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교사 샘터
10. 장례와 혼인
(창세기 23: 1-4, 19.20 / 24: 1-8, 58-67)
성경에는 장례와 혼인에 관하여 수 많이 기록되어 있다. 슬픔의 장면과 기쁨의 장면이 교차한다고 할 수 있겠다. 초상집에 가는 것과 혼인잔치에 가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좋을까? 전도서 7장2절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라.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분깃으로 주신 토지는 매장지(埋葬地)였다(
10절에 나오는 헷족속-헷의 후손-을 주목해 보라. 아브라함이나 롯이 그 이웃들에게 얼마나 존경을 받았을까? 아브라함에 관하여는 6절에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라 말했지만 롯에 관하여는 “이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결혼하기까지 남자가 여자를 본 일도 없고, 여자가 남자를 본 적도 없었던 그 여인은 누구일까? 바로 리브가였다. 리브가는 50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시집을 갔다. 이삭은 그 여자를 보았을 때 좋아했고 사랑했다(24:67).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은 모리아산에서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당해 주실 희생을 모형으로 보여 주었다.
23장의 사라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후에 이스라엘이 젖힘을 당할 것을 모형으로 보여 주었다.
24장의 리브가는 이스라엘이 젖힘을 당한 뒤에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교회를 최초로 그려주고 있다.
25장의 그두라의 자손들은 예언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교회가 휴거된 후에 지상백성이 천년동안 축복을 누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24장의 아브라함의 종은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신부를 취하고자 내려오셔서 본향까지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이시다. 마치 엘리에셀과 리브가처럼.
또한 리브가는 몸된교회를 모형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그리스도에게로 오라는 초청의 복음을 듣고 이를 영접하는 개개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브라함의 종이 떠날 때에 염려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리브가는 자원했을까? 58절에 “가겠나이다” 리브가를 만류하려던 사람이 누구였던가? 그의 가족들은 적어도 열흘을 머물러 달라고 요청 했다 (55절).
구원받는 일을 열흘동안 미루는 것이 안전한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잠언 27장1절을 보라. “너는 내일 일을 자랑치 말라 하룻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친구들이 뭐라든 아무렇게 하든 리브가의 최종결정이 열쇠였던 것처럼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초청을 받았을 때에도 개인적인 최종결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 기억해 둘 말씀 / 계 19: 9
(197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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