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 침례요한
그때에 침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과학문명의 급속한 발달은 풍요한 물질의 세계를 낳아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정말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사단은 의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에(고후
그러나, 물질의 풍요와는 반대로 사랑이 메말라 사회는 병들어 갖가지 죄악들이 난무하고 있으니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세계는 아름답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황량한 사막이요, 거치른 광야임에 틀림 없습니다. 어쩜 우리도 침례 요한처럼 광야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말씀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첫째, 주님의 때에 앞서 침례 요한은 주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되어져 감을 보고 말세라 하면서 곧 주님이 공중재임 하셔서 우리 성도들을 구름 속으로 끌어 올리시고, 그 후 7 년 대 환란이 올 것이군, 그 후에는 천년왕국을 이끄시리라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예수님을 증거하는 침례 요한과 다를 바 없으며,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우리가 증거하고 있는 말씀들이 바로 주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속히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그의 성도들에게 믿음의 불량에 따라 한 성령으로 여러 가지 은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고전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삭막한 광야나 다름 없는 이 세상에서 과연 주님의 말씀을 외쳐 증거하고 있는가? 외치고 있다면 그 외침이 얼마나 멀리 메아리쳐 나가는지? 개개인이 받은 은사를 정녕 활용하고 있으며 활용 정도는 얼마나 되는지 반성을 하여 새로운 신앙생활을 설계하여야겠습니다.
둘째, 주님의 길을 예비하되 첩경을 평탄케 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이사야 40장 3~5절 말씀은 문자적으로도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우리 눈으로 똑똑히 봅니다. 중동 여러 나라의 사막에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험난한 계곡을 메우거나 다리를 걸쳐 놓고 높은 산허리를 깎거나 굴을 뚫어, 동서를 잇는 실크로드가 오늘날 고속도로로 변신되어 가고 있으니 예언의 모든 말씀들이 그대로 성취됨을 우리는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시대부터 현재까지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고대하고 그것을 최대의 소망으로 삼아왔으나 주님은 오시지 않고 있습니다. 만의 하나 우리들이 주님의 첩경을 평탄케 하는 일에 게을러 그 길을 충분히 예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이 더디 오시는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첩경’ 이라는 단어는 ①지름길 ②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쉽고 빠른 방범.
‘평탄’ 이라는 단어는 ① 지면이 넓고 평평함 ② 감정의 격함이 없고 편하여 고요함 ③ 일이 거침이 없이 순조롭게 되어나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위 뜻을 재구성하면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고 상속받기 위해(마 25:34), 구원 받을 백성을 예비하기 위해(롬9:23~24), 믿지 않은 자들에게는 영원한 불을 예비하기 위하여(마 25:41) 주님이 오실 길을, 넓고 평안하여 거친 것이 없이 빠르고 순탄하게 나아가시도록 준비해야 되겠지요.
따라서, 성도들 개개인이 받은 은사를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준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도 뵙고 싶은, 그리워하는 주님이 더디 오시는 것이라면, 분명 우리는 주님 앞에 섰을 때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겠지요. 그러나, 주님은 은혜가 풍성하셔서 이 세상의 되어져 감의 주체가 주님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세째, 요한의 옷차림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그는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다 하였습니다(마
따라서, 우리 성도들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왕상
세상에 파고든다 하여 그들과 동화된 삶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쉽게 달아지지도 않고 끊어지지도 않는 가죽띠를 메고 다녔던 요한처럼 우리도 믿음을 굳게 갖고(고전
네째, 요한의 음식이 되었던 메뚜기와 석청에 대해서 입니다. 메뚜기는 정결한 곤충으로 유대인들의 응식이 될 수 있었으며(레
그리고, 석청은 일찌기 인류의 음식으로 되어졌으며, 그 꿀은 강인한 야생봉이 저장한 것으로 어느 한 꽃에서만 따온 꿀이 아니라 모든 꽃에서 모아온 청으로 부식을 촉진하는수분을 날려보낸 순수한 꿀이요 모든 풍상을 겪은 야생의 석청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생명의 양식이 되는 주님의 말씀을 꾸준히 읽고 묵상하여야겠고(시 119:15~16), 편협적인 성경묵상이 아니라 포괄적인 묵상이 되어야겠으며(사 34:16). 그리고 나의 것으로 소화시켜 학자들이 학문을 하는 방법처럼 체계를 세워야겠고(사 50:4), 주님으로부터 영적인 훈련을 끊임없이 받아야 하겠습니다(시 26:2).
이런 훈련으로 다져진 성도는 메뚜기가 도약하고 비상하듯 성령의 검을 들고 힘을 합쳐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빛을 지역교회 안에서만 비추려 하지 말고 온 나라 안에 고루 비춰질 수 있도록 밝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양성하여 복음의 빛을 들고 여러 지역으로 나가게 하였으며, 주님 사후에는 인도까지 전도의 길에 올라 순교하였음을 상기할 때, 우리는 과연 참다운 제자를 얼마나 양성하였으며 양성하고 있는가 깊이 뉘우쳐야겠습니다. “형제는 복음에 은사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함으로, 누구나 복음 전할 사명을 받았음에도 그것을 수건에 싸두게 하고서, 자기 모임 안에 안주시켜 두려고 한다면, 모임은 커질지 몰라도 복음은 편만이 퍼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아닐는지···· 그리고, 주님의 길을 예비함에 있어서, 첩경을 평탄케 하는 일에 저해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끝으로, 요한의 외침과 그 결과를 볼 때, 그의 말은 영혼들의 마음을 찌르고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그에게 나아와 회개의 세례를 받았던 것이며, 그의 가르침을 듣고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찾아 왔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거기다 “독사의 자식들아”하고 외치는 힐난의 말을 듣고도 그를 어찌하지 못했던 점으로 보아 요한에게는 주님이 함께 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내가 주님이 쓰시는 훌륭한 일꾼이라면 또, 주님이 나와 동행하고 성령님이 내 입술을 움직여 주시는 설교라면 모든 성도들이 귀를 기울여 듣고 마음 판에 새겨 영적 감화를 받게 될 것이요 구도자들 스스로 나아와 말씀을 듣고자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에 나타난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 유대인들의 물음에서 사도들의 말씀의 능력을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 자인가를 실감하게 합니다.
믿음에 연륜이 짧고 시골에 묻혀 주님 일보다는 직장생활에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보잘것없는 형제가 감히 믿음의 선진들에게 이와 같은 교제를 하게 되어 송구스럽기 그지 없으나 주님의 가르침인 이상 사랑으로 용서하여 주시리라 믿고, 우리 모두 말씀의 터 위에 굳게 서 영적 부흥을 성취하도록 주님의 인도함을 받기를 간절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줄입니다. ♠
(1985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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