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간표
D. B. 롱
제9과 하나님의 장래의 심판: 언제? 어디서? 왜? 누가?
신약성서는 우리에게 아직도 장래에 있을 세가지 주요한 심판을 말한다. 하나는 마태복음 25:31-46이며, 또 하나는 로마서
위에 언급된 세가지 성경귀절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그룹은 서로 구별되며, 분리된다. 또한, 시간, 장소, 이슈와 사람들이 모두 분명하고 정확하게 구별된다. 또할 우리가 그 차이점을 식별하지 못한다면 혼란과 오해와 오용하게 될 것이다.
막연한 부활 혹은 막연한 심판이라는 생각은 성경말씀에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非)성서적이며 성서의 분명한 말씀을 피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같은 장(요 5장)24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부정은 강하고 무조건적이며, 그리스도인의 죄는 이미 심판되었고, 그 갈보리에서 그의 대속자에게 집행되었다. 이 처리에 대한 공식적인 증명과 그것에 기초를 둔 실행은 죽은 자 가운데서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롬
■ 열방들의 심판
마태복음 25장의 심판은 인자가 땅에 오셔서 그의 보좌에 앉을 때 일어날 것이다. 인자라는 칭호는 천년 통치의 칭호이며, 항상 고린도전서
■ 크고 흰 보좌
계시록 20장 마지막 다섯절로 돌아가서, 우리는 주변인들과 환경이 땅에 열방으로부터 아주 이송되어 다른 법정을 발견한다. 하늘과 땅이 간데 없고, 천년왕국이 간데 없다. 사단,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마태복음 25장에서 짐승의 표를 받았던 자들이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심판 받아 불못에 있는 것과 같이 불못에 던져져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죽었든 혹은 살았든지 간에 휴거시에 땅에서 들림을 받았다(살전
이 심판의 대상은 죽어있다가 그때 다시 살아난 자들뿐이다. 그 무리들은 인간의 표준으로 무론대소하고 죽은 자들이다. 이들은 5절에서 환난시 순교자들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통치하기 위하여 살아날 때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한다는 자들이다. 여기에 믿는 자들은 없다. 그 이유는 휴거시까지 죽었던 성도들은 휴거시에 살아났고. 환난시 죽은 성도들은 천년왕국에 살아난다(계
그 보좌는 그 위에 앉으신 분과 그 앞에 모인 수 많근 자들 때문에 또한, 불못을 언도하기 때문에 크다. 흰색은 그것을 특징지워주는 거룩함과 공의와 의로움을 우리에게 생각나게 해주는 색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자들은 마지막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내어 주라는 명령에 견딜 것 같은 사망과 음부 조차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므로 모든 사람이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책들이 펴 있는데 그 중에는 생명책과 성경전서도 있다. 이것은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하신 우리 주의 말씀(요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는 누구든지 불못에 던지워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분리요, 믿지 아니하는 자가 그들의 생애동안 자기자신의 선택한 이 마지막 심판은 세세토록 계속되는, 쉬임 없는 고통의 장소로 묘사되어 있다.
■ 영원한 형벌
하나님께 대항함으로 오는 이 심판의 무서운 특징과 기간에 대해, 어떤 이들은 영원보다는 짧은 기간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이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그들은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 사용된 헬라 단어의 세세토록 이라는 의미를 지적한다. 그들은 형용사 “aionios”는 긴 시대를 의미할 것이며, 또한 계시록
그러나 영원히 라는 의미를 표현하는 다른 일반적인 단어가 없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 단어는 계속해서 헬라 문학에 또한 신약성서에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사상을 시사하기 위하여 사용된 단어이며, 또한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영원하신 특성을 묘사하시기 위해 사용된 단어이다. 만일, 이 단어가 불못에 적용할 때 영원 보다 짧은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증명될 수 있다면, 그 때에는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언약, 심지어 하나님은 “영원하신 성령” 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 얻을 때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 조차도 같은 효력 혹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라는 요한복음 10:28절 말씀은 그 의미와 능력을 잃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원한 죽음이 영원하지 않다면 어떻게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영원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 두 가지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요일
(198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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