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윌리암 윌리암즈
소개말
“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시 119:129).
구약을 읽어 보면 우리는 많은 장(章)들이 주님의 종들의 생애로 채워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의 출생, 이유(離乳), 성장, 결혼, 믿음과 섬김의 시련과 승리, 죽음,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전에 기록된 이와 같은 것들은 성경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주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도록 도와 줍니다. 또한 이것들은 말씀 집회와 수양회에서 가르쳐 지는 가장 교훈적이고 실제적인 일부 가르침의 기초가 됩니다. 신약의 처음 네 책들은 전기(傳記)와 교훈의 빼어난 결합체입니다. 다섯 번째의 책은 역사와 행동을 담고 있으며, 그 다음에는 순전히 교훈적인 서신들이 뒤이어집니다.
슬프게도 세상과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플리머드 형제들(Plymouth Brethren)” 이란 별명을 붙였고 그 주님의 백성들을 반대하는 글들을 많이 써 왔습니다. 그와 같은 비평가들은 대개 우리를 그저 다비(Darby), 켈리(Kelly), 그랜트(Grant), 또는 다른 훌륭한 주님의 종들의 교훈을 추종하는 사람들로 간주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그분의 백성들을 반대하여 편파적인 논쟁을 앵무새처럼 똑같이 되풀이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참된 기독교의 신약 성경의 원칙들을 확신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을 거의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백발(白髮)이 다 된 전통과 교계의 편견은 그들의 판단을 왜곡시킵니다. 우리는 지금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바른 교훈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전
제1장
“우리도 다····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우리 가족은 엄격한 옛 장로교회 형(形)의 종교적인 가족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 교회 분열(the Disruption) 즉 1844년에 스코틀랜드 자유 교회(the Free Church))가 영국 국교(the Established Church) 로부터 분리해 나올 당시에 저의 조부님은 그 지도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의 장남인 저의 백부님은 애버딘 대학교로_보내어졌으며 졸업 후에는 자유 교회의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온 일가친척들에게도 “목사”였습니다. 저는 이 백부님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원래 조부님 소유였던 잘 제본된 포켓 성경을 주셨으며 저는 그것을 포켓 속에 수 십 년 동안 휴대하고 다녔습니다. 그것은 제가 토론토에 취직되어 있는 동안
묘지를 방문하던 중 언젠가 한 번은 화강암 기둥에 “그대는 반드시 거듭나리라”라는 말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당시 묘비에 기록해 놓은 것을 아주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거듭난다” - 이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 저는 어른이 되면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제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종소리가 그치면 우리는 예배당 좌석으로 줄지어 틀어가 재미없는 설교를 오랫동안 듣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본문”이 있는 성경의 여백에다 항상 표시를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회가 끝나면 저의 아버님은 목사가 똑 같은 설교를 언제 몇 번이나 했었다는 것을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침착하지 못한 어린 제 마음은 자기 앞에 있는 원고를 그대로 읽는 그 성직자의 무미건조한 신학적 강론에 전혀 흥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 집회는 통상적인 식사 시간을 지나쳐 오래 계속되었으므로 저는 보통 배가 고파서 밖으로 나가 집으로 갔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형제들이여, 이제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은 실로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끝날 때가 다 되었고 큰 성경이 곧 덮어질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기도합시다”라는 말이 떨어지고 “여왕과 왕가의 모든 식구들”과 기타 등등을 위한 판에 박힌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로들이 “연보”를 걷기 위해 “국자”를 들고 돌아다녔습니다. 이 국자는 긴 손잡이 끝에 조그만 상자가 묶여 있는 것으로서 성도들과 죄인들 앞으로 밀어넣기엔 안성맞춤인 아주 편리한 것이었습니다. 보통 제 아버님이 일정 분량의 페니들을 가지고 제시다가 적시에 그것을 우리에게 넘겨주시면 우리 각 사람은 분배받은 동전을 그 이상한 용기(容器) 속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몇 개의 순서가 더 있은 다음 우리는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배당 문에서 서로 인사했고, 여자들은 떼를 지었으며, 남자들은 파이프에 불을 붙이곤 했습니다. 그리고 집을 향한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대개
그러나 “안식일”은 저에게 괴로운 시련의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휘파람을 불거나, 놀거나,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읽는 일이 금지되었습니다. 그 날 오후는 보통 우리가 배운 시편 찬송가와 그 곡조를 부르는 것으로 보내어졌습니다. 저녁 식사 후 아버님은 성경 한 장(章)을 읽으셨습니다. 그 다음에 모두가 무릎을 꿇으면 아버님은 책에서 기도문을 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주기도문”을 외었습니다. 이 당시에 존경하는 저의 부모님은 나중에 그분들이 고백하신 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길에 대해 전혀 모르고 계셨습니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우리는 “부흥 집회들(rivals)”과 “플리머드 형제들”에 대해 경고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애버딘 대학교를 졸업한 목사라 할지라도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또는 “거듭났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자만스런 “형제들”은 어떻게 감히 자기들은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후 두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집으로 와서 근해의 농가에서 열리는 복음 집회로 우리를 초청했습니다. 제 아버님은 성경의 문자적 의미는 알고 계셨으므로 빌
저의 부모님은 자신들의 믿음 안에서 온전히 진실하시긴 했지만 불행히도 성경 해석을 성직자에게만 맡기셨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일해 온 베네주엘라의 로마 카톨릭 교도들과 같은 처지에 어느 정도 처해 계셨습니다. 그들은 사제로 하여금 성경을 읽고 해석하게 합니다. 진실하긴 하지만 속고 있는 그와 같은 사람들을 대할 때는 얼마마한 인내에 재치와 은혜가 필요한지 모릅니다! ♠
(1985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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