 위로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 때부터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휴거를 다루는 세번째의 구절은 빌립보서 3 20, 21절입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그 때에 있을 믿는 자들의 몸의 휴거와 변화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영광스러운 목적의 일부분입니다.

빌립보서 3장은 자서전적(自敍傳的)입니다. 바울은 이 장에서 자신의 생을 개괄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구원받기 전에는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바리새인이었음과, 주님께서 자기를 붙잡아 자신의 삶의 방위를 다시 결정지으셨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학교에 들어가 그의 봉사를 좌우하게 될 중요한 교훈들을 배웠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눈을 푯대에 둔 채 장거리 경주를 시작했습니다. 이 장의 끝에는 믿는 자의 삶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마무리하는 복스러운 소망이 나와 있습니다.

휴거를 다루는 네번째의 구절은 고린도전서 15장입니다. 고린도교회에는 분명히 몸의 부활을 의심하거나 심지어는 부인하는데까지 이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가운데에는 사두개인들, 이방인 가운데에는 에비구레오 철학자들(the Epicureans)이 이 중대한 근본 진리를 부인했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그 철학자들을 만나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자 그들은 그를 조롱했습니다(17:32). 나중에 그가 산헤드린에 의해 심문을 받을 때( 23) 부활에 관한 논쟁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간에 격앙(激昻)케 되었습니다.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했지만 바리새인은 다 있다 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이교도와 사두개인의 부인은 분명히 고린도 교회에 악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육체의 부활에 관한 교훈을 상술(詳述)했습니다. 첫째로 그가 지적한 것은 그것이 복음의 토대 중의 하나라는 점입니다. 그 다음 그는 그 교훈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 위에 두었습니다. 그분은 정말 죽기 전의 몸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힌 몸과 똑같은 몸으로 부활하셨을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분의 육체적인 부활은 육체의 부활에 대한 시금석이자 본보기요 원형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 35에는 두 가지의 질문이 나와 있습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바울은 나중 질문에 대해 먼저 답변합니다. 고린도전서 15 36~41절에서 그 믿는 자의 부활의 몸의 특성을 묘사하기 위해 세 가지의 예화를 사용했습니다.

첫째 것-씨와 수확-은 식물학에서 취해졌습니다.

둘째 것-사람, 짐승, 물고기, 새의 네 종류의 육체-은 생물학에서 취해졌습니다. 이 각각의 육체는 하나님께서 두신 환경에 적응되어 있습니다.

셋째 것-해와 달과 별들의 상대직인 영광-은 천문학에서 취해졌습니다.

이 세 가지의 예화는 땅의 몸과 믿는 자가 소유하게 될 영광스러운 하늘의 부활의 몸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이 놀라운 장의 마지막 단락은(51~58) 35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사느냐? 보라 내가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51)

여기에 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비밀 중의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사도 바울의 사역에서 처음으로 계시된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우리 주님에 의해 마태복음 24~25장에서 묘사된 계시와 그리스도의 출현, 인자(人子)로서 눈에 보이게 공공연히 나타나심은 비밀이 아니지만 다음의 사항은 비밀입니다. 그분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산 자를 변화시키려고 오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지 않고 들림을 받을 것입니다. 그 일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이루어 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나팔을 요한계시록 11 15절의 일곱째 나팔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여 휴거가 대환난의 끝에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적어도 35년 후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요한계시록은 참조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전서 5 9절에서 아주 분명히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십중팔구 그는 민수기 10장의 은나팔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은나팔은 장로들과 전 회중을 소집할 때, 정한 절기에, 전쟁을 하러 나갈 때에, 희생제물 위에, 온 진()이 이동하려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행진할 때가 되면 마지막 나팔은 후진으로 하여금 진을 정돈하고 대오(隊伍)에 끼어들어가도록 하는 신호였습니다.

바울은 휴거시에 있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두 부류를 묘사하기 위해 썩은() 것과 죽을 것이라는 두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썩은 것은 이미 죽어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죽을 것은 살아있지만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사야 25 8절에 나오는 이름다운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구절은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는 때인 그 왕국의 영광을 묘사합니다. 휴거시에는 죽을 것 곧 살아 남은 자들이 죽음에게 도전장을 던질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썩은 것들은 무덤에서 일어나면서 무덤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소리칠 것입니다(우리말 성경에는 '무덤아' 대신 '사망아'로 나와 있음). 그리고 죽음에서 일어난 자들이나 변화된 생존자들은 둘 다 함께 위로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승리의 기록과 권면 및 격려의 말로 이 놀라운 단락을 끝맺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리므로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전도출판사 출판 -신약의 비밀스런 교훈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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