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신자가 구원을 상실할 수 있는가?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성도가 얻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에 대해 흔히 히브리서의 두 개의 구절이 논쟁거리로 부각된다. 그 두 구절이란 히브리서
히브리서
이제 우리는 이런 변절자에 대한 묘사를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1. 그는 복음의 명백한 제시와, 회개하고 믿으라는 복음의 초대에 의하여 빛을, 즉 조명을 받았다. 분명히 그는 신앙을 표백했으며,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려 했다.
2. 그는 하늘의 은사(dorea, 이것은 charisma 즉 “영적 은사”와는 다른 것이다)를 맛보았다. 즉 그는 교회의 활동, 곧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주님께 예배하고 봉사하는 즐거운 교제에 참여하였으며, 심지어 공중모임에서의 자기의 간증과 호소에 대한 반응까지도 목격했다.
3.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하심을 맛보았다. 말하자면 그는 성경 메시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에 도달해서, 정신적으로 지적으로 그것을 승인했으며, 설교자가 강단에서 그것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제시하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았다.
4. 심지어 그는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이것은 마치, 둘씩 짝지어 나갔던 전도 여행에서 그들이 주 예수를 전할 패에 귀신들까지도 그들에게 복종한 사실에 크게 기뻐하면서 다른 열한 제자와 함께 돌아왔을 때의 가룟 유다가 그러했던 것과 꼭 같다(눅
이렇게 볼 때 여기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속성 중 세 가지는 모두 유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는 3년간을 주 예수와 함께 다니면서 그의 직접적인 교훈을 듣는 동안에, 빛을 받았고 하늘의 은사와 하나님 말씀의 선함을 맛보았다. 그가 복음 전파와 귀신을 쫓아내는 일에 참여했던 점에서 그는 성령에도 참여한 바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성령이 그의 안에 거해서 그의 몸이 실제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데에는 부족했다. 참으로 어림도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마음을 읽으실 수 있었으며, 또한 그의 마음속에 있는 외식과 배신을 보셨다-최후의 유월절 식사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분명하게 지적하셨다. 요한복음 17장의 대제사장적 기도에서 예수께서는 유다를 “멸망의 자식”(12절)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동료 제자들 앞에서 한 일이 아무리 설득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가룟 유다가 어느 한 순간이라도 참으로 중생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도 변절자의 특성으로 묘사한 그 네 가지 속성이 모두 유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유다는 내내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사적인 이익을 얻고자 했음이 분명하다. 아마 그는 앞으로 도래할 그리스도의 왕국에서(그는 이 왕국을 주로 정치적이요 지상적인 차원에서 생각했다) 높은 지위를 기대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는 마음속으로 심각하게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뜻과 영광을 위한 진실한 헌신의 제단 위에 자기의 몸을 바친 적이 결코 없었다. 유다가 그런 헌신을 공언했을 수는 있지만 결코 진심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께서 정치 권력을 쥐기 위하여 자신의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셨을 때에, 돈 얼마를 받고 성전의 고위층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팔아 넘기기로 결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실은, 그가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려서 그의 영광과 그를 섬기는 데에 사용되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고자 했음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 준다.
예수님을 구주로는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되 주님-그가 살든지 죽든지 끝까지 섬기기를 원하는 분-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은 외관상의 신자에게 있어서 일생 중 한번은 마침내 시험의 때가 임해서 그의 “개종”의 허구가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주님의 손에서 결코 빼앗겨지지 않을 참으로 거듭난 신자는, 그를 자기 자신에게가 아닌 그리스도에게 중심을 맞추어 놓는 내적인 마음의 변화 과정을 거친 사람이다(참조. 고후
두번째로 생각해야 할 히브리서의 단락은
진정과 진심을 다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신자는 결코 진심으로 혹은 기꺼이 죄 속으로 빠져 들어가거나 “하나님 아들을 짓밟지”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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