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모임(9)
제9장 그리스도인 모임의 특징(계속)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마태복음 18장 20절의 공부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그리스도인 모임의 4가지 특징을 배웠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인사를 읽어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2가지의 특징을 더 배우게 됩니다.
1. 감독(overseers or bishops)의 인도를 받음.
2. 집사(deacons or. ministers)의 가르침을 받음.
이와 같은 중요한 특성들 중에서 처음 특성을 먼저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V. 장로의 인도를 받음
빌립보서 1장1절에서 “감독들”로 번역된 단어의 원어는 “에피스코포스(episkopos)”이며, 감독(Superintendent or overseer)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에피스코포스”가 사도행전 20장 28절에는 감독자(overseer)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같은 단어의 동사형(에피스코페오, episkopeo)이 베드로전서 5장 2절에서 “감독하며(taking thee oversight)”로 번역되어 있습니다(우리말 성경에는 “감독하며”란 구절이 나와 있지 않음) 따라서 이 단어의 정확한 번역은 “감독(overseer)”입니다. 1611년 당시의 번역자들은 자기가 번역한 사도행전 20장 28절과 베드로전서 5장 2절의 번역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즉 감독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bishop보다 overseer가 더 정확하다는 뜻임). 번역자들의 번역 방침 중의 하나는 “교계에서 사용된 옛 단어들은 보존되어져야만 한다”였습니다. 그러므로 번역자들은 bishop(감독)이란 단어를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 그리고 빌립보서 1장 1절에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감독과 장로
사도행전 20장 17절에는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the eklers, presbuteros)을 청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 장로들이 바울에게로 왔을 때 그는 그들을 “감독자”로 불렀습니다(행
그렇다면 장로와 감독 두 단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장로란 단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는 모임에서 영적으로 더 나이가 많은 남자, 연장자이며,”새로 입교(入敎) 한 자는 말아야” 합니다(딤전
감독의 자격
성경은 하나님의 지역 교회에서 감독으로 인정될 수 있는 남자의 자격에 대해 자세히 규정해 놓았습니다. 먼저 디모데전서 3장 1~7절과 디도서 1장 5~9절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에 기록된 규정들은 감독이 추구해야 할 이상(理想)이 아니라 감독이 되기 전에 그가 이미 도달해 있어야 할 기준입니다(딤전
1. 개인적
책망할 것이 없으며 - 딤전
절제하며 – 딤전
근신하며 – 딤전
아담(雅淡) 하며 – 딤전
관용하며 – 딤전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 딤전
구타하지 아니하며 - 딤전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더러운 이(利) 탐하지 아니하며) – 딤전
다투지 아니하며(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 딤전
탐욕스럽지 아니하며(not covetous) –딤전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 딛
2. 사회적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 딤전
자기 집을 잘 다스리며 – 딤전
자녀들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 딤전
나그네를 대접하며 – 딤전
모임 밖의 사람들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하며 – 딤전
3. 영적
선(선한 사람과 선한 일)을 좋아하며 – 딛
영적으로 성숙한 자(구원받은 지 얼마 안된 사람은 안됨) –딤전
경건해야 하며(의로우며 거룩하며) - 딛
성경에 관한 좋은 지식이 있어야 하며 – 딛
가르치기를 잘하며,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 있어야 하며 – 딤전
4. 의지적(意志的, volitional)
“자원함으로 하며····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딤전
디모데전서 3장의 강조점은 주로 개인적인 자격과 사회적 자격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그와 같은 요구 조건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것들입니다. 감독의 믿음은 건강하고 정상적인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가 감독하고 인도하기 전에 그리스도인의 삶과 실천에 있어서 먼저 자기 자신이 좋은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의 장로들은(딤전
개인적 혹은 도적적 자격에 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타당성과 중요성은 모든 사람에게 분명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2절의 “책망할 것이 없으며”란 구절은 “비난 받을 일이 없는”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임의 지도자들이 비난 받는 사람들. 모임 밖의 사람들에게 악평이 나 있는 사람들이라면, 무엇이 그것보다 더 빨리 그 모임을 악평으로 몰고 가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임들이 좋은 명성을 보존하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 모릅니다.
에베소 장로들을 위한 교훈들은 A.D. 65년에 기록되었으며, 이것은 그 당시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장로들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5년 전에 이미 밀레도에서 사람을 보내어 에베소 장로들을 소집했기 때문입니다(행
그와 같은 책임을 위임 받으려는 사람은 필히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어야만 합니다. 새로 입교한 자 혹은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자는 안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장로입니다. 모임에서 인도자의 책임을 영적으로 어린 사람의 어깨 위에 두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그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잘 먹일 수 있을 만큼(벧전
감독에 대한 마지막 자격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려는 자원함입니다. 모임을 인도하는 사람은 그 일을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해야 합니다(벧전
감독의 일
성경에는 감독의 일에 관해 명확한 지침이 주어져 있습니다.
1. 먹이는 일(Feeding) -
“····삼가라····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행
이것은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권면했던 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장로들에게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먹이되(우리말 성경에는 “치되”로 나와 있음)’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벧전
2. 안내하는 일(guiding) -
히브리서 13장 7절, 17절, 24절에서 감독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안내자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의의 길로 안내를 받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성도들을 경건한 길로 안내하는 일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 성경을 잘 아는 사람, 성경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의 일입니다.
3. 인도하는 일(leading) -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主掌)하는 자세(藉勢)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경건한 길을 가르침을 받는 일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인도자들 스스로가 먼저 그 길에 행해야만 합니다. 성도들은 주장하는 자세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길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본이 되는 경건한 삶의 능력을 통해 인도함을 받습니다.
4. 돌보는 일(caring) -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딤전
“돌아보다(Take care of, 돌보다)”로 번역된 단어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오직 누가복음 10장 34~35절에만 나옵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는 도중 강도를 만나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사마리아인이 다가가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멸망하는 인간들에게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생각해 볼 때 사마리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죄인을 구원하신 후에-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는 것-그를 모임(주막)에 두어 거기에서 그 자신과 그의 영적 안녕을 보살피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을 친히 보살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주막 주인의 보살핌에 맡겼습니다.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주막 주인에게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浮費)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35절).
그러므로 주막 주인은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는 일을 위임받은 목자의 그림입니다. 주님 자신이 자기 양들을 돌보실 뿐만 아니라, 그 일을 모임의 감독들에게도 위임하십니다-”하나님의 집을 돌아보라” 자기 집을 돌아볼 수 있다는 말은 곧 하나님의 집도 돌아볼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감독은 이와 같이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청지기”로 불려집니다(딛
(198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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