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모임
제19장 교회의 확장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 교회의 제정
우리는 이미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대로 오순절 날에 성령님의 오심 즉 중생시키는 능력을 가지신 성령님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오신 것과, 중생한 모든 사람들이 성령님께 참예한 자들 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성령님께서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모습으로 오석서 각 제자들 위에 임하신 것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세계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위임되었음을 알리시기 위해 방언의 은사를 주신 일 등 놀라운 사건에 관해 배웠습니다. 이 주목할만한 현상은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는 것이라 불렸는데, 이는 곧 120명의 성도들을 한 몸으로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고전
Ⅱ. 교회의 확장
그런데 스데반의 죽음 후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점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행
복음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해 주님께서 택하신 그릇인 다소의 사울이 주님께로 돌아온 기록은 사도행전 9장에 나옵니다. 10장에는 기독교로 개종한 첫 이방인 고넬로가 주님께로 돌아온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예루살렘 영역 밖으로 전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 실제로 전하셨습니다.
Ⅲ. 안디옥 모임
하나님의 선하심 가운데 복음은 북 수리아의 안디옥에도 이르렀습니다. 이 성읍으로 보내어진 첫 선교사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직접 왔으며, 그들은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이 복음 사역의 소식이 곧 예루살렘에 전해지자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내어 그 사실을 조사하고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도착했을 때 그의 영혼은 안디옥에서의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보고 감격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뜻하는 바대로 참된 권위자(權威者)인 그는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했습니다”(행
안디옥으로 바울이 옴
바나바는 좋은 복음 전도자이자 좋은 권위자였던 것 같습니다. 이 두 은사는 어느 모임에서나 대단히 귀중한 은사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어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권위함뿐만 아니라 가르침도 필요하기 때문에 바나바는 안디옥을 떠나 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갔습니다. 이 사울은 나중에 우리에게 사도바울로 알려집니다. 안디옥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습니다”(행
안디옥 모임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7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
1. 이 모임은 유대인과 “믿고 주께로 돌아온”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행
이 점에서 볼 때 안디옥 모임은 유대인으로만 구성된 예루살렘 모임과 크게 달랐습니다. 안디옥에서 있었던 이 새로운 질서는 현재의 경륜 안에 들어 있는 그분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대표합니다. 옛 언약 하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큰 분리의 벽이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언약과 약속들이 있었고, 희생제물과 제사가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성소와 영광의 구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이와 같은 것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분리의 벽 다른 쪽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이것보다 더할 불행도 있을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나라밖의 사람”이었으며.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外人)이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 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 하에서는 이 모든 것이 변하게 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똑같이 하나님께 화목되어 한 몸이 됩니다.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던 그 분리의 벽은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에베소서 2장 11~18절은 이상의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한 몸이 된다는 이 새로운 이상(理想)은 안디옥 모임을 묘사하는 글에 첫번째로 표현되었습니다.
2.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는 안디옥 사람들이 제자들에게 별명으로 주었을 것이라고 흔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의깊게 공부해보면 그와 같은 주장은 틀린 것 같습니다. “일컬음을 받다(called)”로 번역된 단어는 하나님에 의해 일컬음을 받게 된 것, 신탁(神託, an oracle)으로 선포된 것을 암시합니다. 이 똑같은 단어가 다른 곳에서 사용된 용도를 살펴보면 그 뜻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a) “저가····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라”(눅
d)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히
c)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히
분명히 그 단어는 하나님의 계시의 생각을 그 속에 담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에 의해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이에 반해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도 분명히 똑같은 그리스도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이 아름다운 이름을 예루살렘 성도들에게는 주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똑같은 입장에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3. 그들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행
안디옥 교회는 이 때 대단히 안정된 모임이었기 때문에 성령님께서는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곳에서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안디옥 성도들은 성령님과 대단히 밀접해 있었으므로 그들은 그분의 멧세지를 받아 바나바와 사울을 보내야 할 곳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임이 성령님과 대단히 밀접해 있어서 그분이 모임에 말씀하실 수 있으며 그 모임은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없을 때 그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4. 그들은 주님께 은사를 받은 일군들에 의해 섬김을 받았습니다(행
안디옥에는 주님을 섬기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어서 그들이 모임에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안디옥 모임에 여러 명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오직 한 형제만 사역하는 것은 건전치 못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사역하는 것도 건전치 못합니다. “그가 몇을 사도로(some, apostles), 몇을 목자와 교사로, 몇을 복음 전하는 자로, 몇을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
a) 복음 전파(행
b) 권면(행
c) 가르침(행
5. 그들은 예루살렘 모임과는 독립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두 모임간의 교제는 유지되었습니다.
안디옥에 있었던 모임은 “안디옥 교회”로 불렀습니다. 이 모임은 예루살렘 모임처럼 하나의 에클레시아였으며, 자기 소유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이 모임을 예루살렘 에클레시아를 통해서 다루신 것이 아니라 직접 다루셨습니다(행
6. 그들은 복음 전하는 자와 교사를 파송했습니다(행
은사는 그 첫째 목적이 모임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임에서 사용되어지고 증명이 된 후에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그 은사가 그 모임 밖에서 사용되어지기를 원하신다는 뜻을 나타내십니다. 한 모임이 영적으로 번창해서 자기 모임의 은사들을 여건이 좋지 않은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주님의 일을 위해 형제들을 천거하여 그 모임 밖의 교제하는 곳으로 보내는 일에는 분명한 지침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a) 뚜렷한 은사의 소유(행
b) 봉사에 해한 개인적인 부르심(행 13:2상) -이 사람들은 그들이 속한 모임에서 “주를 섬겼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의 은사와 섬기는 능력이 유익하게 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c) 성도들은 은사를 가지고 있는 일군들을 주님의 일을 위해 따로 세우도록 요청되었습니다(행 13:2하).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l 은사를 받은 사람들 중 오직 일부만 보내어져야 합니다. 모임에 있는 은사를 받은 사람 모두가 다른 곳으로 보내어져서는 안됩니다. 은사를 받은 일군들은 그 모임 자체에서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l 바나바와 사울이 다른 곳으로 보내져야 할 것을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분명히 알게 하셨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보내심을 받은 것은 그들 자신이 천거해주기를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d) 모임의 교제와 천거가 뒤따랐습니다(행
7. 그들은 선교사 사역에 관심이 있었습니다(행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형제들의 천거를 받아 안디옥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서쪽으로 여행하여 구브로 섬과 소아시아의 남쪽 지방에 있는 많은 성읍들을 방문했습니다. 많은 모임이 이 두 형제에 의해 세워지고, 많은 성도들이 이 두 형제의 봉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에 세움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행
(198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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