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나봇의 포도원
(왕상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하여 다른 대목의 말씀을 아울러 상고해야 하리라. 첫째로 레위기 25:23절에서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라는 말씀을 보게 된다. 이로 보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토지의 매매를 허락지 아니하시고 다만 일시적으로 매매했다가도 희년(禧年)에는 반환하도록 되어 있었다(25:28절 참조). 둘째로 열왕기상 16장24절에서 아합의 아버지였던 오므리가 그의 소원대로 쉽게 세멜에게서 사다리아산을 매입할 수 있었다. 아합도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쉽게 나봇의 밭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 나봇으로 인하여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는데 나봇은 왕명(王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더욱 순종하려 했다.
1절에”아합의 궁에서 가깝더니”라 기록되어있고 2절에도 “내 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나봇과 같은 한낱 서민이 그의 곁에 살고 있다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 같다.
3절에”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라고 나봇이 아합에게 강경하게 부정한 사실은 구약 성경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예를 볼 수 있다. 여호수아 24장 16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 하오리니”라고 단언했고 사무엘상 12장 23절에서 사무엘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라고 선언했다. 셋째로 사무엘상 24장 6절과 26장 11절에서 다윗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라고 사울에의 보복과 관련하여 말한 것을 보게 된다. 이상 네 구절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해야 할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다. 우리는 주를 멀리하거나 부인할 수도 있으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 특권과 축복을 포기할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와 도고를 등한히 하기 쉽고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방해하는 상대에게 보복하는 등의 처사는 결코 온당한 것이 못된다
4절에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라는 말씀으로 보아 아합은 소심하고 음흉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20장 43절에도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 궁으로...”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라는 기록으로 보아 더욱 자명해진다.
7-10절에서 아합이 그처럼 악했던 것은 사상 비길데 없는 악처(惡妻)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이 여자의 대담한 어조를 주목해 보자 “내가 이스라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또한 나봇을 돌로 쳐죽이려는 밀계(밀계)를 세우는 것을 보아 잔인성은 짐작할 만하다. 또한 나봇의 살해를 위한 치밀한 계획을 보아 얼마나 교활한 가를 엿볼 수 있다. 하나님을 저주한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죄악이며 (레
19절에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신약 성경에서도 이처럼 엄위하신 경고를 볼 수 있는가?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다.
열왕기하 10장 1∼10절에 보면 나봇의 아들을 죽인 댓가로 아합의 아들 70명이 죽임을 당했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라엘 나봇의 집이 있던 곳으로 보내졌던 것이다.
20절에 “나의 대적이여”라고 아합을 부르고 있음에 비하여 바울은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함으로 원수가 되었느냐” (갈
(7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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